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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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이 말하는 '이우환 공간'과 나

1 개요

이우환
李禹煥
Lee U Fan

한국의 미술가. 모노하(物派)의 대표 작가. 점찍고 돈버는 할아버지

1936년 경상남도 함안군 출생. 서울대 미대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교 철학과 학사를 받았다. 이후 일본에서 평론으로 관심을 모으고 모노하 운동에 참여해 관심받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일본에서는 가가와나오시마에 미술관도 여는 등 예술가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상태.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재해석했다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구겐하임 미술관베르사유 궁전 등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이나 나오시마 등에 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2013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부산시립미술관 별관인 이우환 공간(Space Lee Ufan)에 작가의 작품들을 전문적으로 상시 전시하고 있다. 홈페이지

2 작품세계

1956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에 들어갔지만 그해 여름에 숙부의 병문안 차 일본으로 갔다가 그대로 일본에 정착, 서울대를 중퇴하고 니혼대학 철학과에 편입해 졸업했다.

이우환이 미술계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 일본 미술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모노하(모노파)[1] 운동이었는데, 이우환은 1969년 모노하의 대표적인 작가 세키네 노부오를 다룬 평론인 '존재와 무를 넘어서'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모노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서 큰 영향을 끼쳤다. 1971년에는 평론집 '만남을 찾아서'를 출간해 한국 미술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다만 철학과 출신답게 미술평론에 하이데거의 이론을 접목하는 등(...) 가볍게 읽기는 어려운 글을 많이 썼다.

하지만 외국인 작가로서 자국 미술계에서 큰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던 이우환에 대한 일본 작가들의 시각은 곱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모노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역시 적지 않았지만 1970년대까지 모노하는 일본 미술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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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부터>(1975)와 <선으로부터>(1978).
그림으로는 초기엔 <점으로부터> 또는 <점에서> 등의 제목을 붙인 점 연작을 그리다가 1970년대부터는 선을 사용한 선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표현에 있어서 감정의 표출을 상당히 절제하고, 일정한 패턴이나 질서를 유지하면서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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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작품인 <관계항>(1978).
같은 시기 조각 작업도 병행해 <관계항> 시리즈를 제작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솜, 철골, 유리, 노끈, 목재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나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들이 바로 돌과 철판이다. 이 두 소재는 형태와 만들어진 과정에 있어서도 만들어진 것과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대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철판이라는 것이 돌로부터 성분을 뽑아내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소재를 서로 만나게 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고 있다. 작품에 사용되는 돌은 이우환 자신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골라내는데 '아무렇게나 생긴 돌'을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돌이 의외로 별로 없다고.. 간혹 주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일 때 이 돌은 어떠냐, 저 돌은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저렇게 생긴 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그 기준을 모르겠다며 의아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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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1987).
하지만 1980년대에 와서는 자신의 이러한 작업에 대해 내적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혼란은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앞서의 정연한 스타일이 깨지는 양상을 띠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그린 것 같은 화풍까지는 또 아니라는 것이 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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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spondence>(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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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spondence>(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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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ogue>(2011)
<조응> 시리즈로 알려진 작품들.

1990년대에 이르러서 이우환의 화풍은 다시 안정으로 돌아온다. 이전까지 여러 개의 점이나 선이 등장하던 것과는 달리 캔버스에 점이 한 개나 두 개만 찍힌 아주 간단한 구조로 변화했다. 그렇다 보니 작품을 접한 일반 사람들은 저런 건 나도 그리겠다는 소리를 하기가 일쑤지만, 이런 그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당연히 그리 쉽지는 않다.

우선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캔버스, 물감, 붓이 모두 특수 제작된다. 캔버스는 두께가 보다 두껍고 미리 흰색으로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칠해져 있다고 한다. 물감은 구입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돌을 공수해와 갈아서 사용하고, 붓 역시 표현하기 알맞게 크기를 맞춰서 제작한 것이다.

다음으로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뒤 점과 비슷한 크기의 종이를 꺼내 이리저리 놓아보며 그릴 위치를 정한다. 점 한두 개만으로 작품 전체를 표현해야 하다 보니 전체 작업에 있어서 점의 위치 선정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기 때문에 고민을 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위치를 잡았으면 물감을 찍은 붓으로 점을 찍는데, 이때 캔버스를 뉘어놓고 작업을 하므로 허리를 구부린 채로 점을 그려야 한다. 자세가 상당히 힘들지만 캔버스를 세워놓고 그리는 것보다는 더 잘 그릴 수 있다고 한다. 호흡 역시 한번 숨을 잘못 쉬어서 삐끗하면 점의 형태가 완전히 망가지기 때문에 숨을 내쉬면서 하거나 아예 숨을 참고 그어야 한다. 이 과정을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르면 다시 그리기를 반복해야 작품이 완성되어 최종적으로 점 하나를 그리는데 두어 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우환의 작품세계에서 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관계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단순한 것들이지만 그와 함께 여백이 있는 전체 공간을 조망하면서 작품과 작품 바깥의 주변을 새롭게 인식하고 느끼게 하는 등의 효과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주로 내세우는 개념은 조응(correspondence)이다. 사물과 사물이 만나는 모습을 통해 '조응하는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 쉽게 등식에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이 대응하는 식인 것이다.

예술 작업 - 은유 대상
사물 : 사물 ≒ 인간 : 인간
사물 : 사물 ≒ 사물 : 인간
사물 : 사물 ≒ 인간 : 세계

이우환의 작업을 보면 철판과 돌을 쌍으로 놓아둔다던지, 큰 붓으로 물감을 묻혀서 화폭에 찍는다던지, 붓에 물감을 묻혀 물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선을 긋는 작업을 반복한다던지 하는 작업이 많다. 철판 : 돌이나 물감 : 화폭의 관계에 서로 만나는 관계를 대응시키고, 이를 현상학적으로 해석하라고 던져 주는 식인 것이다. 적어도 작가 이우환 본인은 작품이 이론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여기고 작품을 만든 것이다. 사실 미술 작품은 자신이 느낀 바에 따라 감상하면 그만이다. 다만 이우환이 미술이론가로 활동하며 작품에 그런 이론을 담았고, 그 이론에 비해 작품이 외형적으로 상당히 단순하게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대중은 그를 어려운 작가라고 인식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우환의 작업에서 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 것은 아무래도 오랜 이방인 생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우환은 시골에서 서울로, 그 다음에는 일본으로, 또 미국과 유럽 등지로 계속 이동하면서 작품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도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에 보다 관심을 두어 왔다고 본 것이다.

3 반응

커다란 방에 큰 캔버스가 걸려있고 캔버스에 점이 하나나 둘 휑그렁하니 찍혀있어요. 그러면은 거기 들어가서 좋게 보는 어떤 분들은 무언가 느낌이 좋다든지, 긴장감이 돈다든지, 그 분위기에 뭐랄까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든지, 그렇게 좋게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전람회라고 갔는데 가보니까 텅 빈 캔버스에 점 하나만 뎅그러니 찍어놓고, 볼거리가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뭐야? 점 하나 찍어놓고 뭘 보라는 거야? 웃기네?" 그러고는 그냥 히죽이 웃고 가버리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그건 틀린 것인가. 그건 어느 쪽이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사실은 작가는 거기 들어가서 뭘 본다기보다도 가능한 대로 어떤 느낌을 주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은 미술작품을 보러 간 분들이 대상물을 보러 가는 그런 습관이, 그리고 그런 교육이 오랫동안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전람회에 가서 그 대상이 뭔가, 뭐가 그려져 있는가, 그걸 보는 입장에 서면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게 없어요. 뻔하다, 이렇게 돼버리는 거예요.[2]

이우환의 작품은 인터넷 상에서는 별로 좋은 평가를 못 받는 편이다. 흔히 이런 그림이 홍콩 경매에서 21억 원에 낙찰됐다는 등 경매 가격과 함께 언급되면서 저런 그림이 저만한 값을 받을 만큼 잘 그린 거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때문에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현대미술 까는 글이 올라올 때마다 높은 확률로 이 작가의 그림을 짤방으로 넣는다. 그런데 정작 누가 그렸는지 다들 모르더라 작가에게는 이런 그림을 팔아서 수십억을 버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그림을 산 갑부에게는 왜 이런 그림을 수십억 원에 사느냐고 뭐라 한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일이다. 자기 작품을 수십억에 사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작품활동을 했을 뿐인데 이상한 그림을 그려서 비싼 돈을 받아챙긴다고 욕을 먹고 있다는 게.. 추상화의 설움 사실 순수미술계에 한정해서 보면 추상화는 비주류가 아니다. 이전 세대인 김환기나 유영국, 남관, 김영주 등이나 비슷한 연배인 박서보, 김창열,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윤명로, 이승조 등 추상화를 그린 작가들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상업예술까지 아울러 보면 일반인들 입장에선 여전히 추상화가 낮선것이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상업예술과 비교해 추상미술에 희소성이 있다는 점이 작품 가격을 높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우환의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는 굉장히 많지만, 이런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어려운 철학을 동원해 그럴듯한 언변으로 자기 디펜스를 하는 작가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적인 그림은 사진 나온 이후로 사실상 희소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터라.[3]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값에 그의 작품을 사는 것 역시 이런 점과 맥락이 닿는다. 자산으로서의 가치도 있으면서 특히 이름난 기업의 경우 이미지를 좋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테니..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미술계의 인정을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이우환의 작품은 적어도 평단에서는 작품성 면에서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잘 그린 것처럼 안 보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그림은 미술계에서도 주로 진영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민중미술 계열 작가들이나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신세대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거나, 속으로는 싫은데 논리말빨로는 어떻게 이기지를 못하니 그냥 가만히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이런 간단해 보이는 그림일지라도 숙련된 실력이 없다면 저렇게 표현해내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고 저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는 친구들한테 직접 붓과 캔버스를 줘보자 단순히 회화로서만 살펴보더라도 특유의 매력적인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이런 그림 역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그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그 작품이 자기 스타일과는 안 맞는 것뿐이다. 이것을 두고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려놓고 어려운 철학을 동원해 그럴듯한 언변으로 자기방어를 한다는 소리는 어떻게 보면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매도와 다를 바가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작품을 무조건 그 작품의 가격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은 미술 관련 기사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미술계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네티즌들이 얼마나 순수미술에 관심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매가 관련 기사라도 없었다면 일반 사람들 중에 이우환이라는 작가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는가? 당장 인터넷에서 이우환의 작품 자체를 논하는 글보다 그 작품이 팔린 가격에 대해 논하는 글이 훨씬 더 많은 부끄러운 현실을 생각해보면 일반 사람들이 순수미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를 알 수가 있다.[4][5] 하지만 금전적인 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는 미술계 내부의 문제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4 위작

다만 이우환 작가의 커리어에 타격을 주는 것이 있다면, 위작 문제다. 보시다시피 간단한 그림이기 때문에 위작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우환 작가 자신은 '위작은 없다', '내 그림은 나만의 호흡으로 그리기 때문에 위작이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에게는 그럴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전문가가 사용한 캔버스나 물감의 제조 성분, 붓으로 그릴 때의 압력, 시간 흐름에 따른 작품 풍화 등을 따져가며 봐야 어느 정도 판별이 가능한 것이지, 애호가가 눈대중으로 이게 진짜 이우환 작가 작품인지 감정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6]

결국 2016년 들어 이우환의 위작 그림이 1억 8,600만원에 홍콩 경매에서 팔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같은 해 2월 18일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경찰이 압수한 이우환 화백의 작품 12점에 대해 과학감정, 안목감정을 실시한 결과 모두 위작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우환 측은 위작과 관련해 할 말이 없다고 했으나 #,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고 관련 문제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우환 위작 관련 논란은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법정에서 판가름이 나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법원이 위작이다.아니다 판단을 내려도 미술시장에는 해당 작품이 거래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과학 감정 결과 13작품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이우환 측은 위작이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카탈로그 레조네가 부실하다는 것. 이우환에 따르면 1978~1979년에 그린 작품 수가 2천여점도 넘고 그 작품이 모두 도록에 기록으로 남은게 아니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우환 측은 단순히 '작가가 보면 안다'는 식의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과학감정으로 반박하는 검찰측에 논리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찌보면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사건과 비교되는 일인데, 천경자 사건의 경우 감정단 측은 위작이 아니고 진작이라고 말했지만 작가측은 위작이고 자기가 그리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우환 사건의 경우 감정단 측이 진작이 아니고 위작이라고 말했지만 작가측은 위작이 아니고 자기가 그렸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 완전히 반대되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천경자 화백은 구상화가였고, 이우환 작가는 추상화가라는 차이점이 있다.

5 관련 항목

  1. 회화나 조각에서 사용되는 나무나 돌 등의 소재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제시하는 경향의 미술
  2. 2015년의 강연에서 이우환이 한 말이다. 작가가 전시에서 의도한 것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작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는 게 그 요지. 아무래도 키보드워리어들보다는 전시를 직접 보러 오는 관람객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설명해준 것으로 보인다.
  3. 당장 자기 집 거실에 10만원짜리 초상화 사서 걸래? 아니면 사진 걸래? 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사진을 건다. 오늘날의 시각문화에서 재현적, 자연적, 사실적 이미지는 사실상 사진 쪽으로 대부분 넘어갔다. 요즘엔 거기에 포토샵같은 컴퓨터 합성 이미지가 가세하는 형국이고.
  4. 전반적으로 일반 대중들은 현대에 활동하는 순수미술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특히 이런 현상은 팝아트 쪽보다 추상화나 단색화 계열쪽이 더 심각하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순수미술계에서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려' 식으로 일관한건 대중상업미술계쪽이 아니라 순수미술계 쪽이 더 심했다.
  5. 그런데 사실 시각매체에 대해 깊게 숙고하지 않으면 현대 시각문화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추상미술이 근현대 시각문화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기도 하고.
  6. 이 때문에 요즘 내노라 하는 작가들은 자기 작품에 워터마크 넣고 일련번호 매기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품 관리의 중요성을 점차 깨달아 가고 있다. 예술가 지망생이라면 자기 작품은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들이자. 함부로 작품을 버리거나 곰팡이 드는 창고에 처박아 두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