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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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야타이 감독
이장수 (李章洙 / Lee Jang-Soo)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56년 10월 5일
출신지경상남도 함안군
포지션수비수
신체조건178cm
소속팀새한자동차 / 대우 (1980~1981)
상무 (1981~1983)
유공 코끼리 (1983~1986)
지도자호남대학교 코치 (1987)
일화 천마 트레이너 (1988~1991)
일화 천마 코치 (1992~1995)
천안 일화 천마 감독 (1996)
충칭 리판 감독 (1998~2001)
칭다오 벨리에이트 감독 (2001~2003)
전남 드래곤즈 감독 (2003~2004)
FC 서울 감독 (2005~2006)
베이징 궈안 감독 (2006~2009)
광저우 헝다 감독 (2010~2012)
청두 톈청 감독 (2014)
창춘 야타이 감독 (2016~)
성남 FC 역대 감독
박종환
(1989~1995)
이장수
(1996)
레네 드자이에르
(1997~1998)
전남 드래곤즈 역대 감독
이회택
(1998~2003)
이장수
(2004)
허정무
(2005~2007)
FC 서울 역대 감독
조광래
(1999~2004)
이장수
(2005~2006)
세뇰 귀네슈
(2007~2009)

대한민국 국적의 중국 슈퍼 리그 창춘 야타이 감독. 연세대학교 출신.

중국에서는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거론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7년 동안 박종환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해서 그런지 선수 지휘에 좀 강압적인 면이 있었다 한다. 05~06 두 시즌간 FC 서울에서 감독 생활을 했는데 09시즌까지 FC 서울의 골칫거리였던 거친 경기 스타일과 약한 멘탈은 이 감독의 지휘 아래 완성되었다.

FC 서울 팬들은 이장수가 있었으면 조광래가 발굴한 이청용 등의 유망주들이 출전하지 못해 썪었을 것이라며 잘 떠났다고 여기고 있다.[1] 감독 본인은 이런 지적에 대해 한동원, 고명진, 송진형, 천제훈 등의 신예들을 기용해 컵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며 반론했다.[2]

다만 중국에서는 다르다.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이 높지만 더불어 후술하듯이 온갖 구단 프런트와 갈등에서부터 언론과 소송 등 마음고생도 많이 해야했다.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충칭 리판을 FA컵 우승으로 이끌며 충칭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칭다오에서도 FA컵 우승을 안기고, 얼마 뒤 수도를 연고로 하는 만년 콩라인 베이징 궈안의 감독을 맡았고 리그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구단 측의 막장짓으로 인하여 짤렸다.

중국에서 국가대표 감독 후보로 거론될만큼 인지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다른 수퍼리그 팀으로 부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6개월만에 중국의 2부 리그 급인 갑급 리그의 광저우 헝다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광저우 헝다는 이른바 중국의 맨체스터 시티라고 부를 수 있을 팀으로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100대 부호 중 1위를 차지한 쉬쟈인 회장이 운영하는 헝다부동산그룹이 인수한 팀이다. '안 하면 아예 안 하고 하면 최고로 한다'는 헝다부동산그룹의 기업철학으로 잡힌 지원금이 무려 1억 위안(한화로 176억 정도)으로, 구단 수뇌부는 이 감독에게‘2010년 1부 리그 복귀. 2011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 2012년 아시아 정상정복’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한다. 현재 중국 최강팀들도 16강 못 뚫고 떨어지는게 AFC 챔피언스 리그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어려운 목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2010년들어 중국 국대로 뛰고있는 정즈, 쑨샹, 가오린을 영입했다. 최소한 슈퍼리그 복귀는 쉬워보이는 상황. 애시당초 이 팀은 못해서 내려간 팀이 아니라 승부조작을 해서 내려간 팀이다.

그리고 2010년 10월 30일, 2부리그 우승을 하며 1부리그 승격을 확정지었고 2011년 9월 28일에 중국 수퍼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2012 시즌 막강한 선수 보강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K리그 우승팀인 전북 현대와 J리그 우승팀인 가시와 레이솔을 물리치며 상종가를 올렸으나 의외로 태국의 부리람에게 홈에서 패배를 당하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강에 진출하였으나 결국 경질되었다.

경질 후 국내로 돌아와서 휴식 중인데 2012 시즌 초반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여 현재 감독이 없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성적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러브콜을 날리고 있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묻혔고 2012 시즌 종료 후 기대에 못미친 성적을 낸 수원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이 역시 수원의 서정원 수석코치가 수원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묻혔다.

2014년 7월 중국 갑급리그 (2부리그)[3][4] 청두 톈청의 감독으로 부임.[5] 목표는 강등권 탈출이었고, 부임 초반 연승덕택에 놀랍게도 승격권까지 올랐지만 이미 감독부임 이전부터 이어지고있던 구단의 임금 체불 사건 등으로 인해 선수단의 사기가 저하 및 훈련 거부 사태까지 막장에 막장을 거듭하며[6] 결국 팀은 을급리그로 강등당했다. 이장수 감독은 아들의 결혼 관계로 한국에 돌아와 휴식중. 그런데 팀이 2015년에 해체됐다(...) 중국에서 생활할동안 제일 고생했던 때지만 이 막장팀 감독자리에 올랐던걸 한번도 후회하지는 않고 오히려 부탁을 해왔던 친구에게 팀을 일으키지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대인배적 소감을 남겼다.

약 1년간 백수생활을 하다가 2016년 5월 슈퍼리그 최하위팀인 창춘 야타이의 감독 자리에 오른다. 목표는 강등권 탈출. 그리고 마지막에 연승행진으로 스퍼트를 올려서 12위까지 올라가며 잔류에 성공했다!!

  1. 이청용을 윙백으로 그나마도 잠깐 써먹다 말았다.
  2. 언급한 선수들 중 고명진은 15시즌 중반까지 서울에서 뛰다 카타르 알 라이얀으로 이적했다. 송진형은 호주 뉴캐슬 제츠와 프랑스 2부리그 투르 FC를 거쳐 제주의 주전 미드필더로 정착했다. 반면 한동원은 07년도에 성남으로 이적했으나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대구, 강원, 안양을 거쳤으나 어느 팀에서도 중용받지 못하다 조용히 은퇴했다. 천제훈 역시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되었다가 2011년 승부조작으로 축구판을 떠났다.
  3. 1부리그가 아니다 영어로는 리그원으로 표기하나 1부리그는 슈퍼리그고 2부리그가 갑급, 3부리그가 을급리그다.
  4. 대한민국에 대입해보면 K리그 챌린지
  5. 원래 맡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 팀에서 일하고 있던 중국인 친구가 계속 부탁을 해와서 맡게 되었다.
  6. 이장수 감독마저 부임하고나서 월급을 못받았다. 이장수 자신은 그걸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구단에 선수들 체불 월급 완전 지불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선수들을 설득해가며 훈련, 경기에 참여시키는등 팀과 선수들 가운데서 고생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