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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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허정무호
(2007 ~ 2010)
조광래호
(2010 ~ 2011)
최강희호
(2011 ~ 2013)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
(2007 ~ 2010)
조광래
(2010 ~ 2011)
최강희
(2011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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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박주영을 닮았다 홍정호같은데? 눈은 박주영, 눈 아래론 홍정호 상당히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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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구 FC 단장

대구 FC 대표이사 겸 단장
조광래 (趙廣來 / Cho Kwang-Rae)
국적대한민국
생년월일1954년 3월 19일
출신지경상남도 진주시
신체조건171cm / 65kg
선수시절 소속팀포항제철 (1978~1979)
상무 (1980~1981)
대우 로얄즈 (1982~1987)
스태프 커리어대우 로얄즈 (1987~1992/코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2/코치)
대우 로얄즈 (1993~1994/감독)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5~1997/코치)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1999~2004/감독)
경남 FC (2007~2010/감독)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0~2011/감독)
대구 FC(2014~ /대표이사 겸 단장)
선수시절 포지션미드필더
국가대표80경기/12골
2000년 K리그 감독상
김호(수원 삼성 블루윙즈)조광래(안양 LG 치타스)차경복(성남 일화 천마)
198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윤기
FW
이길용
FW
이춘석
FW
김용세
MF
조광래
MF
박창선
DF
박성화
DF
김철수
DF
장외룡
DF
이강조
GK
조병득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현재는 대구 FC의 단장 겸 대표이사(사장)로 활동 중인 축구인.

선수 시절, 경남 FC 감독 시절에는 유능한 선수이고 감독이었지만 국대 감독 시절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감독.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끝난 이후부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이어진 대한민국 축구의 침체기의 시초.[1] 전반부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사람.

윙백덕후.

2 선수, K리그 감독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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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출신이다. 대우 로얄즈에서 미드필더로 뛰었고, 정확한 패스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었다.[2] 사실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선수 조광래에 대해서는 어떠한 느낌의 편린조차도 잡을 수 없겠지만 선수 조광래는 10년간 국대 주전 자리를 맡아놓은 대선수였다. 1970년대 초중반 한국의 국대 시스템은 주전 팀 화랑과 비주전 팀 충무로 나뉘었는데 조광래는 연세대학교 시절 국대로 뽑힌 순간부터 은퇴할 때까지 화랑이었다. 선수 조광래의 킥과 패스는 현재까지도 정확성에 있어서 역대 최고로 회자되고 있고, 수비함에 있어서도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접근하며 부담을 주는 수비에 능했다.

1986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의 조편성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의 C조에 필적하는 지옥의 조였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거의 악몽과도 같았는데[3], 바로 197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와 198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가 같이 들어와버렸고 거기에 불가리아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같은 조라고 배정된 팀이라는게 디팬딩 챔피언이 둘씩이나 달라붙었으니[4][5][6]대한민국의 전력이 낮아 낮은 시드를 배정받아 같은 조에 강팀이 두팀 든것이다. 아마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노랗게 보였을 것이다. 첫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허정무디에고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가며 태권도 축구 수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헤 발다노가 두 골을 넣으며 0:3으로 뒤지다가 후반 28분 박창선이 만회골을 넣어 1:3으로 패배했다. 두번째 경기인 불가리아전에서 전반을 0:1로 마쳤지만 후반 25분 김종부의 동점골로 무승부로 장식하면서[7] 16강 진출에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조광래는 1:2로 지고있던 후반 37분에 자책골을 넣는 바람에 박빙의 승부에서 대한민국은 2:3의 점수로 패배하고 광탈했다. 조광래의 자책골만 아니였어도 불가리아와 동률(2무 1패)이지만 다득점(한국은 +4-6, 불가리아는 +2-4)에서 불가리아를 제치고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광래의 자책골이 결정타가 되어 한국은 1무 2패가 되어 버렸고 결국 조꼴찌로 광탈했다.[8]

월드컵의 쓴 경험을 뒤로 하고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는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연속으로 골을 넣어서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공헌, 금메달을 목에 걸며 관중들에게는 박수를, 병역을 면제받은 후배들에게는 헹가레를 받는 최고의 순간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감독으로는 몰라도 선수로는 한국축구사에 지분 있는 저명 인사이자 레전드급 대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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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감독 시절의 조광래

선수 생활을 마치고 몇몇 팀에서 코치와 감독 생활을 하다가[9] 1996년에 막 창단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감독으로 부임한 김호 감독을 보좌했다. 이후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두 구단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 수원 코치 시절에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올리[10] 등을 주축으로 한 포백 수비를 완성시키면서 '4-4-2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정작 안양 감독 시기에는 1년도 되지 않아 3백으로 전환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구단명이 FC 서울로 바뀌고도 2004 시즌까지 감독을 지냈다가 2008 시즌부터 경남 FC의 감독을 맡았다. 주요 경력은 2000년 K리그 우승과 2001년 K리그 준우승, 1998년 FA컵 우승.2008년 FA컵 준우승.

유망주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11]을 들으며 FC 서울에서 육성된 주축 선수들 대부분이 그가 스카웃한 선수들이다. 경남에서도 유망주들을 기용해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다. 이러한 성향 탓에 그는 축구계의 이수만이라고 불리며 맡고 있는 경남 FC"조광래 유치원"이라 불린다.

사실 서울에서의 유망주 발굴은 A급 유망주를 어릴 때부터 프로에서 육성해서 S급 성인선수로 키워내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이었지만, 경남에서의 유망주 발굴은 능력 있는 성인 선수들을 사올 돈이 없기 때문에 당장 구단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 더욱 필사적이다. 다행히 성과도 좋아서 유명선수 하나도 없는 지방 중소 구단 경남 FC를 매년 꼬박꼬박 중위권에 올려놓는다는 점에서 옆동네(?) 전남 드래곤즈박항서감독과 마찬가지로 지방 구단들이 탐내는 감독 1순위였다. 선수를 보는 안목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09시즌 종료 후 FC 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이 계약이 만료되면서 서울로 복귀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본인이 먼저 일축했다. FC 서울도 처음부터 외국인 감독을 물색했다는걸 보면 구체적이 논의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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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유치원으로 팀을 지휘했던 조광래

경남 감독 재임하면서 자원 가지고 중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내주는 좋은 감독이란 이미지를 쌓았지만 사실 K리그 감독 경력 자체가 안양과 경남. 두 구단 뿐이고 지원이 부족한 지방구단은 경남 뿐 이다. 재임기간 중 경남이 잠깐 1위를 마크하기도 했지만 결산 결과도 나기 전에 국가대표 감독에 취임해선 나갔고 그 순위가 끝까지 갔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빵빵한 대기업 구단이었던 안양 시절에도 한차례 우승은 했다지만 전체 성적을 살펴보면 롤러코스터가 굉장히 심해서 수원시절의 차범근을 연상시킨다. 그게 가장 심했던 2003년 안양 LG 마지막 시즌에는 개막후 8경기 무패로 선두에 올랐다가 8위로 시즌을 끝냈다.

오심이다 싶으면 선수들을 불러모아 경기를 지연시키는 걸로도 악명이 높다. 2010시즌 불어닥쳤던 국내파 감독들의 심판까기 열풍을 진두지휘했다.[12]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한번 대차게 욕먹은 적이 있었는데, 2008년에 리그 경기중 무려 30여분 가까이 심판에게 항의하며 경기를 지연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저질렀다. 그로인해 그 경기에서 전반전에 추가시간이 28분이나 주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K리그의 심판 판정과 항의에 관련된 대표적인 흑역사.

현역 시절에는 대표팀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미적분을 풀 수 있는 브레인으로 유명했다. 흠좀무

김호 감독과는 수원 시절 감독과 수석코치로 함께 했다가 김호 감독이 물러나면서 수원 감독 자리를 물려주는 것을 보장해주는 듯 했으나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구단과 재계약을 해버리자 열받아서 안양 감독으로 부임해서[13] 안그래도 치열한 더비 경기에 기름을 부었다. 다행히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했다.

2002년에 데리고 있던 브라질 출신 선수인 뚜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뚜따는 그 해 시즌을 마치고 곧장 수원으로 이적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된 그라피테(당시 볼프스부르크 소속)를 신인시절인 2003년에 영입했던 적이 있다. 당시 등록명은 바티스타.[14] 그라피테는 적응에 실패한 건지 감독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건지 7경기 0득점의 초라한 기록을 남기고[15] 방출되었으나 이후 유럽에서 화려하게 재기해 08/09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하여 K리그 출신 외인들 중 가장 성공했다. 헌데 뜬금없게도 그라피테를 자기가 키웠다고 어처구니 없는 언플을 하고 다녔고 지금도 하고 있다.해당 기사

2005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박지성을 영입할 때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만나서 박지성의 영입을 적극 권유했다고 본인이 주장하지만 근거는 없다. 오히려 히딩크 감독 시절 박지성 같은 듣보잡을 기용한다고 깠었기에 깔때는 언제고 나중에 박지성 잘되니 괜히 친한 척 한다며 비웃음을 들었다[16]. 이를 비롯해 전반적인 언행과 언플도 정신승리와 자기합리화 경향이 강하다.

2010년 7월 21일, 국가대표 감독에 선임되었다.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3.1 취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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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는 취임할 때 많은 축구팬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그가 비주류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축구협회의 주류였던 허정무에 대조되어 더 환영받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편견이다. 조광래는 청소년 시절부터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며, 연세대-상무-화랑 팀을 거친 대표적인 엘리트 선수였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는 화랑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이들이 차례로 대표팀을 맡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지도자 생활도 대우-수원-안양-서울 등 당대의 명문팀만 거치다가 잠시 공백기를 갖고 경남을 맡은 것이다. 결코 비주류가 아닌 비장의 카드라고 보아야 옳다.

조광래 감독이 축구계 비주류로 여겨진 이유는 1993년 이후 지속된 정몽준 체제의 운영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 일명 축구계 야당인사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지배적이다. 2003년 베스트 일레븐 지와 인터뷰만 봐도 90년대 후반에 스포츠신문에서 당시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를 정몽준 빽으로 버틴다고 대놓고 비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빡돈 조중연이 프로축구연맹에 항의하여 감독 자리에서 해임시키라고 요구했다가 축구연맹회장이 거절한 일도 있었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2009년 축구협회 회장선거 당시 조중연 회장후보도 정몽준 체제의 연장선상이라면서 반대후보인 허승표씨를 지지했다.[17]

다만 이 부분은 사정을 잘 모르는 네티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축구협회 회장은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국대가 국민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았던 만큼 높으신 분들의 관심도 높았고, 그만큼 정-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들이 거쳐갔다.

역대 축구협회 집행부 목록을 보면 뭥미? 소리가 절로 나는 이름들이 회장으로 나오는데 여운형, 신익희, 윤보선, 장택상 등이다. 방금 머리에 떠올린 그 전국구 정치가들이 맞다. 백번 양보해서 이 때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넘긴다손 쳐도, 1960년대 최치환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 비서관 출신인 국회의원이자 경향신문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었고, 1970년대 장덕진 회장은 행시, 사시, 외무고시를 패스한 국보급 천재에다 육영수 여사의 조카와 결혼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직책이 청와대 경제 수석비서관 & 재정차관보. 그 뒤를 이은 고태진 회장은 조흥은행장, 김윤하 회장은 국회의원, 80년대 최순영 회장은 신동아그룹 회장, 김우중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사람이 바로 정몽준 회장으로 현대중공업 고문이다. 참고로 정몽준의 대항마라는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은 GS그룹 허만정 회장의 아들이다. 그리고 정몽준 회장의 뒤를 이은 조중연 회장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선수 출신 회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18]

저 엄청난 감투들만 봐도 알겠지만, 조중연 회장을 제외하면 어지간한 정재계 파워 엘리트가 아닌 이상 꿈도 꾸기 힘든 자리이다. 그리고 월드컵, 올림픽 진출, 아시안컵을 포함한 각종 대회 우승 등의 유형 무형의 실적을 내리라 기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여태까지의 위상과 상관없이 대다수가 감독과 함께 냉정하게 떨려나갔다.

흔히 재야 인사로 알려진 신문선 같은 경우 김우중 시절부터 시작해서 정몽준 시절 축구협회 이사직까지 역임했고, 이용수 역시 기술위원장을 역임하며 오대영 거스 히딩크를 강력하게 쉴드[19] 바 있다. 까놓고 말하자면 아무리 언플하며 고고한 척 해봤자, 좁은 축구판에선 정몽준 현대 계열과 허승표 GS[20]계열 양대 라인 중 어디를 탔느냐 입장 차이일 뿐이다.

다만 조광래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동년배 감독들에 비해 순위가 한참 밀린 것은 분명한데,[21] 이는 격한 성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전술한 김호 감독과 불화 에피소드에서 잘 나타나지만 뭔가 아니다 싶으면 속에 담아두지 않고 곧장 내뱉는 스타일이라 축구협회와 갈등을 빚을 소지가 다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5월 올림픽대표팀 차출 문제를 놓고 이회택 부회장과 한바탕 붙었다.(...)

3.2 만화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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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취임식때 "더 아름답고 세련된 축구"를 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고 8월 11일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 경기였던 나이지리아전에서 2-1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이란과의 평가전에서는 1-0으로 패배했다. 어차피 평가전은 평가전인 만큼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스페인식 패싱 게임을 하겠다는 말과는 다른 시대에 뒤쳐진 스리백 전술과 이청용 공격수 기용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0년 10월 12일 박지성이 빠진 한일전에서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청용이 조광래의 공격전술에 대해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있는데 경기장에서 실제로 나타내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말그대로 만화축구. 포어 리베로 등 들고 나오는 전술들이 감독이 생각하는대로만 구현된다면 막강하지만 고도의 축구두뇌와 개인기, 조직력을 요구하는지라 실축, 그것도 국대에서 제대로 구현하기는 한없이 어려워서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충분하고 자기 입맛대로 팀을 꾸려가기 편한 프로팀 감독을 맡아오다 국가대표팀으로 옮기면서 겪는 일종의 시행착오로도 볼 수 있다.

말과 이상만 놓고 보면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의 이상적인 패스축구를 추구하고 있지만 일단 바로셀로나의 축구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선 선수들 개개인이 일단 1:1은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능력 + 유소년 클럽 시절부터 맞춰온 조직력이 맞춰줘야 하는데 현재 국대는 아무것도 안 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비단 현재 국대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통틀어도 이걸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만한 팀도(당연히 스페인 빼고) 없다. 심지어는 바르셀로나의 최고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를 직접 보유한 아르헨티나조차 못하고 있는게 이 바르셀로나 축구이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아무도 없는 한국의 실정에 이 전술은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패스워크를 통한 축구가 아닌 단순히 유럽파 선수들을 막 굴리는 경기만 이어지면서 결국 유럽파만 방전되는 결과만 낳았다.

사실 만화축구를 말한 사람이 다름아닌 이청용이라는 것만 봐도 조광래의 전술이 얼마나 무리수인지 알 수 있다. 이청용은 어린나이에 프로에서 활약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고, K리그에선 명장인 세뇰 귀네슈의 지도를 받았으며, 이후 바로 빅리그로 직행해서 확실한 자기 자리를 잡았을 정도로 경험도 풍부한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만화축구"라고 말하는 것은 곧 한국 축구의 엘리트도 소화하기 힘든 전술이라는 말이다.

국대에서 티키타카를 사용해 재미를 본 팀은 스페인 뿐이며, 그나마도 FC 바르셀로나 + 레알마드리드를 거의 그대로 뜯어와서 재미를 보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설령 조광래가 브라질까지 갔다 하더라도 조광래호 공무원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게다가 티키타카 전술의 유효성을 배제하더라도, 당장 일본의 스시타카는 자케로니에 의해 기초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 2010년 월드컵때 이미 '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라는 기본틀은 잡혀 있던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자케로니가 4년간 지도한 결과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전술에 대한 발상이 좋았다 하더라도, 조광래의 대표팀 선수 선발 및 운영을 보면 그 결과가 좋게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애시당초 클럽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에서 주전 멤버 11명을 최대한 빨리 확정해서 그들만 가지고 월드컵까지 내내 돌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만화 같은 발상이다. 혹시 그가 중용하려 했던 해외파 선수들이 티키타카 전술을 사용하는 해외 클럽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허무맹랑한 공상의 차이는 발상을 현실화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의 유무 차이다.

국민들이 조광래의 전술을 '만화축구'라고 비아냥대었던 이유는 단순히 조광래호의 일본전, 레바논전 결과가 안 좋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FC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는 그 전술의 완성을 위해 매우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웬만한 한국 축구팬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이 '매우 많은 노력과 시간'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고작 티키타카 유형의 팀 소속인지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그저 최대한 빨리 해외파 위주의 주전 멤버 11명을 확정한 후 오직 이들만 매 경기 출전시킨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비아냥대었던 것이다. 오히려 티키타카의 완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던 한국 축구팬들이었기 때문에 조광래호에서 툭하면 일어나던 포지션 파괴를 볼 때마다 매우 당황스러워 했고, 만화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작전을 구사하려 든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여담으로 시작은 이청용의 투정으로 시작된 단어지만 의외로 조광래 본인은 그 단어를 좋아했다. 만화 같이 재미있고 아름다운 축구가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라며 브라질에선 청용이 말대로 만화축구해야한다며 대표팀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기사 내용 그래서 뉴스 검색을 해보면 딱히 만화축구가 비아냥 대는 용어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그 기조와 슬로건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조광래의 만화축구"라는 칼럼까지 본인이 쓰는 둥 팬들이 어떻게 보거나 조광래 본인은 맘에 들어하는거 같다. 이래저래 조광래를 상징하는 단어임엔 분명하다.

3.3 2011년 AFC 아시안컵

2011년 AFC 아시안컵 4강전에서 삼연뻥 사건이 터지며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2002년 월드컵 등 굵직한 경기 경험이 없는[22] A매치 경험조차 일천한 젊은 선수들에게 4강전의 승부차기 같은 중압감이 높은 임무를 맡긴 것에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는 상황[23]

이 부분에선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네티즌들이나 축구팬들이나 간과하고 있는데, 조광래 감독이 대한민국 대표팀 자리를 맡은 지 겨우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허정무 감독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감독직을 수행한 끝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데 성공했는데, 6개월밖에 시간이 없고 또 실질적인 시간도 부족한 감독에게 4강에서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고 경질한다고? 사우디 아라비아가 2000년 이후 수십명의 감독을 교체했다가 2011년 아시안컵에서 8강도 들지 못한 사례를 상기시켜보자. 조광래보다 1달 더 늦게 부임한 자케로니는 일본 대표팀에 자기 색깔을 어느정도 입혔다는 것에서 이것마저 비겁한 변명이라며 까는 사람도 있다. 허나 정작 4강 한일전 당시 조광래 감독이 홍정호, 손흥민 등을 후반에 투입하여 4-6-0의 제로톱을 중심으로 한 선 굵고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 분위기를 다시 되찾은 반면, 자케로니 감독은 카가와 신지와 혼다의 동선이 겹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과, 체력이 방전되어 전반만큼의 압박과 공격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본 대표팀의 전술 변화를 꾀하지 못하고 있다가 연장전반 PK로 한 점을 따내자 우주방어에만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색깔을 입혔다느니 뭐니 하는 것은 승부차기로 패한 결과에 지나치게 집작하여 정작 경기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일 뿐이다.

예선전에선 이런 저런 선수를 뽑았지만 현 2011 국대의 주축이 되는 신예들은 2009 당시에는 모두 실력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이승렬도 잠깐 반짝했다 다시 삽질중이였으며 이승렬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성훈과 이근호이다. 본선 진출의 최고 원동력이었다고 볼 수 있던 이 두 공격수가 월드컵을 앞에 두고 부상과 부진에 빠져 결국 월드컵 본선에 공격진이 얇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근호는 다행히 다시 폼이 좋아졌지만 정성훈은 영 좋지 않았다. 실제로 세대교체가 제대로 안 된 자리는 박지성, 이영표, 이운재 이 세자리 정도인데, 2002 월드컵 이후에도 몰디브 쇼크, 베트남 쇼크를 겪으며 황선홍, 홍명보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비난받지는 않았다. 결국 성적을 내야 하는 월드컵 본선인지라 세대교체보다 성적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후임 감독들이 그 설거지를 어느 정도 하는 입장이라는 거도 이해해 줘야 한다.

조광래호에서도 구자철 등의 활약이 있었지만 박지성, 기성용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고, 지동원은 박주영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해 양박쌍용의 의존도는 컸으며 정작 지동원을 백업할 원톱 자원이 전멸에 가까웠다. 결국 어린 나이부터 혹사에 가까운 경기수를 소화하면서 선발되어 대회 끝에는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특히 허정무가 구축해놓은 중앙을 이용한 공격루트가 거의 단절되면서[24] 공격루트가 측면에 한정되었으며, 수비에서의 빌드업도 황재원의 롱패스를 통해 단조롭게 풀려나갔다는 단점도 지적될 필요 있다. 또한 허정무가 벨라루스에게 패한 것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가전이었고, 허정무의 마지막 경기에서 4강 팀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대등, 혹은 관점에 따라 우위라고 할만한 경기능력을 보여주고도 거센 비판을 받았던 점을 고려해보면[25] 이는 조광래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조광래의 측면 위주의 플레이는 지동원이 박주영만큼 중앙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어서 측면으로 이동해서 경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광래호는 측면에서의 움직임에 비해 중앙을 비워놓고 측면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경향이 강했다. 여기에 무한 스위칭과 패싱 플레이를 강조하는 조광래호는 필연적으로 심한 체력적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지만, 이러한 체력부담에 대해 딱히 대응 방안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특히 안그래도 얇은 공격진에 체력부담은 더해지는데 한창 뜨는 손흥민이라는 교체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조광래호가 출범한지 고작 몇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런 문제 해결의 필요성은 조광래도 앞으로 해결해 나갈 문제점이라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감독의 경질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해서 3위한 감독들이 백이면 백 모두 사임했다는 사실이 있고 들 수 있는 예는 2006년 아드보카트 감독이 사임한 후 대표팀을 이어받은 핌 베어벡 감독을 들 수 있는데, 베어백 감독은 비록 수면축구라 불릴 만큼 거지같은 경기력(07년 아시안컵 때의 선수 명단은 거의 2군이라 베어벡만의 잘못은 아니다.)을 보여줬지만 대회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각종 언론의 집중 포화 및 박지성&이영표의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 못했다는 비판에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했다. 그러나 3득점, 3실점하고 토너먼트 3경기를 모두 승부차기로 때운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너무나도 확연하므로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일이다. 경기력 제끼고 결과만 봐도 전경기를 4강까지 이기면서 온 조광래랑 토너먼트 전경기를 무재배한 감독과의 비교가 필요한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만큼 조광래는 사임도 사퇴도 하지않고 감독직을 유지했었다.

3.4 아시안 컵 이후

이후 히딩크 감독의 터키와의 원정 평가전에서 0-0으로 비겼다. 박지성, 이영표의 공백에 이청용도 안나왔고,[26] 아시안컵도 치룬데다 기성용은 이틀전에 올드펌 더비까지 뛰고 왔으니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못할거란건 예상했지만 터키의 압박에 밀려 상당히 고전했고, 후반에 엠레가 퇴장당해 10명만 뛰는 터키를 상대로도 중원에서 밀리면서 힘든 경기를 펼쳤다. 그런데 조광래 본인은 히딩크가 우리가 전방에서부터 펼친 압박을 잘 헤쳐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또 까이는 중. 그리고 히딩크 역시 터키팬들에게 무기력한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못챙겼다고 집중포화를 맞았다.

2011년 3월 26일 온두라스를 사실상 한국 베스트11을 내보내면서 4-0으로 격파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김정우를 쉐도우 스트라이커 또는 측면 공격수로 활용하겠다는 말까지 나와 팬들의 비난을 샀지만 정작 이 날 김정우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비슷한 위치에 서서 경기를 치뤘다. 또한 박지성이 빠진 후 국내에서는 최상급으로 칠 수 있는 최성국이나 염기훈은 소집되지 않았으며 대신 김보경이 왼쪽 윙어로 나섰다.[27] 다만 활약은 그다지 시원찮았는지 후반에 이그노어 이근호로 교체 출전됐다. 이그노어 이근호는 별명 답게 이 날 활발하게 움직이며 좋은 찬스를 자주잡았지만 킬 패스를 여러번 놓치며 원성을 샀으나 결국 후반 47분에 코너킥 찬스에서 헤딩 추가골을 성공시킴으로써 7개월만에 소집된 대표팀에서 영양가 없는 득점을 올렸다. 이 날 경기에서 세트피스로만 두 골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이전부터 문제시된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득점력 부족 요소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잘했다기보단 온두라스 수비가 좀 헐거워보였지만 포지션 파괴적이고 왼쪽라인의 유망주배치를 감안하면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28] 김정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투입되어 골을 기록하였고 이날 선발 출전한 왼쪽 윙어인 김보경은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포텐터질 날만 기대하게 되었다. 오히려 후반에 교체 투입 된 이근호가 좀더 활발한 움직임과 돌파력을 선보이며 득점까지 올렸다. 이청용과 교체된 지동원은 투입되어 이근호-박주영-지동원 3톱 체제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왼쪽 수비수 역시 나이어린 김영권이 깜짝선발 되었지만 경기력은 좋았다. 또한 오른쪽 수비수 역시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차두리 대신 최효진이 선발로 출전할 거라 예상되었으나 대신 조영철이 출전하여 팬들의 의문을 샀으나 경기력은 무난했다. 앞으로 양쪽 수비수 기용이 어떻게 될지도 지켜봐야할 부분. 사실 진짜 문제는 황재원의 선발 기용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FC와의 연습경기를 한 후 2진급과 오른쪽 풀백 선수자원이 자격 미달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오른쪽 풀백 자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윙어를 풀백으로 쓸 생각이란다. 다행히 주전풀백은 아니고 서브로써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6월 3일과 6월 7일에 있던 세르비아 전과 가나 전은 각각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두 경기 모두 유망한 젊은 수비수 홍정호가 선발로 출전했으며, 왼쪽 수비수는 김영권이, 그리고 오른쪽은 차두리가 선발 출전했다. 또한 김보경이 아닌 이그노어이근호를 왼쪽 윙어로 선발했따. 세르비아 전에서는 박주영의 운 좋은 헤딩골[29]로 앞서나가며 전반 내내 괜찮은 경기를 펼쳤다.[30] 위기 상황도 몇 차례 있었으나, 정성룡 골키퍼의 선방으로 막아내었다. 후반에는 장신 수비수들을 제치며 돌파한 차두리의 땅볼 크로스를 받은 김영권이 추가골을 넣었다. 다만 후반 41분에 페트로비치에게 중거리 슛으로 골을 내주며 아쉬움을 더했다. 그리고 후반 교체 부분 역시 상당히 미흡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부분.[31]

가나전에서는 지동원이 왼쪽 윙어로 출전했다. 이번에는 기성용의 코너킥을 지동원의 헤딩으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경기를 잘 풀어나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경기력이 급상승한 가나에게 전반 내내 고생했다. 이용래가 특히 미드필더에서 집중 견제를 받았다. 특히 선더랜드 AFC의 공격수 아사모아 기안[32]의 엄청난 활약으로 페널티킥까지 내주며 동점골을 먹힐 뻔 했다. 후반에는 그나마 다시 주도권을 되찾는가 싶었는데, 번번히 기회를 노리던 기안에게 기어코 동점골을 먹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이어진 감독의 분노의 교체(...) 끝에 후반 종료 직전 지동원의 헤딩이 골키퍼를 맞고 나온 것을 구자철이 2선에서 침투하여 집어넣으며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에도 가나의 미드필더 마이클 에시앙이 출전하지 않아 1군이 아니어서 평가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다.[33]

그러나 전체적으로 두 경기를 놓고 보면 피지컬이 대한민국 대표팀보다 훨씬 뛰어난 두 팀을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으며 승리를 따내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34] 그리고 원톱인 박주영이 짊어지던 부담[35]을 지동원, 이근호 등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었으며, 기성용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두 팀과의 경기에서 스탄코비치, 문타리 등의 미드필더들과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36]

2011년 8월 10일, 한일전에서 37년만에 3:0(...)으로 털리면서[37] 현재 조광래 호에서 한일전 전적 2무[38] 1패를 기록 중이다. 이번 경기 결과가 어찌나 처참한지 슬슬 경질설이 나도는 중이다. 네티즌들은 첼시 감독에서 경질되고 쉬고 있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추천하고 있는데, 이분 몸값이 얼마인데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우선 측면 자원의 공격력이 확실하게 떨어지고, 그 자리를 윙백으로 메꾼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특히 오른쪽 측면 자원은 거의 차두리가 부동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자리는 최효진을 제외하면 김재성 같은 미드필더가 맡는 경우가 꽤 있다. 왼쪽은 커맨더형 센터백인 김영권을 풀백으로 쓰는 기행을 선보이기도 한다. 김영권을 기용하지 않을때는 홍철을 선발로 내세워 양쪽 측면 윙백으로 모두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는 전술도 사용한다. 이때 측면 수비수가 모두 올라갔다가 역습을 당하면 두명 남은 수비수는 털릴 수밖에 없다. 사커라인에 올린 분석글 중에서 이를 지적하며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도 아닌 이용래가 활동량으로 죽어라 카버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때 수비에 가담해서 3백 형태를 만들어주는건 기성용 역할이지만 본래 수비보다는 패싱력으로 먹고 사는 선수고, 그렇다고 패싱 축구를 상당부분 포기하며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지도 않았다.

3.5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2011년 9월부터 시작한 월드컵 3차 예선에서 2승 1무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었으나, 상당히 쉬운 축에 속하는 조 편성[39] 속에서 거둔 성적은 9득점 2실점으로 그다지 좋지 않았다.[40] 위의 측면 자원 활용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수비가 더더욱 탈탈 털려 불필요한 실점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쿠웨이트 전에서는 그래서 후반에 실점을 허용해 무승부를 거두었고, UAE와의 홈에서도 측면 수비 불안[41]으로 실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조광래 감독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본래 대한민국의 측면을 도맡고 있던 선수들과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빠져버렸는데 경기력의 저하는 당연한 결과다. 우선 국대 왼쪽의 부동의 강철라인인 박지성-이영표는 이제 다시는 가동할 수 없고, 오른쪽의 이청용은 장기 부상, 차두리 역시 잔부상으로 국대 소집도 자주 못나오고 있다. 김정우 역시 부상으로 월드컵 3차전을 결장했다. 박지성의 대체자로 주목받던 김보경 역시 부상으로 결장에다가 올대와 국대 모두 뛰기 때문에 차출에 엄청난 애로사항이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는 K리그 자원을 쓰면 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K리거 윙 자원들이 옛날 대표팀 같지가 않다는 것. 센스도 좋고 기술도 좋지만 문제는 파괴력이 떨어진다. 왕년 적토마 고정운이나 날쌘돌이 서정원처럼 상대 측면을 붕괴시키는 힘이 없다.

당장 리그의 윙 자원이 감독 성에 차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포지션에 맞게 선수를 뽑은 다음 그 선수가 국대에서 실력을 쌓도록 기회를 줘야 하는데[42] 전혀 다른 포지션 선수를 박아놓으니 욕을 먹는 것. 예를 들어 전북의 이승현만 해도 자타가 인정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이고, 염기훈 정도라도 몸상태가 정점에 올라온 당시 기준으로 레바논쯤은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다못해 설기현이나 최태욱이라도 뽑아서 실험을 해 봤든가 하면 모르겠는데, 측면에서는 삽 푸기로 유명한 이근호박주영을 윙으로 박아놓고 있다.

정 아니면 부족한 선수자원에 맞춰 전술에 변화를 주든가 해야하는데 만화축구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조광래호는 우리 점유율 먹으면서 니네 공도 못 건드리게, 아주 숨막히게 공격할 거야 짜식들아! 하고 상대와 맞섰지만 상대방은 그러세요 어차피 그거 하나 안 하나 애초부터 니네랑 점유율 싸움 할 생각 없음 우린 역습이나 할 거임, 우리 공격수들 수비라인으로 해서 니들 봉쇄 할거임[43] 모드로 나가면 조광래호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셈이다.

결국 11월 15일 피파 랭킹 146위 레바논 원정 경기에서 2:1로 충격적인 패배[44]를 당하면서 까임의 옥좌에 등극하고 말았다. 까다로운 중동 원정이었고 경기장 상태가 논두렁 엉망이었다는 점, 어떤 천하의 개쌍놈들 관중들이 한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레이저를 쏜 점,[45] 대표팀 핵심 멤버들이 결장하는 등 여러가지 변명거리야 많지만 경기력 자체는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자세한 건 레바논 쇼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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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면서 무재배라고 온갖 욕을 처먹은 허정무 감독의 경우, 최종예선까지 무패로 통과했다. 심지어 최종예선에선 시드 배정국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만만찮은 상대인 북한과 아랍에미레이트와 한조였는데도 무패를 기록했다.

그런데 딴 대륙도 아니고 0.5장의 오세아니아를 제외하면 전 지구상에서 제일 약한, 아니 호주가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 들어오기 전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에 속하던 시절에는 어쩌면 심지어 오세아니아보다도 약했을, 아시아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최종예선도 아닌 3차예선, 시드 배정국도 아닌 피파 랭킹 146위 팀에게 속수무책으로 지고서 재수없으면 최종전에서 '경우의 수' 따질 판이라는 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찬가지로 한수 아래 상대이던 오만과 태국에게 고전, 3차예선 6차전에 경우의 수를 따지며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프랑크 레이카르트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상황이 어찌나 심각한가 하면 만약 3차 예선 마지막경기에서 쿠웨이트에게 지면 대한민국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없었다. 참고로 아시아 최종예선도 아니고 3차 예선이다.[46]

그리고 모처럼의 기회를 잡은 쿠웨이트도 내년 2월 경기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예 경기 날짜보다 2주 정도 전에 방한해서 적응 훈련을 가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실 조 감독이 비난받는 건 인터뷰 문제도 있다. 감독 치고는 인터뷰 기술이 좋지 못했다. 경기 결과가 나빴을 경우 선수 컨디션 문제, 그라운드 사정, 심판 문제 등을 언급하는데, 문제는 하나하나 뜯어보면 분명히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해서는 안 될 얘기라는 거다. 팬들이 대표팀 감독에게 원하는 것은 진단이 아니라 처방인데, 허구한 날 해설위원처럼 경기평만 내고 있으니 무책임한 변명으로 들릴 수밖에.

레바논전을 갈아버린 뒤 귀국 인터뷰에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지 변명으로 일관하다 2월 쿠웨이트전에 이청용을 복귀시키겠다는 희대의 인터뷰를 하고 말았다.[47]

하마터면 선수 생활을 접을 뻔한 부상을 극복한 이후 재활을 통해 몸을 다시 만들고 소속팀에서 기량을 끌어올려야 해야 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10년은 책임질 수 있는 선수를 그저 자기 연명을 위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닐 시기에 무리하게 차출하겠다는 것은 이청용을 위해서도,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3.6 해임

그리고 12월 7일, 언론을 통해 전격 경질 사실이 터져나왔다.

후임 감독은 외국파 중에선 물건너 J리그에서 감독 중인 압신 고트비, 국내파 중에선 최강희 감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축협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모 감독을 대표팀에 픽업하기 위한 수순" 이라는 음모론이 튀어나올만큼 급작스러운 경질이었다.

당시로서는 최강희 감독을 비롯한 국내파 감독이 감독직을 수락할 가능은 적었다. 당장 3차예선이 2월 29일 즉 두달 반 가량 남은 빠듯한 일정인데다, 이날 패하면 예선 탈락인 중대한 시합이다. 아무리 야심만만한 인물이라도 단 한번 패배로 감독 커리어를 통째로 말아먹을지도 모르는 커다란 리스크를 선뜻 감수하려 할까?[48] 조광래를 경질하려면 레바논전 직후에 바로 경질했어야 했다.아님 대한민국 네티즌이 츤데레든가. 따, 딱히 널 짜르려는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쿠웨이트전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설령 예선 탈락하는 한이 있더라도 3차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전까지는 조광래 감독 체제로 가고, 거기서 이기면 최종예선도 그냥 조광래 체제로 가고 잘못되서 예선탈락하면 그냥 경질하는 식으로 해서 쿠웨이트전 끝나고 나서 후임 감독을 (외국인 감독으로) 신중하게 선임해서 가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49]

그리고 어차피 최강희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욕심낼 이유가 없었다. 이미 리그에서 일군 업적이 지대한데다, 내년 승강제를 앞드고 스플릿 시스템으로 바뀌는 K리그에서 왕좌를 지켜내고 알사드에게 빼앗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왕좌를 다시 탈환하는 궁리만으로도 머리속이 복잡할 텐데, 구태여 이 시점에서 양손의 떡을 내팽개치고 독이 든 성배를 받을 이유가 있을까? 본인이 직접 '국가대표보단 전북에 남는 걸 선호한다'고 밝힌 점을 고려할 때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음모론이 터져나온 모 감독은 논할 가치조차 없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고트비인데, 옆동네 감독과 비교해 보면 축협이 그냥 미친 거다. 기왕 외국인 감독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중장기적으로 보탬이 될 인물을 뽑는 것이 사리에 맞지, 당장 중동 팀 하나 잡겠다고 중동 팀 잘 아는 감독을 데려온다는 근시안적 행정이라니(...) 그렇게 최종예선을 통과하면, 본선에서 월드 클래스 팀들을 상대하기 위해 고트비 자르고 또 새 감독을 뽑을 작정일까?

이쯤 되면 데자뷔를 느낄 지경이다. 2006년 코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 교체와 소름끼칠 정도로 일치한다![50]

게다가 압신 고트비2011 AFC 아시안컵에서 조광래에게 발렸다. 당시 맡은 팀이 약하기라도 했냐하면, 그건 아예 아니다. 아시아 전통의 축구강국 이란이었다.[51]

일각에선 현재 쉬고 있는 히딩크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첼시 이후 행보를 보면 히딩크 매직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으로 막장테크를 타서 이전만한 평을 못 듣고 있다. 오죽하면 첼시 팬들이 비야스-보아스 호가 흔들릴 때조차 다시 히딩크가 오는 건 좀 아니라고 말했을 정도.

그동안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넷상에선 축제 분위기(...)이긴 하지만, 생각 깊은 팬들은 조광래보다 축협을 먼저 까고 있다.

아무런 대안도 비젼도 없이 성적 나쁘다고 감독 모가지부터 날리고 보는 쌍팔년도 행태와 그 처참한 결과는 약 1년전 우리 모두 아시안컵에서 똑똑히 목격했다. 그때 사우디를 한껏 비웃던 이들은 왜 지금 환호하고 있는가?

물론 감독 경질은 팀을 위해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경질 타이밍이 최악이다. 이제 와서 부랴부랴 새로운 감독 구한다고 명감독이 어정쩡한 금액으로 이 자리에 앉겠냐는 비판이 거세다.

물론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긴 않겠지만 만약 국내파 감독도 외국인 감독도 모조리 감독직을 사양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할까. 조광래를 다시 불러올까, 박태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킬까. 정말이지 답이 없다(...) 박태하 코치는 수석코치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실제로 상황은 점점 답이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고트비 감독의 경우 축구협회와 상성이 좋은 사람도 아니거니와, 여론도 일껏 데려오는 외국인 감독이 고트비냐며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한편 최강희 감독은 이미 고사한데다가 음모론의 주인공인 홍명보 감독 조차도 히밤, 런던 올림픽 가는 것도 골치아픈데 하는 마당. 이에 김호곤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모처럼 울산 현대를 리그 챔피언쉽 준우승으로 이끌고 구단과 팀 서포터들 지지를 받고 있는데 떠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결국 이들이 다 고사해버리면 할 사람이 없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부분은 이미 전술한 조광래 항명 파동의 여파다.

전임 허정무 감독의 경우를 돌이켜보더라도, 2년 넘는 재임 기간동안 위기상황과 여론이 등을 돌린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이후 많은 감독의 목을 날렸던 협회가 허정무 감독 만큼은 끝까지 감싸줬다. 그런데 조광래 감독은 실드 한번 쳐주지 않고 바로 목을 날렸다. 아무리 정당한 경질사유가 있었다고 강변해 본들, 이건 누가 봐도 높으신 분과 사이가 틀어진 상태에서 한번 실책을 저지르자 고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쳐낸거다. [52] 현재 언론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는 전후 사정에 따르자면, 역시나 절차대로 기술위원회를 거치지 않고서 높으신 분들이 모여 뚝딱 결정을 내린 밀실 행정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월드컵 탈락이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변명을 하지만 언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찌라시조차 절차를 무시하고 몇몇 높으신 분들 입맛대로 대표팀 감독 모가지를 자르는 작금의 상황을 더 큰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요컨데, 경질되어 마땅하지만 그 시기가 나빴다는 것. 게다가 축구협회가 다음 감독감은 김호곤 밖에 없다는 떡밥을 흘리면서, 처음부터 정해진 수순으로 밀실행정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들끓고 있다.

언론은 외국인 감독으로 고트비 말고도 전 잉글랜드 국대-맨시티 감독이었던 에릭손, 브라질 국대 감독이었던 스콜라리 등을 언급하고는 있으나, 허정무 후임으로 그 많은 해외 감독들 다 고사하고 조광래 불러온 걸 보면 실현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외국인 감독은 언플이고 결국은 김호곤이라 호언장담하는 팬들이 많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 목표였고 지난 20년간 꿈꿔온 국가대표팀 감독시절의 시궁창스러운 전적때문에, 자신의 커리어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12월 9일 코칭스텝과 한데 모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술위원회가 축구협회의 고위층이나 외부의 영향력 있는 집단의 입김에 휘둘리는 존재가 된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어둡다."라고 축협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후 축협이 괘씸죄를 적용해 코칭스텝에게 잔여 연봉 지급을 거부하는 병크를 터뜨리자, 12월 26일 선수 발탁에 외압이 있었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작심한듯 축구계의 초대형 지뢰를 밟아버렸다.

이런 먹음직한 떡밥 앞에 찌라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군대문화가 사회 깊숙이 자리한 대한민국 더구나 상하관계 빡세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체육계에서[53]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나이도 아닐 텐데, 말 그대로 축협은 조광래를 경질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부랴부랴 축협은 오해드립을 시전했으나[54] 이미 조광래 해임부터 후임 최강희 선임까지 축협이 보인 행보는 지리멸렬 그 자체라 팬들은 축협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하는 비웃음만 흘렸다.

심지어 일부 축구팬은 '기왕 상처를 짼 김에 고름을 다 짜내자'며 조광래 VS 축협 3라운드를 고대하고 있다(...).[55][56]

이 후 연봉 미지급 문제는 무려 1년 넘게 끌다가(...) 2013년 정몽규회장이 취임한 후에야 해결이 되었다. 기사

4 이후

2014년 9월 12일, 대구 FC의 대표이사(사장) 겸 단장으로 선임되어 프런트로 일하게 되었다.

단장이라고 하지만 키프로스 현지에서 팀의 전지훈련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영진 감독이나 안드레 코치 등이 본인과 전술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거나 과거 안양에서 한솥밥을 먹던 인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행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구단의 훈련이나 전술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대구 FC가 4~5월에 들면서 K리그 챌린지 1위에 오르면서 이에 대한 비난은 없으며 단장 취임 이후 유소년 육성 강화, 대구시청과의 협약에 따른 축구전용구장 건립[57]등 이전까지와는 다른 긍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국에서 운영 중인 축구전용구장의 실태 및 모델을 보기 위해 외국을 잠시 둘러보기도 하였다.

게다가 33라운드까지 치른 시점에서 대구가 상주(승점 55)에 앞서는 1위(58점)를 달리고 있어 클래식 복귀가 유력해 보였으나 시즌 막판에 부진하면서 1위에서 2위로 밀려나 즉시 승격을 못하고 준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 그래도 순위가 높았기 때문에 비기기만 하면 플레이오프 진출하고 거기서 부산을 꺾으면 승격이 가능했지만 11월 28일 수원 FC(정규시즌 최종 3위)와의 PO에서 2-1로 패배,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절차부심해서 1년뒤 K리그 클래식 승격에 성공했다!!! 승격인터뷰에서 "3년내 K리그 클래식 우승!!"이란 엄청난 목표를 얘기했다(.....) 저기 아재요. 그건 너무 무리수....

5 언론과의 관계

직언을 꺼리지 않는 성격 덕분에 10년 넘게 스포츠 지면에서 칼럼을 연재했다. 그리고 이 무렵 칼럼에서 안 씹어댄 감독이 없다.[58] 차범근부터 베어백까지 오만가지 이유로 까였다.[59] 그야말로 축구계의 모두까기 인형(...). 특히 유럽의 강팀과 경기를 벌여 참패를 당하고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주전 경쟁을 시켰던 히딩크에 대한 비난이 매우 컸는데, 이는 일찌감치 베스트 일레븐을 확보해서 그들 위주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조광래의 생각이 서로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대표팀 감독 부임 초기에는 언론과 호의적인 관계였다.[60] 이런 밀월 관계 덕분에 까여야 할 때 안 까이고 별것 아닌 결과를 내도 언론이 앞장서서 포장해주고 있었다. 당시 '월드컵 16강'과 '아시안컵 세대교체' 덕분에 팬들이 대표팀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던지던 때라 언론 역시 이런 논조를 유지했다. 하지만 삿포로 참사 이후 팬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고, 이동국 기용 논란이나 손흥민 파동, 해외파 중시, 들쭉날쭉한 경기력 등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기다렸다는 듯 언론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경기 며칠전에 언론을 상대로 스타팅 명단, 전술을 모두 까발리고 시작한다는 거다. 물론 언론이야 기사거리가 되니까 좋다하고 취재해가지만 이건 전술을 감추고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천명하는 셈이 된다.[61][62]

그리고 대망의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에게 완패를 당한 이후 그나마 남아있던 호의적인 언론과 전문가 역시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는 중. 하지만 조광래 본인은 선수 탓, 심판 탓, 잔디 탓을 하고 있다. 차라리 레이저 탓을 하면 조금이나마 낫지만[63] 그나마 레바논 관중들의 레이저쇼라든가 관중난입 같은 실드거리가 있지만, 레이저 빼곤 경기력 선수운영 전술 모든 면에서 레바논에게 완패했으니 까여도 할 말이 없다.

충격적 패배라 조광래 감독 본인을 겨냥한 노골적인 기사들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비뚤어졌다' 라는 말까지 나오니...
조광래 감독, 선수들 ‘힘’ 빼기 명수?
김정우는 왜 없나, 조광래호의 비뚤어진 시각

그리고 이제는 부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성용을 무리하게 차출시킨 건에 대해서 셀틱의 레논 감독이 불만을 토로하기까지 했다. # 선덜랜드의 브루스 감독도 조광래의 지동원 관련 발언에 대해서 한 마디를 하기도 했고. # 국가대표팀과 클럽간의 선수 차출에 관한 잡읍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보통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선수가 부상당해 돌아와서 생기는 잡음이 대부분이지, 부상중인 선수를 차출시켜 잡음이 생기는 상식 미만의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6 총평

분명히 클럽 감독으로서 나름대로 선수 보는 안목을 가졌고, 전술면에서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축구철학과 색깔이 또렷했고, 클럽을 꾸려나가는 능력도 있었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뽑힐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소고집이 발목을 잡아버렸다.[64]

프로스포츠에서 감독 개인의 정치력 또한 무시 못할 요소이다. 그런데 조광래는 선수 차출을 놓고 타협대신 항명을 선택하며 축구협회 내에서 입지를 스스로 좁혀버렸다.[65]

뿐만 아니라 '대표팀 감독이 인터뷰를 할 때 협회의 사전 통제를 받아야 하나'고 디스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감독 재량권의 확대가 아니라, 때에 따라 적절히 포장하고 쉴드를 쳐줄 축구협회 홍보부와 척을 지면서 진심이든 오해든 모든 발언에 대한 뒷감당은 감독 혼자 한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가장 아쉬운 점은 만화축구로 대변되는 전술 변화 자체는 얼마든지 시도해볼 만한 조치였느나, 문제는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협화음을 적절히 다독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에게, 무작정 내 말대로 하라는 식의 태도가 씨알머리도 먹힐 리가 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전술적인 문제인 3-4-3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3-4-3은 철저하게 압박을 중시하고 라인을 유지하는 전술이다. 측면 공격수가 단순한 공격이 아닌 수비에도 가담해야하며 이들의 압박이 느슨해질 경우 미드필더 진영까지 올라온 윙백들이 공간을 커버해야하기 때문에 측면 수비 공간을 쉽게 노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까지 미드필더의 핵심이었던 김정우 선수을 제외하고 마킹과 커버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활동량이 높은 이용래 선수를 중용하였으나 높은 활동량에도 불구하고 수비적 불안정을 잡는데 실패했다. 현실적인 측면을 봤을때 기량이 좋은 선수에게 3-4-3을 끼워 맞춘다는 목표도 실패라고 할 수 있다. AS 모나코에서 1선에서 볼 경합을 위해 빌드업을 했던 박주영에게는 측면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민첩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며 움직임과 미드필더 간의 조율이나 사이드로 빠져서 정교한 크로스를 시도하는 사이드플레이어인 이청용에게 강한 슈팅력을 요구하는 것은 이청용이 클럽팀에서 의도적으로 빌드업을 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 하기때문이다. 이렇게 두 측면 공격수에게 특성에 안맞는 옷을 입히려 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파괴력은 낮아질수 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아시안컵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재미를 봤었던 구자철에게 트레콰르티스타를 넣어 공격 가담을 활발하게 할려고 시도했으나 이는 플렛 형태로 간격을 유지하며 압박에 참여해야하는 중앙 미드필더를 가지고 공격형 미드필더를 넣어버려 수비시 빌드업에 부담을 크게 주게 되었고 구자철이 공격진으로 나간만큼의 공간 커버는 이용래 선수에게 부담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전술적으로 잡음이 많았던 다른 감독들의 예를 들자면 안드레 비야스-보아스는 그래도 클럽 감독이었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팀을 맞춰나갈 수가 있었고, 리그 뉴캐슬전이나 챔스 최종전 발렌시아와 경기에서 준비된 감독으로서 진가를 확실히 보여줬다. 또한 비엘사는 칠레 대표팀을 맡아 자신의 축구철학을 고집하며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전술을 들고나왔지만 결국 성적으로 모든 비난을 잠재웠다.

그러나 조광래는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광래는 대표팀을 이끌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과 선수자원을 가지고 어떻게든 성적을 내야하는 위치였다. 때문에 선수들을 달래고 추스르며 함께 발맞춰서 가야했는데, 끝내 소통 부재로 팀이 구심점 없이 흩어져버렸다.

축협의 매끄럽지 못한 감독 선임과정과 임명 시점도 짐으로 작용했는데, 아시안컵을 목전에 두고 감독직을 맡으면서 아시안컵 성적+세대교체+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아주 어중간한 목표를 가진 팀을 꾸려야했다.[66]

갑작스런 해임이 있던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레바논 전의 패배가 결정타였다. 다음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지면 한국은 월드컵이고 뭐고 없다. 아시아 최종예선도 아니고 3차예선에서 한국의 월드컵이 끝날지도 모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패배의 책임은 누가 뭐래도 일차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그런데 조광래 스스로는 해임 원인에 대해 레바논전 패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중연 축협회장의 재선문제만 원인이라고 들먹이고 있다. 절차상의 하자는 분명히 언급할만 하더라도, 스스로 레바논전 패배의 책임을 우선 거론해야 되는것이 순서 아닐까. 조광래는 예전부터 패전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 게다가 '대표팀이 목표했던 팀으로 완성단계에 있었기에 중도하차의 아쉬움은 너무 크다'는 발언을 하면서 거의 누리꾼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훗날 인터뷰 영상이 인터넷에 흘러나오면서 밝혀졌지만 몇몇 찌라시의 왜곡으로 밝혀졌다. 당시 조광래의 발언은 '완성되기 전에 중도하차'라는 시시껄렁한 퇴임사였는데, 이걸 완성단계라는 식으로 써버렸기 때문에 앞뒤 맥락이 엉뚱하게 바뀌었다.[67]

짧게 요약하자면 조광래 개인의 결함과 축협의 전근대적인 행정이 맞물려 벌어진 당연하지만 씁쓸한 결과였다.

이것이 한국 월드컵 예선에 있어서 호재가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감독 해임으로 인한 충격 및 혼란으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대한민국 축구는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지대한 타격을 입는다는 사실을 높으신 분들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조광래 한사람 희생양으로 삼아 어영부영 넘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그냥 뇌가 없는 거다.

허나 그 상세를 추측해 보자면, 높으신 분들도 지금 모양새가 시밤쾅인 건 알텐데, 만약 조광래가 공정한 절차 운운하기 전에 본인부터 유화적인 제스처라든가, 남의 말을 듣는 태도, 상식적인 선에서의 행동거지를 보였다면 아무 말 없이 경질하기 이전에 먼저 형식적인 소통의 의사라도 타전해 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조광래가 극단적인 강수나 외통수를 즐겨 쓴다는 건 뭐 본인이 전술이나 선수선발 및 교체 등으로도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만 이회택과의 대립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수차출 문제로 불거진 이회택과의 대립과정을 보자면 이회택의 입장에선 밀실회담쯤으로 익스큐즈를 하고 임했을 터이지만 조광래는 이회택의 이야기를 듣고 대뜸 테이블을 엎고 나가며 기자들 불러서 모든 사실을 까발리는 극단적인 언플을 시전했다. 훌륭한 언플능력이다. 다만 조광래가 정몽준 라인이 아니라 허승표 라인이고, 국대 감독 취임 후에도 여권의 정몽준 라인과는 뜸하단 걸 고려하면 문제가 있다. 또한 두 번째 문제가 있는데, 한 방에 바보 만들어버린 상대가 이회택이다. 그는 국축 레전드이자 조광래에게 있어서는 대선배인데 대놓고 조져서 축구계 퇴물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다 이회택이 여권 내에서 나름대로 조광래의 감독 발탁에 기여한 친조광래파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이 정도쯤 되면, 목표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암묵적 룰을 깨부수고 극단적인 수를 쓸 인물이란 걸 과시한 꼴이다. 선배고 레전드고 뭐고 없고, 여권 내에서 자기 편이고 뭐고 없다. 이쯤 되면 내 심기를 거스르면 나는 뭘 할지 모른다고 축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친 격이다. 이쯤되면 어설프게 달래거나 토론해 보려다 자극해서 화를 부르기보단 차라리 한 방에 목을 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결론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 부분은 나는 시간을 주거나 눈치를 주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사람이니 스스로 소통 없이 절차 없이 잘라달라고 탄원한 거나 다름없다.

이랬으면서 어이없게도 예선에서 1패했다고 대표팀 감독에서 짤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근데 2003~2004년 국대감독이던 움베르투 코엘류몰디브 상대로 1무했다가 짤렸다.(...) 더구나 이 당시 몰디브의 피파 랭킹142위였고, 2011년 조광래를 아작내던 당시 레바논의 피파 랭킹은 146위였다.(...) 거기다 이때에 조광래는 코엘류의 지도스타일이나 성격이 한국팀과 맞지 않고 감독한지 1년이 지났는데 선수파악도 못했다면서 협회에서 손을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이 당시에 코엘류 감독이 개인기를 중시한다며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기술이 처지는 한국의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랬던 사람이 현실도 모르고 베스트 일레븐이나 짜서 한국 축구 현실에 맞지도 않은 티키타카질을 할려고 했고 그러다가 일본에게 대차게 패했다. 그야말로 남에게는 가혹하면서 본인에게는 너그러운 전형적인 소인배같은 행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설에도 불구, 공정한 절차의 부재는 개선해야 할 점이다. 선수 차출에 대한 감독의 전권과 더불어 오래도록 관행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낙후한 축구 행정이 대중에게 부각된 점은 조광래가 감독하면서 남긴 업적 중의 하나일 것이다.

7 기타

위와 같은 활약상으로 조광래는 성적을 막론하고 자기 전술에 선수를 끼워맞추는 경향이 심한 감독들에게 붙는 별명이 되었다. 축구 커뮤니티에선 그런 감독들의 이름 앞 글자에 광래를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를 보광래(...)라고 부르는 것이다. 2013년 12월 기준으로 사커라인에서 광래라고 검색하면 조광래보다 보광래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의 데이비드 모예스 역시 모광래랑 별명이 붙었었고 펩 과르디올라조차 펩광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표팀 감독시절 이상하리 만치 해외파, 그 중에서도 유럽 클럽에서 뛰는 선수들을 우선시 하였다. 심지어 그선수가 부상을 당하건 슬럼프를 겪던 2군에 내려가 있던 상관없이[68] 대표팀에 합류시켰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수집에 가깝게 선발하고 실제 경기에서는 쓰는 선수만 줄기 차게 써대며 종국에는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항명하기에 이르었을 정도며 나이 어린 선수들을 1군에 기용하자 이 들의 유럽 소속팀들이 올림픽 대표 선출을 거부하여[69] 홍명보 감독의 선택지를 확 좁혀버려 올림픽 대표팀 선수를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이잡듯이 뒤져 선수단을 구성하여 최종예선까지 치뤘다. 다만 올림픽 대표팀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마저도 조광래 감독이 뽑아가서 올림픽 최종예선보다 몇일 더 앞서 열리는 경기에 출전시켜버려서 홍명보 감독은 울며 겨자먹기로 또 선수를 찾아 나섰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서 사실상 유럽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은 베스트11내지 교체 1, 2, 3자원이 정해져 있으며 23명중 해외파 14명을 제외한 9명중 골키퍼 후보2명을 제외하고 남은 자리 7명은 J리그나 다른 해외선수들의 자리였고 그나마 차출이 어렵거나 빈자리는 K리그 선수들에게 선심쓰듯이 주는 자리였고 대표팀 소집 훈련시에는 1군과 2군을 해외파와 비해외파로 나뉘어 훈련을 하였다.[70]

그 와중에 유일하게 중용된 K리거 필드 플레이어가 이용래인데 그는 2011년 수원과 대표팀을 오가며 60경기 넘는 혹사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풀타임 경기가 거의 대부분이었고 중동 원정도 예사였다. 이후 이용래는 폼이 죽어버려 그저그런 선수가 되어버리고 의경(안산 경찰청) 입대를 하게 된다.[71]

이 사이에 대한민국 축구사를 뒤흔들었던 최대이슈가 기성용 SNS 조롱사건으로 조광래감독 해임뒤 땜빵으로 선임된 최강희감독이 국내파선수 우선순위와 팀내 파벌철폐를 기성용이 비밀 SNS로 조롱한 사건이며 같은 런던 올림픽멤버 윤석영은 최강희 감독 사임뒤 인터뷰를 빌미로 SNS에서 비아냥거리는 등 대한민국 축구사의 끔찍한 흑역사가 탄생하게된 장본인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성용 페이스북 최강희 감독 조롱 논란 참조.

또한 특유의 막말화법은 클럽감독 시절에도 유명했는데, 안양 LG 치타스 감독으로 재임하던 기간중의 서울로의 연고이전 당시 상심한 안양팬들에게 "안양시민들도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멀지 않은 거리이므로 변함없이 응원하러 와줄 것이라 믿는다."는 말로 아픈 데 소금을 뿌렸다. 그냥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면 된건데...

8 조광래와 윙백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막장 행적 때문에 지금은 꽤 잊혀진 떡밥이지만 안양 LG 시절 조광래는 윙백으로 유명했다.

안양 시절에 스카우트한 유망주들에 대한 성과들 때문에 축구 카투니스트 샤다라빠는 자신의 만화에서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윙백은 조광래에게 보내라"라고 말하며 조광래 감독의 유망주 육성 능력에 대해서 칭찬하는 건지, 까는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묘사를 했다. 사실 이건 유망주 육성능력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조광래가 윙백 제조기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조금만 잘한다 싶으면 일단 윙백으로 넣곤 한 것을 비꼬는 내용임. 조광래는 당시 공격수고 미드필더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조건 윙백으로 만들곤 했었다. 조광래의 윙백철학에 대한 인터뷰

조광래의 경우 윙백을 공격적으로 올리는 것을 선호하다보니 대체로 윙포워드 자원이나 톱 자원, 공격형 미드필더 등의 선수를 포변해서 윙백의 공격성을 유지하고 수비력은 전문 풀백보다는 부족하더라도 적당히 수비할 수 있으면 되는 정도면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안양 시절 3백을 주로 쓰다보니 부족한 공격 문제 해결을 위해 측면 수비수들을 많이 끌어올렸는데 이는 2002 월드컵 당시 히딩크가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강한 수비력과 부족한 공격력의 부조화를 위해 제시한 방법과 비슷했다.

그리고 공격수들이 윙백을 경험하면 공격수로의 시각이 넓어져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기에 로테이션 급 공격자원들이나 유망주들은 한번씩 윙백으로 포변을 시키는 게 안양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다. 다만 포지션 변경을 통해 성공한 윙백이 전 인천, 수원 수비수인 이정수 정도를 빼면 없다는 게 문제이고, 만약 윙백 전환이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팀에서도 비슷한 훈련을 도입해서 선수를 육성하겠지만 이러한 훈련 사례가 조광래 외에는 없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이론적 배경을 가진 훈련으로 보긴 어려울 듯 하다. [72] 진순진 선수의 경우에는 안양에서는 윙백알바를 병행하다 대구FC에서 공격수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공격수 유망주였던 이준영도 윙백으로 바꾼 후 조용히 잉여공격수로 살다가 승부조작 사건으로 퇴출당했으며, 이청용이나 최태욱같이 윙으로 잘 하는 선수들도 윙백으로 넣었으나 조광래의 손을 벗어난 뒤에는 다시 윙으로 원상복귀했고.

다반 국가대표 감독 이후의 윙백 전환에서는 이러한 철학적인 부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센터백인 김영권의 윙백 기용.,
  1. 다만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부임한 시기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한국 축구계의 돌아가는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본다면 사실상 대한민국 축구판 잃어버린 10년을 코엘류 감독 시기부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코엘류가 잃어버린 10년의 시초를 만들고 조장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2. 이 링커라는 말은 '이어 주는 사람'식으로 해석됐고 지금 식으로 말하면 중앙 미드필더, 그 당시 식으로 말하면 '플레이(게임)메이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3. 당시로서는 약체인 대한민국이 끼여있으므로 지옥의 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4.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지막지할 정도로 불쌍하게 조편성을 받게 되자 FIFA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히 검토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실력순으로 잘라서 강팀끼리 몰리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톱시드 제도를 신설하게 됐다'라고 잘 못 적혀 있는데 톱시드 제도는 이미 1974년 서독 월드컵때부터 도입중이였다. 다만 피파랭킹 같은게 있을때가 아니여서 전대회 성적을 기반으로(이건 지금도 일부 반영한다.)그리고 지역배분으로 시드를 배정했다고 잘못 적혀있는데 최근 두 월드컵에서 우승한 두 팀을 한조에 쏠아넣은게 무슨 전 대회 성적을 기반으로 한 건지 모르겠다. 사실상 그냥 되나마나 조편성을 한 것에 더 가깝다. 1986년 월트컵 탑 시드는 개최국 멕시코와 전대회에서 4강에 들었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폴란드와 나머지 한자리는 브라질이 차지했고 2번 시드를 보면 잉글랜드, 소련, 우루과이,스페인,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이였는데 이게 실력순 배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어쩌다 4강 한번 든 폴란드 따위가 우승한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톱시드가 되는 얼척 집나가는 기준을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5. 폴란드는 직전 월드컵 4개대회 성적이 탈락-3-5-4등이고, 아르핸티나는 탈락-8-1-11등인데 "어쩌다가 4강 한번든 폴란드 따위가 우승한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톱시드가 되는 얼척 집나가는 기준을 들이댔다"라는 표현은 심하다. 전혀 심하지 않다. 우승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그야말로 넘사벽이며 네덜란드 같은 팀은 결승을 3번이나 가고도 우승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기준으로도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괜히 네덜란드나 헝가리보다 높게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컵 결승에 단 한번도 못간 폴란드 따위가 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제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스웨덴이 아르헨티나를 제쳤다면 스웨덴이 1958년 준우승국이라 말이 되는데 월드컵 결승에 한번도 못간 폴란드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명백한 편애이다. 2006년 월드컵 이후부터 결승전에 쓰는 공인구는 다른 경기의 공인구와는 모양부터 다른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결승 전용구는 다른 경기에 사용된 공인구와는 달리 금장도색이나 기타 여러가지가 추가되어 여타의 경기에 사용한 공인구보다 넘사벽으로 화려하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디팬딩 챔피언 본선 자동진출 제도가 있던 시절이었다. 탑시드국가 중 멕시코는 개최국, 이탈리아는 전대회 우승국(2-10-4-1), 서독은 전대회 준우승국(3-1-6-2), 프랑스는 전대회 3위(탈락-탈락-12-4), 브라질(1-4-3-5)이다. 어쩌다 한번 4강 든이라는 표현은 폴란드보다는 프랑스에 적합하다고는 하지만 결승에 진출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도 이 월드컵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물론 프랑스는 86년 3위를 하고, 폴란드는 14등을 했지만 이것을 2010년 월드컵으로 따지면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제치고 톱시드가 된 꼴이다. 월드컵 우승국과 그렇지 않은 팀의 대우의 차이는 어딜가나 넘사벽이며 심지어 위키백과에서는 분류:FIFA 월드컵 우승팀 선수라는 항목까지 있다. 참고로 나머지 2시드 국가 잉글랜드(8-탈락-탈락-6), 소련(5-탈락-탈락-7), 우루과이(4-13-탈락-탈락), 스페인(탈락-탈락-10-12), 파라과이(탈락-탈락-탈락-탈락)의 성적을 보면 당시 폴란드보다 직전 4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국가는1970년 대회에서만 우루과이, 소련, 잉글랜드가 있고 그 이후는 없다. 폴란드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에 대한 예우가 전혀 없는 조추첨 탓에 디팬딩 챔피언들이 한쪽으로 몰리는 사상 초유의 죽음의 조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2014 월드컵에서도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에 대한 예우를 무시하고 그냥 FIFA랭킹으로만 짤라버리는 바람에 우루과이-이탈리아-잉글랜드가 한조에 몰려버리는 입이 쩍 벌어지는 괴상망측한 조편성이 되기도 했다.
  6. 아르헨티나를 톱시드에서 짤라버리고 그 자리에 폴란드를 넣은 조편성이 지상최악의 병크인 이유는 FIFA 월드컵 우승 유경험팀(그것도 불과 2대회 전 우승팀)을 개무시해도 너무 개무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현재의 이탈리아가 헬렐레 하면서 맥을 못 추고 있어도 2006년 월드컵 우승팀이라서 강호 대우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기준으로 보더라도 같은 우승후보였던 적이 있는 팀들이라 해도 우승한 적이 있는 팀들은 다 살아남았지만(심지어는 우승 유경험팀 중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우루과이조차 2010년 월드컵에서 4위를 찍으며 살아났다.) 우승한 적이 없는 팀들은 헝가리, 체코 등 살아남지 못한 팀들도 꽤 있다. 따라서 폴란드의 시드배정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며 폴란드의 시드배정이 정당하다는 논지대로라면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같은 쟁쟁한 팀들 전부 다 월드컵 결승에 여러번 올라가고도 조별리그 한 두번 떨어졌다는 이유로 만년 16강인 멕시코의 발 밑이라는 얼척 집나간 논리가 성립되고 만다. 어떠한 종목이든 꾸준한 4강보다 우승 한번을 더 높게 쳐준다.
  7. 이때 동점골을 어시스트 한게 바로 조광래
  8. 사실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로 알토벨리 당시 선수가 골문으로 쇄도하는 것을 막다가 그렇게 되었다. 마크를 하지 않았으면 어차피 그 선수가 넣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에 맞고 들어간 거라, 만약 노골이 되었다 해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9. 선수와 코치 시절을 거친 친정 팀 대우 로얄즈의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물러나는 쓴 잔도 맛봤다.
  10. 아우렐리안 코스민 올라로이우(Aurelian Cosmin Olăroiu "아우렐리안 코스민 올러로이우"라고도 한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수원 삼성에서 "올리"라는 이름으로 선수생활을 했으며, 2014년 12월부터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1. 그러나 문제는 이른 나이에 조광래에게 발굴된 유망주 치고 대성한 케이스 보다 망한 케이스가 많다. 15세에 프로 입단했던 조원광은 해외리그와 2, 3부 리그를 전전하다 잊혀졌으며, 최원권은 멀쩡한 미드필더를 윙백 돌리다가 애만 버려놨다. 그리고 박희성은... 허정무나 김호의 아이들도 그렇지만, 이른 나이에 프로맛을 보고 걸출한 선수가 되기보다 어릴때 혹사당하고 고만고만한 선수로 전락하거나, 사재기 해놓고 기용을 하지 않아 망태크를 탄 케이스가 훨씬 더 많다.
  12. 아이러니하지만 이것의 달인이 김호 감독이다. 수석코치 시절에 뭐 보고 배웠겠나? 여기에 특유의 황소고집에 더해지니 무서울게 없었다.
  13. 바로 부임한 것은 아니고, 안양 구단과 박병주 감독이 그에게 차기 감독 자리를 보장했고, 1998년 FA컵 우승 후 박병주 감독이 은퇴선언을 하고, 이번에는 약속대로 물려받았다.
  14.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항목 참조.
  15. 그 와중에도 윙백 전향시키려고 애를 썼다. 사실 동시즌에 함께 영입했던 수비수 (진짜 등록명이 이랬다. 본명은 빅토르) 이 제대로 먹튀여서 아쉬웠던 모양.
  16. 심지어 박지성이 고려대 조예스(...)에게 물 먹고 수원에 입단하려고 테스트하러 왔을때 '저 비리비리한 놈은 뭐야? 당장 끌어내!'...라고 했다 카더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17. 이들의 다툼을 뿌리깊은 연고대 학맥 다툼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조중연은 고려대 출신이고, 보통 그 반대에 섰던 허승표, 신문선, 조광래가 연세대 출신이다. 다만 실제로 조중연과 가까운 인사 중 이회택, 황보관 등은 고려대 출신이 아닌 점을 두고 볼 때는 지나치게 단순한 프레임이다. 이것은 親조중연 인사인 허정무(연세대)와 위명에 비해 축협에서 야인취급 받는 차범근(고려대)의 경우를 봐도 학맥과는 무관함을 알 수 있다.
  18. 엄밀히 말하면 1990년대에 이종환 회장이 선수출신으로서 축구협회 회장을 맡긴 했지만 약 4개월간의 회장직 대행이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는 조중연 회장을 최초의 선수출신 회장으로 지칭한다.
  19. 사실 2002년 이전까진 히딩크에게 명줄을 맡긴 공동운명체였지만, 4강신화 이후 논공행상(...)를 하는 과정에서 섭섭한 대우를 받았다고 정몽준과 결별했다.
  20. GS에서는 허승표와 선을 그은 상태이다.
  21. 순위가 밀렸단 말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있다. 그는 이미 1992년에 대표팀 코치를 맡았었다. 위의 스태프 커리어 표 참조. 여기도 같이 참고. 이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은 김호 감독이었다.
  22. 사실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PK는 경험보다 배짱 싸움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이영표가 PK 실축을 하면서 결승진출에 실패, 결국 이동국은 상무 가고 박항서 감독은 목이 날아갔다.(...)
  23. 그러나 당시 경기장에 남아있는 선수중 그나마 최선의 키커 구성을 한 것이다. 고참인 박지성과 이영표, 차두리 모두 끔찍한 실패경험이나 배짱부족을 이유로 PK를 안차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는 억지로 떠밀지 않는한 나오지 않을 키커였고 좋은 키커라 볼 수 없는 상황인지라 키커의 경험부족을 까는 것은 에러. 그런 이유에서 키커로 뽑혀 나온 3연뻥의 주인공중 두 명인 이용래와 구자철은 나이는 어리지만 킥력은 고참에 밀리지 않기에 괜찮은 선택이었지만 원래 보직이 수비수인 홍정호는(...).
  24. 이 부분은 중원을 책임지던 김정우의 공백과 박주영의 공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즉 전술적 미스가 아닌 선수선발 옵션의 한계이다.
  25. 허정무의 대 우루과이전은 이동국의 물회오리 슛과 함께 경기 직후에는 비난이 넘쳐났으나, 오히려 해외 언론은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한국의 패스 플레이와 경기력을 높이 평가했고, 이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의 사커라인 등 국내 커뮤니티 분위기는 허정무가 우루과이 전에서 보여준 플레이를 높은 수준으로 평하고 있다. 사실 허정무의 월드컵전 비판의 9할은 우루과이 전이 아닌 아르헨티나 전이다. 4강팀이랑은 대등한데 8강팀에 산산히 찢어발리는 미스테리 아르헨티나전도 우루과이전때처럼 했더라면
  26. 특히 한국의 축구팬들은 언제나 탄탄하고 믿음직스러웠던 대한민국 국대의 왼쪽 라인이 알틴톱 등에 의해 탈탈 털리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에게도 쉽게 털리지 않았던 왼쪽이 털리니 당연한 반응이다.
  27. 두 선수 모두 국내 활약과는 다르게 A매치 활약은 좋지 못하다.
  28. 후술할 김정우, 조영철의 포지션 파괴적인 배치나 이근호의 재발탁 왼쪽라인 유망주실험 등 평가전 다운 승리보다는 실험에 무게를 두었다. 그게 설령 홈일지라도 랭킹차이가 크지 않은 팀을 상대로 4골을 넣고 무실점으로 틀어먹았다.
  29. 김영권의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의 발을 맞고 방향이 틀어졌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가 주춤하는 사이에 박주영이 자리를 잡고 헤딩. 운이 좋은 면도 있지만 수비수의 삽질이 없었다면 쉽게 들어갈 골은 아니었다.
  30. 멋진 상황도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히 하프라인 근처에서 프리킥을 날려 이근호에게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준 상황이 있다. 못 넣었지만.
  31. 정조국, 구자철 등이 교체 선수로 들어갔는데, 별다른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구자철은 선발 기회가 부족해서 컨디션이 떨어졌다 치더라도 정조국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
  32. 기안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과의 평가전 세 차례에서 모두 골을 집어넣을 정도다. 에시앙과 더불어 한국 킬러.
  33. 그런데 10/11시즌의 에시앙의 폼은...
  34. 다만 두 팀다 장거리 비행 이동으로 후반에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지만...
  35. 볼 키핑, 패스, 공격 전개 등등.
  36. 특히 두 경기 모두 보여준 하프라인 근처에서 날린 두 차례의 기습적인 프리킥을 통한 역습 찬스와, 한 차례의 장거리 슛은 경이로울 수 밖에 없다. 비록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37. 허정무 전 국대 감독이 올림픽 감독이던 1999년 친선전 한일전 원정에서 4:1로 진 게 있긴 하다. 하여튼 이 패배로 허정무는 중일전 2경기에서 3점차로 대패한 유일한 감독이 되어버렸다.
  38. 이중 2011년 1월 25일 아시안컵 준결승때 승부차기 패가 포함되어 있다.
  39. 쿠웨이트, 레바논, UAE
  40. 그 중 6골은 레바논 전에서 나왔다.
  41. 차두리 대신 나온 최효진이 엄청 부진했다.
  42. 일례로 지금이야 기성용, 이청용이 에이스지만, 허정무가 2010년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할 때만 해도 전혀 검증되지 않은 풋내기였다. 결국 두 선수는 보기좋게 주전경쟁을 이겨내며 대표팀의 중추로 성장했다.
  43. 이 부분은 현대 축구의 트렌드와도 살짝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는 이렇게 점유율 많이 먹으면 상대방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하며 초조해하다 자멸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점유율 축구가 위세를 부리고 나서는 결국 침착하게 대처해서 버티다 보면 상대방 역시 초조해하다 되레 역습 맞고 자빠지기도 쉽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그래도 결국 최상위권에서 점유율 축구가 좋은 이유는 메시, 리베리, 호날두, 이브라히모비치, 베일 같은 크랙들이 깽판을 놓다 보면 골이 들어가거나 상대방이 지려서 자멸하는 양상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국대에서 이런 거 해 줄 사람은 그나마 이청용인데 득점력이 너무 낮아서...
  44. 그동안 레바논은 공한증이었다! 더불어 한국을 이긴 뒤로 레바논은 2무 7패 무승 부진에 빠져있다. 그것도 수단이나 쿠웨이트같은 상대들에게 패한 것이기에 레바논 내에서도 한국 이긴 것은 한순간의 꿈이었다고 여길 정도이다.
  45. 이걸로 인해 선수의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 선수생활과 직결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에도 알제리 관중 중 누군가가 선수한테 레이저 쏜 것 때문에 알제리 축구협회에서 벌금을 물었다는 얘기도 있다. 막말로 레이저 공격을 물고 늘어졌으면 레바논 축구협회로부터 벌금을 물어내게 하거나 하는 식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46. 물론 지더라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레바논이 아랍에미리트에 패하는 것인데 레바논이 지는 점수차보다 11골 차이 이상으로만 지지않으면 (예로 레바논이 1대0으로 아랍에미리트에게 패하면 대한민국은 12대0으로 패하면 득실차가 동점(한국-3, 레바논-3)이며 13대0이상으로 패해야 탈락이다.(한국-4, 레바논-3) 아무리 경기력이 시망이라도 쿠웨이트에게 13대0으로 지는 건 하늘이 두쪽나도 불가능하다.)통과인데 3차예선 내내 삽질한 아랍에미리트가 레바논을 잡아줄지는 미지수이다.
  47. 볼턴의 오언 코일 감독도 이청용을 3월 중에 복귀시키겠다고 말했다. 쿠웨이트 전이 2월 29일 예정이긴 하지만 클럽 1군 복귀가 3월 예정인데 그 전에 국대로 출전시키겠다는 소리를 하는건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다.
  48. 최강희 감독이 어쩔수 없이 떠맡았지만, 조광래 때문에 감독 커리어를 통째로 망칠 뻔했다. 관련 기사 참고.
  49. 당장 1998년 당시에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아직 안했고 끝나지도 않았는데 차범근을 경질한 게 잘 한 게 아니라는 비판적인 의견이 있다. 당시 차범근 경질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3전 전패하더라도 조별리그는 다 치르게 하고나서 해임시켰어야 했다는 거다.
  50. 아시아 예선에서 부진 -> 아시아팀을 잘 아는 감독 선임 -> 최종예선은 통과했지만 팀은 부진 -> 유럽통 새 감독을 뽑았지만 여전히 팀은 엉망진창(...)
  51. 고트비의 2011 아시안컵 이전의 커리어를 보면 이란 프로축구팀 감독 시절(2007-2008년 시즌 페르세폴리스 우승)도 그렇고 남아공 월드컵 지역예선 때도 한국에 지지 않았고 안타깝게 예선탈락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으며, 2011 아시안컵 하기 전 2010년 하반기에 조광래 감독의 한국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선 승리도 했고, 2011년 아시안컵 우승하고 더 나아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까지 생각했던 것 같은데 2011 아시안컵 8강전에서 윤빛가람의 한 방이 좀 컸다.
  52. 기간이 짧아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아시안컵 이후에도 경질되지 않았고, 한일전 대패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에서 다소 한계가 있는 논리이다. 무엇보다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예선은 무난히 통과했다.
  53. 대표팀 감독 취임을 한사코 거부하던 최강희 감독도 결국 대선배이자 은사인 조중연 협회장이 나서자 고집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54. 비록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축구팬들은 어느 선수인지 감 잡은 상태다(...) 그 선수가 맞다면 분명히 현 상황에서 한번쯤 추천할 만한 좋은 선수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회택이 어떤 신분인가? 한 네티즌은 이렇게 비꼬았다. '사장님이 오늘 회식 있는데 볼일 있는 사람은 빠져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회택의 발언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아니 선수가 없다고 감독이 연신 연신 푸념을 하는데 그걸 듣던 기술위원이 이 선수 어떠냐고 한 마디 못한다면 그게 도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55. 한가지 상기해야 할 점은 선수단 운용에서 조광래는 자기가 운용하고자 하는바를 거의 이뤄냈다는거다. 주축선수들을 국대로 대부분 빼앗긴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오히려 해야할말 같지만, 게다가 그렇게 뽑은 선수단도 해외파 중용에 만화축구로 불리는 전술로 제대로된 선수단 역량도 뽑아내지 못했다.
  56. 혹자는 98 프랑스월드컵 대표팀 감독이던 차범근 감독을 벤치마킹한다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예선은 쉽게 통과해서 본선에 기대했다가 멕시코전의 역전패와 그 분네덜란드전 때문에 경질된 경우다.
  57. 야구단이 대구스타디움 근처로 오고, 축구단이 야구장(시민구장) 자리로 가는 상황.
  58. 특히 10년 가까이 스포츠 조선에서 연재했던 '조광래의 눈' 시리즈의 칼럼은 지금 본다면 성지에 가까운 언행 불일치를 보일 정도 납득하기 힘든 선수-선발 전술베어벡의 책임 떠넘기기
  59. 안티들에 의하면 베어백을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해서 2007년에 국대 차출 거부를 주도했다고 한다.
  60.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지역예선 통과를 다룬 공간과 압박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보면 축구 대표팀 소집 훈련을 위해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 조광래 감독이 들어설 때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조광래 감독이 따봉을 하자 "오오~"하고 환호하고 이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조광래 감독도 "여기서 보네."하고 말을 건네는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모습이 나온다.
  61. 이 부분은 약간 다르게 생각할 부분이 있긴 한 것이, 차라리 전술을 밝힌 뒤 상대팀의 대응에 따라 다른 대응법을 쌓아 나가는 것 역시도 하나의 방법이다.
  62. 하지만 꼼수도 한 번 두 번이지 남들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특정캐릭터나 덱스를 미리 사용한다고 심리전을 걸고 그게 성공했다 해도 어차피 특정되어버린 이상 이후 취할 만한 행동은 몇 개 정해져 있고 본인의 패턴을 적에게 보여 준다면...
  63. 차라리 레이저 문제를 걸고 넘어졌으면 레바논 축구협회로 하여금 벌금이라도 물리게 할 수 있었다.
  64. 양날의 검이다. 히딩크 감독 역시도 고집이 센 사람이었지만, 결국 자기 뜻대로 팀을 조련해서 성공적으로 월드컵을 치렀다.즉 고집대로 밀어붙여서 성공하면 소신과 뚝심이지만, 실패하면 아집에 불과하다는 것. 2002년 히딩크 감독이 포백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다 결국 포기하고 스리백으로 원상복귀했던 점을 떠올려보자. 클럽과 달리 대표팀은 정해진 짧은 기간안에 일정한 성적을 내야한다. 아무리 좋은 이상과 철학도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타협과 궤도수정이 불가피한데, 조광래는 끝내 이를 거부했다.
  65. 더러운 현실이지만 까놓고 말해보자. 동년배 감독들이 이미 각급 대표팀 가운데 한두 군데는 거쳐갈 때 조광래는 리그만 맴도는 쩌리 신세였다. 자칫 대표팀 문턱은 평생 밟아보지도 못할 쩌리를(<-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조광래도 1992년에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은 적이 있다. 맨 위의 스태프 커리어 참조) 높으신 분이 파격적으로 간택(?)한 셈인데, 조광래는 대놓고 항명했다. 높으신 분 처지에선 인간적으로 당연히(?) 뒤끝이 작렬할 수밖에 없다.
  66.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놓을 때 넷상에서도 '아시안컵까진 2010 월드컵 멤버 그대로 가고, 이후 새 감독이 새 팀을 꾸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축협은 허정무 감독의 결심을 돌리지 못했고, 이후 되도 않은 언플을 벌이다가 뜬금없이 조광래 카드를 내밀어서 다양한 감독의 하마평을 올리던 누리꾼에게 모조리 함정카드를 먹였다.
  67. 당일 언론보도를 한데 모아 비교해보면 분명이 드러난다. '완성되기 전에'라고 보도한 언론도 상당수 있었지만, 이미 네티즌에게 평생까임권을 받은 인물인 만큼 왜곡이든 아니든 이것만큼 까기 좋은 보도가 또 있을까.
  68. 몇몇 해외파 중시에 이상이 없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컨디션에 문제가 있음에도 계속 출전시키는 것은 '주전 대우'라는 표현보다 '혹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특히 '해외파'이기 때문에 바다 건너 와서 시차 적응까지 해야 한다는 점도 감안하면 더더욱. 그리고 이동 시간 동안 소속팀에서의 적응이나 컨디션을 추스릴 시간도 빼앗기는 것도 덤.
  69. 유럽팀은 23세이하의 선수라도 성인 대표팀에 선출되어 뛰게 될 경우 성인 선수로 분류하여 U-23대표팀 이하의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다.
  70. 프로팀과 달리 대표팀은 각 팀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만 뽑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 자존심에 그대로 상처입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선수들이 식사 할때 선후배로 나뉘어 앉은 것 조차도 좋지 않다며 비판하고 시정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훈련에 차별을 뒀다고 하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이런 일은 쌍팔년도는 물론 70년대에도 없었다. 차라리 대표팀을 청룡 백호로 나뉘어서 경쟁을 시켰으면 모를까.
  71. 대표팀에서 뛸때 비판을 많이 듣긴 했지만 그렇게 망가질 정도로 못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72. 아약스 식 훈련 또는 바르셀로나식 훈련에서 유스 선수들이 자신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고 다른 포지션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경기를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일부러 포지션을 바꾸는 훈련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성인을 대상으로 시즌 내내 포지션을 바꿔서 훈련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