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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학영 |
출생일 | 1952년 4월 16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
최종 학력 | 전남대학교 NGO학 박사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종교 | 개신교 |
약력 | 제19,20대 국회의원 |
외부 링크 | 블로그 |
1 개요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군포시 을)
2 생애
순창농림고등학교, 전남대학교[1] 졸업.
1970년대였던 23살에 9년형을 받았다.
학창시절에는 516장학재단의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절까지는 사실 자신에게 장학금을 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원래 어릴적 꿈은 시인이었다가 고교시절에 공무원이나 군인이 되어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게 되었다고 하는데, 결국은 대학에 가서 3학년때 학생회장이 되고 학생운동을 하게 되다가 국가권력에 핍박받게 되면서 그뒤로 계속 운동권 인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만, 학생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의도치않은 방향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평소 데모같은 것에도 별 관심도 없이 학교를 다녔다가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서 억울하게 붙잡혀서 고문을 당한 것이 학생운동에 입문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서 공무원을 꿈꾸면서 학생운동을 멀리했던 시절, 다른 남학생들이 죄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학생회장을 떠맡았는데, 이 때문에 수사관에 잡혀가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고 손발과 손가락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씌워서 물고문을 당하고 구속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풀려난 후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혼자 통곡했던 경험을 필리버스터 정국 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198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였다. 당시도 사회운동 중이라서 조카의 이름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군포시) | 민주통합당 | 65,506 ( 51.32% ) | 당선 (1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경기 군포시을) | 더불어민주당 | 33,220 (43.9%) | 당선 (1위) |
4 저서
- 마음을 비추는 달(1994)
- 눈물도 아름다운 나이(1998)
- 사람의 바다(2002)
- 강(2003)
- 꿈꾸지 않는 날들의 슬픔(2009)
- 세계가 만약 하나의 집이라면(2011)
- 이학영, 세상을 사랑하였네(2015)
5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문학으로 여당에 저항한 시 쓰고 읽어주는 남자.
"우리의 주인 되신 분들이 와서 앉아 계십니다. 그분들은 세금을 낸 주인들이십니다. 방호과 직원 여러분, 여러분은 주인을 모시고 있는 겁니다."[2]
"신체에 해를 가하지 마세요[3]
"인생에 한번입니다."[4]
- 2016년 2월 28일 12:22부터 국민의당 권은희의원에 이어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45번째 토론자로 참가[5], 2016년 2월 28일 10시 55분, 10시간 33분에 걸친 필리버스터를 종료하고 같은 당 홍종학 의원에게 차례를 넘겼다.
- 과거 이야기를 하며 젊었을 때 유신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죄도 없이 끌려가 고문을 받은 일과 민투위 강도 사건등 젊은 날의 우여곡절을 이야기 했는데, 내용이 꽤 자세하다.
- 여러 편의 시를 낭송하고 이에 대한 해석을 활용하여 여당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비판해 화제가 됐는데, 이는 그의 전공이 국어국문학과였고, 문학계에 등단한 시인#s-1이라서 그랬다고 한다.
6 여담
- 2016년 6월 17일 전남 무안에서 발생한 경비행기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 ↑ 학생회장 활동 중에 체포되어 고문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 ↑ 조원진 의원의 항의로 방청객이 끌려나가자 이렇게 말했다.
- ↑ 방청석에서 박수를 치다가 방청객이 국회 직원에게 끌려나가는 모습(국회에서 방청객의 박수는 금지되어 있다.)을 보면서 한 말이다. 독재정권 시절 이학영 의원 본인도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맞은 트라우마가 있기에 아마도 본능적으로 그러한 말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 ↑ 본래 5시간 정도를 계획으로 했던 이학영 의원의 발언 시간이 9시간 30분이 넘어가자 '힐러 리'로 유명한 이석현 부의장이 그의 건강과 대기 중인 의원을 걱정하며 발언을 줄일 것을 권유하자 했던 이학영 의원이 했던 발언. 부의장과 대기중이던 홍종학의원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자신이 운명에도 없던 정치인의 길을 걸어 왔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조금만 더 말하겠다고 했다. 필리버스터가 종료된 이후에 이석현 부의장이 오마이뉴스에서 장윤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전화연결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를 회상하며 "이학영 의원이 요령없이 너무 열심히 하길래 걱정이 되어 짐을 나눠지시라는 뜻으로 권유했는데, 그의 인생에 한번이라는 말이 가슴에 찡 와닿았고 그 욕구와 사명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농담으로 "그 양반(이학영)이 그때 다 말하지 못했더라면 가슴에 속병이 났을 것이다"라는 말도 하였다.
- ↑ 발언 순서로만 보면 23번이나, 필리버스터는 홀짝법칙이 적용되어 반대 측이 먼저(홀수), 찬성 측이 나중(짝수)에 하도록 토론 순서가 되어 있지만, 찬성 측의 신청자가 없으므로 짝수 번호는 비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