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 이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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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시절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는선수 시절.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코치 | |
임재현 | |
생년월일 | 1977년 4월 16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배재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신체 사이즈 | 182Cm, 77Kg |
프로입단 | 2000년 드래프트 2번(청주 SK 나이츠) |
소속팀 | 청주/서울 SK 나이츠(2000~2007) 전주 KCC 이지스(2007~2014.5.15)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2014.5.15~2016.1) |
지도자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2016.1~) |
종교 | 개신교 |
2002~2003 한국프로농구 모범선수상 | |||||
추승균(대전 현대 걸리버스) | → | 임재현(서울 SK 나이츠) | → | 허재(원주 TG삼보 엑서스) |
2012~2013 한국프로농구 이성구 페어플레이상(모범선수상) | |||||
김선형(서울 SK 나이츠) | → | 임재현(전주 KCC 이지스) | → | 조성민(부산 KT 소닉붐) |
1 소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한 해 후배인 송영진, 황진원, 2년 후배인 김주성과 함께 중앙대를 대학 농구의 절대 강자로 만들면서 대학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각광받았다. 이 명성을 바탕으로 2000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지명받아 SK에 입단했다. 그리고 마침 주전 가드인 황성인의 군 복무 때문에 바로 주전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3 프로 선수 시절
하지만, 전년도 우승팀인 SK의 주전 가드의 교체는 곧 임재현이 굉장히 중압감 속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SK는 이 해 시즌을 망치는데, 이 때문에 임재현에게 비판이 쏟아지게 된다. 그러나 대신 2001-02 시즌에 분투하면서 평가를 만회하기는 하지만, 이 때부터 임재현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켜지게 된다.
황성인의 복귀 이후, 군에서 가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나마 괜찮던 신인 시절에 비해 리딩이 더 떨어졌다. 정통 포인트가드로 보기에는 공격력과 수비력은 괜찮지만 리딩 부분에서는 분명 다른 가드들에 비해 역량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마침 SK도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던 시절이라서, 임재현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이 때 붙은 별명이 임봉. 즉, 봉사라는 소리다.
결국 FA를 맞아 그를 원했던 허재 감독이 있던 전주 KCC 이지스로 가는데, 이 때문에 허재 감독과 또 쌍으로 까였다. KBL의 이상한 규정 때문에 서장훈과 임재현을 동시에 영입한 KCC는 자동으로 이 둘이 보호선수가 되었고, FA 보상 선수는 총 세 명이라서 나머지 한 명을 추승균으로 보호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이상민이 보호선수로 팀을 떠나는 상황이 도래하자, 프랜차이즈 스타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팬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임재현이 까인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주전 가드로서의 리딩은 이상민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KCC에서는 점점 덜 까이는데, 바로 주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슛과 수비는 괜찮았기 때문에[2] 리딩 대신에 전문적으로 슛을 노리는 식스 맨으로 보직을 바꾸고서는 오히려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 리딩은 전태풍에게 맡기고, 자신은 식스맨으로 슛에 집중하면서 팀에 상당한 보탬이 되었다. 선수 자신도, 팀도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비관적인 평가를 많이 만회했다. 어차피 리딩에 한계가 있는 것,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시킨 것이 좋은 상황을 낳은 것이다.
2011-2012 시즌이 끝난 현재 FA자격을 얻었다. 다른 팀으로 떠나는 것 대신에 KCC와 2년 계약을 맺고 팀에 잔류했다. 전태풍과 강병현[3]이 없는 KCC의 2012-13 시즌 상황에서 정통 1번이든, 신명호와 투가드를 사용하든, 어떤 형태로건 간에 주전 가드로 뛸 확률이 높아보인다.
2012-2013시즌 초반 강병현, 전태풍, 하승진, 추승균이 모두 빠진 상황에서 홀로 팀을 이끌며 시즌초반 맹활약하다 3라운드 즈음부터 체력적 부담으로 시작해 결국 시즌이 끝날때 즈음에는 강병현, 김효범등의 합류와 박경상의 급부상으로 팀내의 입지가 줄어 식스맨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전력이 급하게 빠져버린 KCC를 이끌어준 공로는 무시할수 없는것이다.
2013-2014시즌은 결국 몇 경기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FA 자격을 얻은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이적했다.
4 지도자 시절
2015-2016년 시즌 1월 중 갑자기 은퇴하고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코치로 부임한다.
5 플레이 스타일
버저비터를 은근히 잘 넣고, 슛이 좋기 때문에 아스트랄한 상황에서도 슛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스피드가 좋은 편이고 잘 뛰어다니기 때문에 악착같은 수비력도 지니고 있다. 또다른 별명이 유순하게 생기지 않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들개(...) 한국의 데릭 피셔 정도라고 생각하면 딱인 선수다. 그런데 별명은 내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