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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레전드 양동근의 슛을 블록하는 김주성
뭐 이런 류의 짤방도 경기당 자기 블록슛 수치만큼 만들어낸다. 황정민(...)? 야거장?
이제는 3점 파이터!
원주 동부 프로미 No. 32 | |
김주성(金周成 / Ju-Sung Kim) | |
생년월일 | 1979년 11월 9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출신학교 | 동아고 -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센터, |
신체사이즈 | 205cm, 92kg [2] |
프로입단 | 2002년 드래프트 전체 1번 (TG삼보) |
소속팀 | 원주 TG삼보 엑서스/원주 동부 프로미 (2002~) |
국가대표팀[3][4] | 1998 아테네 세계선수권[5] / 방콕 아시안게임 2001 상하이 ABC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3 하얼빈 ABC 2005 도하 ABC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07 도쿠시마 ABC 2009 톈진 ABC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 우한 ABC 2013 마닐라 ABC 2014 스페인 월드컵 / 인천 아시안게임 |
수상내역 | 농구대잔치 MVP 2회(99[6],00) KBL 신인선수상(2003)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2003, 2005,2008) KBL 정규리그 MVP 2회(2004, 2008) KBL 챔피언결정전 MVP 2회(2005,2008) KBL 베스트 5 8회(2003~2006,2008~2009,2012,2015) KBL 올스타전 MVP 1회(2008) KBL 수비 5걸상 5회(2004,2007,2010~2011,2015) KBL 우수수비상 2회(2004,2012)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7] FIBA ABC 준우승 1회 (2003) / 3위 4회 (2001,2007,2011,2013) |
2000.1 2000.10 농구대잔치 MVP | |||||
조우현(중앙대학교) | → | 김주성(중앙대학교) | → | 현주엽(상 무) |
2003~2004 한국프로농구 정규리그 MVP | |||||
김병철(대구 동양 오리온스) | → | 김주성(원주 TG삼보 엑서스) | → | 신기성(원주 TG삼보 엑서스) |
2007~2008 한국프로농구 정규리그 MVP | |||||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 → | 주희정(안양 KT&G 카이츠) |
2002~2003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 |||||
김승현(대구 동양 오리온스) | → | 김주성(원주 TG삼보 엑서스) | → | 이현호(서울 삼성 썬더스) |
2003~2004 한국프로농구 우수 수비상 | |||||
박규현(창원 LG 세이커스) | → | 김주성(원주 TG삼보 엑서스) | → | 추승균(전주 KCC 이지스) |
2011~2012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수비상 | |||||
추승균(전주 KCC 이지스)[8] | → |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 → |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
2004~2005 한국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 |||||
이상민(전주 KCC 이지스) | → | 김주성(원주 TG삼보 엑서스) | → | 강 혁(서울 삼성 썬더스) |
2007~2008 한국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 |||||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 → | 추승균(전주 KCC 이지스) |
2007~2008 한국프로농구 올스타전 MVP | |||||
조상현(창원 LG 세이커스) | → |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 → | 이동준(대구 오리온스) |
1 개요
항상 기록에 욕심없다. 팀이 우선이라고 말해왔는데 이렇게 기록이 쌓인 것을 보면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득점과 리바운드, 블록슛이 쌓인 것은 내가 열심히 한 보상이다. 특히 블록슛은 한국 첫번째 기록이라 큰 자부심과 함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꼭 깨지기를 바란다.ㅡ 2015년 12월 30일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전에서 전인미답의 1000 블록을 기록 한 후 인터뷰
서장훈을 잇는 국보급 빅맨
원주 동부 프로미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원주 주성 프로미
대한민국 대표 불낙집 사장님
원주 동부 프로미 소속의 농구 선수.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센터. 키에 비해 좀 마른 체격이기 때문에 디시 농갤 등에서는 멸치라고도 불린다. 본인 말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체중이 안 불어난다고 한다.
2 경력
2.1 고등학교에서 대학 시절
3급 지체 장애인인 부모님 슬하에서 힘든 성장 과정을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잠재력은 있지만 외려 동시대 센터인 김태완보다 낮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도 말랐지만 그 때는 제대로 못 먹어서 더 마른 몸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대 농구부의 대부 정봉섭이 김주성을 스카웃하고 적극 지원을 했고,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인 조우현이 도움을 주고 하면서 차츰 실력을 키워갔다.
중앙대학교 입학 후 잠재력이 폭발. 임재현, 조우현, 송영진, 황진원과 함께 중앙대 무적 시대를 다시금 열었다. 2m 5cm라는 키가 믿겨지지 않는 스피드와 점프력으로 가볍게 덩크를 꽂고 날아다니며 블록을 하면서 상대 팀들의 인사이드를 송영진과 함께 초토화시켜 버렸다.
2.2 프로 생활
당연히 드래프트 1번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 당시 1번을 잡은 것은 원주 삼보였는데, 그 곳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던 허재는 김주성의 입단이 결정되는 순간 만세를 부르고 다음 날 새벽까지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고 한다.
KBL에서 '외국인 선수들과 부딪치면 과연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시선도 있었으나, 코트 내외를 넘는 허재의 전폭적인 지원과 갈굼(?) 속에 파워 포워드 자리를 소화하면서 어느 정도의 득점 능력과 존재감 있는 블록슛을 앞세워 가볍게 신인왕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데뷔 첫 해에 팀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끄는 위엄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한국 농구팀이 금메달을 따는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그 후로도 한국프로농구의 간판선수로 계속해서 활약하였다. 포워드 자리에서 마르커스 힉스나 단테 존스 같은 외국인선수와 매치업되며 굴욕 아닌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했으며, 그 때문에 시즌 MVP 2회, 베스트 5 6회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보통 외국인이 독차지하는 블록슛 타이틀도 두 번이나 차지한 적이 있다.
김주성이 있는 한 동부는 만년우승후보란 말을 들을 만큼 KBL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2009/2010 시즌 기록은 16.3 득점, 6.6 리바운드, 3.9 어시스트, 1.1 스틸, 1.5 블록슛.
2012/2013 시즌, 1월 28일 연습 도중 발목부상로 전치 4주의 진단이 나왔다. 이 부상으로 말미암아 동부는 DTD 테크를 탔다.
2013/2014 시즌에는 여러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경기가 많아졌고, 부상여파와 나이등의 영향으로 인해 예전만 못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쑥대밭이 되어버린 동부에서는 김주성 만한 선수도 없었다(...). 김주성에게 걸리는 견제를 나눠줄거라던 용병은 태업논란에 부상으로 아웃되고 나머지 용병들은 막말로 김주성만도 못한 영향력을 보여주며 동부의 용병흉작을 한탄하게 만들었다. 어쨌건 나이가 있어도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차출되며 김주성만한 빅맨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 동시에 김주성 이후 그동안 쓸만한 국내파 빅맨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4/2015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신인드래프트에서 허재의 아들인 허웅이 5순위로 동부행이 결정되며 KBL 최초로 부자 농구선수[9] 와 함께 뛴 선수가 되었다.
2015/2016시즌에는 지난 시즌부터 조금씩 던지기 시작한 3점슛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어째 이 형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슛거리가 길어진다 한편 12월 2일 울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10득점을 기록하여 문경은 감독의 9,347득점을 넘어서 통산 득점 3위에 올라섰다! 12월 30일 고양 오리온과의 원정 경기에서 4쿼터 막판 조 잭슨의 골밑슛을 블록하여 전인미답의 정규시즌 통산 1,000블록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하진 못했지만, 고양 오리온의 막판 맹추격에 찬물을 끼얹는 3점슛을 성공시키는 등 팀 승리에 공헌하였다. 사실 조 잭슨이 3쿼터의 인유어페이스에 대한 보답으로 대기록을 내어줬다 카더라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매 경기 20분 이상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클러치 상황의 외곽슛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외국인 선수들이 상대 수비수에 막혀 멘탈이 승천하는 이 답답한 상황 속에서 제 몫을 해줬던 유일한 선수였다. 결국 홈인 원주에서 0:3 스윕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팀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였다.
3 특징
뭐니뭐니해도 탁월한 BQ+운동능력을 이용한 수비가 김주성의 최고 무기. 인사이드 플레이어지만 속공 가담에도 매우 뛰어나고, KBL 데뷔 초기엔 중거리슛을 쏠 수는 있어도 뛰어나다 할 수는 없었지만 가면 갈수록 중거리슛에도 능한 면을 보여주게 되었다.[10]. 인사이더치고는 마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보다 힘이 좋은 선수를 상대로는 스피드를 앞세운 페이스업 공격을 하고, 자신보다 작은 국내 선수와 매치업되면 높이를 앞세운 포스트업을 써먹으며 상대를 공략한다. 거기다 패스 플레이로 팀내 볼 흐름을 도우며, 보면 같은 팀 포인트가드보다도 인사이드에 공 배급은 더 잘해주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직접 잡는 리바운드는 많지 않지만 성실한 박스 아웃으로 팀 동료가 리바운드를 잡게 하고, 스크린 플레이도 열심히 가담한다. 리바운드 후 패스도 일품. 사실상 KBL판 케빈 가넷이라고 보면 된다. 수비 포메이션에 대한 뛰어난 이해도와 긴 리치를 이용한 블록슛, 동 포지션 타 선수들 대비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가로수비 그리고 무엇보다 인사이드에서의 기민한 헬프디펜스로는 팀 전체의 수비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점에서 케빈 가넷의 그것과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공격에서의 사기더웨이도.
다만 나이가 들고 국가대표와 소속 팀에서 거의 전 경기를 뛰는 혹사를 겪으면서 체력과 스피드가 줄어 급격히 노쇠화를 겪으며 장점보다는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데뷔 10년차 시즌인 2012년 11월 14일,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한 경기 리바운드 0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강동희 당시 감독에게 니가 갱기를 망치고 이써급의 개갈굼을 당했고 너는 안 망치고 있냐 이것이 방송으로 전파되면서 많은 농구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김주성이 농구를 못 한다고 갈굼을 먹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했다. 그도 역시 노쇠화에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프로농구 최초 주성타 갈굼영상 너야 너! 너라고! 니가 지금 다 놓치고 있는 거야 임마!
이처럼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피할 수 없을 것 처럼 보였는데, 김영만 감독 부임 후 출장시간을 25분 내외로 관리를 해주자 다시금 탑급 빅맨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15~2016 시즌 초반 김주성이 부상으로 결장시에 9위까지 내려간 동부는 김주성의 복귀와 웬델 맥키네스의 합류로 인해 파죽지세로 순위를 끌어올리는 상황이다.[11] 거기에 나이가 들며 골밑싸움에 힘이 부치는지 2014-2015시즌 부터 간간히 늘려가던 3점 슛 시도를 2015-2016시즌부터는 작정하고 슈터로 변신이나 한 듯 던져대는 바람에 상대 입장에서는 더 까다로운 선수로 변해버렸다.[12]
어쨌든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가진 선수. 현행 샐러리캡 제도에서는 엄청난 연봉(2010년 기준 6억 9천만원)을 받지만 연봉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다. 심지어 모기업 CF를 찍어도 그러려니 한다
4 주성타
4.1 과도한 리액션과 비매너 플레이
일반인들에게는 성실함과 부지런함 등등 좋은 프로 선수의 덕목을 고루 가진 걸로 평가받는 김주성이지만 농구 매니아들은 매너가 나쁜 선수로 평가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지나치게 성깔을 폭발시킬 때가 있으며[13],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사고를 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경기 도중 서장훈의 목덜미를 배구 스파이크하듯 내려쳤던 사건. 이 건으로 인해 김주성은 두고두고 농구 팬들에게 주성타로 불리며 욕을 먹었고 김주성을 안 좋은 의미로 다시 봤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신경전과 몸싸움이 가장 치열한 골밑에서 활동하는 선수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가면 갈수록 늘어가는 헐리우드 액션도 문제. 파울 유도라는 게 잘 하면 좋은 거라지만 눈에 띄게 과도한 액션이 많으며 이로 인한 비판도 많이 받는다. 2011년 3월 25일 벌어진 동부와 엘지간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제대로 헐리우드 액션을 보이면서 비판이 더욱 늘고 있다.
14~15시즌 전자랜드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리카르도 포웰에게 공과 상관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몸통박치기를 시전했다. 문제는 그러고도 더블파울로 포웰도 파울을 함께 받았고, 포웰을 파울 트러블로 몰아넣었다. 농구 관련 사이트에선 오심을 저지른 당사자인 김도명 심판은 제쳐두고 황순팔과 함께 쌍으로 다굴당하는 중.[14]
제일 큰 문제는 김주성의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다. 김주성이 프로 데뷔 이전이나 이후에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좋았고 여기에 모기업 동부화재 보험 광고를 찍으면서 부모님의 얘기가 나오니까 라이트팬들에게 "농구 잘하고 성실한 효자" 이미지가 씌워진 덕분. 이미 효자 이미지가 나오기 전부터 플랍질이나 서장훈한테 저지른 주성타 등 타 팀 골수팬들에게는 비호감 1순위였다. 지금은 전성기 때 효자 이미지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여러 농구 팬들에게 많이 비판받고 있다.
4.2 흑역사
2004년 3월 7일. 인천 전자랜드와 TG삼보의 경기가 펼쳐졌다. 시즌 순위는 결정된 상태에서 우지원과 문경은이 시즌 3점슛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고 김주성 역시 블록 순위에서 1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 순위와는 관계 없지만 과연 문경은이나 김주성이 어떤 활약을 활지 농구팬들은 관심을 가지고 경기를 보았다.
그리고 농구팬들은 경기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희대의 상부상조 개그를 보고 만다. 전자랜드 선수들은 김주성이 블록 찍기 좋게 슛 시도를 갖다 바치고 TG 선수들은 문경은이 슛 쏘기 좋게 알아서 노마크로 자리를 비워주는 상황이 경기 내내 이어지는 어이없는 꼴이 펼쳐진 것이다. 형님 좋고 아우 좋고인지 뭔지 하여간 이들이 벌인 짜고치는 고스톱 덕에 김주성은 그 경기에서 11블록을 달성하고 트리블더블도 덤으로 하며 시즌 블록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당연히 어이가 가출하는 상황을 본 농구팬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KBL은 결국 그 시즌의 3점슛 1위와 블록 1위를 해당자 없음으로 수상 처리하며 어물쩡 넘어갔다. 더 어이없는 것은 문경은과 우지원은 이 사건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며 특히 우지원은 각종 예능출연시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신의 과오로 인해 후배들이 피해를 봤다고 사과를 거듭했다. 하지만 김주성은 나는 원래 8블락을 기록한 적이 있고 한 경기로 인해 한 시즌이 폄하된다는 것에 굉장히 불쾌하다며 인정조차 하지않았다. 어떻게 보면 졸렬하기까지 한 태도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2010년 KBL 홈페이지의 김주성 항목을 보면, 김주성의 한 경기 최다 블록 기록으로 저 2004년 3월 7일 짜고친 고스톱같은 날의 기록이 버젓이 올라가 있다. 이뭐병. 김주성은 과연 2004년 3월 7일 자신이 만든 기록을 어떻게 생각할까.
5 트리비아
김주성의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다. 여자배구팀 흥국생명에서 뛰었던 김향란으로, 여동생도 오빠처럼 키가 커(186cm) 포지션도 센터(미들블로커)로 활약했다. 오빠보다 일찍 성인무대에 뛰어들었지만 배구선수의 특성 상 롱런하지 못하고 일찍 은퇴했다. 그래도 엄청난 족적은 남기고 은퇴를 했는데 배구 프로화 이전 슈퍼리그 시절에 한 경기 최다 블로킹인 8개를 기록하기도 했다.집안 특성이 블로킹 김주성이 김향란의 플레이를 보고 쿠사리 먹인 많이 조언을 했다는 과거 신문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키가 큰 김주성 김향란 남매와 달리 척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 신장은 160cm 정도고 아버지는 170cm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국프로농구의 빡빡한 샐러리캡(연봉총액제한) 때문에 한 선수가 한 팀에서 오래 뛰다 명예롭게 은퇴하기가 참 까다로운 게 현실인데, 김주성은 그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입단 때부터 10년 동안 한 팀에서 뛰었다. 일단 구단 내에서는 성골이라 할수 있는 중대 출신에다가 한 팀 근속년수도 높으니 그가 은퇴 때까지 한 팀에서 뛰고 은퇴한다면 먼 훗날 차기 동부 감독은 김주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주성 본인도 동부에 대한 충성심도 높고, 팀의 샐러리캡이 부담된다면 자기 연봉을 낮춰서라도 남을 것이 분명할 듯. 설마 이 분 말년처럼 되지는 않겠지?
로드 벤슨과 함께 개그 콘서트에 출연한 적이 있다. 3분 43초부터... 깨알 같은 로드 벤슨의 "신발 벗어!"
남자프로농구 유일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인데 야구 최대 합법적 병역브로커처럼 정작 본인도 군 면제[15] 되었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6명의 선수를 병역 혜택을 제공했지만 국가대표 은퇴로 병역 브로커 활동도 끝났다.
- ↑ 동부 팬들에게는 동부 산성 3개 기둥으로 벤슨, 윤호영과 함께 꼽힌다.
- ↑ 원주 동부 프로미 공식 프로필.
- ↑ "국대 노예 17년". 부상위험이 많은 센터 포지션에서 이렇게나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활동하는건 정말 드문 일이다. 아무리 헐리웃이니 주성타니 욕하는 팬들도 KBL에서 뛸때의 김주성을 욕하지, 국대에서의 김주성을 욕하는 팬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른 국가대표팀 출신 선수들의 커리어 프로필은 중간중간 빠지는 대회가 있는 것는 달리 주요대회마다 쉰적이 없다!!! 레전드 센터인 서장훈도 대학 1학년때부터 14년간 대표팀에 뽑혔지만 중간에 빠지는 대회들이 좀 있었고, 이들 못잖은 혹사를 당했던 김유택은 대학 1학년때부터 12년간 대표팀 생활을 한후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겨우(!!) 31세에 국대은퇴를 선언했다.
- ↑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팀에 나가지 못하면서부터, 올림픽 열리는 해 여름에만 겨우 쉴수 있었다. (웃어야하는건지;;; 한국농구의 리빙 레전드인 양동근, 김주성 모두 올림픽에 나가본 경험이 없다.) 그나마도 올림픽 최종예선이 열리면 바로 차출...휴식 끝.
- ↑ 중앙대 1학년때 첫 선발.
- ↑ 대회기준 2000년 1월
- ↑ 이 금메달로 인해 대한민국 남자 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력향상연구연금의 수혜자가 되었다.
- ↑ 우수 수비상은 2004-05 시즌을 끝으로 7년간 폐지된 상이다. 이후 2011-12 시즌 최우수 수비상으로 부활했는데 김주성이 첫 수상자이다. 추승균은 2004-05 시즌 수상자
- ↑ 허재, 허웅 부자
- ↑ 이따금씩 뜬금 3점포를 보여주고 있다.
- ↑ 동부 선수들에게 있어서 김주성의 존재는 절대적이어서, 김주성이 없는 날에는 다들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한 플레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 ↑ 단순히 시도를 늘리는게 아니라 성공률마저 50%에 육박하니 매치업 상대들은 환장할 노릇.
- ↑ 신인 시절부터 심판에게 간혹 가다 강하게 항의하는 등 그런 성향이 보이긴 했다.
- ↑ 황현우(황순팔에서 개명함) 심판은 주심으로 있었고, 오심으로 인지도가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으레 황순팔이 그랬겠거니 생각하고 까고 있다.
농구계의 김풍기 - ↑ 부모님이 장애인으로 병역 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