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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KCC 이지스 No. 3 | |
전태풍 (Anthony Jewell Akins) | |
생년월일 | 1980년 7월 3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조지아 공과대학교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슈팅가드 |
신체사이즈 | 178Cm, 83Kg |
프로입단 | 2009년 혼혈 드래프트 1번 (KCC) |
소속팀[1] | 전주 KCC 이지스 (2009~2012) 고양 오리온스 (2012~2013.12) 부산 kt 소닉붐 (2013.12~2015) 전주 KCC 이지스 (2015~) |
수상내역 | Georgia Mr.Basketball 1회(1998) All-ACC Honorable Mention(Media) 1회(2001) All-ACC Second Team(Media) 1회(2002) Poland-DBL Assists 1st 1회(2007) Croatian League Assists 1st 1회(2008) KBL 플레이오프 우승 1회(2011) KBL 베스트 5 1회(2010) KBL 어시스트상 1회(2013) |
목차
1 소개
KBL에서 제일 가는 양날검[2]
한국프로농구에서 뛰고 있는 귀화 혼혈 선수. 전주 KCC 이지스의 주전 포인트 가드이다. 미국명은 토니 애킨스(Tony Akins), 풀네임은 Anthony Jewell Akins.
2 기록
3 행적
3.1 KBL 이전
전태풍의 진짜 전성기 시절[3]
1980년 7월 3일, 디트로이트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후 LA로 가서 13년간 살다가 Lilburn이라는 곳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Richards Middle School을 거쳐 Berkmar High School에 진학했다. Berkmar High School에서 3학년때 평균 28.6점 5.0리바운드 6.5어시스트 5.0스틸 야투율 55% 3점슛 42% 자유투 85%로 그 학교의 에이스로서 맹활약을 하면서 팀을 이끌면서 25승 8패를 이뤄냈고, 이때 Mr.basketball에 선정되어 조지아주 최고의 선수로 뽑혔고, USA Basketball이 뽑은 Junior National Championship Team의 27인중 한 명이 되었다. 청소년 대표로 경기를 했던 게 바로 이 시기이다. 고교시절 총 1,955점을 기록하여 그위넷 카운티 득점기록을 갈아 치우게 되고 Berkmar 고등학교는 최우수 농구 고등학교로 선장됐다. 수십개의 대학에서 오퍼가 왔으나 조지아 공대와 미시간 대학 두가지 선택지에서 부모님은 미시간 대학 진학을 원했으나 전통적으로 포인트 가드가 강한 학교이며 집에서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조지아 공대에 진학했다.
조지아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며, 심지어 개인교수까지 붙여서 그가 운동, 공부 모두 잘 할 수있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전태풍은 처음 2년은 좀 헤맸는데 바로 점프슛이 부족했으며 경기력이 불안정했다. 고교시절에는 엄청난 운동능력과[4] 기술로 상대를 압살했지만 대학무대의 수준은 달랐고, 마크 프라이스로부터 슛을 배우면서 처음 2년은 아주 뛰어난 활약을 하진 못했다. 이 때 조지아 공대 1학년때는 31경기 11.3점 3.7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학년때는 11.5점 3.3리바운드 3.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필드골이 상당히 떨어졌고, 턴오버가 상당히 많은 턴오버 머신이였다. 적응기를 끝낸 3학년때는 14.5점 3.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 이때 조지아 공대는 17승 13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4학년때는 17.0점 4.3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졸업했다. 1,2학년때는 필드골이 30% 초반대로 안 좋았지만 3,4학년때는 40%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TS%는 3학년때 59.4%, 4학년때는 57.7%를 기록했다. 4년동안 3점슛을 301개를 성공했고(성공률은 37.1%) 이는 조지아 공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사이즈가 애매하고 실력 역시 그 사이즈를 커버할 정도로 전국에서 압도적인 건 아니여서 결국 NBA 입성에 실패,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유럽에서 그가 거쳐간 국가는 러시아, 프랑스, 터키, 폴란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불가리아. 스탯은 보통 평균 10~15점에 어시스트도 5개 이상 기록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 중 폴란드에서는 통합 23경기 15.0점 5.3어시스트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통합 39경기 12.1점 5.9어시스트로 팀을 챔프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당시 전태풍은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트라이아웃에서 양동근을 상대로 1:1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일약 1순위 후보로 지목되었다.
가드가 부실했던 모든 팀들이 탐을 냈던 전태풍을 지명한 팀은 1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을 내는 순간이었는데, 왜냐하면 허재 감독은 순서 상 가장 마지막인 10번째에 추첨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앞의 9개 팀이 모두 꽝을 뽑아서 1순위가 되었다는 뜻. 어쨌든 이상민의 이적으로 그 후계자 육성에 애를 먹던 KCC 입장에서는 단숨에 가드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행운이 따라주었다.
3.2 KBL 시절
3.2.1 전주 KCC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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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국에 귀화 신청을 해서 빠르게 귀화했고, 이름도 지금의 전태풍으로 지었다. KCC의 공격을 조율하고, 뛰어난 볼 핸들링과 슛팅으로 KCC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다만 기분을 좀 타는 편이라서 기분이 업될 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신들린 듯한 활약을 보이다가도 기분이 다운되면 영 시원찮은,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허재 감독과 KCC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 가드로서의 볼 컨트롤과 드리블과 같은 스킬에 있어서는 여타 한국 선수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평이다. 기본기가 좋고, 순간 스피드가 좋기 때문에 1:1로는 어지간해서 막기 힘들다.
한국어에 아주 능통하지는 않지만, 허재 감독의 지시로 통역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경기 끝나고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국어가 늘면서 곧잘 인터뷰도 잘 한다. 다만, 이게 어휘 구사에서 골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팬들에게는 아주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속공 잘됐어요. 슛 잘했어요"(경기에서 이긴 후, 승리 이유에 답하며)"안녕하세요. 저는 전태풍씨입니다. 시청자 하라분(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니다"(2010년 새해 인사에서)
"4쿼터 됐어요. 다리 힘들어요"(4Q 막판 덩크에 실패한 이유를 묻자)
"안 돼요. 감독님 모가지 잘려요"(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허재 감독을 놓고 덩크하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독 얘기하는 거 힘들어요. 미안해 감독님."(가장 어려운 한국말을 묻자.)
이쯤 되면 과장 살짝 보태 레알 귀요미 수준(...)
입국 당시부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밝혀서 지금은 한국어 실력이 상당히 능통한 편이다. KBL에 대한 불만 사항으로 귀화 선수에게는 강제로 3년 마다 팀을 바꾸도록 하는 규정을 들고 있다. 사실 캐나다 국적인 김효범이 정상적인 FA를 취득하는 것에 비해 차별적인 것도 맞다. 이 때문에 농구 팬들은 KBL과 김효범을 까지만, 한 편으로는 KCC에서 나와 다른 팀에 간 전태풍의 활약도 은근히 기대하는 편.
국가대표가 꿈이지만, 아쉽게도 귀화 선수 출전 자격은 1인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표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이승준, 2011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문태종이 발탁되었는데, 모두 포워드 부분의 강화 때문이었다. 사실 가드도 구멍이지만 포워드 높이도 만만치 않게 낮은 총체적 난국의 한국 농구라(...)
2012년 3월 11일, 소속팀인 전주 KCC 이지스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스윕으로 패배를 당해, 4강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KCC에서의 생활은 마무리짓게 되었다. 현재 혼혈 선수를 영입한 이력이 없는 서울 SK 나이츠, 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고양 오리온스가 전태풍을 지명할 수 있는데, 김선형과 양동근, 김시래, 박지현을 보유한 SK, 모비스, 동부보단 상대적으로 가드가 약한 고양 오리온스에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리온스 역시 5억을 지를거라 공언하며 사실상 오리온스 단독 입찰 분위기.
3.2.2 고양 오리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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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스 시절. |
2012년 5월 3일 발표된 혼혈 선수 드래프트 결과에서 고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아 오리온스로 가게 되었다. 가드가 약한 오리온스가 포인트 가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 이로서 오리온스는 김승현 부상 이후 계속되어온 포인트 가드 부재의 악순환을 끊게 되었다.
2012년 10월 13일 KT와의 시즌 개막전에 출장한 전태풍은 18점 7어시스트 5리바운드로 맹활약했고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2012-13 시즌 평균 12.2점 6.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KBL에 와서 처음으로 어시스트 1위를 기록했지만 KCC에서 보여줬던 파괴력보다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보다 공격력이 줄어들고 느려져서 이제 노쇠화가 진행됐다는 평가. 그럼에도 KBL을 대표하는 다른 3명의 가드(양동근, 김태술, 김선형)에 비등비등한 실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스피드가 느려진 현재 김선형에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5]
그런데 인터뷰에서 밝히길 노쇠화보다는 골반쪽에 문제가 있어서 발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더불어 별로 오고싶지 않았던 오리온스였기에 의사소통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몸상태가 좋다고 했다.[6]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몸상태는 좋아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온스라는 팀에는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약간 겉도는 플레이가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 그로 인해 오리온스는 4연패를 기록했고 더불어 전태풍 역시 저번 시즌보다 부진했다.
결국 포인트가드 역할을 해줄수 있는 전태풍을 필요로 하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로서 부산 KT 소닉붐은 조성민과 전태풍이라는 좋은 가드라인업을 운영할수 있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오리온스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수 있는 부분. 대놓고 추일승, 김동욱 디스 그런데 올스타전 이후 트레이드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멘붕하기도 했다. 기자가 물어보자 "벤치에 앉아 있어야죠"라고 대답하기도. 하지만 극적으로 고양 오리온스와 부산 KT 소닉붐이 극적으로 합의 하면서 다행히 무사히 갈 수 있게 되었다. 댓글의 반응은 북한 탈출 후 납북되었다 재탈출에 성공했다는 식.
3.2.3 부산 KT 소닉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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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kt 소닉붐 시절. |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스타팅으로 뛰었다. 하지만 전반에는 특별한 활약 없이 야투를 단 한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자유투로만 2점에 그쳤다. LG의 지역방어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후반에는 슛이 좀 터지면서 풀렸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아쉬운 턴오버를 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조성민과의 시너지도 아주 좋은편은 아니였다는 평가가 많은편..[7] 그 후에도 KT가 3연패를 하면서 전태풍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상당히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창진 감독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전자랜드전에서 첫 승을 했지만 전태풍의 모습은 그다지 별로였다. 하지만 그 다음 오리온스전에서 10점 9어시 야투율 5/6을 기록하면서 조성민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그 이후로 잘 한다 싶었지만 시즌 후반될수록 점점 부진하게 되고 경쟁포지션인 김우람의 폼이 올라오면서 결국 주전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심지어 KT에서도 조성민에게 MVP를 주기 위해 공격을 몰아주는 경향까지 보이면서 존재감이 없는 선수로 전락하였다. "무득점에 그친 전태풍, 존재감도 제로." 딱 현재 전태풍에 어울리는 말이다. 본인이 밝히는 이야기로는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감이 확 떨어지면서 무기력해 졌다고 한다. 더불어 많은 패턴에 익숙치 않은 전태풍이 KT에 와서 복잡한 패턴을 포인트가드로서 수행해야 하니 더 못하게 된걸수도 있다. 더불어 전창진 감독에게도 점점 신뢰를 잃어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이렇게 부진이 계속되자 전태풍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동시에 언론이나 해설자들에게도 지적을 받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전창진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전창진 감독이 왜 농구하면서 벤치의 눈치를 보냐고 하자 KT의 패턴에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감독은 전태풍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로 팀을 이끌길 원했지만 전태풍은 패턴에 지나치게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기의 플레이가 안나오게 된것.[8] 전자랜드전에선 예전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10점 7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용병싸움에서 밀려 패배하였다. 그 후로도 그냥 별로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했다. 출전시간도 점점 줄어들어 평균 26분정도 뛰는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평균득점은 3점정도 내려가고 평균 어시스트는 2.3개 정도 내려갔으며 필드골, 3점슛, 자유투 모두 최저를 기록하면서 흑역사를 썼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실망감만 주었다. 특히 조성민 역시 부상여파로 부진하면서 KT는 엘지에게 3대0 떡실신. 연봉이 깎이는건 불가피 해 보인다. 그런데 5억원으로 동결되었다. 그 후 인터뷰에서 13-14 시즌은 정말 몸과 마음이 전부다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하며 이승준의 연봉 삭감을 보고 위기 의식을 느꼈는데 한 시즌 더 부진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시즌 KT의 트레이너 말에 의하면 전태풍 본인이 스스로 맞춤 훈련 일정을 짜왔는데 본인이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정도로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고 전태풍 스스로도 둘째를 출산하면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은것 같다고 하였다. 전창진 감독 역시 본인이 가장 기대하는 자원 중 하나라고 하니 14-15 시즌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조성민이 무릎 부상으로 적어도 2달은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더욱 전태풍의 활약이 KT로서는 필요하게 되었다. 조성민이 나간 이상 전태풍이 에이스가 되어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주말 개막2연전에서 양날의 검의 모습을 보였는데, 원정경기인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20득점으로 팀을 캐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 홈 개막전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경기에서는 저조한 야투를 보이며 전역귀 모드로 팀이 패배하는것을 막지 못했다.[9]
그런데 그 후 2경기는 내리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2연승을 주도 하였다. 그 후 팀은 2연패를 다시 했지만 전태풍은 매치업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초반 KT는 거의 용병들이 무존재감인지라.. 전태풍 원맨팀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0] 11월 14일 전자랜드전 13득점 12어시스트 더블더블을 했어도 경기는 91대 69로 대패. 조성민의 부재가 너무 크다. 그나마 이재도가 득점력에서 부담을 덜고, 에반 브락의 합류로 마커스 루이스보다 나은 활약 속에 조금 부담이 줄었다. 현재의 평가는 KCC 시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부활했고 KBL 최고 수준의 포인트가드 정도(?). 그리고 조성민이 복귀하자 자기의 부담을 덜었다고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 조성민이 복귀하고 본인은 오히려 하락세이며 조성민과는 거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팀의 주축으로 활약 했지만 너무 무리했는지 오른쪽 무릎부위 통증으로 아웃되었다. 그 사이 이재도, 조성민, 찰스 로드 등이 잘해주면서 팀은 5승1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12월 중순쯤 나갔는데 2~3주 정도 휴식을 취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나올 예정이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나왔으나 8분도 안되서 착지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나갔다. 전창진감독에 의하면 복귀시기가 언제인지 모르며 너무 들뜬 나머지 제대로 몸도 안푼 결과라 하며 아쉬워했다. 6강 싸움에서 힘든 위치에 있는 KT로서는 상당히 악재가 되었다. 부상 회복 후 복귀하긴 했지만 기복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KT의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전태풍으로서도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귀화선수 규정상 KT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였기 때문에 10개 구단이 자유롭게 입찰에 나서고 가장 높은 연봉을 쓴 팀과 계약해야 한다. KT에서 몇년 더 뛰다가 은퇴하고 싶었던 전태풍은 언제까지 본인을 혼혈로 묶을 것인가 장난은 그만쳤으면 좋겠다라며 분노하였다. 더군다나 포인트 가드 포지션 특성상 팀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팀과 감독에 적응하기 더욱 어려운것도 사실이고 그런 이야기 또한 인터뷰에서 하였다.관련기사 그리고 KT에 새로 부임한 조동현 감독은 전태풍이 한국형 조직농구에 안맞는 선수라 디스(?)를 하면서 사실상 결별의사를 밝혔고 김태술의 부진과 김민구의 부상으로 위기를 맞게된 친정팀 KCC와 김시래의 군입대로 포인트 가드가 필요한 LG 이 두팀이 영입경쟁에 뛰어들어 두 팀 중 한 팀을 선택하는 입장에 놓였다.
3.2.4 다시 KCC로
그리고 5월 24일, KCC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며, 총액은 5억 4천만원. 다만 본인이 포인트 가드로서 뛰는걸 강력하게 희망했지만 팀에는 김태술이 이미 있어서 이야기가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단순히 1번, 2번 이런식으로 나누는게 아니라 투가드로 뛰면서 맞추겠다고 하였다. 더불어 더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선수들의 체력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좋은면 좋았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고 바로 비시즌에도 팀훈련과 체력훈련을 엄청 시키는게 그 이유. 어느 나라도 그런식으로 체력훈련을 열심히 하는걸 못 봤고 주로 비시즌때는 개인 기술 훈련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기술적으로는 부족한게 많아 한명을 제낄때 온 힘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한 반면 본인은 힘을 다 쓰지 않아도 기술을 이용해 제끼는게 가능하다고 이야기 하였다. 최근 한국 선수들도 개인 스킬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많은 팬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혼혈 선수와 비주류대학 출신 선수를 비하했던 김일두와 어색한 동거를 하게 됐다.
1라운드에서 꽤나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KCC는 6승 3패를 기록 했으나 제법 무리했는지 그리고 유리몸은 숨길 수 없는지 허리와 골반쪽에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김태술이 오면서 포지션이 겹치고 하다보니 이후에는 1라운드 때에 비하면 주춤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태풍의 장기중 하나였던 페네트레이션 이후 킥아웃 해주는 플레이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고 슛감도 많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오리온스 2년차 MK-2인 상황. 심지어 KCC의 새로운 용병인 안드레 에밋은 개인 플레이 성향이 상당히 강한 선수이며 김태술 역시 볼을 가지고 하는 포인트 가드 인지라 더욱 그런면이 나타난다. 추승균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다가 결국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하고 나갔다. 또 부상
전자랜드전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으나 다시 폼을 어느정도 회복을 했고, 완전히 리그에 적응한 안드레 에밋을 보조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 전주 KCC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MVP까지 거론이 되고있긴 하지만 기록 자체는 14-15 시즌에 비해서도 많이 하락했고, 양동근이 13점이 넘는 평균 득점에 어시스트 1위까지 하면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양동근에 1표차로 밀리면서 아쉽게도 MVP 획득에 실패했고, 베스트 5에도 들지 못했다. 그래도 MVP에 대하여 양동근은 아주 좋은 선수이며, 24시간 농구만 생각하는 훌륭한 선수라고 전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KGC와의 4강전에서 4경기 13.8점 4.3리바운드 4.0도움을 기록하면서 에밋과, 하승진을 잘 보조했다. 특히나 KCC가 패배한 3차전에서는 그야말로 KGC 포인트가드진을 압도하며 팀을 연장까지 이끌기도 했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조 잭슨을 상대로 좋은 플레이+트래쉬 토크로 활약 하면서 팀의 역전승을 도왔다. 다만 경기 후 매우 힘들어질 거 같다면서 오리온의 전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는데, 2차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3쿼터 턴오버 이후 김태술과 교체되어 나오지 못했고 팀은 28점차로 대패하였다. 3차전에는 오랜시간 출전을 했으나, 에이스 에밋이나 센터 하승진이 그냥 막히면서 게임이 터졌고 본인도 10득점을 했으나 5점은 4쿼터 가비지 타임에 나온 득점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체력 문제도 겹쳐 매치업 상대인 조 잭슨에게 속절없이 뚫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차전에서 1쿼터에 활약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 뒤로는 체력 문제인지 조 잭슨에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5차전에서 홈경기에서는 20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에밋(38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마지막 6차전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를 빠르게 보이면서 6점 3도움에 그쳤고(야투 시도 자체가 많이 없었다) KCC는 120대 86이라는 큰 점수차이로 패배했다. 평균 기록은 12.2점 3.3리바운드 2.8도움에 야투 성공률 49.02%, 3점슛 성공률 52.63%.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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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풍의 포인트가드로서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야말로 공격형 포인트가드. 처음 KCC에 입단했을때는 그야말로 KBL판 아이버슨을 연상시킬정도로 화려한 드리블과 득점력을 자랑했지만 반대로 패스나 리딩에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11]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패스의 빈도가 늘어났고 공격과 패스의 조화가 절정에 달했던게 2009-10시즌 플레이오프, 2010-11시즌 부상 당하기 전, 2011-12시즌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스에 가면서 한국형 패스 위주의 포인트가드로 거의 바뀌었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포인트가드보단 슈팅가드로서 뛰는데 김동욱, 이현민과 함께 뛸 때면 그야말로 병풍신세가 되기도 한다.이제 탈출
드리블 능력은 여전하지만 KBL식 가드로 점점 변하고 나이도 먹으면서 처음 보여줬던 폭발적인 플레이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명 정도는 혼자서 제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서 다른 KBL 가드들이 드리블도 제대로 못치는 상황이 오자 처음 폭발력있던 스타일이 다시 재평가 받는 중이며 문태종 이후의 국가대표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지만...[12]
한 마디로 따지면 처음 전태풍과는 달리 2016년 기준의 전태풍은 상당히 애매하고 계륵같은 스타일의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본래의 유니크함도 KBL 처럼 플레이 하길 바라는 풍토 때문에 사라진지 오래고, 그렇다고 KBL에서 가장 바라는 퓨터 포인트 가드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유재학 감독과 함께 본인의 강점을 살려서 MVP를 여러번 휩쓴 양동근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
4.1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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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풍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라 하면 역시 드리블 능력. 어린 시절부터 연습을 해온터라 드리블 스킬이 국내선수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난 수준. 길거리 농구에서나 나올법한 기술들을 실제 경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13]
사실 드리블에 가려서 그렇지 전태풍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바로 슈팅이다.[14] 조지아 공대 시절 기록을 봐도 눈에 띄는 점은 바로 3점슛 성공률과 그 갯수였으며, 현대 농구에서 가드가 가장 갖춰야 할 점이 슈팅이란걸 감안하면 정말 큰 장점이 아닐수 없다.
패스 능력역시 수준급이며, 시야역시 뛰어난 편이다. 특히나 수비를 개인능력으로 찢은 뒤 패스를 빼주는 능력이 상당히 좋다. 더불어 키는 178cm로 가드로서도 작은키에 속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여 피지컬이 1번 포지션에서 탑 수준이고 스피드 역시 상당히 빠르다.[15]
즉 개인능력만 보면 KBL 포인트가드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기분파답게 한번 분위기를 타면 1대1로는 막을 선수가 없다. 젊었던 시절
4.2 단점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한 선수인데 가장 단점으로 지적되는 건 바로 수비이다. 오펜스에 비해 수비력은 상당히 떨어지는편. 1대1 대인방어는 좋은편이지만 지역방어에서 약점을 드러내 3점슛을 얻어맞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또 포인트가드로서 감정컨트롤이 서툰편에다가 기분파인데 잘될때는 기분이 좋은 반면 상대에게 좀 심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 무리하는 감이 있고 그러다가 좀 말린다 싶으면 흥분하면서 게임을 던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에 벤치에서 컨트롤을 해줘야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강한 승부욕에다 분위기를 타는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전역귀이다.[16]
가장 커다란 단점은 바로 부상. 피지컬은 좋지만 부상을 자주 당하는 선수 중 하나이다. 부상이 선수의 생명을 갉아먹고, 전성기를 짧아지게 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다.[17] 첫시즌에서는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두번째 시즌에서는 허벅지 근육파열,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세번째 시즌에서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결정적인 순간에 거의 나오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바라봤다. 게다가 왼쪽 발뒷꿈치 하글런디시병까지 걸리면서 완전한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2014-15 시즌에도 무릎 부상으로 몇경기 이탈했다가 올스타전 이후 복귀하자마자 허리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부상병동
2015-16 시즌에는 레이업 후 착지하던 도중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했다. 2016년 프로 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1쿼터에 상무 성재준과 부딪히면서 코뼈가 또 골절되었다.
5 기타
- 2015-16시즌이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스타일 농구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매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 프리하게 놔뒀다고 알려져있던 허재 감독마저 플로터를 쏘지 못하게 했고[18] 드리블 스킬 역시도 자제하고 패스를 돌리라고 주문을 했고 속공 상황에서 3점슛을 쏘는 건 당연히 반대를 했다.. 매일 그런 소리를 듣다보니 본인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고, 한국 스타일의 농구로 적응을 하면서 본래 스타일을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반대로 추승균 감독은 왜 그때 스타일로 하지 못하냐 라고 이야기 했고, 이미 7년동안 한국 스타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쉽지 않을거다 라고 하고, 다시 그 리듬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훈련할 것이다 라고 밝혔다. 은퇴 후에는 KCC에서 코치를 하거나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싶다고 했다. 인터뷰에서도 스킬 트레이닝 열풍은 좋은 현상이라 이야기 했지만 최대한 어렸을 때 해야 실력이 확 는다 라고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기술을 익히는 걸 강조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단순히 국대 나가서 부진하고 기술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건 꼭 그 선수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전태풍 마저도 저런식으로 못하게 제약을 걸었는데 다른 국내선수들은 더 많은 제약을 걸었음은 안봐도 비디오이다. 마지막으로 드리블에 대해 강조하며 드리블 연습 방법 영상을 촬영했다.
- 키는 작지만 점프력이 좋아 덩크슛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동부전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올스타전에서도 실패했다. 본인 말로는 늙어서 점프력이 떨어졌다고... 그런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덩크하는 영상을 올렸다. 사실 전태풍의 전성기 시절 점프력은 36.5인치였고 윙스팬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가정해도 그정도 점프력이면 여유있게 덩크가 가능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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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액션을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워낙 정면 승부를 좋아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 성격이 이유인듯 하다. 그런데 나이를 좀 더 먹고 액션이 과장되는게 보여지긴 한다.한국 선수
- 국가대표 멤버들과 유재학 감독이 회식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자 바로 "애들이 저한테 형이라고 안 불러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재학 감독은 "전태풍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놈은 다 형이라고 부르고 존댓말 해"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사인도 잘 해준다고 한다.[19]
- 어린 시절 인종차별은 백인과 흑인 양쪽 모두에게서 받은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본인에게 상처가 된 것은, 본인이 충분히 자란 후로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당했을 때라고 한다.
- 트래쉬 토크를 상당히 즐겨하는 선수인데, 그 수위는 케빈 가넷이나 게리 페이튼같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정도는 아닌 약한 편. 주로 넌 나에게 안된다, 안 들어간다 등 이정도이다. 다만 한국 농구판 자체가 선후배 관계가 심해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1차전 직후 김민구를 옹호하는듯한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코트 위는 전쟁터"라는 발언 자체가 틀린건 아니지만[22] 그 대상이 같은 혼혈 선수인 문태종이였고[23], 음주운전으로 무한 안티를 양성했던 김민구였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 한국말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영어의 속어 표현을 직역하는 경우가 있다. 김민구는 간이 크다 배짱 있다 라고 하고 싶었던 말을 "김민구는 불X이 크다" 라고 이야기 했다. He's got some balls 라는 표현을 직역 한 것. 다만 그 당시 분위기가 살벌해서 현장 사람들이 웃겨도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 ↑ KBL 한정이다. 그 전에는 여러 유럽 리그에서 활약했다.
- ↑ 기분이 좋을땐 캐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역캐리 하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상 한국에서 크게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기 때문에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
- ↑ NCAA를 보면 수준급 용병 수준의 커리어를 보냈다. 실제 파울아웃에서 서정환, 조현일 두 기자도 2015-16 수준이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가드 조 잭슨과의 비교에서도 전태풍이 좀 더 낫다고 했을정도.
- ↑ 이 당시 전태풍의 점프력은 36.5인치로 약 92.7cm를 뛰었다.
- ↑ 그런데 의외로 전태풍을 가장 괴롭힌 선수는 SK의 변현수 선수로 실제로 멀쩡하고 빨랐던 2009-10 시즌에 호되게 당한적이 있다. 실제로 변현수를 상대로 평균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 ↑ 사실 그건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게, 오리온스로 이적했을 당시 전태풍은 한국나이로 34세로, 좀 이르지만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 ↑ 그러나 조성민과 합작 34점을 해줬고 상대 김시래, 양우섭 조합은 7점을 넣었다.
- ↑ 전창진 감독이 밝힌 바로는 기술자가 있다면 지나친 패턴공격은 별로라고 밝혔으며 패턴들은 3라운드만 되어도 다른팀들이 다 알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 ↑ 사실 전태풍의 부진 자체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의 쫒긴 볼들이 전태풍에게 폭탄돌리기 식으로 갔고 전태풍 본인도 차바위의 거친 수비에 파울이 불리지 않아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퍼스트 용병인 마커스 루이스는 한지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KCC전에선 0득점을 하였다. 찰스 로드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타팀 용병들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 ↑ 속공시 공격숫자가 더 많은데도 3점슛을 던지는 플레이를 하고 욕을 먹은적도 있다.
- ↑ 일단 전태풍도 상당히 노장에 속한다. 80년생이며 15년 시즌이 되면 한국 나이로 36살이다. 지금 노인소리 듣는 양동근보다는 오히려 1살 형이며 김주성보다는 1살 동생이다.
- ↑ 실전에서 그런 스킬들을 써먹으려면 기본기가 거의 완벽해야 한다.
- ↑ 2011-12시즌에는 평균득점 15점에 야투율 50%가 넘었다.
- ↑ 나이가 들어서 많이 죽긴 했지만 강약 조절을 잘 하는 편.
- ↑ 이부분에서 추일승과 허재의 차이가 나오는데 추일승은 조용히 불러들인 다음 계속해서 쓰질 않는 반면 허재는 레이저를 쏘고 다시 코트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이런 점이 결정적으로 KBL에서 전태풍이 저평가 받는 큰 이유이며 전태풍보다 양동근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다. 물론 KBL 한정이지만 전태풍이 현재 뛰는 리그는 KBL이라는걸 명심해야 한다.
- ↑ 엄청난 운동능력을 지녔던 데릭 로즈가 대표적이며, 다재다능 했던 크리스 웨버 역시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NBA까지 갈 필요도 없이 KBL에서는 오세근이 연이은 부상으로 신인 시절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렸다.
- ↑ 손대범 편집장도 파울아웃에서 이야기 했지만 아직도 한국 농구 원로들은 플로터 같은 기술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했다. 반대로 본토에서는 플로터는 기본기이며 꼭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 "형 화이팅~~!"이라고 하자 "응 고마워"라고 대답....
근데 반말인데 기분 안 나쁘고 뭔가 친근 - ↑ 그렇지만 최근 너무 부진하면서 까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 ↑ 한국말을 어눌하게 해서 아주 순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영어를 쓸 때 보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파이터 기질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기도 하였고 코트 위에서도 상대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 ↑ 지금은 은퇴하고 연예 활동을 하는 서장훈이 많이 했던 발언이다.
- ↑ 전태풍은 혼혈 차별에 대해 상당히 반대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