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황성인(黃聖人) |
생년월일 | 1976년 6월 7일 |
국적 | 한국 |
출신학교 | 대전고 - 연세대학교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신체 사이즈 | 180Cm, 81Kg |
프로입단 | 1998년 드래프트 3번(서울 SK 나이츠) |
소속팀 | 청주/서울 SK 나이츠(1999~2004) 창원 LG 세이커스 (2004~2006)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엘리펀츠(2006~2010) 서울 SK 나이츠(2011~2012) |
1 소개
한국의 농구선수이다. 이상민, 신기성, 주희정, 강동희등 뛰어난 기량을 뽐내던 포인트가드들과 함께하던 퓨어 포인트가드중 한명이다.
2 선수시절
대전고 출신 농구선수이며 조동현, 조상현과 함께 대전고 3인방이라고 불리며 활약했다. 이후 이들 조씨 쌍둥이 형제와 함께 나란히 연세대학교에 입학하고 활약하게 된다. 이후 서장훈, 김훈, 문경은, 우지원, 김택훈, 구본근등과 함께 농구대잔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황성인은 이중 농구대잔치 전성기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라고 볼수 있다. 이후 황성인은 서울 SK 나이츠에 전체 3순위로 입단하게 된다.
1999-2000시즌은 좋은 신인들이 두각을 드러냈는데, 이를 테면 골드뱅크의 주포로 활약하던 조상현, 경희대의 전성기를 이끌고 SBS에 입단해 신인왕을 수상한 김성철, 오리온스의 주포로 활약하던 육각슈터 조우현, 황성인과 경합을 벌이던 삼성의 가드로 떠오르던 강혁, 황성인은 이에 뒤지지 않고 가드난을 겪던 서울 SK 나이츠에서 데뷔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 팀이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헌했다. 이후 바로 상무에 입단한뒤, 군 제대 시즌인 2002-2003시즌에는 김승현을 제치고 어시스트와 스틸 1위를 차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전성기였던 SK시절에는 포인트 가드로서의 안정감 있는 경기운영능력과 넓은 시야와 패싱능력, 그리고 팀이 공격이 안풀릴때 여러가지 공격을 시도하며 성공시켜 팀을 재조율 할수 있는 좋은 공격능력을 갖춘 가드였다.
전역 이후에는 팀의 포인트가드역할을 수행하던 임재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2004-2005시즌을 앞두고 LG의 가드였던 전형수와 트레이드 된다. SK에서는 임재현을 믿고 황성인을 보냈는데 이는 임재현이 황성인보다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어느정도 검증이 된 포인트가드 였기 때문에 연봉이 비싼 황성인을 대신할수 있다 생각했고, 당시 공격능력이 뛰어난 전형수를 영입함으로서 팀을 재정비 하고자 했다. LG는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전형수나 강동희등 기량이 쇠퇴하거나 어딘가 부족한 선수들보다 더 팀을 잘 이끌어줄수 있는 포인트가드인 황성인의 영입을 통해서 팀을 강화하고자 했던것이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결국 양쪽에 다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는데, 공격능력이 뛰어났던 전형수는 SK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폭발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별 활약을 못했고 이후 팀을 떠돌아 다니는 저니맨으로 전락했고, 황성인 역시 LG로 트레이드 된 당해에는 야투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2시즌동안 팀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동안 자신도 자신감을 잃으면서 야투와패싱 모두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LG 시절에는 SK시절에 비해 퇴보했다는 좋지않은 평가를 받은 후, 최희암감독의 시간차 트레이드에 묶여서 전자랜드의 박지현, 박훈근, 임효성, 박규현과 1:4로 트레이드되어 전자랜드로 이적하게된다.
전자랜드 시절에는 연세대 시절 은사였던 최희암감독 아래서 뛰면서 신임을 받으며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느린 공격전개와 좁아진 시야등으로 인해서 황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도 얻고, 떨어진 체력탓에 수비에서도 주희정이나 양동근, 김승현같은 빠른 포인트가드들의 공격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끈기있는 수비와 관록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은것은 아니었다. 특히 2008-2009 시즌에는 정영삼과 정병국이라는 공격능력이 있지만 부족한 경기조율 능력을 메꾸며 좋은 활약을 펼친다. 이 때에는 공격전개능력과 함께 특유의 스틸능력도 살아나며 개그랜드로 전락한 전자랜드의 플레이오프행에 공헌했다. 이후 박성진이 데뷔하며 주전 포인트가드자리를 내주고 식스맨으로 뛰게된다.
2010-2011시즌을 앞두고 가드의 부족함을 느낀 서울 SK 나이츠에 의해 이병석과 1:1 트레이드 되며 귀환한다. 비록 선수시절 말년에는 큰 활약도 없었고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했지만, 그래도 팀의 고참 가드로 주희정과 함께 리딩을 어느정도 도맡았다.
결국 2011-2012 시즌 이후 은퇴를 선택하게 된다. 이후 SK나이츠의 전력분석원으로 활약한다. 2012-2013시즌에는 비록 선수로서는 이루지 못했지만 전력분석원으로서 정규시즌 우승을 경험했다.
3 지도자 시절
모교인 연세대학교의 코치를 거쳐 현재는 양정고등학교 코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