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황진원 |
생년월일 | 1978년 9월 24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경상남도 마산시(現 창원시) |
출신학교 | 마산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
포지션 | 슈팅 가드 / 포인트 가드 |
신체 사이즈 | 188Cm, 84Kg |
프로입단 | 2001년 드래프트 5번(서울 삼성 썬더스) |
소속팀 | 서울 삼성 썬더스(2001, 2012~2014.5.15) 창원 LG 세이커스(2001) 여수 코리아텐더/부산 KTF 매직윙스(2001~2003, 2005~2007) 서울 SK 나이츠(2003~2005) 안양 KT&G 카이츠(2007~2010) 원주 동부 프로미(2010~2012)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요한) |
2002~2003 한국프로농구 기량 발전상 | |||||
조동현(인천 SK 빅스) | → | 황진원(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 → | 표명일(전주 KCC 이지스) |
2003~2004 한국프로농구 모범선수상 | |||||
허재(원주 TG삼보 엑서스) | → | 황진원(서울 SK 나이츠) | → | 강혁(서울 삼성 썬더스) |
1 소개
전직 농구 선수. 첫 팀이자 마지막 팀이었던 서울 삼성 썬더스 포함, 선수 시절 총 여섯 개의 팀에서 뛰어본 KBL의 대표적인 저니맨.
2 선수 시절
중앙대학교 시절 송영진, 김주성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중앙대학교의 전성시대를 일궜던 주역이었다. 하지만 더 높은 순번에서 뽑힐 것이라는 예측 대신 예상보다는 약간 낮은 전체 5번에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되어 입단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단한 후, 시즌 개막 직전에 창원 LG 세이커스의 이정래와 맞트레이드되면서 팀을 옮기게 되었다.[2]
데뷔 시즌을 LG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하다가 그 해 12월 12일 외국인 선수 두 명을 모두 바꾸는 대형 트레이드에 관련되어 여수 코리아텐더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 때의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코리아텐더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 코리아텐더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는데, 전형수를 현금 트레이드시킬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때, 팀의 에이스가 된 것이 바로 황진원이었다. 2002-03 시즌 돌풍을 일으키면서 팀 역사상 최초의 6강 PO 진출 및 4강 진출에 성공한 것. 황진원 자신은 이 해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며, 팀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해 평균 득점은 14.4점으로 개인 커리어 최다.
이 때 맞은 전성기는 이듬해 팀이 KTF로 인수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런데 2002-03 시즌 코리아텐더의 돌풍을 이끈 이상윤 감독이 서울 SK 나이츠의 사령탑이 되면서, 황진원을 적극적으로 원해 결국 리온 트리밍햄과 함께 손규완, 아비 스토리와의 2:2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SK는 농구계의 LG 트윈스였다(...) 이적 첫 시즌에는 괜찮았지만, 두 번째 해에 부상에 워낙 좋은 선수들이 겹치면서 롤이 줄어든 것이다. 당장 임재현, 전형수와 롤이 겹쳤고, 포워드에는 조상현과 전희철이 있던 시기였다. 이러면서 개인 성적은 반토막났다.
SK에서 어려움을 겪던 그를 구원한 것은 트레이드였다. 방성윤을 영입하려던 SK는 3:3 트레이드로 방성윤의 지명권을 사는 과정에서 황진원을 다시 KTF로 보냈다. 이 때 KTF는 조상현과 이한권을 같이 얻었고, SK는 방성윤, 정락영, 김기만을 얻었다. KTF에서는 다시 자신감을 찾아 준수한 실력의 가드로서의 명성을 회복했다. 주로 식스맨으로 나오며 팀의 활력을 불어넣는 활약. 덕분에 2006-07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아쉬운 준우승 이후, 우승에 도전하려고 했던 KTF는 KT&G의 포워드 양희승을 영입하기 위해 1:2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그 속에는 황진원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KTF의 패착이 되는데, 가드진의 깊이가 얇아지면서 KTF는 고생하기에 이르렀고, 반대로 KT&G는 주희정을 보좌할 가드를 얻었다.
하지만 KT&G는 리빌딩에 들어갔고, 결국 황진원은 다시 트레이드되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 주전 가드인 이광재가 군에 입대한 원주 동부 프로미가 그를 눈여겨 봤고, 결국 유망주 센터인 김명훈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원래는 맞임대였지만, 리빌딩의 성공으로 굳이 황진원이 필요가 없어진 KT&G가 그냥 황진원을 동부에 주면서 샐러리를 줄이는 목적으로 썼다.
잦은 트레이드를 볼 때, 저니맨임은 분명하다. 이는 그가 보조 리딩에도 능하고, 돌파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가드로서 슈팅력, 특히 외곽슛이 아주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보인다. 더군다나 돌파는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약해지는 추세.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폭발력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인트 가드로서 팀의 공격을 조율하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닌, 한 마디로 좀 어정쩡한 위치다. 그래서 팀의 빈 자리를 메워주는 데는 능하지만, 막상 주전으로 쓰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이 보였고, 이 점이 그를 저니맨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그러나 부족한 선수층을 가진 KBL의 특성으로 볼 때, 황진원 정도 되는 가드가 흔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사실이다. 저니맨이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모든 팀이 그를 원한다는 뜻도 가능하다. 수비 5걸에 두 차례 선정되었을 정도로 수비력이 괜찮은 편이라, 가드 포지션에서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선수로서 활약이 가능한 것.
원주 동부에서 생애 첫 우승반지를 노렸고, 실제로 2011-12 시즌 정규시즌 압도적인 성적으로 동부가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1-12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원주 동부가 충격적인 업셋을 당하면서 우승 반지와는 결국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1-12 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는데 원 소속팀 동부와 재계약 후, 트레이드되는 방식으로 서울 삼성 썬더스로 이적했다. 돌고 돌아 처음 팀으로의 귀환.
그리고 2014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