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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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路. 기원전 542년~기원전 480년

일찍이 누군가 증자의 아들인 증서曾西에게 물었다.

"당신과 자로를 비교한다면 누가 더 현명하겠습니까?"
증서가 황공하여 어찌할 줄 모르며 말하였다.
"그분은 제 아버지께서도 경외하셨던 분입니다."

중국 춘추시대 나라의 정치가이자 무인이다. 공자의 핵심 제자 공문십철중의 한사람. 본명은 중유(仲由)로, 자로는 이다. 계로(季路)라고도 부른다. 공자와는 9살 차이.

자로는 공자(孔子)의 핵심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공자의 여행 동안 고난을 함께 하였다. 주로 공자의 호위를 자처하며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공자를 여러번 지켜내기도 했다. 자공, 안연과 함께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자공이 지(智), 안연이 인(仁)으로 유명하듯 자로는 보통 용(勇)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꼽힌다.

2 공자와 만나다

본래 알아주는 양아치 깡패 출신이었으며, 도 셌다. 얼마나 심한 양아치였는지, 그 때까지 공자를 욕 하던 사람들이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까 공자님께서 가라사대 "자로랑 같이 다닌 뒤로 내 험담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자로: 스승님, 저만 믿으세요.

어느날, 공자가 강론하고 있는 현장에 뛰어들어 공자에게 행패를 부리려고 했으나 공자에게 감화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2]

감화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대개 일대일 대결을 벌였는데 공자가 예상외로 자로를 압도했다거나, 버티면서 필부의 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지 설명해 주고 더 큰 것을 배우라며 끌어들였다는 이야기다. 힘이 장사라며 공자도 못 이기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자부터가 키가 당시로서는 거구인 170cm 넘는 체구에다 아버지는 싸움깨나 한다는 무사였다. 맨손으로 관문을 부쉈다는 언급도 있으니. 아예 일기토 부분이 빠진 이야기도 있다.

그는 공자가 문란한 진후 남자(남'부인')와 회견하였을 때 분개하였으며, 공자는 '하늘이 보고 있느니라' 란 말로 자신의 결백을 두 번이나 맹세해야 했다. 또한 공자가 두 번이나 읍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섬기려고 생각하였을 때도 항의하였다.

자로는 제자라기보다 친구가 아니었나 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으나, 엄연히 자로가 공자를 경어로 부르는 게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공자의 친구 설이 맞다고 단정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단, 공자제자중에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는건 자로뿐이므로 그와 공자 간의 거리가 다른 제자보다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사실 가장 많이 깨진 것도 자로

3 공자의 평가

자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며 논어의 안회편에는 그는 약속을 다음날까지 미루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맹자에 의하면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결점을 지적하면 기뻐하였고 일단 배우면 깨우치지 못할까 두려워 했다고한다. 그는 용맹스러웠고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예의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의 성격은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자의 사랑을 받았다.

'자로는 가르침을 듣고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는데 또 새로운 가르침을 들을까 겁냈다(子路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할 정도로 열심인 제자이기도 했다. 공자도 이런 혈기왕성하지만 한번 가르치면 충실히 따르는 자로를 몹시 갈구면서도 아꼈다.츤데레?

공자 문하에서는 자공과 함께 제후들의 스카웃 제의가 많이 들어 온 사람이지만 정작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자로가 대신감이냐고 묻자 공자는 "아니, 그건 무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공자가 원하는 큰 그릇은 아니었다.

논어를 보면 자로는 혼나는 게 일이다. 스승을 위한다고 예법에 어긋나게 높이다 까이질 않나...심지어 칭찬 듣고 좋아하다고 혼나기도 했는데, 어느 날 스승이 자신의 용(勇)을 칭찬하니까 좋아서 자신의 신조로 삼고자 그 말씀을 받아적었는데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라는 면박을 들었다.

공자한테 하도 깨져서 나중에 온 어린 제자들까지 무시하자 공자가 "방안에 들일 정도는 아니라도 마루에 앉을 정도는 된다."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만,,,며 감싸기도 한다. 사실상 '너의 선배고 너보다 나은 놈이니까 함부로 하지마라.' 란 의미다.

그래도 공자가 '세상이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은거나 할까. 그 때가 되면 나를 따를 이는 유(자로)가 적합하겠지. 유는 나보다도 더 용기있는 인물이니. 다만 사리분별을 못해서 그렇지.(...) ' 라고 말할 정도니 재주는 특출나지 못해도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는 사실은 맞는 말 같다. 이 말을 듣고 자기를 스승이 가장 아낀다고 좋아 하는 걸 보고는 에구 저 단순한 놈 이라며 까서 자로가 의기소침해진다.

그 외에도 공자의 갈굼을 받는 경우가 잦다.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자 자기도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자로가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3]라고 물었는데, 이 때 공자의 대답은 "무모한 사람과는 함께 가지 않겠다"였다. 쉽게 말해서 "너 임마 너처럼 무모한 놈이랑은 같이 안 갈 거야"라고 면박을 들었다는 말(…).

그 때문인지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제일 인기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4 죽음

후에, 에서 벼슬을 하다가 위출공의 아비 괴외와 자신의 주공 공회의 반란으로 출공이 쫓겨나자 그 소식을 듣고 성으로 갔다. 가는 길에 동문인 자고가 말렸으나 듣지 않고 "그 녹을 먹은 자 그 난을 피해서는 안 되는 법"이라며 성으로 가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주군 공회를 죽일 것을 괴외에게 요구. 주군을 바꾸어 섬기는 이런 자는 쓰지말고 잡아 죽이자고 한다.

괴외가 거부하자 그들이 올라있던 대를 태우려다 장공의 명령을 받은 무사들에게 죽는다. 죽을 때 칼에 맞아 머리에 쓴 갓이 삐뚤어지자 "보라! 군자는 죽더라도 갓은 벗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갓을 제대로 고쳐쓴 뒤 죽고 만다.

공자는 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자로의 강직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예견했다고 한다. "아이고 자로가 죽었겠구나" 라고 했다고 한다. 이전에 자로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고 말았다. 자로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때 공자가 했던 말은 "하늘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끊어 버리는 구나..."라고 2번이나 외쳤다. 공자가 제자의 죽음에 절규했던 이야기는 사서에 딱 2번 나온다. 안회가 절명했을때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라고 했던 것과 자로의 이것. 그가 죽은 뒤에는 "자로가 내 제자가 된 뒤에, 나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들을 수가 없었는데..."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경애하던 스승에 대한 비난을 폭력을 이용해서라도 막았던 그의 죽음에 대한 탄식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 젓갈로 만들어져 공자에게 보내져, 후대 2천년 뒤까지 이어질 공자식인설 떡밥이 되었다.(…) 그 시대에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건만. 물론 공자는 너무 심한 충격을 받아 집안의 젓갈들을 모두 다 내던져 버리고 멀쩡한 젓갈만 봐도 저 일을 생각하며 입에 대질 못하다가, 결국 자로가 죽은 7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5 대중매체에서

"제자백가를 격파하라!"라는 책에서는 라이벌을 없애기 위해 유학자들을 습격한 인물들을 검 하나로 다 베어넘기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단역(...)

80년대에 한국, 대만, 일본이 합작으로 제작한 공자전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공자 다음가는[4] 덩치를 자랑하며 강직한 성품과 개그 캐릭터의 면모를 뽐낸다. 죽을 때의 모습도 박력있게 쌍검을 들고 자객들 상대로 무쌍을 찍다가 창에 꿰뚫린 상태로 그냥 갓도 아닌 투구를 똑바로 쓰고 죽는 걸로 각색되었다. 첫 등장신에서도 갑옷과 투구를 쓰고 등장했으며, 다른 인물들이 위인전 찍고 있을 때 혼자 무협지 찍는 인물이다.

네이버 웹툰 덴마의 등장인물인 공자의 이름이 밝혀진 후, 지로의 이름에 획 하나만 늘면 공자의 애제자 자로가 되는 것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 자로의 집안은 본시 가난하였으므로 자로는 어려서부터 나물밥만 먹으며 자랐는데, 그럼에도 그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후일 장성하여 출가한 뒤에 고향집에서 백 리나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데다가 그 본인조차 끼니 거르기를 자주하는 형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나 깨나 가난한 부모의 끼니 걱정만을 하였으니, 때문에 어쩌다 쌀을 구하기만 하면 쌀포대를 들쳐업고 백 리의 길을 달려가 부모를 봉양하였다 한다. 우키요에 화가 츠키오카 요시토시의 작품인 이 그림은 그것을 묘사한 것.
  2. 오늘날 무수히 나오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 운명이 바뀐 건달' 캐릭터들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자로가 공자의 3대 제자로 추앙받는 걸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일생뿐 아니라 자로에 대한 만세의 평가를 바꾼 만남인 셈이다.
  3. 술이편
  4. 해당 애니에서는 공자의 키가 현대 기준으로 190cm대라는 설을 채택해버려서, 풍채가 정말 크고 아름답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