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電報
우체국 등에서 편지나 소포 대신에 간략하게 문서를 전달하는 통신수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KT가 서비스중이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사용된 전보송달지.
이렇게 전보송달지를 작성하면 우체국 간에 전신기나 전화를 통해 연락을 했고 수신한 우체국에서 전보지를 작성해서 받을 사람에게 보내거나 받을 사람이 우체국으로 와서 수령했다. 모스 부호가 있던 시절부터 사용된 유서 깊은 통신수단으로, 전화 같은 것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간단한 전기선 정도만 가설되어 있던 시대에는 꽤나 유용했다. 특히 주로 긴급한 연락을 위해 사용했는데, 편지를 띄우면 많은 내용을 정확히 적을 수 있지만 인편, 마편 등으로 전달하느라 시간이 아무리 빨라도 같은 동네가 아닌 이상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전보는 전신주만 가설되어 있으면 몇 시간에서 하루 정도면 속보 배달이 가능했던 것.(수신측 전보국에서 전보용지를 들고 수신자에게 배달해주기까지의 시간) 다만 원시적인 전기통신수단의 응용이다 보니 긴 메시지는 전하기 힘들어서 최대한 짧은 내용으로 주고받았다.(글자당 하나씩 요금이 매겨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체신부가 관장하여 각 우체국에서 전보 접수를 받았다. 1965년 기준 시외전보는 기본 10자에 50원을 받았다. 삼양식품에서 라면 처음 만들 때 한 봉지가 10원이었으니, 어마어마하게 비싼 셈. 그마저도 기본 10자라, 한 글자라도 추가되면 추가 요금을 내야했다. 과거 문자가 30자까지 기본요금, 이후 MMS로 전환된 것과 같은 맥락. 그래서 당시에도 말 줄여 쓰는 데 어마어마한 내공을 가졌다고 한다.
주로 병이나 장례 관련 문제, 또는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사용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관혼상제와 관계가 깊었던 연락체계.
현재는 우편이나 전자문서, 휴대폰 등이 발달해 사용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직도 남아있다! 연하장처럼 일부에서 아직도 쓴다. 2009년에 전보를 사용한 사례 그냥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보다는 좀 더 신경을 쓴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선 아직도 전보가 쓰이는 것. 뉴스 등에서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축전"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바로 이 축하 전보를 말한다. 그리고 오덕세계에서는 축전의 의미가 조금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