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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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鄭雲天, 1954년 4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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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새누리당 소속의 단 둘 뿐인[1] 호남지방 국회의원
20대 총선에서 20년만에 당선된 새누리당 전북 국회의원[2]

2 생애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출신으로 익산시남성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행정대학원, 고려대학교 농경제학을 전공한 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내려가 약 30여년을 농부로 보냈다. 그러다 1991년 키위가 농산물 수입 자유화 대상에 포함되어서 큰 타격을 받았는데 이때 국내산 키위를 참다래로 명명하고 "참다래유통사업단"이라는 농민 조직을 결성해 큰 호평을 받았다. 물론 도중에 저장 창고에 불이 나 큰 피해를 보기도 하는 등 고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그의 업적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농업문제의 조언을 해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명박 정부의 초대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러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에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급기야는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해임결의안이 상정되는 등이명박의 총알받이가 되어 파란을 겪다 당해년도 8월 6일 퇴임한다.

이후 2010년 제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전북지사에 출마하여 18.2%의 득표율로 민주노동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수치보다도 훨씬 선전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19대 총선에서는 35.79%를 득표하는 등 선전했고 급기야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형재 후보를 재검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1표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개표 중반까지는 정운천 쪽이 4천표 가까이 앞서나갔는데 중후반부터 최형재 쪽이 급속히 치고나오는 바람에 다들 가슴을 졸였다나 뭐라나.[3] 이렇게 된 것은 개표 후반에 개봉된 사전투표함에서 민주당 표가 대거 나왔기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이렇게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전주시 을 선거구에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돈이 많은 부유층, 상류층들이 많이 살아서 지역에 해준 것도 없이 의석만 차지하는 민주당계 정당의 일당독재 구도를 깨야 한다는 비토 심리도 있었고, 농촌진흥청과 농수산대학 등 농업 관련 공공기관들이 많이 있는 혁신도시 통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농업 전문가인 데다가 전직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던 정운천을 밀어줘서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새누리당 소속의 호남 출신 인사라는 공통점때문인지 이정현과 많이 묶여서 언급되곤 하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정현 쪽은 친박 성향인데 반해 정운천은 비박 성향이고, 정운천이 석패율제[4] 전도사로 유명한 것과는 달리 이정현은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는 등 두 사람의 노선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선거운동 때 새누리나 계파색을 최대한 지우고 지역일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은 같다. 순전히 본인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5][6] 중앙당 지원은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일절 받지 않았다. 만약 새누리색이 강조되면, 범야권의 결집, 단일화로 인해 당선가능성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같지만 실제로도 중앙당에서 지원을 나온 19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게다가 20대 총선 때는 실제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운천 당선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전주에 와서 "전주시민 여러분, 배알 꼴리지도 않습니까!" 드립을 치는 바람에 정운천 당선인이 "아, 낙선이구나." 했다고 한다. 김무성 대표가 이후 사과를 했지만 사과 발표는 대리인이 하는 등 무의미한 사후약방문이었다고. 김무성 대표의 저 드립으로 잃었을 표를 생각하면... 드립이 없었을 경우 초박빙보다야 조금 더 표차를 낼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뭐 결국 당선은 되었다.

다만, 이렇게 커다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의 PK 대약진과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언론에서 크게 다루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안습.

더군다나 광우병 파동 때 자신을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던 조경태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옮겨오면서 둘의 미묘한 관계 또한 흥미거리라고 할 수 있다. 강창성권익현이 주먹다짐까지 한거에 비하면 조용하다. 뭐 권익현은 선배인 강창성에게 뒤지게 얻어쳐맞고 16대총선에 불출마했지만.

초선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같은 SNS 관리도 직접 챙기는 등 시민들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일단 정치인으로써 기본적인 소양은 갖췄다고 할 수 있을 듯.

정운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자.

첫 행보는 나쁘지 않다. 중앙당 지도부에게 호소한 끝에 탄소법과 국민연금공단 일괄 이전을 통과시켰기 때문. 신문기사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과장되게 부풀려서 여러 시민들이 SNS를 통해 항의했지만, 본인 또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인지하고 답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했다.



국정감사회장에서, 대한민국 청년 10만명 정도를 오지에 보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발언 전개도 기가 막힌 수준이다. 한국돈 100만원이 캄포디아 1천만원가치면, 캄보디아 천만원 벌어도 한국서 100만원이니 돌아오지 말고 거기서 살란 이야기다. 실업자 10만명 감소효과 돋네.

의외의 행보가 있는데 대한 닭싸움 협회 회장이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10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북도지사)
한나라당151,064 (18.20%)낙선 (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전주시 완산구 을)새누리당30,406 (35.79%)낙선 (2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전주시 을)새누리당40,982 (37.53%)당선 (1위)
  1. 나머지 한명은 전라남도 순천시 지역구의 이정현.
  2. 전주시에서는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최초
  3. 당시 개표방송을 보면 중간에 당선 유력이 여러 번 떴다가 지워지는 등 대혼전 양상이었다.
  4. 특정 지역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는 제도.
  5. 다만 이것도 뜯어보면 판이하게 다른 것이, 이정현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서 착실하게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온 반면, 정운천은 각종 선거에 출마하여 사람들과 만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거의 맨땅으로 헤딩하는 수준으로 지역일꾼 여론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6. 게다가, 이정현은 박통 주니어 이래로 청와대 특보도 맡는 등 푸시를 많이 받은 반면에 정운천은 그러한 지원도 전무하다시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