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크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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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어러?

1988년 NBA 올해의 경영자상
스탠 카스텐제리 크라우스제리 콜란젤로
1996년 NBA 올해의 경영자상
제리 웨스트제리 크라우스밥 배스

NBA의 전 단장. 1939년생.

NBA 역사상 유일한 비 농구인 프런트.

1 개요

1.1 불스 이전

1939년에 일리노이시카고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에 야구 포수로 활약했고, 브래들리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농구의 '농'자도 모르는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1964년경에 볼티모어 불리츠(현 워싱턴 위저즈)의 스카우터로 근무하며 농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얼 먼로를 영입하는 데 공헌했고, 뒤이어 1967년에는 노스다코타 대학교 출신인 필 잭슨을 지명하자고 주장했는데, 잭슨이 다닌 대학이 듣보잡이라 2~3라운드 정도는 지명될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크라우스는 잭슨을 놓지 않았으나, 불리츠보다 지명 순위가 2계단 앞섰던 뉴욕 닉스의 레드 홀즈먼 감독은 결국 필 잭슨을 지명하여 영입시켰다.[1]

이후 그는 1970년대 내내 LA 레이커스, 피닉스 선즈,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시카고 불스 등지에서 스카우트직을 전전하였는데, 특히 불스 스카우트 시절인 1970년 NBA 드래프트 당시 딕 모타 감독과 마찰을 겪었는데, 당시 딕 모타는 UTEP(텍사스 대학교 엘패소 캠퍼스) 출신인 네이트 아치발드를 지명하길 원했고, 크라우스는 뉴멕시코 주립대학교 출신인 지미 콜린스를 원했는데, 결국 크라우스의 의견이 관철되어 지미 콜린스는 불스에서 뛰게 되었으나, 콜린스는 1972년까지 겨우 612분만을 뛰고 소리없이 사라졌고,[2] 그 댓가로 크라우스는 결국 피닉스 선즈로 떠나야만 했다.(그 중에는 모타 감독의 압력도 한몫 했다.)

이후 1980년대 초경부터 MLB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카우터로 근무하는 와중에 이를 지켜본 제리 레인스도프 구단주는 1985년에 시카고 불스를 매입하면서 동시에 크라우스를 영전하게 된다.

1.2 불스 시절

1985년에 로드 쏜(Rod Thorn) 단장의 후임으로 부임한 크라우스는 1985년에 존 팩슨 영입, 1987년에 스카티 피펜과 호레이스 그랜트를 영입하고 1988년에 뉴욕 닉스로부터 빌 카트라이트를 영입했고, 1989년에는 아이오와 대학교 출신인 BJ 암스트롱 등을 영입하는 등 강팀으로써의 초석을 다졌고, 1990/91 시즌에는 마이클 조던-피펜-그랜트-팩슨-카트라이트 라이업으로 첫 우승을 달성했고, 이후 1992년, 1993년에 첫 3연패를 달성한다.

그러나 1993년에 마이클 조던이 첫번째로 은퇴하고 토니 쿠코치 영입 이후 피펜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잠시 구단이 침체기를 겪다가 또 다시 1996년과 1997, 1998년에 3연패를 달성했지만, 결국 필 잭슨의 재개약 실패로 갈등이 생겨 잭슨은 조던, 피펜과 함께 팀을 떠났다.

이후 불스는 하위권으로 굴러떨어졌고, 결국 1999년에 엘튼 브랜드를 지명하여 리빌딩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2001년에 브랜드를 타이슨 챈들러-에디 커리와 맞바꾸는 실책을 벌이고 2003년에 불스 단장직에서 은퇴한다.

1.3 불스 이후

불스를 떠난 이후 그는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트를 하다가 2005년에 뉴욕 메츠의 스카우트를 거쳐 2010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스카우트로 돌아오다가 2011년부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스카우트 부문 특별고문으로 재직중이다.
  1. 그러나 크라우스는 1987년에야 필 잭슨을 시카고 불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임명함으로써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2. 반면 네이트 아치발드는 전체 19위로 신시내티 로열스에 들어가 14년 동안 NBA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정도로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