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위저즈

NBA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50px애틀랜타 호크스
(Atlanta Hawks)
60px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50px마이애미 히트
(Miami Heat)
70px올랜도 매직
(Orlando Magic)
55px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
200px
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창단1961년
연고지워싱턴 D.C.
컨퍼런스동부 컨퍼런스
디비전사우스이스트
현재 연고지로 이동1973년
구단 연고지 변천시카고 (1961~1963)
볼티모어 (1963~1973)
워싱턴 D.C. (1973~)
구단명 변천시카고 패커스 (1961~1962)
시카고 제퍼스 (1962~1963)
볼티모어 불리츠 (1963~1973)
캐피털 불리츠 (1973~1974)
워싱턴 불리츠 (1974~1997)
워싱턴 위저즈 (1997~)
구단주테드 리언시스 (Ted Leonsis)
단장어니 그룬필드 (Ernie Grunfeld)
감독스캇 브룩스 (Scott Brooks)
파이널 우승
(1회)
1978
컨퍼런스 우승
(4회)
1971, 1975, 1978, 1979
디비전 우승
(7회)
1969, 1971, 1972, 1973, 1974, 1975, 1979
홈구장버라이즌 센터(1997년 건립)
약칭WAS
홈페이지
유니폼
160px
원정얼터네이트

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워싱턴 D.C.. 시카고에서 시작해 볼티모어를 거쳐 워싱턴으로 연고를 이전한 팀이며, 팀명이 잘 바뀌지 않는 미국 프로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팀 명을 무려 4번이나 바꾼 팀이다. 원 팀명은 시카고 패커스. 이것이 시카고 패커스 -> 시카고 제피어스(Chicago Zephyrs) -> 볼티모어 불리츠 -> 워싱턴 불리츠를 거쳐 현재의 팀명인 워싱턴 위저즈라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위저즈[1]는 '마법사들'이라는 뜻이다.

2 역사

1961년에 포장업체인 일리노이 패킹 컴퍼니의 소유주 데이빗 트래거에 의해 시카고를 연고로 하여 '시카고 패커스'라는 이름으로 출범, 이후 1시즌만에 산들바람이라는 뜻의 '제피어스(Zephyr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으나, 흥행이 잘 안된 탓인지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를 이전하고, 팀 명칭도 총알이라는 뜻의 불리츠로 바꾼 뒤,[2] 이듬해인 1964년에는 에이브 폴린이라는 사업가가 인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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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즈의 아버지' 에이브 폴린 전 구단주 (1923~2009)

초창기에는 어떤 신생팀이 다 그렇듯이 망했지만, 1966년에 진 슈(Gene Shue)가 감독으로 취임하고 1968년에 웨스 언셀드를 영입하여 언셀드를 축으로 팀을 잘 만들어 나가면서 영광의 197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만 컨퍼런스 타이틀을 4차례 차지하면서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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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홈 구장인 캐피털 센터 (1973~1997 사용. 워싱턴 캐피털스와 공유했다.)

처음 진출한 1971시즌에는 카림 압둘 자바와 오스카 로버트슨이 버틴 밀워키 벅스에게 0-4 떡실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팀의 미래는 분명 밝았다. 1973년 연고지를 워싱턴으로 옮기고 새 구장인 '캐피털 센터'[3]로 이전함과 동시에 단장에는 밥 페리, 감독에는 보스턴 셀틱스의 레전드 출신 KC 존스를 선임했다.

KC 존스 감독의 지휘 하에 팀 역사상 두 번째로 맞이한 NBA 파이널인 1974-75 시즌에는 압도적인 우세를 점쳤던 예상을 깨고 릭 배리가 이끌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또 다시 0-4로 지면서 파이널 8연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본다.

그러나 절치부심하여 1976년에 시카고 불스 감독이던 딕 모타를 감독직에 앉힌 뒤 웨스 언셀드를 축으로 더욱 팀 전력을 강화시켜 마침내 1977-78 시즌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NBA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우승은 메이저리그 워싱턴 세네터스가 우승한 이후, 36년만에 워싱턴 팀이 우승한 것이라고. 이듬해에도 다시 NBA 파이널에 올랐지만, 이 때는 시애틀에게 복수를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그친다.

그리고 영광의 시대는 끝나고, 그 뒤로는 쭉 암울한 시절의 연속이었다. 1980년에 진 슈 감독이 돌아오긴 했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플레이오프에 가기만 하면 1~2라운드 언저리에서 깨졌고, 그 뒤로는 플옵 진출에 실패한다. 당시 기억나는 인물은 매뉴트 볼 한 명 뿐.

1990년대 들어서 주완 하워드-칼버트 체이니-크리스 웨버-게오르그 뮤레산 라인업으로 팀을 만드는가 싶었지만, 1996-97 시즌에 플옵 진출을 한 것을 빼고는 거의 망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빈발하자, 수도에서 총알을 왜 팀 명칭으로 쓰냐고, 총기 난사를 연상한다는 소리 때문에 공모전을 열어 팀명을 위자즈로 바꿨다. 팀명을 위저즈로 바꾼 1997년에는 새 홈구장인 MCI센터(현 버라이즌 센터)로 이전한다.

한 때, 마이클 조던이 팀의 지분을 사들여서 사장으로 재임했고 [4], 그가 컴백해서 뛰었던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복귀는 별로 하지 않았어야 했던 복귀라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조던의 위저즈가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바로 전 시즌 19승을 거두던 팀이 조던이 뛰던 2년동안 각각 37승을 거두면서 성적이 거의 두배로 뛰었다. 바닥에서 헤메던 팀이 조던 한명의 합류[5] 로 플레이오프에 거의 진출할 뻔한, 동부에서 중간은 가는 팀이 된 것이다. 조던 본인의 명성에 미친 악영향을 떼놓고 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이득을 본 셈. 거기다가 조던의 인기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과 전국방송+매진 행렬을 펼쳤다. 추가로 조던은 이때 베테랑 최소연봉을 받고 뛰었는데, 올스타급 선수를 겨우 연봉 백만달러 주고 2년이나 쓴 셈이다. 보통 올스타급은 천만불 이상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염가봉사[6][7] 어쨌든 조던도 떠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에서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의외로 워싱턴은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원 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강탈하다시피 데려온 2라운드 출신 가드 '에이전트 제로' 길버트 아레나스를 중심으로 앤트완 재미슨, 브랜든 헤이우드, 래리 휴즈로 이어지는 괜찮은 라인업으로 04-05시즌에 플레이오프 2라운드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5-06시즌 캐론 버틀러까지 영입하면서 아레나스 - 버틀러 - 재미슨의 짜임새있는 라인업을 구성했지만, 번번히 PO에서 신흥 리그의 스타로 자리잡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3년 연속 막혀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안습함을 보였고, 08-09시즌에 재계약한 길버트 아레나스와 헤이우드가 부상당하면서 19승 63패로 완전히 망쳤고, 결국 아레나스가 총기 반입으로 인한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팀이 흔들리더니 캐론 버틀러와 브랜든 헤이우드를 댈러스 매버릭스로 보내고, 앤트완 재미슨을 클리블랜드로 보내버리면서 완전히 팀을 엎어버렸다.

그 사이 팀의 아버지같은 존재인 에이브 폴린 구단주는 2009년에 사망했고, 그 이듬해인 2010년에 NHL워싱턴 캐피털스의 구단주이자 AOL 창업주인 테드 레온시스에 인수된 뒤 그해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존 월을 뽑으면서 리빌딩에 나섰지만, 팀 내에 베터랑이 없는 상황에서 주요멤버들이 팀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숭이같은 농구를 하면서 개그 구단이라 조롱받았다. 그러자 또다시 팀을 갈아엎어 저베일 맥기안드레이 블라체닉 영을 보내버리고, 12시즌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브래들리 빌을 뽑아 존 월 - 브래들리 빌 - 트레버 아리자 - 네네 힐라리오 - 에메카 오카포의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팀은 처음 33경기에서 5승 28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이후 24승 25패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시즌을 마감했고, 존 월이 나름대로 시즌동안 발전하면서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3 2013-14 시즌

프리시즌 도중 주전 센터였던 에메카 오카포가 목 디스크로 인한 부상이라는 사태를 맞이하며 시즌 시작 전부터 골밑에서 약점을 보인 채 시즌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위저즈 프론트진은 존 월과 장기계약도 체결한 만큼 올 시즌은 플레이오프에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결국 피닉스 선즈로부터 2014년 1라운드 픽과 오카포를 주면서 수준급 센터 마신 고탓을 영입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네네가 2월에 6주 결장을 하기도 했으나 평균적으로 우수한 활약을 해주고, 베테랑 트레버 아리자가 FA로이드를 접종한건지 평균득점이 5점 가까이 상승했으며 2년차 브레들리 빌도 점차 활발한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전력이 안정화되었다.

결국 2014년에 올스타가 된 월과 밸런스 좋은 멤버들을 앞세워 44승 38패로 동부 5위에 안착, 6년만에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상대는 4번 시드였던 시카고 불스.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불스의 답답한 백코트진보다 네네와 아리자등의 포워드 진이 불스보다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들어간 덕택에 4승 1패로 가볍게 불스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한다. 상대는 애틀랜타 호크스를 간신히 잡고 올라온 동부지구 시드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인디애나는 후반기 들어 경기력이 많이 안좋아진게 눈에 보였으며 애틀란타와의 시리즈에서 정점을 찍었기에 잘하면 컨퍼런스 파이널가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워싱턴도 똑같이 못했다.(…) 원정경기인 1차전과 5차전에서 승리했지만 3차전에서는 KBL급 스코어인 63점밖에 못넣는 등 홈에서는 3번 모두 졸전을 펼친 끝에 2-4로 시리즈를 마쳤다. 존 월은 첫 플레이오프라 그런건지 정규시즌보다 못한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4 2014-15 시즌

2014년 오프시즌에는 고탓을 5년 $60M의 장기계약으로 붙잡았으며 아리자를 휴스턴에 내줬으나 노장 폴 피어스를 영입해서 아리자의 빈자리를 메웠다. 12월까지는 제법 선전하는 듯 했지만 애초에 강팀이라고 부르기엔 미묘한 전력이었고, 46승 36패로 동부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를 스윕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2라운드에서는 애틀란타 호크스와 맞붙는다.

1차전을 먼저 잡았으나 이 경기에서 존 월이 손목 골절을 당해 3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3차전에 폴 피어스의 버저비터가 터지면서 2:2까지 만드는 등 선전했지만 5차전에서는 알 호포드의 결승 득점으로 반대로 경기를 놓치고, 6차전에서 다시 피어스가 동점 버저비터를 넣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시간 초과로 무효처리가 되면서 지난 시즌처럼 세미파이널에서 2:4로 탈락하게 되었다.

5 2015-16 시즌

시즌 초부터 브래들리 빌, 네네 등 여러선수들이 부상당하면서 어려운 시즌을 치뤘고, 네네와 고탓과 험프리스, 블레어의 빅맨진이 생각보다 꽤 부진해 강제적으로 스몰라인업이 동원되고 있다. 경기력이 들쭉날쭉해 전반기에 23승 28패를 기록했다.

이후 시즌중에 마키프 모리스, JJ 힉슨, 마커스 손튼등을 보강에 후반에는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였으나 이미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인디애나와 디트로이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결국 탈락했다.

시즌후 랜디 위트먼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오클라호마의 감독이었던 스캇 브룩스를 5년 3500만 달러에 선임했다. 제한적 FA였던 브래들리 빌과는 5년 1억 3000만 달러의 맥시멈 계약을 체결했다.

6 영구결번

10.얼 먼로 (1967-1971)

11.앨빈 헤이스 (1972-1981)

25.거스 존슨 (1963-1972)

41.웨스 언셀드 (1968-1981)
언더사이즈 빅맨의 대명사. 데뷔시즌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201cm밖에 안되는 키로 엄청난 수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참고로 이당시 리바운드 경쟁자들이 이 양반이라든가 저 양반이라든가... 빌 러셀이야 언셀드보다 딱 5cm더 크니 논외 [8]. 그리고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단장을 역임한 바 있다.

  • 얼 먼로와 거스 존슨은 볼티모어 불리츠 시절에 뛰었던 선수로, 워싱턴 연고이전 전의 스타들이다.

7 2016~2017 선수명단

2016-17 시즌 워싱턴 위저즈 선수단
감독 스캇 브룩스 (Scott Brooks)
코치 돈 뉴먼, 돈 지르던, 로이 로저스, 팻 설리반, 하워드 에이슬리
가드 2.존 월 3.브래들리 빌 33.트레이 버크
포워드 4.다누엘 하우스 5.마키프 모리스 12.켈리 오브레 15.마커스 쏜튼 22.오토 포터 32.다니엘 오체푸 44.앤드류 니콜슨
센터 13.마신 고탓 28.이안 마힌미
가드-포워드 9.셸던 맥클러란 31.토마스 사토란스키
가드-포워드 14.제이슨 스미스
  1. Wizards.
  2. 사실 '불리츠'라는 팀명의 유래는 실제 볼티모어 근처에 탄약 제조 공장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며 진짜 의미는 총알처럼 빠른 농구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수도임에도 도시의 이미지가 워낙에 안 좋았던 까닭에(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막장 이미지였던 동네였다)..
  3. 1993년부터 US에어 아레나로 바뀌다가 1996년에 US 에어웨이 아레나라는 이름을 거쳐 1997년에 MCI센터(현 버라이즌 센터)로 이전한 뒤 2002년에 철거.
  4. 그러나 경영자로서 조던은 별로 평가가 높지 않다. 그가 선택한 전체 1번 픽은 역대 최악의 픽 중 하나라는 콰미 브라운(...) 또 밥캣츠 구단주로서 행사한 첫번째 픽으로 뽑은 아담 모리슨은 그냥저냥 평범한 선수로 있다가 몇년만에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어, 여기서도 별 활약없이(...) 2010년 우승반지를 낀다. 특유의 장발과 수염으로 인한 노안으로 벤치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기는 했다.(...) 2012년에 전체 2픽으로 뽑은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는 데뷔 후 삼년째 평균득점이 한 자리에 그치고 있다. 이 때 6번으로 뽑힌 대미언 릴라드는 올스타에까지 뽑혔고, 9픽으로 뽑힌 안드레 드레먼드는 2014시즌에 두자리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못 뽑은 셈;;;
  5. 조던이 은퇴한 바로 다음 시즌인 03-04시즌에는 성적이 다시 25승으로 12승이나 떨어진다. 심지어 이때 길버트 아레나스가 합류했음에도! 물론 그 다음 시즌에는 앤트완 재미슨을 추가로 영입하는 등 전력보강을 통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6. 일부 팬들의 오해와 달리 이때 조던은 복귀 전에 자기가 갖고 있던 팀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nba는 선수가 구단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7. 강압적인 조던의 존재로 인해 유망주들이 못 컸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던탓을 하기엔 이 선수들이 보여준게 너무 없다. 타이론 루는 01파이널에 아이버슨 막은게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빛난 부분이고 콰미 브라운은 조던이 떠난지 1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즉, 냉정히 말하면 조던탓을 할것도 없이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되는 선수들이었다는 소리. 오히려 조던은 03시즌 초반에는 식스맨을 자처했지만 동료들이 워낙 답이 없기에 주전으로 나선 것이다.
  8. 기존 버전에는 빌 러셀이 언더사이즈라고 적혀 있었는데 러셀은 키가 206~208이며(당시는 신장 측정이 정확하지 않음) 이 정도 키는 60년대 센터치고 작은 키가 아니었다. 당시는 180후반의 슈팅가드나(레이커스의 막강 백코트인 제리 웨스트, 게일 굿리치 등은 188,185에 불과했다) 190대 후반~2미터 초반의 파워포워드들도 많았다. 윌리스 리드 역시 208로 표기되었는데 본인 증언에 따르면 러셀과 키가 똑같았다고. 실제로 러셀과 동년배 센터들은 윌트 챔벌린(216), 월터 듀크스(213) 정도를 제외하면 조니 커(206), 웨인 엠브리(203), 제리 루카스(203), 모리스 스톡스(203)등 전체적으로 러셀과 비슷했으며 그를 신체적으로 압도할만한 선수는 별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