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독일의 붕괴,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적 혼란, 공산주의 세력 확대에 대한 불안 등 매우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세계 대공황에 따른 경제 위기로 부상한 파시즘과 이에 따른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독일의 반발 및 일본의 보상심리.
2 1차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려 경제가 파탄난 것이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독일의 배상금은 크게 두번의 대규모 삭감과 지급중단 협약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서 독일이 전후에 몇번씩 열린 전후처리 국제회의에서 독일 : "빚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 미국 : "그래. 그러면 깎아주지" → 프랑스 등 : "절대 안돼. 네버" → 미국 : "그럼 너네들이 알아서 받든가" → 프랑스 등 : "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깎아줄게" 이 루트로 대략 3~4회 반복해서 빚이 대규모로 삭감되었다는 것. 사실상 배상금의 지급중단이 1932년 로잔 협약에서 중단되기로 결정되기까지 독일의 배상금 지급은 1921년 최종 집계된 배상액의 1/8 수준이었다.
2.1 독일
베르사유 조약 이후 1921년 연합국 배상금 위원회에서 200억 마르크였던 배상금이 1921년에 1320억 마르크로 6배나 증액되었다. 이는 이미 패전으로 경제가 파탄난 독일의 지불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독일이 이를 지불하려 하지 않자 1923년에 프랑스는 정말로 알아서 받아내기 위해 자국 군대를 동원하여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많이 경감되었지만 과중한 배상금인 건 사실이었고, 이를 갚기 위해 화폐를 남발한 결과 금 본위제 독일 마르크였음에도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2.2 이탈리아
그리고 이탈리아도 나름대로 불만이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적군이며 동맹국중 한 나라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오스트리아에 맞설만한 해군력과 끈기로 나름대로 전과를 쌓았고, 오스트리아가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게 된 결정적 계기도 이탈리아 방면의 전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선전했다고 할 수 있으나 잦은 패배로 전과가 무시를 당했으니 이탈리아의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2.3 일본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던 일본[1] 역시 서양 열강들을 보면서 근대화를 배움과 동시에 같이 배운 제국주의를 토대로 주변국을 침략했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국주의식 침략과 공격적인 태도가 아직 남아있던 시대였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었던 것을 발판 삼아 더욱 식민주의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존 강대국으로의 확장도 생각했던 듯 싶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각자 시간을 보낼 동안 미국에서 도스 안(Dawes Plan)이 1924년에 통과되어 독일로 대량의 미국 차관이 들어오고, 그 후 약 5년간은 독일의 경제는 호황을 누렸지만.. 세계 경제가 망했어요. 이후 독일은 혼란에 빠지고, 공산주의자가 득세하기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 틈에 끼어들어 대체로 공산주의자를 때려잡아 보수층에게 어필하며 세력을 모았다. 히틀러의 나치당의 득표율은 1930년을 기준으로 하였을때는 18.3%였지만 1932년에는 37.3%로 올라서 나치당이 230석을 얻어 국회 제 1당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보수의 거두 프란츠 폰 파펜이 쿠르트 폰 슐라이어를 견제하기 위해 파울 폰 힌덴부르크까지 설득하며 기어이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를 총리로 만들어줬다. 그렇게 나치당은 날개를 달았다.
이후 독일의 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병합, 뮌헨 협정,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에 대해 주변국은 적절히 대처하지 못 했다. 프랑스 내각은 히틀러가 다음에 움직일때 그를 막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3월 17일에 영국 수상인 체임벌린은 만약 독일이 작은 나라에 공격을 가한다면 영국은 온힘을 다해서 저항하리라고 히틀러가 전쟁을 감수 해야한다는 요지의 공개선언을 했다.
마침내 1939년 9월 1일, 독일 크릭스마리네의 전함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의 11인치 함포가 불을 뿜으면서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었고, 이에 폴란드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