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세운 괴뢰국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왕국(나폴레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추축국 | ||
?width=45 나치 독일 | ?width=45 이탈리아 왕국 | ?width=45 일본 제국 |
실존했거나 현존하는 식민제국 목록 | |||||||||
러시아 | 영국 | 덴마크 | 네덜란드 | 미국 | 벨기에 | 스웨덴 | 쿠를란트-젬갈렌 | 독일 | 베네치아 |
스페인 | 오만 | 오스만 | 이탈리아 | 일본 | 포르투갈 | 프랑스 | 오스트리아-헝가리 | 청나라 | 제노바 |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국 | ||
연합국 | 프랑스/자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중화민국, 영국, 에티오피아, 소련, 터키, 미국, 필리핀, 파나마,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과테말라, 쿠바, 멕시코, 볼리비아, 콜롬비아, 라이베리아, 페루,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칠레, 폴란드, 노르웨이, 체코슬로바키아, 그리스, 브라질, 알바니아,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투바, 이란, 이라크, 유고슬라비아 왕국,대한민국 임시정부 | |
추축국 |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태국, 핀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 |
*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전환 |
이탈리아 왕국 Regno d'Italia | ||
국기 | 문장 | |
1861~1946 | ||
국가 | Marcia Reale(1861~1922) Giovinezza(1922~1943) | |
위치 | 남유럽 | |
수도 | 로마 | |
정치체제 | 입헌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언어 | 이탈리아어 | |
민족 | 이탈리아인 | |
통화 | 리라 (₤) | |
성립 이전 | 샤르데나 왕국 | |
멸망 이후 | 이탈리아 공화국[1] |
1 개요
이탈리아 반도 지역에 있었던 왕국.
이탈리아 왕국이란 이름 하에 통일된 엄연한 제국주의 열강이였지만 근대 내내 열강치고는 안습한 가도를 달렸던 불운(?)의 나라였다. 고대 로마보다도 면적이 작다 안습
2 역사
2.1 건국에서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이전부터 있어왔던 통일 전쟁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진 이후에도 계속해 1870년 경 티롤 지방을 제외한 전 이탈리아 지역이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통일 전쟁을 시작한 샤르데냐 왕국의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당연히 초대 국왕이 되었다.
허나 통일 후유증이 너무 커[2] 많은 이들이 실직 상태가 되고 그로 인해 국내의 혼란이 가중되는 둥 여러모로 어지러웠다. 그런 국내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찾은 해결책은 바로 안 그런 다른 열강들이 어딨겠냐만은 식민지. 이탈리아 왕국은 식민지 팽창에 주목을 해 이탈리아 왕국군을 동원해서 리비아 및 소말리아 일부 지역을 먹어치워 버리고 나중엔 알바니아 및 에티오피아까지 합병해 버린다.
중국에도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존재했다. 정확히는 조차지겠지만.
이렇게 다른 열강들 틈바구니 속에 자기 영역을 넓혀 보겠다고 애쓰던 중 1차 세계대전이 터져버린다. 이탈리아 왕국은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삼국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범 게르만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던 삼국 동맹과는 상당히 사이가 멀어진 것도 있었고, 사실 오스트리아와는 뿌리깊은 적대관계로 영토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연합국 측의 영토 약속을 받아내고 연합국에 참전했다.
2.2 파시즘의 대두와 멸망
허나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임에도 불구하고 전후 회의에서 다른 참전국들에 비해선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었다. 기껏해야 배상금 몇푼과 티롤 지방 정도. 이런 정부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상황속에서 국민들의 정부 불신임은 커져만 갔고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리고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사나이가 바로 무솔리니. 그는 파시스트당의 전신인 파시스트 전사를 조직한 뒤 서서히 지방 세력을 규합하여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는 등 자신의 세력을 구축한 뒤 결국엔 로마 진군이란 사실상의 쿠데타+왕실의 묵인으로 정권을 휘어 잡게 된다.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뒤 야권 세력 및 불만 세력을 탄압하였고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팽창 정책으로 스파치오 비탈레를 주장한 뒤 로마 제국 부활을 외치며 에티오피아와 알바니아를 침공해 식민지로 만들어 버리고 국제연맹에서 항의하자 쿨하게 탈퇴를 시전하는 등 막장행위를 시전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막장행위의 끝은 추축국으로써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이었다. 본래 이탈리아는 독일과의 강철조약으로 맺어지는 우호 관계였지만 2차 세계대전에 추축국으로써의 참여는 커녕 중립을 지킬 생각이었다. 허나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털리고 남은 영국마저도 항복을 고려하게 되자 어차피 승패가 갈린 전쟁, 전리품(식민지)을 조금이라도 획득하려면 우리도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로 나치 독일에 빌붙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늦게 참전했다는 이유로 팽당한 1차 대전을 선례로 봐 어차피 2차 대전에서 추축국이 이겼어도 결과는 도찐개찐
허나 현실은 시궁창. 참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독일군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전역이 연합군에게 털려버리고 그 후 1943년 추축국 중에선 가장 먼저 항복해 버린다. 그리고 몇 년 뒤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인해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퇴위까지 강행하면서 군주정을 사수하려고 했지만 왕가는 완전히 민심을 잃은 상황인지라 군주정은 국민 투표로 인해 폐지되고 결국 이탈리아 왕국은 이렇게 멸망해 버린다. 사보이 왕가는 추방되었고 단초를 제공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이집트에서, 마지막 국왕 움베르토 2세는 스위스에서 객사했다. 2002년에 들어서야 왕족들의 이탈리아 입국이 허용되었다.
다만 무솔리니를 비롯한 파시스트당 잔당들은 나치가 북이탈리아에 살로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만듬으로써 거기서 연명하다가 결국 베를린 전투와 비슷한 시기에 멸망하면서 아울러 무솔리니는 도축되었다 살로 공화국 지역은 자연스레 이탈리아 공화국 땅으로 돌아온다.
나치 독일 초기에는 독일과는 껄끄러운 관계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을 땐 전쟁까지도 고려하였고 강철 조약 이후에도 당시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전통적인 우방 프랑스를 버리고 독일을 택한 데에 대한 우려를 표방했을 정도다. 특히 인종관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큰 차이를 보였는데 히틀러는 광적으로 인종적 순혈주의에 집착했는데 반해 무솔리니가 추구한 제국주의와 급진적 민족주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배격하며, 히틀러의 인종정책에 비판을 가했다. 이 시기 이탈리아는 옛 베네치아 공화국의 슬라브, 그리스계 영토들도 많이 흡수했고, 근본적으로 이탈리아 자체가 내부적으로 독일보다 인종적, 문화적인 면에서 다양성이 깊었기 때문에 나치스식 생물학적 인종주의에 대한 집착은 결코 대중화 되기 힘든 토양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사실 동시대 권위주의, 전체주의 정권들과 비교해도 세계사적인 기준에서도 나치스의 인종주의가 독보적으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경우로 봐야지, 파시스트 이탈리아라고 해서 인종, 민족주의적 차별과 박해를 가하지 않은건 아니다. 당장 저렇게 베네치아와의 역사적 접점을 통해 주로 현지 크로아티아쪽 남슬라브계 민족주의자들과 소유권을 두고 경쟁했던 달마티아 해안 지방에서는 나치스 못지 않은 독한 학살과 인종청소를 저지르며, 류블라냐 일대에서만 현지 인구의 7~10% 정도인 25만명을 직영 혹은 동맹 나치스의 수용소로 보냈다. 그리스에서도 도메니콘 학살을 비롯한 반빨치산 '평정'을 명분으로 대량 학살을 종종 저질렀으며, 아예 유색인종이었던 식민지 리비아와 침공 이후 연합군이 해방하기 전까지 점령했던 에티오피아에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학살과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겁도 없는지 직접적인 학살은 없었지만 위의 그 또라이 큰 빽 대게르만주의자 히틀러가 클레임을 걸만한 독일계 쥐트티롤 지방에서도 반파시스트 숙청, 문화 언어적 탄압을 저지르며 강제적인 이탈리아 동화정책을 폈다. 애초에 똑같은 양아치 ABC 중에서 A가 워낙 독보적인 또라이라해서 B는 양아치가 아닌게 아니다. 오히려 나치스의 전쟁 범죄는 워낙 집중적으로 조명 받아서 아무도 함부로 부정하거나 가볍게 취급하지 못할 만큼 엄중한 주제이지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무솔리니는 (점령지 피지배민들을) 휴가 보내주었을 뿐이다" 따위 망발은 동아시아 모 반도와 모 열도의 관계 중에서 이시하라 신타로나 아베 신조 같은 인간들이 역겨운 막말 내뱉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전쟁범죄야 말로 전후 냉전 논리와 이해 관계에 따라서 당장 에티오피아에서 같은 기독교인 삼 만명을 자기 목숨 노렸다고 보복으로 쳐죽이고 사람들 수천명 강제 수용소로 보냈던[3] 로돌포 그라치아니 같은 인간들은 혐의와 범죄가 뻔한대도 제대로 된 재판 한번 받지 않고 그대로 종전 후에도 땟깔 좋게 제 명에 뒤지는 등 문화적으로 널리 퍼진 유쾌하고 친절한 이탈리아 이미지에 덮여 씌워 넘어간 점이 심각하다. 아무리 상대적으로는 덜 잔인했다 하더라도 이건 파시즘이란 체제 자체를 처음으로 합법적인 정부로서 모셔 놓은 나라였다는 걸 명심하자. 게다가 파시스트 정권 설립 전과 그 중에도 계속 지속적으로 정권의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계열 반독재, 반파시스트 좌익 혁명 세력의 영향력도 막강했다 보니 이 놈들은 프랑코의 스페인 처럼 자국민에 대한 백색 테러도 숟하게 저질러댔다.
2.3 역대 국왕
대수 | 이름 | 재위기간 |
1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 1861~1878 |
2 | 움베르토 1세 | 1878~1900 |
3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 1900~1946 |
4 | 움베르토 2세 | 1946 |
3 평가
이탈리아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통일 왕조란 의의와 2차 세계대전 추축국의 일원으로 온갖 전범행위를 행한 비판이 겹치는 꽤나 평가가 엇갈리는 국가.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탈리아 왕국 역시 식민지를 가지고 깽판을 쳤던 엄연한 그 당시 형편없는 군대와 전쟁 수행능력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들지만 강대국이라는 것이다.
4 기타
참고로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각각 활동했던 독일과 일본의 임팩트가 너무 큰지라 제국주의 열강으로써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국가 중에선 존재감이 없다. 실은 이탈리아 왕국의 문서도 3개의 주요 추축국 중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문서다.(...) 그나마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짙은 영향력과 악취를 남겼던 지방은 발칸반도,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스페인 같은 남유럽과 아프리카의 몇 군대일 뿐인데, 이들 모두 여러모로 세계 근현대사의 중심이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사라예보 사건 같은건 말 그대로 사건이고...- ↑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하 살로 공화국)은 애초에 무솔리니가 나치 독일의 도움으로 세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미승인국이다. 미승인국이라도 기존의 국가가 망한 뒤 세워진 거면 모를까 살로공화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리고 살로 공화국이 망한 후 1년 뒤까지도 이탈리아 왕국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탈리아 왕국이 망하고 합법적으로 들어선 이탈리아 공화국을 진정한 후계국가로 봐야한다.
- ↑ 중세부터 근대까지 내내 수많은 국가가 병립해 있었고, 그 발전 양상도 다르며, 통일 주체도 따지고 보면 외지인. 이탈리아 통일전쟁 당시에는 이탈리아화되었지만, 굳이 따진다면 사르데냐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봉신으로 출발하여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었던 나라였다.
- ↑ 1937년 2월 19일의 암살 시도와 그 이후 대량 보복 학살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