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末生(1370~1447)
1 개요
조선 시대 초기의 문신.
본관은 양주. 자는 근초(謹初)·평중(平仲), 호는 사곡(社谷)·화산(華山). 시호는 문강(文剛)이다.
2 일대기
이름자가 끝 말(末)에 날 생(生)이라 막내인 것 같지만, 막내가 아니라 넷째 아들이다. 밑의 동생은 조종생 한 명 뿐.[1] 참고로 조말생의 바로 윗형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2]
1401년(태종 1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감찰, 헌납, 이조 정랑 등을 거쳤으며 이후 지신사(도승지),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치며 태종에게 중용되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원래 1418년에 이조참판으로 있다가 품계를 뛰어넘어 정덕대부로 특급승진을 했는데 조말생이 겸양의 의미로 사양했지만 태종은 "원래 대신 시켜주고 싶은데 천천히 하려고 이러는 거니까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태종이 이렇게 중용했던 것을 보면 행정능력이나 수완, 일처리 솜씨가 썩 괜찮은 관료였던 모양.
세종대왕이 즉위한 뒤에도 약 8년여간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명에 다녀오기도 했으나 그의 탄탄대로는 1428년 역풍을 맞는다. 요샛말로 치자면 권력형 뇌물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이때 그는 사적으로 노비를 받아 부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적했으며 노비를 준 이들에게 여러 이권을 사적으로 주었다는 혐의가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 법으로는 일정 이상의 뇌물을 받은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는데 조말생은 법에서 정한 수준의 10배 이상의 뇌물을 받았다. 당장 삭탈관직과 더불어 "말생을 죽이소서!" 하는 대간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이에 세종은 일단 조말생을 충청도 회인으로 귀양보냈는데 비리의 정도가 너무나 컸기에 대간들은 또다시 "말생을 죽이라"고 상소를 계속 올렸다.[3] 법대로 목을 졸라 죽이는 교형을 선고하라고 해도, 그럼 예를 갖춰 죽을 수 있도록 사약을 내려 죽이라는 상소에도, 세종은 선왕 태종이 아꼈던 신하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조말생을 죽이지 않겠다는 세종의 의지를 읽었는지, 대간에서도 "그렇다면 말생을 살리되, 이마에 낙인을 찍어 평생을 살게 하소서"라며 청을 올리기도 하고 "결단코 이후에도 한양에 들어올 수 없게 하소서"며 세종을 계속 압박했지만 상기한대로 세종은 그 모든 청을 끝끝내 거절했다.
1428년 조말생은 사면을 받았고, 그 후 약 2년 남짓 백수중앙정계 밖에 나가 있었으나 세종이 다시 그를 중용할 뜻을 보이고 1430년에 다시 직첩을 돌려받게 된다. 당연히 대간들이나 다른 신하들이 "국법이 뒤흔들릴 정도의 뇌물을 받은자를 다시 중용한다는것은 있을 수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말생 본인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물러나길 청했으며 언관들도 전원 사직 시위를 벌였다. 결국 세종은 "권도로 행하겠다"라는 말까지 하며[4]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1432년 조말생은 동지중추원사로 정계에 복귀했다. 그 이듬해에는 함길도 도관찰사로 북방에 파견되어 북방 야인들의 산발적 침입을 격퇴하기도 했는데 그해 겨울에 병으로 사직했고 그 후로도 지중추원사, 예문관 대제학 등을 겸임했으며 3도 도순문사로 충청도나 전라도, 경상도 일대의 축성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세종 시대의 재상들이 대개 그랬지만,[5] 조말생도 장수하여 1439년 궤장[6]을 하사받았고 70이 넘은 고령의 고위관료들이 들어가는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1442년 숭록대부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영화로운 인생을 산 반면, 높아진 인망이나 위신을 이용해 자신의 오점인 뇌물 사건에 대해 자신이 무죄인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세종은 끝내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한 부당한 몇 가지 대우[7]를 해소해 준 것 정도로만 끝냈다. 조말생의 행정능력과 수완은[8] 높이 사서 살려주었고 중용했지만 그의 부패함은 묵과하지 않았던 세종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정에서 꽤 오래 일한 신하인데도 끝내 정승이 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뇌물 사건의 타격이 컸다.[9]
만년인 세종 26년(1444년) 무렵부터 나이가 들어서 지속적으로 세종에게 사직하겠다는 청을 올렸으나 세종은 이 또한 들어주지 않았다. 실록을 보면 조말생의 사직 기록은 이렇다.
- 세종 6년 1월 4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칭병 사직의 상서문을 올리다
- 세종 6년 4월 25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는 전문을 올렸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 세종 7년 10월 5일 병조 판서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였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아니하다.
- 세종 15년 11월 17일 함길도 관찰사 조말생이 병으로 사직하기를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다
- 세종 19년 9월 4일 지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 세종 20년 10월 27일 예문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 세종 22년 8월 10일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하직하다
- 세종 23년 10월 27일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사직을 청하다
- 세종 24년 6월 23일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파직을 청하다
- 세종 26년 12월 14일 판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다
- 세종 28년 5월 11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사직코자 상서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 세종 28년 11월 28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이 벼슬을 그만두겠다고 상서하였다
- 세종 116권 29년 4월 27일 영중추원사 조말생의 졸기(卒記)[10]
이렇게 사직 상소를 끈질기게 올렸지만 전부 거절당하고 1447년 4월에 사망했다.[11] 향년 78세.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신하는 나이가 들어 죽을 때까지도 부려먹는중용하는 세종의 인사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 문강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문(文)은 학문에 부지런함을 뜻하고 강(剛)은 지난 오점을 고친 것을 뜻하는 의미로 내린 시호라고 한다. 실록에서는 기개 있고 도량이 크며 일처리 방식이 너그럽고 후덕했지만 뇌물 사건의 오점이 상당히 커서 정승이 되지는 못했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사실 뇌물 사건에 연루된것때문에 종신근무형을 받은걸지도 모른다 똑같이 사직시켜 달라며 임금님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한 이 분은 그나마 최고 정승까지 지냈는데
3 사극
세종 대에 워낙 쟁쟁한 신하들이 많아서 당시 고위 관료 중 한 사람이었음에도 대중적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인물은 아니다.
- 용의 눈물에도 등장하기는 하는데 태종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가끔 등장했던 정도. 다만 첫 등장 때 태종이 참관하는 가운데 권근과 박석명 앞에서 면접을 보는데, 이 때 극중 시점이 태종이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 가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태종의 면전에서 '빨리 태상왕 전하를 모셔와야 왕실의 위엄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해 신하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태종은 그냥 조용히 웃고 면접을 계속하라고만 할 뿐이었다.[12] 그러나 후에 심온을 역모로 몰아 억울하게 죽일 때 후환을 두려워해 유정현, 박은 등과 함께 중전을 폐비시켜 목숨을 보전하려 하는 등 소인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은 태종조차 혀를 찬다. 배역은 손종범이 맡았다.
- 대왕 세종에서는 야인시대의 최동열 기자, 불멸의 이순신의 윤두수를 맡았던 정동환이 배역을 맡았는데, 처음에는 태종의
따까리비서 + 박은의 측근 정도의 비중이었으나, 극이 진행되며 그 두 사람의 능력을 보고 배웠는지 일순간 폭풍성장하여 박은을 쳐내고, 상왕인 태종의 병권까지 회수하며 뒷통수를 거하게 때리는 대정객으로 각성한다. 이후 세종의 가장 큰 정적으로 활동하는데, 정동환의 느글느글한 말투가 일품이다. 후일 천문기기와 장영실 등용 건으로 세종과 집현전을 구석에까지 몰아넣었으나, 전날 자신이 그런 것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집현전에 심어놓은 첩자인 김문의 배신으로 역사에서의 뇌물 사건이 터지며 되려 자신이 궁지에 몰린다. 하지만 숙청되지는 않고 이후 세종에게 등용되어 마지막회까지도 모습을 비춘다. 후반부에서는 왕진이 조말생에게 "그대의 충성심을 믿는다."라고 하는데, 이어서 하는 말이 "조선 군왕에 대한 그대의 충성심을 믿는다."라고 할 정도로 변한 것으로 나온다.
극중에선 정치공작 뿐만 아니라 군사에 대한 재능도 상당하다. 병조판서로 있을 때는 북방의 판도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최윤덕에게 면박을 줄 정도고 군사 활동에 대한 결단이나 인물 기용도 뛰어나다. 앞에서 나온 것처럼 태종의 군권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능력으로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13]
- 용비어천가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