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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수 조영남이 다른 무명 화가를 고용해 대리제작 하게 하고 적은 돈만 준 사건으로 미술계와 대중, 고전미술계와 현대미술계의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 사건. 이말년이 또 한건 했다!
2 전개
2.1 조영남의 미술 활동
조영남은 60년대말부터 미술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0년대말에는 주로 유화를 그렸으나, 70, 80년대에는 화투, 소쿠리, 노끈등의 입체적 오브제를 콜라주한 작업을 했다.# 1973년 첫 개인전을 가진 조영남은 수십회 개인전을 치뤘고, 2011년에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2 대리제작 작가와의 친분
조영남은 미국에서 대작 작가인 송기창씨를 만났다고 한다.# 당시 송기창씨는 어렵게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귀국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조영남은 송기창씨에게 작업을 맡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기창씨는 재정적 사정이 좋지 않아 조영남에게 그림을 그려서 팔았지만 재능갈취에 가까운 대우와 금전적 댓가를 받고는 더 이상 조영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싫어 연락을 끊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조영남은 다른 일반 학생이 그린 그림으로는 그림이 팔리질 않으니 송기창씨에게 전화해 다시 그림을 그려 달라고 졸라 댔다고 한다.
검찰은 대작 화가는 총 두 명이고, 모두 전문 화가이며 조영남에게 그림을 어떤 식으로 그리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로 미루어 조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1]
2.3 대리제작 사실 공개
2016년 5월 16일 조영남 자신이 그렸다고 발표한 작품중 200점 이상이 다른 무명화가가 대부분을 그리고 조영남이 사인 정도만 넣은 대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조영남의 그림이 거래된 갤러리와 소속사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3 주장과 반응
3.1 조영남 측 주장 : 미술계의 관행을 따랐을 뿐이다
조영남은 이에 대해 미술계의 관행이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3.2 송기창 화백, 이하 대리제작 작가 측 주장 : 작품을 팔 줄 몰랐다
조영남 대작 화가인 송기창씨는 조영남이 작품을 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송기창 화백 인터뷰 [2] 송화백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림을 다 그려놓으면 조영남은 그 그림 위에 그냥 싸인만 하면 뭐하니까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그 위에 깔짝깔짝 그린 후, 자기 손이 갔으니까 자기 그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림 가격에 대해서는 갈취 혹은 동네 조폭 수준으로, 가격은 조영남이 정하고 크기에 상관없이 한 점당 10만원씩 주다가 어느 날은 그림 17점에 대해서 150만원(20만원 깎아서) 주기도 했다.
그림 가격에 대한 것은 말도 못 꺼내게 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택시운전사가 요즘 얼마 받는 줄 아냐"면서 까분다고 송화백에게 뭘 던지려고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불공정거래 및 재능갈취.
3.3 구매자 측 주장 : 조영남을 처벌해라
사건이 커지기 전에는 구매자들의 반응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건이 점점 조명 받자 일부 구매자들이 나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영남의 처벌을 원하다고 밝혔다.
미술계 특유의 구두거래 방식상 갤러리 말고는 거래내역이 남아있지도 않는데다가 사건 조사 중에 조영남이 그림을 환불해주기도 해서 검찰이 구매자 파악에 애를 먹고 있다.
3.4 검찰 측 주장 : 사기죄를 적용하겠다
타인의 그림들을 큰 액수의 돈으로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으므로 검찰 측은 이번 사건에 사기죄를 적용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3.5 예술계 측 주장 : 대작을 예술계 관행으로 포장할 수 없다
우리는 협업과 대작을 구분하기 위해 해당 예술의 사조,경향 그리고 작품규모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고전미술, 서양화, 동양화, 추상화를 하는 쪽에서는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건축, 설치미술 분야는 특성상 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나 루벤스 같은 작가들이 조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을 도제관계로 보지 # 대리제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유화를 한 점 그리는데 물감이 마르고 다시 덧칠하는 과정이 필수였으므로 완성하는데 최소 몇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튜브물감이 나오기 전에는 예술가들이 스스로 물감을 만들어 써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제 시스템이 적용됐는데, 가내 수공업 내지는 공장제 수공업처럼 어떤 제자는 물감만 빻고, 어떤 제자는 물감만 개고, 어떤 제자는 배경 색깔만 칠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다. 스승인 화가가 하는 것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스케치를 잡아주고 세세한 지시를 내리고 마무리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매만지는 것이었다. 대신 스승인 화가는 작품값을 판 돈으로 제자들을 어느 정도 먹여 살려줘야 했다. 이유는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양화에서는 작가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어디까지나 남종화 문인 계열에 한정되며, [1] 규모가 큰 동궐도 같은 그림은 당연히 화원들이 협동해 그렸다. 홍세섭 같은 화가는 그림이 인기가 많아서 아버지와 같이 그렸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이렇게 협업자나 제자 등을 두지 않고 혼자 그리는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보통 1) 혼자 생활하기 원하거나, 2) 가난하거나, 또는 3) 유명하지 않아서 제자를 둘 형편이 안되는 경우였다. 첫번째의 일부에 해당하는 경우를 빼면 대부분은 조수를 안두는게 아니라 못두는 거다. 렘브란트의 경우 말년에 2) 생활고와 1) 심리적 고통에 빠져 혼자 생활한 경우이고, 고흐의 경우는 2) 집에서 아버지가 돈을 부쳐주지 않아서 가난했고 3) 무명 작가였기에 혼자 그린 것이다. 웬만큼 능력있는 예술가라면 다 제자를 두고 그렸다 보는게 맞다. 이것은 현대미술계도 마찬가지이다.
대중들이 통상 화가, 예술가하면 생각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르네상스 미술의 작업방식을 떠올리는데, 근대 이후의 예술은 예술가가 오직 본인의 눈과 손만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직 눈과 손으로만 작업한다는 것은 이미 근대 이후로 사라진, 매우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들은 카메라 옵스큐라[2]나 카메라 루시다[3] 같은 광학 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도구나 다른 매체를 작업에 사용하는 것은 조영남으로 인해 이슈가 된 '대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당연시 되고 있는 예술가의 독창적인 아트 프로세스에 불과하다.
현대예술가 데미안 허스트는 100명 이상의 작가를 두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아예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 라는 유한회사를 차려 스태프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
조영남 대작혐의의 경우, 조영남은 본인의 대작 사실을 '예술계 관행'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조영남이 저지른 것은 '예술계 관행'인 조수 등이 돕는 도제관계 혹은 현대예술의 협업 등의 단어들로 미화할 수 없는 형태이다.
도제 관계가 아닌 이유는, 조영남과 해당 대리 작가 사이에는 무언가를 어떻게 표현하라는 가르침이나 개념적인 지시도 없었고 심지어 조영남은 이미 완성된 그림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으로서는 송기창 작가가 조영남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송기창 작가는 뉴욕의 필라디에스 갤러리 멤버였고 그 곳은 한 작가의 그림을 놓고 30-40명이 거수를 진행한 뒤 80%이상이 찬성해야 들어갈 수 있는 권위있는 곳이다. [3] 이들은 실력에서 조차 도저히 도제 관계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이다.
협업(Collaboration)이 아닌 이유는 해당 작업의 장르(회화, Painting)와 규모를 고려할 때, 이것이 두 사람의 협업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조영남이 타 장르의 작가들처럼 협업자가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판매한 게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것은 절대 협업이 될 수 없다.
또한 만일 조영남이 협업자의 유무를 그림 구매자들에게 미리 밝혔더라도 대작 작가가 조영남의 협업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오히려 조영남이 대작 작가의 조수 정도로 취급되어야 할 정도로 대작 작가의 예술적 수준과 작품에 대한 기여도는 조영남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대작 작가의 작업물에 대한 대가 또한 터무니 없는 것도 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제관계나 현대예술의 협업방식을 끌어다 자신의 사기행각을 포장하려고 한 조영남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진중권은 예술계에 조수 등이 작업을 돕는 관행이 있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대예술에서는 이러한 도제 및 협업 시스템은 대작으로 간주되지도, 문제 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근대 이후, 예술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제작과정 보다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4]
이동연은 '“현대미술의 관행” 운운하는 해명은 대중들에게는 잘난 체하는 ‘엘리트주의’로 힐난의 대상이 된다.'고 비난했다.#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도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주장은 사기 행위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지어낸 말”이라며 “대작이 관행이라면 그같은 작품이나 화가의 명단을 구체적 증거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신제남은 11개 미술단체[5]의 성명을 모아 고소장을 제출했다.고소장 전문 나아가 신제남 이사장은 진중권 교수가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소장에 관련 내용을 적고 법적 조치할 것이라 밝혔다.
조영남이 대작 작가에게 돈을 너무 적게 지불했다는 점에서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는 상태이다. 참고로 조영남의 이름으로 팔린 그림들은 평균적으로 한 점에 약 800만원 정도의 가격이 매겨졌다.[6]
3.6 대중의 반응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다. 안 그대로 그동안 온갖 추태에 밉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미운털이 박힐거라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 안그래도 논란이 많은데 검찰 조사 당일에 장애인 전용 구역에 주차한 것으로 인해 이제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조영남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서는 대다수가 통일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상반된 의견들이 보인다.
대작 작가의 말바꾸기에 대해서는 이해된다는 의견과 이게 뭐하자는 짓이냐는 의견이 나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기 스스로 손수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다.
4 쟁점
4.1 노동법 위반 여부
이쪽으로 고소한다면 아주 무난하게 위법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점당 10만원은 너무한 가격이라는 점에서는 대중이든 미술계든 이견이 없기 때문. 그림을 그리는데 최소 며칠은 걸릴텐데, 같은 시간에 편의점 알바를 했다 치고 기회비용을 비교해보라. 말이 안되는 가격이다.
4.2 사기죄 성립 여부
검찰 측은 사기죄로 조영남을 기소하였지만, 사실 이러면 대작을 했던 송기창씨도 공범이 된다. 이뭐병 송기창씨 입장에서는 돈은 돈대로 못받고 법적 처벌까지 받아야 하는 웃지못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송기창씨가 갑자기 말을 바꿔 이번 사건에서 빠지려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사기죄로 재판에 가게 될 경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사기죄로 판결이 날 경우 보상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다. 노동법으로 이 사건이 다뤄질 경우 사건은 조영남 대 송기창씨의 구도로 흘러가게 되기 때문에 구매자들이 낄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4.3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
미술 관련 11개 단체에서 조영남을 고소하면서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는지, 성립된다면 얼마나 처벌을 받게 될지도 관건이 되었다. 헌데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공연성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니. 문제는 허위 사실을 적시했는지 여부와 특정성 여부다. 특히 특정성이 문제인데, 집단의 모든 구성원의 명예가 집합명칭에 의하여 침해될 경우에는 구성원 각자의 명예훼손이 될 수는 있지만, '화가'라는 집합명칭이 과연 이에 해당할까?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집단구성원이 일반인과 명백히 구별될 정도로 집합명칭이 특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A법과대학의 교수, B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는 형사들 같은 식으로 말이다. 조영남의 경우 'oo대 미술교수는 한심하다'거나, 'oo대 미술대학은 썩었다' 같은 식으로 발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미술계 관행이다'라고만 했기 때문에 더 모호하다. 고소한 미술관련 11개 단체 중 한 단체를 콕 찝어 '이 단체에서는 관행이더라' 하면 또 모를까. 이 경우 '관행'이라는 용어를 재판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듯. 예술 관련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들이라면 이번 사건이 중요 판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4.3.1 관점 1 : 육체노동없이 작업하는 예술은 사기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대중과 고전미술계는 여전히 미술가가 손수 수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인이 한땀한땀 작업하듯, 예술가도 한끌씩 돌조각을 떼어내고 한붓씩 물감을 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서 작품을 완성해야 정직한 예술가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에 대해서는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이 제출한 고소장 내용 중 일부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체 내용은 다음 링크글을 참고하라. 고소장 전문
(전략) 2. 피고소인의 적시한“미술계의 관행”이 허위의 사실인지에 관하여
근대미술에서의 협업
피고소인은 앤디 워홀과 같은 현대 미술의 작가들은 100명 이상의 조수를 쓴다며 우리나라 미술계도 조수를 쓰는 것이 기본적인 관행이라고 주장합니다. (중략) 그러나 르네상스 이래 화가의 개성과 어떻게 그리느냐는 문제에 중점을 두게 되면서 미술품이 예술가의 자주적 인격의 소산이라는 의식이 강화되었고, 19세기 인상파 이후로는 화가가 조수의 도움 없이 홀로 작업하는 것이 근대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이 되었습니다. 또한 중세에 조수를 고용해 그림을 그린 화가들도 작업을 공개 했습니다. 즉 베르사이유 천장화, 천지창조, 나폴레옹의 대관식 같은 작품들, 그런 많은 대형 벽화그림이 예인데, 대형으로 제작된 공동 벽화 작품에서 총지휘 작가 개인 한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공동작품임이 명백하게 알려져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대 미술의 경향 중 팝아트란?
“외국에는 조수를 100명 넘게 두고 있는 작가들도 있고, 우리나라 작가들도 대부분 조수를 두고 작품 활동을 한다." 라고 주장하자 안하무인 논객 진중권이 감히 피고소인을 팝아트 엔디워홀에 비견하였고 미술계가 비분강개 하였습니다. 팝아트는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신문의 만화, 상업디자인, 영화의 스틸(still), TV 등, 대중사회에 있어서 매스 미디어의 사회비판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주제 삼은 것입니다. 팝아트의 대표 작가 엔디워홀은 상업적 아이디어로 대량생산 기계시설을 갖춰놓고 작업장에 아트 팩토리라고 간판을 붙이고 돈이 되는 상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력자들을 상시 고용해 판화를 찍어내는 작업을 공개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20세기 팝아트적 현상은 특히 앤디 워홀 이후 조수들의 조력을 받아 대량 생산 하는 지나친 상업주의 현상이 늘어나자 이를 비판하는 양태가 확산되면서 급하게 와해된 것도 사실입니다. 피고소인이 “외국에는 100명 이상의 조수를 두고 있는 작가도 있고”라고 피고소인과 엔디워홀을 같은 급으로 연상케 하는 주장을 하여 갑자기 팝 아트 사조를 불러 일으켰으나 사회비판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주제 삼아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팝아트와 화투짝의 재미를 그린 피고소인의 화투그림은 명백하게 팝아트와 비견 할 수 없는 그림입니다. (중략)
허위의 사실 적시
위 사실과 같이 결국 회화작품을 협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대작을 맡겼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예술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예술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소인은 남의 그림에 사인 내지 덧칠만 하고 몇 백배의 수익을 올려오다가 그 사실이 들통 나자, 대규모 협업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현대 미술의 특수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협업이 마치 미술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관행인양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 것입니다. (후략)
예술적 문제와 관련해 신제남 측의 주요 주장을 요약하면 크게 다음 4가지 주장이 나온다.
- 1) 19세기 인상파 이후로는 화가가 조수의 도움 없이 홀로 작업하는 것이 근대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 2) 대형으로 제작한 작품은 총지휘 작가 개인 한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공동작품임을 명백하게 알린다.
- 3) 앤디워홀이 조력자들을 상시 고용해 판화를 찍어내는 작업을 공개적으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팝아트 경향은 조수들의 조력을 받아 대량 생산 하는 지나친 상업주의 현상이 늘어나자 이를 비판하는 양태가 확산되면서 와해되었다.
- 4) 회화작업을 협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영남은 대규모 협업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현대 미술의 특수한 작가들을 언급하면서 협업이 마치 미술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관행인양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 것일 뿐이다.
이 고소문에 따른다면 향후 재판에서는 화가가 조수의 도움 없이 홀로 작업하는 것이 근대미술의 일반적인 경향인지, 대형으로 제작한 작품은 총지휘 작가 개인 한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공동작품임을 명백하게 알리는 것이 미술계에 정착된 제도인지, 대량 생산 하는 지나친 상업주의 현상이 늘어나자 이를 비판하는 양태가 확산되면서 조수들의 조력을 받아 제작하는 팝아트 경향이 와해되었는지, 현대 미술의 특수한 작가들만 협업을 하는 것인지 등의 질문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 단순하게 본다면 '대작'이냐 '협업'이냐를 두고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와 관련된 국내외 사례가 마구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4.3.2 관점 2 : 기계적인 반복작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아이디어다
하지만 현대미술계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작가나 전문가도 많다. 마르셀 뒤샹 이후 현대미술은 더이상 그런 손재주나 기교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돌을 깎아내고 붓질을 하는 기계적인 반복작업을 열심히 했다고 그게 수준높은 예술작품이 아니란 것이다.
이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 전문가가 진중권이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수작업보다 창의적인 발상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대작 관행'에 대해 설명했다.#
화가 조영남 씨가 제 작품을 다른 이에게 ‘대작’을 시킨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이 ‘사기죄’로 엮어 수사에 들어갔다. 정의로운 대중은 인터넷에 분노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이는 현대예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과잉행동이다. 적어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그리고 팝아트 이후 예술가가 작품에 ‘콘셉트’만 제공하고 실행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은 예술계의 관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효시는 바우하우스의 모호이-나지일 것이다. 그는 이미 1930년대에 ‘전화-회화’를 선보였다. 그는 전화로 이미지의 좌표와 색상을 알려주고 제작을 아예 간판 집에 맡겨버렸다. 60년대의 미니멀리스트 토니 스미스 역시 철공소에 전화로 작품의 제작을 의뢰하고 심지어 배달까지 시켰다. 같은 시기에 개념미술가 솔-르위트는 수학 공식만 주고 직공들에게 그 공식에 따라 벽에 도형을 그려나가게 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아예 ‘공장’을 차려놓고 조수들에게 작품의 실행을 맡겼다. 대중의 눈에는 이게 이상해 보이겠지만, 사실 이 이상한 관행의 바탕에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깔려 있다. 즉, 어떤 대상을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예술가의 ‘솜씨’가 아니라 ‘콘셉트’라는 관념이다. 이 새로운 관념을 창조한 사람은 물론 ‘사인’만으로 변기를 작품으로 둔갑시킨 마르셀 뒤샹이다.
다만 진중권은 대작 관행에도 한도가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구체적으로 낮은 대가 지불, 대작 관행이 이뤄지는 특정 예술 경향과 다른 조영남의 작품 특징, 대작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음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처럼 예술의 본질이 ‘실행’이 아니라 ‘개념’에 있다면 대작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림을 대신 그려준 그 작가도 ‘콘셉트는 조영남 씨에게 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남는다. 왜 그럴까? 일단 내 심기를 거스른 것은 대작 작가가 받았다는 터무니없이 낮은 ‘공임’이다. 작품당 10만원 남짓이라나? 자신을 ‘작가’라 여기는 이에게는 모욕적으로 느껴질 만한 액수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조영남은 그 작가가 ‘노동’을 했고 그 대가로 ‘공임’을 받은 것뿐이라 믿는다. 반면, 작가는 자신이 ‘작품’을 했고 그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이 갈등은 대작의 성격에서 비롯된다. 개념미술가나 미니멀리스트, 팝아티스트들이 남에게 작업을 맡길 경우, 맡겨진 그 작업은 대개 기계적`반복적`익명적인 부분에 머문다. 즉, 예술가의 개인적 터치가 느껴질 수 없는 부분을 맡긴 것이다.
대행의 관행이 주로 미니멀리즘`개념미술`팝아트와 같은 특정 영역에 한정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관행이 아무 데서나 용인된 것은 아니다. 물론 ‘화투’를 그린 데서 볼 수 있듯이 조영남은 팝아티스트의 제스처를 취한다.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도 ‘팝’스럽다. 하지만 그가 다른 이에게 시킨 것은 워홀의 경우처럼 익명성이 강한 복제의 작업이 아니라, 그린 이의 개인적 터치가 느껴질 수도 있는 타블로 작업이었다. 여기에는 어떤 애매함이 있다.
또 하나, 미니멀리스트`개념미술`팝아티스트들은 내가 아는 한 작품의 실행을 남에게 맡긴다는 사실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워홀은 ‘나는 그림 같은 거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 남에게 작품의 실행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의 작품 콘셉트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영남의 경우 내가 아는 한 그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다니지 않았다. 여기에 또 다른 모호함이 있다.
물론 작가에게 꼭 그 사실을 밝히고 다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는 여전히 ‘내 작업의 콘셉트에 대행이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니, 미술사에 대한 막연한 지식에서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대행 사실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의 미학적 관념이 정교하지 못한 것이고,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라면 그의 윤리적 의식이 정확하지 못한 것이다.
기고문에서 진중권은 이 문제는 '비평과 담론으로 다루어야 할 미학적-윤리적 문제이지, 검찰의 수사나 인터넷 인민재판으로 다루어야 할 사법적 문제는 아니다'라고 보았다. 사실 진중권이 쓴 글을 읽으면 진중권이 말하고 있는건 미술계의 '대작' 관행이 아니라 미술계의 '협업' 관행에 관한 설명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1) 작품의 기본 설계인 콘셉트를 작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조수들은 단지 그 콘셉트를 실물로 제작할 때 필요한 기계적 반복작업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만 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2) 작가는 조수에게 숙식이든 노하우 전수든 급료 지불이든 충분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3)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 '협업'한 것임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실 데미안 허스트나 무라카미 다카시의 경우 1), 2), 3) 다 충족한다. 이들은 작업하면서 수십명 이상의 스태프들과 사실상 한 배를 탄 입장이다. 사실상 이런 대규모 팀을 꾸려 작업하는 작가들은 중소기업 사장이나 다를바 없고, 작품이 안팔리면 자신 뿐만 아니라 조수들까지 굶어야 한다. 정작 이런 작가들은 그렇게 작품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막상 이득을 조수들과 나누고 다음 작업을 준비하는데 또 돈을 쓰면 항상 돈이 모자란다고 한탄하는 형국이다. 사실 재주는 예술가가 구르고 돈은 옥션이나 갤러리에서 다 떼간다더라 사실 기고문 자체만 놓고 보면 조영남을 옹호했다기 보다는 비판한 쪽에 가까워 보인다. 대행 사실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의 미학적 관념이 정교하지 못한 것이고, 그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라면 그의 윤리적 의식이 정확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 자체가 별로 긍정적으로 옹호하는 말이 아니다.
진중권의 기고문은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트위터나 기고문으로 진중권을 비판하는 자들 중에는 진중권의 글 앞부분만 보고 뒷부분은 읽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앞서 내용처럼 진중권은 작품 콘셉트가 조영남 자신의 콘셉트냐, 송기창씨에게 공정한 댓가를 지불했느냐, 협업 사실을 밝혔느냐의 여부만 계속 문제삼고 있는데, 헛다리 짚고 열심히 열올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트위터에서 진중권은 계속 비판하는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면서 “조영남이 직접 그린 것으로 알고 샀다고 해도 그림의 핵심은 작가의 콘셉이고 콘셉이 작품에 담겨 있다면 거래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사기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기죄나 모욕죄로 조영남을 비판하고 고소하는 꼴을 비판한 것이다. 주의할 점은 진중권은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했지 다른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는 안했다. 실제로 그는 조영남은 사기죄가 아니라 노동법 위반이라 주장한 바 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 또한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미술계 현재 메타에 대해 모르는 대중의 무지를 비판했다.# 특히 반이정은 주문-제작 관행(대작 관행)을 과거의 수공업 방식으로 되돌리는건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관행은 루비콘 강을 건넜는데 '미적 러다이트'들은 뒷북 난동을 부린다
그들이 성토하는 주문-제작의 관행을 개인 창작의 낭만적 전통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불가능하다. 왜 되돌릴 수 없을까? 자명하다. 이번 사태와 주문-제작 관행을 비판하고 부인하는 평론가들에게 그들이 남긴 지난 강연과 글을 되돌아보라고 말하련다. 그들의 강연과 지면에서 공공연하게 격찬한 미술가 중에, 정확한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조수를 고용한 미술가가 아마 절대 다수를 차지할 게다. '장막에 가려 규모와 실상'을 파악할 수 없는 개인 스튜디오 화가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지구촌 평론가라면 여기에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중략)
주문-제작 관행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조수를 고용한 작가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주문-제작으로 얻은 완성도 높은 작업을 기획하고 감상하고 호평해온 갤러리와 관객과 평론이 부지불식간에 연루된 결과물이 바로 미술계의 관행이다. 유능한 개인 요리사의 명성이 알려지자, 수요가 급증해 전문 보조원 여럿을 두고 그의 이름을 단 매장을 확대했다 치자. 흔한 일이다. 이전보다 완성도가 높은 요리가 제공될 것이고 고객과 언론의 만족과 평가도 상승할 것이다. 이때 누군가가 '요리사 개인기'를 향한 낭만을 환기시킨다 한들 이미 탄탄히 구축된 협업 체계가 원점으로 되돌아올까? 불가능하다. 입맛이 천정부지로 올라간 고객과 언론부터 그걸 원치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 빗대면, 대중적 공감을 살 법한 '수공의 미덕' 따위를 내세우면서 기계를 파괴하자고 외치는 미적 러다이트들은 그들 스스로 과거에 가담했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중략)
"스튜디오 명칭을 작가 이름 대신, 서명으로 쓰는 건 어떨까요?"(중략)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 화가와 조수가 관여한 작품은 유사한 관계이니 저런 제안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저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의 물리적인 완성 대부분을 100여명의 조수가 대행하니, 그가 운영하는 회사 이름을 따서 'ⓒkaikai kiki'라는 서명이 ⓒmurakami takasi보다 객관적인 사실일 게다. 그럼에도 회사명을 쓰는 서명은 작가 본인은 물론이고 그걸 전시하는 기획자, 작품을 거래하는 아트딜러나 급기야는 그걸 감상하고 구입하는 관객과 구매자마저 원치 않는 바다. 이런 판단은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 스튜디오가 공개되어 주문-제작의 관행이 엄연한 사실로 확인됐음에도 그렇다.
이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은 미술과 요리를 감히 어떻게 동일선상에 비교하고 볼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지만,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거 맞다. 미각과 시각은 다르지만, 자극을 주고 만족을 준다는 점에서 요리와 미술은 동등한 '기술'일 뿐이다. 현대미술은 과거의 고전미술처럼 지고지순하고 우월한 진리를 찾는 분야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소중한 차이를 찾으려 애쓰는 분야다. 과거의 미술이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답고 웅장한 신상을 만들었다면, 현대미술은 그 우월성에 억압당했던 타자들에 관심을 보이기 위해 사소하고 추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예술은 다른 기술과 다른 뭔가 고상한 정수가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아집을 드러내는 태도일 뿐이다. 또한 반이정이 소위 '미적 러다이트'들이 스스로 과거에 가담했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진실을 호도한다고 말한 것은 낭만주의적 태도를 고수하는 예술가들 조차도 결코 현대 자본주의의 분업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함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기차나 사진같은 신기술에 의해 피폐해지는 산업사회를 거부하면서, 인간의 감성으로 이에 맞설 수 있다고 착각했다. 고흐가 혼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고, 고갱이 타히티로 떠난 이유를 떠올려보자. 하지만 이런 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미 당시 시각문화는 광고나 영화 같은 대중매체가 등장하면서 상업주의로 도배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업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어떻게 이 새태를 비틀어 모순을 드러내는 작업을 할지를 고민해야지, 이미 수백년전에 끝난 메타를 자폐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수백년전에 끝난 미술계 메타를 좀비마냥 계속 끄집어내 미신처럼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 예술가는 붓질로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고, 혼자 고독하게 작업할 수도 없으며, 현대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에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여전히 과거의 고흐처럼 어떻게 자신만의 화풍(또는 서명같이 구분되는 특징)을 완성시킬지만 고민한다면 이는 한참 뒤떨어진 것이다. 오늘날 그런 그림은 컴퓨터로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이정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는 추신에서 이후에 벌어질 사태가 뻔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ps. 조영남 대작의 풍랑이 잦아든 후 벌어질 현상을 단정적으로 예측해본다.
1. 주문-제작이 미술계를 구성하는 엄연한 풍경이건 말건, 대중의 73.8%는 작업을 완성하는 천재 개인 예술가의 신앙을 품은 채 살아갈 것이다.
2. 주문-제작이 미술계를 구성하는 엄연한 풍경이건 말건, 미술가를 다루는 교양 방송 프로그램과 미디어는 작업실에 고독하게 서있는 미술가의 모습을 대중에게 전파할 것이다.
3. 주문-제작이 미술계를 구성하는 엄연한 풍경이건 말건, 조영남과 대작 관행을 성토했던 평론가들은 강연과 지면에서 조수를 고용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이전처럼 인용하고 격찬할 것이다.
4. 주문-제작이 미술계를 구성하는 엄연한 풍경이건 말건, 홀로 작품 제작에 임하는 절대 다수의 미술가들은 유명 작가들의 주문제작 관행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5. 대중적 공분과 언론의 맹공과 사법적 판단이야 어떠하건, 십 수 명을 거느리고 주문-제작으로 작업을 완성해온 무수한 미술가들은 평시처럼, 해오던 공정대로 작업을 완성해 전시장에 걸 것이다.
6. 끝으로. 사법적 판단이야 어떠하건, 조영남은 물의를 일으킨 데에 고개 숙여 사죄한 후, 그가 진행했던 방송 무대로 복귀할 것이다.
어쨌든 반이정은 송기창씨가 "새로운 그림을 내가 창조적으로 그려서 주는 것은 아니다. 조씨가 아이템을 정해서 알려주면 나는 그 그림을 똑같이 여러 장 그려서 조씨에게 가져다준다."# 라고 진술했던 점을 들어, 조영남의 화투 도상은 조영남이 수십 년 전에 개발한 독자적인 아이템인 게 맞다고 보았다. 대작 작가인 송기창씨에게 '화투가 말탄 그림 그려줘.' 하는 식으로 작업한 것을 두고 과연 조영남이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일단 그렇다 치고 앞서 말한 세가지 조건을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7] 1)의 작가가 콘셉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의 측면에서 봤을 때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더큰 문제는 2)와 결부되는 문제인데, 조영남이 자기 개인 만족용으로 작업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수백배 폭리를 취해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대작 작가인 송기창씨는 숙식을 제공받은 것도 아니고, 어떤 미술 창작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도 아니며, 돈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다. 애초에 미술경력으로만 보면 송기창씨가 더 고수다. 조영남이 줄 노하우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조영남 측은 “조수, 알바 개념”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자기보다 더 경력이 많은 사람을 부려먹는건 조수도 아니고 알바도 아닌 것이다. 이건 학부생이 대학교수를 부려먹고는 몇십만원만 댓가로 주고 알바로 쓴 것 뿐입니다 하는 꼴인 것이다. 동시에 이는 3)과도 결부된 문제로, 차라리 처음부터 협업관계라고 말하고 작업했으면 미더워도 뭐라 지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뒤늦게 밝혀지니까 조수니 알바니 운운하는 것 자체가 조영남이 미술계 작업방식을 잘 모른다는 반증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영남 사건은 이말년이 그린 만화의 상황을 꼭 빼닮았다.#
5 교훈
5.1 작업 참여 스태프 명단 공개 필요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면 예술계에서 관행으로 누가 작업에 참여했는지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들이 조수들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는 건 그냥 작품 설명란에 여백이 모자라서다. 작품 밑에 붙는 캡션에 작가 이외의 조수들 이름을 다 적는다면 명함 크기가 아니라 거의 A4 용지 크기만큼 커져야 할테니. 리플렛에는 참여한 조수들의 이름을 적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어쨌든 작품 제작에 참여한 조수들의 이름을 표시해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미술계의 관행은 고쳐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 아트 같은 영상 작업의 경우 영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작품 말미에 스태프롤을 넣고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표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5.2 공정한 계약 방식 도입 필요
더불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게끔 투명한 계약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 사실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 시행으로 2월부터 서면 계약이 의무화되긴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모르고 열정페이 당하는 무명 예술가들이 아직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알아도 무시하는 작가도 있을 수 있다
- ↑ 수묵화의 경우 덧그리기 어려워서 그렇지 유화와 비교하면 손이 덜 간다. 물론 규모가 큰 산수화나 꼼꼼한 초상화를 그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 암실형 바늘구멍 사진기와 같은 원리의 구조물
- ↑ 잠망경처럼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그림을 그리도록 한 도구
- ↑ 이후 사진기의 발명에 따라 회화 분야에서는 작품의 개념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극사실주의 같은 분야 처럼 제작과정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 ↑ 사)한국미술협회,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사)서울미술협회, 사)한국수채화협회, 사)현대한국화협회, 사)목우회, 사)구상전, 대한민국회화제, 대한민국구상화원로작가협의회, 미술단체 신기회, 미술단체 창작미술협회
- ↑ 조영남이 "나는 돈 받고 판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 ↑ 1) 작품의 기본 설계인 콘셉트를 작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조수들은 단지 그 콘셉트를 실물로 제작할 때 필요한 기계적 반복작업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만 맡는다. 2) 작가는 조수에게 숙식이든 노하우 전수든 급료 지불이든 충분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3)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 '협업'한 것임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