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전국시대)

趙姬

생몰년도 미상

중국 전국시대의 인물. 진시황의 생모.

원래 여불위가 데리고 있던 무희로, 조나라에 볼모로 와있던 (秦)나라의 왕자 자초와 여불위가 연을 맺으면서 자초의 처가 된다. 자초가 조나라를 탈출하고 진나라의 왕위를 이어 장양왕으로 즉위하면서 왕후가 되고 4년 후 장양왕이 병으로 사망하여 아들 정(政)이 진왕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태후가 된다.

참고로 조희가 조나라에 있었을 때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가졌고 아들 정(政)이 실은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 사마천사기를 편찬하면서 이 설을 정설로 채택해 지금까지도 사실인 양 널리 퍼졌는데, 실제로는 진시황 본기에서는 장양왕의 아들로 기록했고, 위의 설은 여불위 열전에만 기록된 것으로 어디까지나 설일 뿐, 확실한 것으로 밝혀지지는 않은 것이다. 더구나 열전의 기록도 '조희가 영자초과 혼인한 뒤 12개월 뒤에 자식 영정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볼때 혼인 후에 사통한 것이라면 몰라도 의학적으로 진시황이 여불위의 자식이 되는건 불가능하다.[1] 게다가 여불위열전에서 여불위가 조희를 자초에게 소개시켜 주는 기록 바로 다음에는 이들이 진나라의 조나라 침공으로 위험에 빠지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조희가 조나라 부잣집의 딸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즉, 사마천은 여불위열전 안에서 여불위의 진시황 친부설을 쉽게 믿기 힘들다는 점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들이 즉위할 때, 조태후는 30대 중반으로,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남편을 잃은 탓인지는 모르나 남자를 지나치게 밝혔었다고 한다. 이 때 섭정으로서 국정을 좌우한 여불위는 간혹 조희와 통정했지만, 뒷감당이 힘들어지자 노애, 통칭 노대란 자를 환관으로 위장시켜 붙여주고 점괘를 조작한 후에 별궁인 옹성으로 보냈다고 한다. 역사서와 야사의 기록에 따르면, 노애는 성기에 수레바퀴를 끼우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라서 장안의 부녀자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했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조희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둘씩이나 태어나자, 열후로 봉해진 노애는 옛 수도 옹 땅으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진왕은 성장하면서 둘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묵인했다고 하는데, 노애는 자기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진왕 정(政)에게 발각돼 노애와 그 아이들은 모두 죽게 된다. 이후 여불위는 승상에서 물러나야 했고 결국 자결하게 되며 진왕 정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하여 친정을 시작한다. 조희는 진시황의 생모이자 선왕의 왕후로 태후의 자리에 있었기에 참형은 면하였지만 죽을 때까지 별궁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얼마 지난 후에 신하들의 중재로 겨우 모자가 화해하며 조용히 지내다 죽음을 맞는다.

사마천사기, 전국책전국시대를 다루고 있는 모든 사서나 창작물에서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음녀라는 기믹이 거의 굳어 있다(…). 노애와의 일화 때문에 그런 듯.

미디어 믹스

하라 야스히사만화 킹덤에서는 17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성우는 츠보이 코노미.

위의 기믹답게 굉장히 음란하게 묘사된다. 환관조차 그녀가 포도와 비슷한 과일을 빨아먹자 침을 삼키며 성욕을 불러일으킬 정도. 처음에는 가짜 옥새를 만들어 진시황의 관심을 끌고 여불위에게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나, 사실 이는 과거 자신과 연인 사이였던 여불위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술책이었고, 이후에는 틈이 날 때마다 여불위와 검열삭제를 즐긴다.[2]

이후에는 노애와 거하게 만리장성을 쌓았고 노애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으면서 태원 일대에 노애의 나라라는 뜻의 '애국'을 세우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키며, 막대한 자금과 조고의 책략에 따라 건국 준비를 진행하던 도중에 여불위가 찾아온다. 여불위에게 이젠 조금의 애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원망을 토해내지만, 여불위가 "그래도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 혼란을 느낀다.

초나라의 지령을 받은 호력이 진나라 내부 분열을 위해 움직이는 본심을 숨기고 대신들을 매수해 거병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고 아들 두 명을 인질로 잡으면서 조희의 사생아 둘을 인질로 잡아 함양을 기습하거나 태후(조희), 노애, 두 사람 사이의 자식의 목을 보내면 된다는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자 결국 정의 가관의식(성인식)에 맞춰 거병하기로 하고 함양에 입성, 정과 대면한다. 그 사이, 조희가 가짜 옥새로 위조한 명령서의 도움으로 애국 군대는 함곡관을 통과.

그러나 성인식의 분위기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리 긴장된 모습이라곤 없이 흥겨움 뿐인 것을 보고는 진나라 조정은 자신의 사생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 자신이 여불위의 계략에 빠져 섣부른 짓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다만, 그녀 또한 여불위의 예상을 깨기 위해 원래 병력보다 많은 3만의 대군[3]을 보낸 터라서 거기에 모든 걸 걸기로 한다...

그리고 결국 역사대로 애국 반란은 진압되고 노애가 거열형에 처해지게 되자 대놓고 자신이 주동자라고 외치며 제발 아이들만은 살려달라고 도게자까지 하면서 애원하지만 반란의 불씨는 남길 수 없다는 정의 대답에 분노하여 정을 죽이려 하다가 향에게 대성일갈을 듣는다. 이후 탑에 유폐된 모습으로 다시 한 번 등장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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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때문에 사마천은 같은 사기 안에서도 공식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본기의 시황제편에서는 시황제는 장양왕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적고 있는거다.
  2. 이게 어느 정도냐면, 간통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여불위가 안 찾아오자 직접 밤에 찾아가 여불위를 한순간 식은 땀을 흘리게 할 정도.
  3. 본래 병력 1만에, 과거 진나라에 합병당해 원한을 품고 있던 융적의 군대 1만, 사정을 모르고 가짜 옥새에 속아서 징발된 1만의 잡병이 추가되었다.
  4. 이때 정이 찾아와 노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은 따로 외딴 시골에 숨어 살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그토록 비뚤어졌던 관계이지만 최후에 나름 배려해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