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oe Dumars
이름 | 조 듀마스 3세(Joe Dumars III) |
생년월일 | 1963년 5월 24일 |
키 | 191cm (6 ft 3 in) |
체중 | 86kg (190 lb) |
출신학교 | 맥니스 대학교 |
포지션 | 가드 |
드래프트 | 198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8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지명 |
등번호 | 4번 |
역대 소속팀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1985~1999) |
프런트 경력 |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2000-2014, 사장) |
수상내역 | NBA Champion 2회 (1989, 1990) NBA Finals MVP (1989) All-NBA Second Team 1회 (1993) All-NBA Third Team 2회 (1990, 1991) NBA All-Defense First Team 4회 (1989, 1990, 1992, 1993) NBA All-Defense Second Team 1회 (1991) NBA All-Rookie First Team (1986) J. Walter Kennedy Citizenship Award (1987) NBA Sportsmanship Award (1996) Southland Player of the Year (1985) |
1989년 NBA 파이널 MVP | |||||
제임스 워디 | → | 조 듀마스 | → | 아이재아 토마스 |
2003년 NBA 올해의 경영자상 | |||||
로드 톤 | → | 조 듀마스 | → | 제리 웨스트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영구결번 | |
No. 4 |
1.1 소개
전 NBA 농구 선수. 배드 보이즈의 일원으로 아이재아 토마스의 팀메이트 가드였다. 매직 존슨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은 선수중 하나로 기억되며, 마이클 조던 본인이 스스로 "역사상 나를 가장 잘 막은 선수" 라고 칭할 정도로 수비에 뛰어났다. 조던 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선수로 토마스가 고안한 조던 룰을 성공시키기 위해 큰 공을 세운 선수였다. 비록 배드 보이즈의 멤버였긴 했지만 그 중에서는 가장 매너가 좋은 선수로 알려졌고, 가장 매너가 좋은 선수들에게 주는 "스포츠맨 선수상" 을 받은 선수로 받은 첫 선수로 이 상은 나중에 조 듀마스 상으로 바뀌게 된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2000년 이후로 피스톤즈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2002-2003년은 올해의 경영자 상을 받기도 했다.
1.2 초기 생애 및 대학 경력
듀마스는 루이지애나 주 슈레브포트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조는 트럭 운전수였고, 한 대학의 관리인이었다. 그는 운동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처음부터 듀마스는 농구에 관심을 보였던 건 아니다. 형제들을 따라 모두 미식축구를 하였고 그대로 그랬는데, 한번 미식 축구를 하다가 크게 다쳤고 그 이후로 농구에 관심을 가지게 됬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서 자전거 바퀴를 사용해서(...) 농구대를 만들어줬고 수많은 연습을 통해 그는 농구 실력을 키우게 된다.
대학은 맥니스 대학이라는 곳으로 진학했는데, 듀마스는 조용히 실적을 쌓으면서 4학년이 되었을대는 미국 대학 농구 전체에서 득점이 6위가 될 정도로 활약했다. 결국 그는 NCAA 득점 역사에서 11위를 기록하며 대학을 마쳤다. 대학을 마친 후에 그는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
1.3 선수 경력: 배드 보이즈
1985년 1라운드 18순위로 피즈톤스에 이해서 선택되었다. 이때 듀마스는 아이재아 토마스를 우상으로 삼고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좋아했냐면, 자신의 방에 아이재아의 포스터를 걸어놓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그와 동료로 뛸 수 있었으니 그에게는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듀마스가 합류하면서 디트로이트는 더욱 더 수비적인 팀이 되며 강한 팀이 되기 시작한다. 그 후에 데니스 로드먼, 존 샐리 등이 합류하면서 이미 있었던 릭 마혼, 빌 레임비어 그리고 토마스와 함께 피스톤스를 동부의 강호로 만들게 된다. 그들은 매번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에 의해 좌절 되었지만, 결국 그들을 물리치고 매직 존슨이 이끄는 LA 레이커스와 우승까지 갔다. 매직 존슨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지만 5차전의 시원치 않은 판정과 아직은 우월했던 매직의 레이커스에 좌절하며 결국 준우승에 머문다.
바로 그 다음년에 복수를 다짐하며 동부 지구 우승에 다가왔는데 이번에 그들 앞에선건 지구 최고의 소인배인 그분(...) 초반에 그에게 탈탈 털리며 쩔쩔맸지만 결국 토마스가 조던 룰을 고안해 오고 듀마스는 그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함으로 시카고 불스를 침몰시키고 다시 매직이 이끄는 레이커스와 붙게 된다. 이때는 매직 존슨을 비롯한 레이커스의 주축들이 모두 부상을 달고 있었고 복수의 칼을 갈던 토마스와 배드 보이스에게 자비란 없었다. 듀마스는 공수에서 매직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결국 매직은 두번째 게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그 이후로는 나오지 못했고 디트로이트가 4전 전승으로 레이커스를 처참히 발라버리고 우승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듀마스는 파이널스 MVP를 받았다.
그 다음시즌인 1989-1990시즌에는 같은 동부지구 시카고 불스의 강력한 도전이 있었으나 이겨내고 파이널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맞이하여 4승 1패로 다시 우승하는데 이 과정이 좀 극적이다. 당시 듀마스는 엄청나게 슈팅 감각이 좋았는데 그 경기가 끝나고 듀마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그의 가족은 듀마스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가 마칠때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도 끝가지 싸워서 피스톤스는 결국 연속 우승을 하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1990-1991 시즌 이후로 토마스와 배드 보이스 1기의 번영은 끝이 났다. 시카고 불스에 의해 4전 전패로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무너지고 난 뒤 팀의 성적은 내리막을 걸었다. 불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듀마스와 토마스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게 된다. 승부가 기울자 데일리 감독은 주전 멤버들을 모두 뺐고 이들은 홈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코치진과 포옹을 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였는데, 토마스와 레임비어를 필두로 한 주전 멤버 대부분은 경기 종료 7.9초를 남겨두고 퇴장해버렸다. 이때 불스 벤치 앞을 지나갔는데 조던을 포함한 불스 주전멤버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걸 감상할 수 있다. 사실 퇴장 자체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들이 경기 직후 관례로 되어있는 상대팀과의 악수(친한 선수들의 경우 포옹)를 거부한것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이 와중에서 불스와 악수를 한 것은 바로 듀마스와 존 샐리 둘 뿐이었다. (이후 샐리는 불스에서 뛰기도 했다.)
이후 배드 보이즈는 하나하나씩 은퇴 및 팀을 떠나며 끝나게 되었고, 듀마스는 1999년 은퇴 직전까지 피스톤즈에서 14년을 뛰면서 16000 득점, 4600 어시스트, 2200개의 리바운드와 900여개의 스틸을 기록하였다. 후반에는 포인트가드로 뛰기도 하였다.
1.4 행정가로써의 경력
2000-01년에 그는 피스톤스의 단장겸 사장으로 취임한다. 그 당시에 약체였던 피스톤스였지만 그는 배드 보이즈에 버금가는 조직력 농구를 위해서 선수들을 하나씩 모으기 시작한다. 강력한 수비수로 떠오르던 벤 월래스를 중심으로 강력한 수비를 구축했고, 공격력이 필요하자 리차드 해밀턴, 천시 빌럽스와 계약을 했으며, 드래프트로 테이션 프린스와 메멧 오쿠 등을 영입하였고, 대학 농구의 명장이었던 래리 브라운을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성격문제로 말이 많았던 라시드 월래스를 애틀란타 호크스에서 데려옴으로써 2003-2004년에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전당포 라인업의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배드 보이즈의 90년 우승을 이후로 처음 우승을 차지한다.
빌럽스의 노련하고 차분한 경기 운영과 슈팅, 해밀턴의 지치지 않는 활동량과 비수같은 중거리 슈팅, 테이션 프린스의 말도 안되는 긴 신체를 활용한 협력 수비와 득점력,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충만한 자신감, 몸싸움, 리바운딩, 그리고 빅맨으로써 코트 어디서나 슛을 던질수 있는데다 뛰어난 개인기까지 갖춘 라시드 월러스, 그리고 중앙에서 끝판왕 포스를 풍기는 철문수비 센터 벤 월러스. 이렇게 피스톤즈는 단단하고 내실있는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1]
이 라인업으로 피스톤스는 한동안 르브론 제임스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2000년 중반까지의 강호로 거듭하며 6년간 연속으로 동부 지구 우승무대에 서게되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러한 공으로 그는 2002-2003년에 올해의 경영자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2000년도 후반에 들어서기 시작하며 듀마스는 비효율적인 선수들에게 거금의 계약을 안겨주고 여러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경영자로써 성공과 실패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경영자로써의 그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595승 536패 (52.7% 승률), 6년간 지구 우승 및 동부 우승전 진출, 두 차례의 동부 지구 우승 및 1차례의 NBA 우승. 말년의 삽질이 아쉽기는 하지만 꽤나 성공적이었던 경영이라 볼 수 있다.
1.5 이것저것
2014년에 단장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경영에 관여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팀 경영에 조언자로 남기로 했다. 그는 조 듀마스 필드하우스라는 인도어 운동 센터 및 엔터테인먼트 센터를 두개 운영중이고, 디트로이트에서 여러가지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 자세한 점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