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동부 컨퍼런스 | |||
◀ 센트럴 디비전 ▶ | |||
50px | 시카고 불스 (Chicago Bulls) | 50px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Cleveland Cavaliers)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Detroit Pistons) | 45px | 인디애나 페이서스 (Indiana Pacers) | |
45px | 밀워키 벅스 (Milwaukee Bucks) | |
220px |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
Detroit Pistons | ||
창단 | 1941년 | |
연고지 | 미시건 주 어번 힐스[1] | |
컨퍼런스 | 동부 컨퍼런스 | |
디비전 | 센트럴 | |
현재 연고지로 이동 | 1988년 | |
구단 연고지 변천 | 포트 웨인 (1941~1957) 디트로이트 (1958년~1987년) 어번 힐스 (1988~) | |
구단명 변천 | 포트 웨인 피스톤즈 (1941~1957)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957~) | |
구단주 | 톰 고레스 (Tom Gores) | |
단장 | 제프 보워 (Jeff Bower) | |
감독 | 스탠 밴 건디 (Stan Van Gundy) | |
파이널 우승 (3회) | 1989, 1990, 2004 | |
컨퍼런스 우승 (7회) | 1955, 1956, 1988, 1989, 1990, 2004, 2005 | |
디비전 우승 (11회) | 1955, 1956, 1988, 1989, 1990, 2002, 2003, 2005, 2006, 2007, 2008 | |
홈구장 | 더 팰리스 오브 어번 힐스 (1988년 건립) | |
약칭 | DET | |
홈페이지 | ||
유니폼 | ||
홈 | 원정 | 얼터네이트 |
목차
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센트럴 디비전 소속. 팀명과 달리 연고지는 디트로이트 북쪽에 있는 어번 힐스다.
참고로 팬들이 한성깔 한다. 메타 월드 피스의 관중 폭행 사건때도 시발점은 관객이 던진 물건이었고 2015-16시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포스트시즌에서도 카일리 어빙과 관객사이의 말다툼이 있었다.
2 역사
2.1 초창기
NBA에서 가장 오래된 창립 역사를 가졌으나, NBL에서의 2회 우승당시 강팀이었던 데에 반해 1948년 NBA 합류 후 무려 40년 동안 이렇다 할 강점이 없는 약체팀이었다.
2.2 배드 보이즈 1기
그러다가 1981년 드래프트에서 위대한 포인트가드 중 한명인 아이재아 토마스를 1라운드 2픽으로 뽑은 후 디트로이트는 악명높은 '배드 보이즈'의 포석이 마련하게 된다. 비록 데뷔 초기 2시즌 동안은 플옵 진출에 실패했지만 토마스가 20득점 10어시스트라는 엘리트 포인트가드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하자 하나하나 필요한 사람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그 첫단계로 어둠의 왕자라 불리우는 더티플레이의 대명사인 센터 빌 레임비어를 영입하고, 1년 후인 1983년에 엄청난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척 데일리 감독를 고용한 뒤 여기에 수비에 뛰어난 릭 마혼을 영입했다. 그 후 1985년 드래프트에서 영원한 피스톤맨이자 수비의 달인 조 듀마스를 선택하며 기반을 다졌고, 정상으로 향하기 위해 유타 재즈에서 2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했던 베테랑 스윙맨인 에이드리언 댄틀리, 레임비어에 가려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블록 슛머신이었던 센터 존 샐리 등의 주요 롤플레이어들이 착실히 모여서 전력을 끌어올렸다. 1983년 12월 13일에는 덴버 너기츠를 186대 184로 이겨 NBA 역대 최다 득점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4년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플옵 컨텐더로 격상한다. 그리고 볼스의 빅 3로 더 알려졌지만 그 당시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던 잠재력이 풍부한 데니스 로드맨이 합류하면서 왕조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드디어 1986-87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지만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와의 7차전에 이르는 혈전 끝에 아쉽게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파이널 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와 팀 디트로이트는 자신들의 팀 플레이가 점점 완성되어 가고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1987-88 시즌 고대하던 파이널 진출에 성공하지만, 이번엔 매직 존슨이 이끄는 쇼타임 레이커스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아쉽게 무릎을 꿇고 만다. 이때 토마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단일 쿼터 최다득점 기록을 세우면서 분전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1988-89시즌,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1989-90 시즌에도 우승하여 백투백 우승을 이룩하게 된다. 이 1989, 1990년 백투백 우승 당시의 팀 디트로이트를 바로 배드보이즈 1기라 부른다. 아이재아 토마스, 조 듀마스, 빌 레임비어, 비니 존슨, 데니스 로드먼 등이 바로 핵심 멤버들이다.
배드보이즈(Bad Boys)는 문자 그대로 나쁜 놈들이라는 뜻.
이 시기의 디트로이트는 그야말로 수비 강팀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준다. '배드보이즈'는 이런 거친 수비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의 NBA는 바디 체킹 룰이 지금보다 상당히 관대해서, 선수들이 어느정도 치고박고 하는 것은 그냥 파울만 하나 주고 마는 정도였다. 이에 감독인 척 데일리는 피스톤즈 선수들에게 항상 '거친 플레이'를 강조했다. 거기에 선수들의 성향까지 가세하면서 심판의 눈을 피해 차고, 때리고, 꼬집고, 밀고, 욕하고, 옷자락 잡아당기는 등의 플레이는 팀의 특징이 되었고, 이러한 디트로이트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배드 보이즈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이다. 이들의 활약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먼저 신사라 불리우던 조 듀마스를 제외한 팀원 전체가 심판의 눈을 피해 트래쉬 토킹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이재아 토마스는 셀틱스와의 경기 전에 '래리 버드는 백인이라 MVP다'라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드보이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은 역시 '암흑의 왕자(The Prince of Darkness)' 빌 레임비어였다. 그의 특징은 그에 관한 항목에서 자세히 나와 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선수들의 공적.
데니스 로드먼은 디트로이트 당시 '순한 양'이었으며[2], 빌 레임비어와 릭 마혼등에게 수많은 기술들을 전수받으며(...) 장차 악동으로써의 자질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더티 플레이들을 차치하더라도 '배드보이즈 1기'는 확실히 강팀이었다.[3]
토마스는 공격형 포인트가드의 표본이자 게임 조절에 능하였고, 듀마스는 조던 스타퍼였다.[4][5] 거기에 레임비어는 뛰어난 위치선정과 예측력으로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보완하며 리바운드왕에 올랐으며 센터 치고는 점프샷과 자유투가 매우 준수했다. 거기다 3,4,5번을 전부 막을 수 있던 수비 스페셜리스트 로드먼 [6]의 성장은 이 팀의 질식 디펜스의 힘을 보여준다. 거기다 이 팀은 플레이오프에서도 5명의 선수가 두자리수 득점이 가능했을 정도로 공격옵션이 다양했던 팀이다. 토마스를 중심으로 듀마스와 존슨이 번갈아 나오는 슈팅가드, 댄틀리를 시즌중 트레이드하고 영입한 스몰포워드 마크 어과이어등 강력한 수비력과 폭발적이진 않지만 짜임새있고 다양한 공격옵션때문에 난공불락의 팀이었다. 또한 심리전에도 매우 강한 팀이었는데 질식 디펜스와 동시에 플로핑과 (과장 연기를 하여 파울을 얻어내는 것) 트래쉬 토킹 등으로 상대 플레이어들의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게 하여 상대방이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90년년 결승전에서 빌 레임비어 한명이 모든 포틀랜트 플레이어들을 정신적으로 교란시키는가 하면 89년 파이널에서도 로든맨과 마혼이 번갈아 가며 제임스 워디를 정신적으로 괴롭히는 등 심리적으로도 다른 팀을 압도하는 팀이었던 것이다.
상대방 에이스를 봉쇄하는 질식 수비에 의해 마이클 조던도 스카티 피펜과 호러스 그랜트가 성장하기 전까지 번번히 패배의 고비를 마셔야 했다. 참고로 《슬램덩크》에서 북산의 안감독이 해남의 이정환을 막는데 쓴 박스원 수비는 바로 척 데일리가 고안한 '조던 룰'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조던 룰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마이클 조던 항목 참고. 그 정도로 수비에는 정말 일가견이 있었고, 공격도 만만치 않은 팀이니 NBA 2연패를 그저 더러운 매너로만 땄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또한 "배드보이즈" 이미지 때문에 대표적으로 피스톤즈만 언급되긴 하지만 80년대가 전체적으로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 갈 정도로 거친 시대이기도 했다. 터프하기로 유명한 보스턴 셀틱스의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 케빈 맥헤일 등은 디트로이트 선수들과 싸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맥헤일 같은 경우 레이커스의 커트 램비스에게 클로스라인을 연상시키는 엄청난 하드파울을 할 적도 있었다. 한 마디로 80년대에는 신체적 충돌이 NBA에서 거의 일상이었다. 당시 경기를 보면, 현재같으면 즉시 퇴장당하거나 여론에 의해 매장당할 만한 플레이도 그냥 파울을 받고 경기를 재개하는 걸 볼 수 있다.[7] 물론 이와 같이 거친 팀들 중에서도 디트로이트가 독보적으로 거칠고, 독보적으로 더러웠던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2.3 그랜트 힐의 시기
2년 연속 NBA 챔피언쉽을 따낸 후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왕조가 시작되었고, 그 사이 배드보이스 멤버들이 하나 둘씩 은퇴하면서 디트로이트는 1차 쇠퇴기를 겪게 되었고, 그 후 코트의 신사 그랜트 힐이 들어와서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팀은 언제나 1회전에서 제대로 관광모드.
거기에 은근히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그랜트 힐의 '매너 플레이'에 불만을 표시하며 배드 보이즈가 되라고 항의했다 한다. 역시 메탈시티의 주민들...
2.4 배드보이즈 2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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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천시 빌럽스/테이션 프린스/라시드 월러스/벤 월러스/리처드 해밀턴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그랜트 힐을 떠나보낸 디트로이트는 잠시동안 제리 스택하우스가 에이스로 있는 팀이었는데, 00-01시즌에는 스택하우스도 나름대로 평균 29점을 넣으면서 올스타에도 나갔지만 팀은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권과도 거리가 있는 팀이었다. 이후 인디애나의 래리 버드 감독시절 코치로 재임하던 릭 칼라일 감독을 선임했고, 01-02시즌은 강력한 수비수로 거듭나기 시작한 벤 월러스, 트레이드 되어온 클리포드 로빈슨, 식스맨 상을 수상한 콜리스 윌리암스, 처키 앳킨스, 여전히 에이스였던 제리 스택하우스를 앞세워 실점을 평균 5점 가까이 줄이고 50승 32패로 동부 2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강한 수비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안풀리는 공격력 때문에 결국 2라운드에서 폴 피어스와 앤트완 워커의 보스턴 셀틱스에게 격파당했다. 점프슛이 너무 약하고 공격이 안풀렸고 2라운드에서 보스턴을 상대로 거의 역적질에 가까운 부진한 제리 스택하우스는 결국 2002-03시즌을 앞두고 워싱턴으로 배드보이즈 2기의 슈팅가드인 리차드 해밀턴과 트레이드된다. 또한 미드레벨 익셉션으로 미네소타에서 주가를 올리던 천시 빌럽스를 6년계약으로 영입하고, 루키로 강력한 수비의 테이션 프린스와 터키의 센터 메멧 오쿠어가 합류한다. 역시 강력한 수비로 이번에는 동부 1위자리에 오르지만 뉴저지 네츠에게 4패로 광탈하게 된다.
이후 릭 칼라일이 인디애나의 감독으로 떠나고, 2003년 NBA의 대표적인 콩라인감독이었던 명장 래리 브라운을 영입한 뒤 동부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파이널까지 나간다.[9] 상대는 2003-04 시즌 콩라인(?) 선수들을 불러모아 칼 말론, 게리 페이튼 등이 가세해 전당포반지원정대라고 불리는 LA 레이커스. 반지를 얻기 위해 자존심도 접고 레이커스로 온 칼 말론과 샤킬 오닐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원맨 우승을 꿈꿨던 코비 브라이언트를 꺾어버렸다.
지난 20년간 NBA의 파이널을 우승한 팀중 가장 선수 개개인의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팀으로 그만큼 유니크한 언더독 우승 사례로 볼만한 팀이다.
포인트가드 천시 빌럽스는 드래프트의 높은 순위에 비하면 정립되지 않은 스타일과 본인의 실력 부족으로 굴곡진 커리어를 갖고 있었으며 래리 브라운 시스템에 맞는 탑 푸시를 보여주면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늦깎이 스타리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위저즈에 제리 스택하우스를 내주고 데려온 슈팅가드 리차드 'rip' 해밀턴은 앨런 휴스턴,레지 밀러처럼 쉴새 없이 뛰어다니다 찬스 한번 받아먹는 개인기 없이 점프 슛만 던질 수 있는 퓨어슈터였기 때문에 한팀의 에이스 스윙맨으로 보기엔 어려운 선수이다. 이 선수도 한명의 노마크 슛을 만들기 위해 여러명이 팀플레이에 달라붙는 래리 브라운 시스템에 들어가고서야 빛을 본 케이스다.
센터 벤 월러스와 스몰포워드 테이션 프린스는 진짜로 저평가된 선수였다. 벤 월러스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히지도 않은 선수로 순수 노력과 근성으로 성공한 정말 아무도 원치 않았던 선수[10]. 주전 5명 중 유일한 디트로이트의 드래프트 선수인 테이션 프린스는 예상과는 달리 개인기량과 운동능력이 기대 이하여서 1라운드 중후반까지 떨어진 케이스. 물론 이때 피스톤즈의 신인으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를 제치고 전체 2순위로 뽑힌 다르코 밀리시치도 있었지만 넘어가자.
그나마 스타급으로 인정받을 만한 파워포워드 라시드 월러스는 실력은 있지만 성질머리가 지랄맞고 예측불가능해서 포틀랜드는 참다참다 못해 트레이드로 내놓았고 애틀랜타 호크스가 데려갔지만 단 1경기만에 재트레이드되어서 시즌중에 합류한 선수였다. 피스톤즈의 우승시즌에 쉬드는 중간 합류한 선수였다.
여기에 식스맨 진용에는 터키출신 3점슛 던지는 센터 메멧 오쿠어와 트위너지만 식스맨으로썬 최고 효율을 자랑하던 포워드 콜리스 윌리엄슨, 베테랑 빅맨 엘든 캠벨까지 가세해 물량과 조합을 적절하게 갖추며, 역대 래리 브라운이 지휘한 팀들 중에는 스퍼스 시절 다음으로 좋은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의 신조는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았으니, 이 자식들에게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자..[11]
빌럽스의 노련하고 차분한 경기 운영과 슈팅, 해밀턴의 지치지 않는 활동량[12]과 비수같은 중거리 슈팅, 테이션 프린스의 말도 안되는 긴 신체를 활용한 협력 수비와 득점력,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충만한 자신감, 몸싸움, 리바운딩, 그리고 빅맨으로써 코트 어디서나 슛을 던질수 있는데다 뛰어난 개인기까지 갖춘 라시드 월러스, 그리고 중앙에서 끝판왕 포스를 풍기는 철문수비 센터 벤 월러스. 이렇게 피스톤즈는 단단하고 내실있는 진용을 갖추게 되었다.
피스톤즈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래리 브라운식 스윙오펜스에 최적화된 가드진용이 갖춰졌다는 것. 다른 가드들에 비해 체격과 몸싸움이 좋은 빌럽스가 탑에서 무지막지한 포스트업과 몸싸움으로 상대 1번을 체력적,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양 코너에서는 지치지 않고 코트를 종횡무진 풍차돌리는 해밀턴이 상대 수비를 똥개훈련시키고, 고무인간마냥 긴 팔과 다리를 지닌 프린스, 어디서든 상대 빅맨을 끌고나와서 중장거리 슛을 던질줄 아는 쉬드가 코트를 벌려주고 골밑에는 벤 월러스가 개인기는 없지만 강력한 공격리바운드로 슈터들을 지원해줬다.
수비에 있어서는 벤 월러스라는 중심이 떡 버티고 있었다. 벤 월러스는 4회나[13] NBA 올해의 수비 선수 상을 탄, 괴물 수비형 센터였다.[14] 또한 빅벤의 키를 제외하면 모든 포지션에서 평균 이상의 사이즈와 피지컬로 공격수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거기에 수비를 중시하고 규율이 엄격한, 언제나 명장으로 불리었지만 우승은 없는, 꼰대라고까지 불리던 래리 브라운 감독의 멋진 작전과 철학이 가미돼[15], 스타들이 많지만 조직력이 부족했던 LA를 꺾고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우승을 쥐었다.
당시 LA를 상대하는 팀의 모든 고민은 '샤크를 어떻게 막느냐'였으며 이에 파생한 전술이 그 유명한 '핵-어-샤크' 즉 Beat LA의 핵심은 핵-어 샤크로 받아지고 있었다. 이를 유일하게 성공해낸 팀은 팀 던컨을 보유한 샌안토니오 스퍼스뿐.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역으로 샤크에게 줄 점수는 준다 대신 우리는 코비를 막는다라는 작전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이 작전은 혼자서도 골밑을 쑥대밭이 되는걸 막은 벤 월라스과 엘든 켐벨[16]존재 덕분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또한 팀공격이 막히다 보니 혼자 득점하던 샤킬 오닐이 지쳐버려 후반기에 별 위력을 못 보이는 사태도 벌어졌다. 실제로 이때 오닐은 괴물같은 기록을 냈으나 전반득점 비중이 훨씬 높았다.
이 시리즈 업셋의 또다른 원동력은 백코트진의 압도적인 피스톤즈 우세였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 못하고 이미 나이가 들어 스텝이 무뎌진 게리 페이튼을 천시 빌럽스가 공수 양면에서 압살했고[17] 부상으로 골골대던 칼 말론은 아예 존재가 사라졌으며 시즌초부터 스캔들에 휘말린 코비는 예전 3핏때처럼 페이튼,말론의 부진에도 다소 안이하게 대응했다가 무명에 가까운 테이션 프린스의 거미손 수비에 말려 자멸하면서 레이커스의 디펜스가 외곽부터 무너졌고, 골대 밖으로 나가면 느릿느릿한 수비수였던 샤킬 오닐의 약점까지 공략하면서 완벽하게 업셋에 성공,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승을 거두었다. 이 시리즈는 팬들에게 아직까지 가장 멋진 언더독의 우승으로 회자되고 있다. 2003-04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가 이 "배드보이즈 2"의 전성기.
2.5 쇠퇴와 리빌딩
우승 이후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강팀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벤 월러스가 FA계약으로 팀을 떠나고,[18] 2009년에 천시 빌럽스도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되며[19] 배드 보이즈 2기가 해체되었고, 단장 조 듀마스는 벤 고든, 찰리 빌리누에바에게 오버페이를 하는 등 연이은 삽질을 하며 08-09시즌 이후 하위권에 처져있는 상황. 게다가 조 듀마스의 로드니 스터키 사랑때문에 굉장히 많은 기회도 주고 당시로서는 거액인 3년 25M의 연장계약을 체결하는등 무한 애정을 보냈으나... 결국 스터키는 디트로이트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인디애나로 떠났다.
결국 그 이후에는 그렉 먼로, 브랜든 나이트, 안드레 드루먼드등 유망주를 키우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2.6 2013-14 시즌
2013년에 애틀란타 호크스와 밀워키 벅스의 중심선수인 조쉬 스미스와 브랜든 제닝스를 데려오고 왕년의 스타인 천시 빌럽스도 귀환하면서 탱킹 대신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듯 한데...[20] 연고지인 디트로이트가 파산해버린데다 조쉬와 제닝스는 둘 다 난사로 악명높은 선수들이라 팬들은 걱정하는 중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드루먼드&먼로의 빡빡한 골밑에 조쉬는 전혀 끼어들지 못하고 겉돌고 있으며 제닝스는 팀을 옮긴 후에도 난사중. 천시 빌럽스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시절부터 갑자기 시작된 유리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 로드니 스터키 역시 골밑에서 제닝스를 따라하는듯한 모양세를 보이기도. 나름대로 돈 좀 써서 영입을 했는데도 4할이 안되는 승률을 찍으며 암흑기에 머무를 예정인 듯 하다.
결국 시즌 중반 감독이었던 모리스 칙스는 경질되었으며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존 로이어가 남은 시즌을 지휘했으나 여전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채 시즌을 마쳤다. 결국 과거 피스톤스의 주축선수이자 2000년부�터 팀의 단장을 역임했던 조 듀마스 역시 올 시즌을 끝으로 단장 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시즌 성적은 29승 53패(.354), 뒤에서 전체 8번째 성적. 만약 본인들보다 성적이 더 좋은 팀이 로터리 픽에 걸려서 픽이 한단계 밀려나게 될 경우에는 샬럿 밥캣츠에게 팀의 골칫덩어리였던 벤 고든을 처리하기 위한 댓가로 내준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21] 을 내줘야 하는지라 팬들은 답답할 지경. 그렇잖아도 뎁스면에서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받는 드래프트인데...그리고 클리블랜드가 1픽을 먹고 9픽을 진짜로 샬럿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팀의 파워포워드 그렉 먼로가 제한적 자유계약 선수로 풀릴 예정인데, 안드레 드루먼드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고 있어 새 단장이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기로에 놓이기도 한다.
2.7 2014-15 시즌
올랜도 매직을 파이널에 진출시킨 경험이 있는 스탠 밴 건디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21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12연패를 기록하고 3승 18패, 1할대 승률에 지구 최하위, 컨퍼런스 14위를 기록하며 바닥을 기고 있다. 꼴등인 필라델피아가 탱킹을 위해 하위리그급 선수들로 머릿수만 채워놓은 것을 감안하면 디트로이트가 꼴등이나 다름없다.
팀내 야투시도 1,2,3위를 기록하고 있는 조쉬, 포프, 제닝스의 필드골 성공율이 모두 40%도 넘기지 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공격이 될 리가 없다. 참다 못해 조쉬를 방출시키면서 반전을 노리는데, 초반 결과는 대성공으로 보인다. 그전까지 총 5승밖에 못했던 팀이 조쉬가 나가자 마자 10경기에서 9승 1패를 찍었으니까. 그러나 브랜든 제닝스가 시즌 아웃되면서 페이스가 다시 뚝 끊기고 말았고 레지 잭슨을 영입하기도 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최종 성적은 32승 50패.
2.8 2015-16 시즌
드래프트 순위는 8번. 애리조나 대학교의 스몰포워드 스탠리 존슨를 선택했다. 그렉 먼로를 놓아줄 때가 다가온 상황.
시즌 개막후 오랜만에 3연승을 달렸다. 안드레 드루먼드가 인사이드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레지 잭슨도 굉장히 날라다니고 있다. 그러나 팀이 플레이오프 경쟁 대열에 합류하다 핵작전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안드레 드루먼드의 위력이 감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반기를 27승 27패로 마감했고, 어산 일야소바와 브랜든 제닝스를 내주고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받는 딜을 실행했다. 조엘 앤서니와 보호픽을 내주고 마커스 쏜튼과 도나타스 몬티유나스를 트레이드 하여 벤치전력까지 보강하려 했으나, 도나타스 몬티유나스의 건강 문제로 트레이드 자체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현지시각 4월 8일, 워싱턴을 꺾고 7년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동부 7,8번 시드 경쟁끝에 8번 시드가 확정되었고, 그래서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동부 1번시드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매경기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클리블랜드의 공격 리바운드를 많이 허용했고 안드레 드루먼드가 핵작전에 묶인게 뼈아프게 작용하며 0-4 스윕을 당했다.
시즌 종료 후, 현지시각 6월 30일에 필라델피아 76ers의 포인트가드 이시 스미스와 3년 1800만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3 영구 결번
. 윌리엄 데이비슨(William Davidson) : 1974년부터 2009년 타계할 때까지 팀의 구단주로 35년 간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배너를 걸었다.
. 잭 매클로스키(Jack McCloskey) : 1979년부터 1992년까지 팀의 단장으로 1980년대 말 두 차례 우승에 기여한 인물.
1. 천시 빌럽스(Chauncey Billups) : 배드보이스 2기 팀의 리더로 우승 당시 파이널 MVP를 수상한 명 포인트가드.
2. 척 데일리(Chuck Daly) : 배드보이스 1기 시절의 감독. 선수들로부터 보스라고 불렸던 인물. 전설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드림팀의 감독이기도 했다. 2009년 별세.
3. 벤 월러스(Ben Wallace) : 배드보이스 2기 시절때 센터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으며 수차례 올스타에 선정되기까지 한 언드래프티의 이상.
4. 조 듀마스(Joe Dumars) : 단장으로 좀 삽질하기는 하지만[22] 배드보이스 1기 시절에 팀을 위한 공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아울러 신사적인 매너로 이름이 높은 선수. 모범 선수상 이름은 조 듀마스 어워드다.
10. 데니스 로드먼(Dennis Rodman) : 역시 배드 보이스 1기 시절, 골밑을 책임진 선수. NBA의 대표적인 악동이지만, 이 시절에는 정말 얌전한 순둥이였다나. 그리고 지금은 어느 반도 위 쪽 왕국의 친구 덕분에 국내에서도 매우 유명해졌다.
11. 아이재아 토마스(Isiah Thomas) : 배드보이스 1기를 이끌고, 40년 넘는 암흑의 세월을 끝내고 두 차례 우승을 안겨준 영웅.
15. 비니 존슨(Vinnie Johnson) : 배드보이스 1기시절 식스맨이었는데, 백업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득점력을 선보였기때문에 백업치곤 굉장한 인기를 자랑했다.
16. 밥 래니어(Bob Lanier) :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한 시대를 풍미한 명 센터. 1970년대 약체 디트로이트를 이끌던 인물이다.
21. 데이브 빙(Dave Bing) : 래니어와 마찬가지로 약체 디트로이트를 이끌었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가드. 참고로 이분 2010년부터 디트로이트 시장직을 맡고 계신다.
40. 빌 레임비어(Bill Laimbeer) : 반칙의 달인. 배드보이스 1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 WNBA 디트로이트 쇼크(현재는 댈러스로 연고이전)의 감독을 맡아 디트로이트에 3번의 우승을 더 가져다 주었다.
4 기타 이야깃거리
- 루키(잡지) 선정 역대 최고의 피스톤즈 라인업
5 2016-17 시즌 선수단
2016-17 시즌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선수단 | |
감독 | 스탠 밴 건디 |
코치 | 밥 베이어, 말릭 앨런, 찰스 클라스크, 팀 하더웨이 |
가드 | 1.레지 잭슨 5.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 14.이쉬 스미스 19.비노 우드리히 |
포워드 | 7.스탠리 존슨 8.헨리 엘렌슨 13.마커스 모리스 25.레지 불록 30.존 루어 34.토바이어스 해리스 |
센터 | 0.안드레 드루먼드 51.보반 마랴노비치 |
포워드-가드 | 6.대런 힐리아드 9.마이클 비니제이 |
포워드-센터 | 12.애런 베인스 |
- ↑ Auburn Hills. 디트로이트가 아니다. 어번 힐스는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서 50km 이상 북쪽에 위치한 위성도시이다.
- ↑ 여기서 순한 양이란 건 훗날 스퍼스나 불스 등에서 한 또라이짓(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서전 발표를 한다던가)나 문신을 안했다는 거지 코트 위에서는 이때가 오히려 더 터프했다. 젊고 몸매도 호리호리했던 로드맨은 흡사 야생마처럼 뛰어다녔으며 스카티 피펜의 얼굴에 지금도 남아있는 흉터를 낸 것도 이때였다. 사실 이때 배드보이즈의 멤버들 중 더티플레이어가 아니었던 선수는 사실상 조 듀마스, 존 샐리 뿐이었다.
- ↑ NBA 팀 중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래리 버드의 셀틱스,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불스를 모두 꺾은 팀은 피스톤즈밖에 없었다.
- ↑ 참고로 듀마스는 조던이 뽑은, 자신을 가장 잘 막는 선수였는데, 그가 커리어동안 조던에게 허용한 점수는 정규시즌 평균 31.1점, 플레이오프는 30점이었다. 하일라이트는 1988년 4월 3일에 야투성공률 77.8%로 조던이 59점을 올린 것. 이것만 보면 잘막긴 개뿔(...)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규시즌은 몰라도 당시 듀마스와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붙었던 91시즌까지 조던의 플레이오프 득점 평균이 34.6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잘 막은게 맞다. 실제로 불스와 피스톤즈가 가장 치열하게 붙었던 89,90플레이오프에서 조던은 피스톤즈와 붙기전 1,2라운드에서 각각 37.5점, 40.2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피스톤즈와 붙을때는 29.7점, 32.1점으로 추락(?)하고 만다. 물론 이때 듀마스만 막은게 아니라 팀 전체가 다굴이하는 형식으로 막긴 했지만, 지역방어도 안되는 이 시절에 기본적으로 매치업 상대가 잘 막아주지 않으면 조던같은 선수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걸 못한게 93년 파이널에서 불스와 붙은 피닉스로, 선즈는 악착같이 더블/트리플팀을 했지만 매치업 상대들이 조던에게 탈탈 털리다보니 속절없이 평균 41점을 헌납하고 만다. 즉, 아무도 막을 염두조차 못 내던 당시의 조던을 약간이나마 제어가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도 듀마스의 수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올-디펜스 퍼스트팀에 4회, 세컨팀에 1회 뽑혔다.
- ↑ 여담이지만 매너가 더럽기로 유명한 배드 보이즈였음에도 듀마스는 훌륭한 매너의 소유자였으며 실제로 NBA에서 수여하는 "스포츠맨상"의 트로피 이름이 "조 듀마스 트로피"이다. 수비력으로 유명한 선수들 중 더티 플레이어 (존 스탁턴, 데니스 로드맨, 케빈 가넷 등)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특이한 케이스.
- ↑ 사실 이때 로드맨은 불스 시절보다 젊고 빨라서 전 포지션을 막을수 있었다. 불스와 붙을때 주로 막은 건 스카티 피펜이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조던에게 붙었다. 실제로 이때 로드맨과 조던의 신체조건은 거의 비슷했다.
- ↑ 이와 같은 거친 플레이는 94년에 한 차례, 2004년에 또 한 차례 핸드체킹룰(수비수가 공격수를 손으로 견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개정하면서 피지컬한 플레이가 확 줄었다.
- ↑ 배드보이즈 2기라는 명칭은 해외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아마 조직력과 수비력으로 승부하는 언더독의 이미지가 강했고, 여기에 월러스 형제나 천시 빌럽스 등은 나름 강한 인상파였기 때문에 과거 배드보이즈의 인상이 강한 국내팬들이 붙인 이름이지 싶다.
- ↑ 사실 팀을 완성시킨 것은 브라운이었지만 리빌딩의 몫은 릭 칼라일에게 돌아가야 한다. 32승만을 거뒀던 팀을 50승+로 리바운딩시켰고, 팀을 플레이오프 컨텐더로써의 기초를 다진 것도 그의 공이 컸다. 3년만에 팀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보내고도 팽당했던 그는 이후 래리 브라운이 바로 우승하면서(...) 묻혔지만, 2011년 또다른 언더독을 마침내 우승으로 이끌면서 재평가받게 되었다.
- ↑ 공교롭게도 닉스의 전성기 시절 최고의 수비로 '식스맨 상'을 수상했던 찰스 오클리와 같은 대학 출신이다, '버지니아 유니온 (Virginia Union)'.
- ↑ 다만 위에 언급됐듯이 그 정도는 아니다. 1류만 아니었다 뿐이지 충분히 강호였던팀.
- ↑ 일설에 의하면, 해밀턴은 자신이 기르는 개들보다 더 오랫동안 뛸 수 있다고 한다. 흠좀무.
- ↑ 2001-02, 2002-03, 2004-05, 2005-06
- ↑ 샤킬 오닐의 덩크를 정면으로 막아, 오닐을 땅바닥에 구르게 한 적도 있다. 물론 오닐은 파울이라고 주장했다(...)
- ↑ 라시드 월러스는 래리 브라운 밑에서는 상대적으로 얌전했는데, 그 이유는 래리 브라운이 라시드 월러스의 대학 선배였기 때문이라고. 둘 다 농구명문인 노스 캐롤라이나 동문이다.
- ↑ 많이들 간과되는 부분인데, 이 시즌 직전에 데려온 켐벨의 존재도 컸다. 빅벤이 수비력이 뛰어나지만 206, 실제로는 203에 가까워 사이즈의 압박이 컸는데 211의 키에 수비력이 괜찮은 켐벨이 오닐을 잘 괴롭혀줘서 이 작전이 통할수 있었다.
- ↑ 사실 페이튼은 플레이오프 내내 부진했기 때문에 이미 파이널쯤에는 맛이 가서 코비가 포인트가드 지원까지 나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었다.
- ↑ 시카고 불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거쳐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났고.. 2011-12 시즌 종료 후 은퇴.
- ↑ 트레이드 상대로 받아온 선수가 앨런 아이버슨이다. 애초에 샐러리캡 비우기 용도로 데려온 선수라 그 시즌 후 팀을 떠났다.
- ↑ 사실 2013-14 시즌 1라운드 픽이 8번째까지 보호된 채로 샬럿 밥캣츠로 넘어간 상태였다.
- ↑ 13년 드래프트 전체 14픽까지 보호, 14년 드래프트 전체 8픽까지 보호, 15년 드래프트 전체 1픽까지 보호, 16년 드래프트까지 가게될 경우 미보호
- ↑ 좀 애매한게 위에 언급된 "배드보이즈2기"를 만든 것도 듀마스고 이로 인해 "올해의 경영인"상도 받았지만 벤 고든, 조쉬 스미스 등 비효율적인 선수들에게 거액을 주면서 리빌딩에 철저히 실패한 것도 듀마스다. 즉, 단장으로서 눈부신 성과와 처절한 실패가 공존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