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국의 역대 국왕 | ||||
5대 이시품왕 김이시품 | ← | 6대 좌지왕 김질 | → | 7대 취희왕 김희 |
왕호 | 좌지왕(坐知王) / 김질왕(金叱王) / 김토왕(金吐王) |
시호 | 신왕(神王)[1] |
성 | 김(金) |
휘 | 질(叱) / 좌지(坐知) |
생몰년도 | ? ~ 421년 4월 12일 |
재위기간 | 407년 4월 10일 ~ 421년 4월 12일 (14년) |
금관국 6대왕.
1 삼국유사 가락국기
김질(金叱)이라고도 한다. 의회 3년에 즉위해 용녀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여인의 친척들에게 벼슬을 주어 국내가 어지러워 졌다. 그래서 계림국이 치려하자 박원도라는 신하가 간했다. "쇠잔한 풀이 우거져도 새들이 숨을 수 있는 법인데 하물며 사랑이 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터인들 보전하겠습니까? 또 점장이에게 점을 쳐서 해괘(解卦)[2]를 얻었는데, 그 풀이에 이르기를 "소인을 없애면 (군자인) 벗들이 와서 도울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임금 게서는 주역의 괘를 살피십시오" 왕이 옳다고 하며 용녀를 물리쳐 하산도로 귀향보내고, 정치를 고쳐 행해 길이 나라를 다스리며 백성을 편안하게 했다. 15년 동안 다스리다가 영초 2년 신유에 붕했다. 왕비는 도녕 대아간의 딸 복수인데, 아들 취희를 낳았다.
2 소개
수로왕, 구형왕에 이어 기록이 많이 남은 왕. 김질(金叱)본명마저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김토(金吐)[3]라고 불리기도 한다. 손자인 질지왕과 이름이 같지만 한자가 다르다. 질지왕의 이름은 김질(金銍)이다. 김해 김씨 족보에는 신왕(神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왕호인 좌지왕에서 지(知)는 마한어에서 파생된 "님"을 뜻하는 존칭어다.[4] 반로국의 도설지왕의 지(知)도 마찬가지다.
재위 초반, 용녀(傭女)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그 여인의 친인척들에게 벼슬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내부의 반발이 심하고 이를 틈타 신라가 쳐들어 올 준비를 했다. 그때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왕에게 "지금 사랑이 문제임? 나라 다 죽게 생겼다 이놈아! 이게 다 용녀 때문이다!" 라고 하자 왕이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저년 귀양 ㄱㄱ해"라고 명해 용녀는 하산도(荷山島)로 귀양보냈다고 한다.
이사건 이후로 대아간 도녕(道寧)의 딸 복수(福壽)를 아내로 맞아 취희를 낳았고 나라 잘 다스리다 붕[5]했다고 한다.
금관국에서 반로국으로 가야연맹의 구심축이 이동하는 시기가 바로 이시기였다. 전대왕인 이시품왕은 이리저리 치이고, 좌지왕대에는 정치적인 혼란이 이어져 나라가 크게 쇠퇴한 시기이기도 하다.
3 수로집단과 허황옥집단의 충돌?
이 사건은 당시 금관국 내부의 정치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수로가 나라를 건국할때 허황옥 집단의 도움으로 허황옥과 그녀의 부족은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발돋움 할수 있었다. 왕은 수로의 세력에서 배출되었고 왕비들은 허황옥 집단에서 배출되었다.
하지만 좌지왕은 허황옥 집단과 손을 떼고 용녀 집단과 손을 잡았다. 이것은 허황옥 집단에겐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좌지왕의 수로집단과 허황후집단, 그리고 용녀집단과의 권력 다툼끝에 허황옥 집단이 승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용녀 집단과 결혼했을 당시 신라가 움직였다는 기록으로 보아서 신라와의 결혼 동맹이라는 해석도 있다.
비가 오면 땅이 굳는다고 허황옥 집단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이겨내고 지지기반이 겨욱 견고해져서 정치적 입김이 굉장히 강해진다. 사건 이후 허황옥 집단인 도녕의 딸과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손자인 질지왕이 재위하자 마자 세운 절이 왕후사인데 가락국기에는 이를 수로왕과 허황옥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절의 이름부터가 수로왕 보다는 허황옥와 더욱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질지왕은 나라를 안정 시키기 위해서 왕실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허황옥 집단의 권위를 내외에 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이때문에 왕후사를 세움으로써 그것을 나타 낸것이다.
4 기타
곽재식의 소설 역적전에서 용녀 때문에 잠깐 등장한다. 여기서는 허황옥 집단과 신진 용녀 집단의 충돌을 기정 사실화하고 용녀와 허황옥 집단의 유력인사인 허공이라는 인물이 대치 중인 가운데, 허공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제목인 역적전 역시 소설의 주인공인 사가노와 출랑랑이 허공을 죽여서 역적질을 하려고 했다고 자백하는 것이 도입부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