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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주디 갈란드 (Judy Garland) |
본명 | 프랜시스 에설 검 (Frances Ethel Gumm) |
국적 | 미국 |
출생 | 1922년 6월 10일, 미네소타 주 그랜드래피즈 |
사망 | 1969년 6월 22일, 잉글랜드 첼시 |
직업 | 배우, 가수 |
활동 | 1924년 – 1969년 (가수) 1929년 – 1967년 (배우) |
신장 | 151cm |
남편 | 데이비드 로즈 (1941 – 1944) 빈센트 미넬리 (1945 – 1951) 시드니 루프트 (1952 – 1965) 마크 헤론 (1965 – 1967) 미키 딘스 (1969)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 |
이름 | 주디 갈란드 JUDY GARLAND |
분야 | 영화, 음악 |
입성날짜 | 1960년 2월 8일 |
위치 | 영화 : 1715 Vine Street 음악 : 6764 Hollywood Blvd. |
- 상위 항목 : 배우/서구권
목차
1 소개
영원한 도로시
미국 영화 협회(AFI) 선정 가장 위대한 여배우 8위뮤지컬 노래와 댄스의 귀재.
1940~1950년대 전성기를 누린 미국의 배우 겸 가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로 전세계에 알려져 있다. 대중적으로는 오즈의 마법사가 가장 유명하지만,평론가들의 평은 대체로 1954년 스타 탄생을 주디 갈란드의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듯하다.
인기 아역 스타로 시작하여,[1] 오즈의 마법사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얼굴이 그렇게 예쁘거나 섹시한 매력은 없지만 진짜 훌륭한 가창력과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 평을 들었다. 실력에서는 프레드 아스테어 등 당대의 유명 뮤지컬 스타들도 주디야 말로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뮤지컬 스타라고 인정할 정도.
2세 때 소규모 무대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른 것을 시작으로, 3세 때부터 두 언니들과 함께 검 시스터즈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2], 1935년 MGM 오디션에 합격해 전속 연예인으로 지원을 받는다.
흔히들 오즈의 마법사로 스타가 된거라고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원래 또 다른 스타 아역배우이자 절친이었던 미키 루니와 함께 출연한 틴에이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앤디 하디 시리즈 덕분에 인지도도 높았고 돈도 또래 배우들보다 훨씬 많이 벌고 있었으나 원탑 주연으로는 큰 성과를 못 내다가 오즈의 마법사의 대흥행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MGM은 처음 주디를 데려왔을때부터 줄 역할이 없어서 당혹해 했다. 13살이란 나이가 어중간해서 아역을 줄 수도 없고 성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 당시 영화들의 주연 배우들은 하나같이 섹시한 팜므 파탈 아니면 핀업 걸 스타일이었기에 키도 작고 귀여운 얼굴의 주디가 할 역할은 많지 않았다. 앤디 하디 시리즈로 뜨기 전까지는 스튜디오의 파티들에 불려다니며 노래를 하거나 [3] 작은 역할을 맡는 정도였다.
앤디 하디 시리즈와 오즈의 마법사의 성공의 배후에는 스튜디오에서 종용한 약물남용이 있었다. 프로듀서들은 그녀가 촬영중 졸려하면 암페타민을 썼고 촬영이 끝나서 자야하면 수면제를 먹게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그녀가 어린 이미지로 인해 배역을 따지 못했다는 것인데 사실이 아니다. 그건 10대 초반의 일이고 10대 후반 오즈의 마법사의 성공 이후 성인역할로의 전환도 셜리 템플같은 다른 아역배우 스타들보다 빠른 편이었다. 오즈 이후 MGM에서 만드는 거의 모든 뮤지컬 드라마의 주연으로 그녀를 밀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것. 대표적으로 20대 초반에 출연한 빈센테 미넬리 감독의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나[4] 벅스비 버클리[5]가 감독하고 진 켈리와 출연한 For Me and My Gal이 있다. 탁월한 무대 센스와 가창력, 그리고 그걸 받혀주는 연기력으로 인해 커리어 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으나 약물 남용과 본인의 상대적으로 평범한 외모로 인한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다. 원래는 집안의 막내에 검 시스터즈의 귀염둥이로 지내다가 영화사에 들어 가면서 또래의 배우들과 비교 당하게 된것. 다른 MGM배우들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 등등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생긴 열등감이[6] 첫사랑이었던 아티 쇼가 라나 터너와 양다리 걸치다가 터너와 결혼하면서 더욱 심해진다. [7]
가족이라도 서포트를 해줬다면 그나마 나았을텐데 그녀를 아꼈던 아버지는 주디가 10대 중반일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딸의 배역을 위해 딸과 MGM고위 관계자들과의 접대에 적극적인 타이거 맘도 울고 갈 독한 아줌마였다. 그녀의 어머니인 에텔과 그녀의 아버지는 보드빌 공연자 출신인데 에텔은 본인이 이루지 못한 스타가 되는 꿈을 딸에게 투영하면서 무리한 스케줄을 소속사와 협조하며 딸에게 강요한다. 아직 어린데다가 자존감이 낮았던 주디는 이러한 무리한 요구들을 반항하지 못하고 따른다.
또 성인 연기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사람들에게 덜 휘둘렸던건 아니었다. 약물 남용은 계속 되었고 유부남 뮤지션 데이빗 로스와 임신을 한 주디는 남편, 소속사,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반강제로 낙태를 당한다.
빈센테 미넬리와 결혼한 이후에도 신경쇠약으로 여러번 입원하고 자살 시도를 한다. 그와중에도 박스 오피스 성적은 좋아서 MGM은 잦은 스케줄 펑크를 감안하고 그녀에게 계속해서 큰 역할들을 맡긴다. 이즈음 해서 주디는 심한 알코홀릭에 모르핀 남용자가 되었다. 거기에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건강 문제까지 겹쳐서 소속사가 그녀 활동을 잠시 멈추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고로 이때 3개월을 쉬었는데 출산 휴가 제외하면 그녀의 20대에 이렇게 오래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바빴다. 이후에도 MGM과의 히트작은 많았지만 약물과 알콜중독으로 인한 잦은 입원과 자살소동들로 인해 1950년에 소속사와 헤어진다. 사실상 소속사가 버린거나 마찬가지이다. 이게 겨우 28살때까지 벌어진 일이다.
당시 베티 데이비스나 캐서린 헵번이 거대 스튜디오 시스템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 권리를 쟁취한 여걸이라면, 그녀는 거대 상업 시스템의 희생자였던 것.
이후 그녀는 커리어를 티비로 선회하고 빙 크로스비 쇼 같은 인기 티비쇼에 나오거나 뮤지컬 콘서트 투어를 하기 시작한다. 원래 무대에서 시작한 커리어였기에 이런 전환이 순조로웠던것[8] 그리고 스타탄생의 리메이크로 다시 한번 영화계에 부활한다. 오즈의 마법사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지만 스타탄생이 사실상 그녀의 인생 영화로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자체도 엄청난 호평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아카데미 우승자로 점쳤지만 정작 수상자는 그레이스 켈리. 아직도 가장 공평하지 않은 수상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때 주디가 아이를 순산하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아카데미를 올 수 없었다. 그녀가 우승할거라 예상한 텔레비젼 스태프들이 그녀의 병실에 몰려있었는데 그녀가 수상에 실패하자마자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명화인 뉘른베르크 재판에 출연하고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 여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면서 뮤지컬이 아닌 영화에서도 출중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쉽게도 1963년 (41세) 이후 영화 출연은 그만 두었다.
이후 간간히 출연해오던 텔레비젼 출연으로 커리어를 완전히 선회했고 게스트로 출연한 쇼들은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그 외에도 카네기홀, 브로드웨이, 베가스 등등의 뮤지컬 쇼들로 높은 인기를 이어가는데 약물 남용과 알콜 중독은 더 심해진다. 그러던 와중 그녀의 이름을 내건 주디 갈랜드 쇼가 비평가들에게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방영된 시간이 애매해서 시청률이 낮은 바람에 캔슬되었다. 왠만한 사람들은 이즈음에서 커리어가 끝났겠지만 주디 갈랜드는 처음에 그녀의 커리어가 시작된 무대로 돌아갔고 세계 각지에서 콘서트를 연다. 그녀의 콘서트 티켓은 거의 언제나 완매되었고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티비에서도 그녀의 콘서트를 라이브로 방영 해주었다. 자기 이름을 건 쇼는 그만 두었지만 한 두번씩 게스트로서 텔레비젼 쇼에 출연하였다.
1960년대 후반 즈음 해서 원래 굉장한 동안이었던 얼굴이 급속도로 노화하기 시작한다. 1954년에 출연한 스타탄생의 아직도 앳된 얼굴과 비교하면 정말 10년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얼굴이 많이 변했는데 아마도 약물과 스트레스로 인한 노화였을 것이다. 음주 콘서트 하면 다들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생각하겠지만 주디 갈랜드가 원조이다. 1964년 호주에서 연 콘서트는 시작 시간에 1시간이나 늦고서도 정줄을 놓은 진행을 간간히 보여 그녀의 이미지가 악화되는데 일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콘서트 계약이 잇달았던 이유는 그래도 일단 무대에 서면 노래를 잘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딸인 라이자 미넬리도 어머니는 평소에 아무리 정신이 나간것 같아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이때 이미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 후였고 마지막으로 미키 딘스와 1969년에 결혼한다. 마지막 남편이 약물을 중단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이전 남편들도 그러했듯이 실패.
결국 1969년에 약물 과다로 사망. 나이는 겨우 47세였다. 위에 나열한 모든 일이 영화 데뷔 이후 겨우 30 여년에 가까운 일에 일어난 일인것. 여러모로 안타까운 죽음이다. 어머니의 과한 욕심+소속사의 혹사와 학대+주변환경에 의한 낮은 자존감과 애정결핍으로 인한 비극이라고 하겠다. 할리우드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에 가장 화려한 뮤지컬 영화들에 나왔던 주디 갈란드였지만 그시절 가장 큰 희생자를 꼽자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사람 역시 주디 갈란드이다.
2 게이들이 좋아합니다
대표적인 게이들의 아이콘이지만, 어릴 때부터 게이들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아이러니한 여인.
게이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당시 그녀가 뮤지컬계의 뛰어난 아티스트였이기 때문. [9]
미국에선 뮤지컬은 게이, 유대인만 본다고 할정도로 게이 스테레오이다. 그러니 뮤덕인 게이들이 주디를 칭송하는 것도 당연.
헌데, 루머에 의하면 어릴 때 아버지의 동성애로 동네에서 쫒겨나기도 했으며, 그녀의 연인이었고 당대의 최고 미남 스타 타이런 파워는 남자와 바람나서 그녀를 차 버렸다. 아역 이미지에 머물던[10] 그녀의 재능을 성숙한 역할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한 유명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라이자 미넬리) 이제 안정을 되찾나 했더니만, 그 남편 빈센트마저 동성애 행각으로 이혼을 하게 된다. 일설에서는 예정보다 일찍 집에 와 보니 남편이 미남 청년과 헥헥대고 있더라고.
그 후 2번 더 이혼하고 만난 네번째 남편은 자신의 사위인 라이자 미넬리의 남편과 그렇고 그런 일로 이혼하게 된다. 즉, 남편과 사위가 붕가붕가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일이 생긴 것. 이마저도 뒷소문으로는 두 눈으로 남편과 사위의 성교를 목격했다는 말이 돌 정도이다.
- ↑ 그녀의 부모가 연예계 종사자였다.어머니는 당시로는 드물던 대본 작가로 자녀들을 유명한 스타로 만들 꿈으로 어릴 때부터 세 자매를 스테이지 가수로 데뷔시켰다. 그 중 가장 재능이 있는 막내 주디 갈란드에게 기대를 한 것은 당연. 자녀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는 평을 받은 어머니인데 아마 후술할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 ↑ 이때 이미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세 자매중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 ↑ 이때 프로듀서들과 감독들에게 성접대를 여러번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도 엄마가 주선해서. 주디 갈란드의 엄마는 딸의 성공을 위해서는 약물에 성접대까지 종용하는 무서운 여자였다. 하지만 그전에 아무리 부모가 권했다해도, 미성년자의 성접대를 받았던 감독들과 당시 헐리우드 시스템이 더 큰 충격. 안타깝지만 마돈나와 케샤의 예와 같이 현재의 후배들에게도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 그 유명한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가 나온다
- ↑ 전설적인 안무가이자 감독. 미국 50대 이상은 By a Waterfall 안무감독 이라고 하면 다 아는 사람이다
- ↑ 당시 스튜디오의 별명이 못생긴 아기오리 였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컸을것이다
- ↑ 라나 터너는 안그래도 이전에 앤디 하디 시리즈에서 미키 루니의 첫사랑 역으로 나왔었고 주연인 갈란드는 루니를 짝사랑 하는 역할이었다.
- ↑ 50년대부터 텔레비젼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극장의 수입이 줄어들었고 이렇게 트랜지션을 이어가지 못한 대다수 배우들은 나이먹고 배역이 떨어진 후 쓸쓸히 은퇴해야 했다. 비비안 리같은 원래 연극배우 출신 배우들은 사실 극장이 본업이었기에 별 타격이 없었지만 에바 가드너같은 연기력이 애매한 영화배우들은 나이먹고 그대로 은퇴수순
- ↑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같은 이유로 게이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 ↑ 어릴 때부터 활동해오기도 했고, 외모도 성숙한 미인형이 아니라 귀여운 소녀풍에 체구도 150cm에 미성년 몸매였다. 오즈의 마법사 때에도 원래 계획보다 나이가 많은 주디가 캐스팅된 것도 그녀의 동안 얼굴과 작은 체구의 영향이 있다. 그래도 오디션 경쟁자들보다 더 어려보이기 위해 가슴을 붕대로 감아 누르기도 한 아픈 일화도 했다. 이미 10대 후반에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마른 체형도 아니어서 가슴을 붕대로 감아야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