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페 타르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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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Giuseppe Tartini
1692~1770

1 설명

바로크 시대 남부 유럽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 교육자이며 작곡가.

슬로베니아 소재의 피란(Piran) 시에서 태어났으며 당대의 유명한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물론 파가니니가 비르투오조 바이올린 기교의 꽃을 피웠다고 하기는 해도, 그 이전까지의 바이올린이 기교를 무시했다고 생각해도 곤란하다. 타르티니 외에도 로카텔리비발디 역시 기교를 중시했던 인물들이었다.[1] 작곡가로서도 백여 곡 이상 많은 곡들을 썼지만, 오늘날 어지간한 클래식덕후가 아닌 이상 원 히트 원더 정도로 이해되어도 감지덕지할 정도로 묻혔다.(…)

타르티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최초 소유자로도 유명하며, 1715년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에게 바이올린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최고 전성기가 1700~1720년임을 고려하면, 그는 오늘날 "부르는 게 값인" 귀하신 신기(神器)를 소유한 최초의 인물이 되는 것.

타르티니의 테크닉은 어쨌든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정도로 뛰어나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느니, "타르티니의 왼손은 선천적으로 육손이었다" 느니 하는 이런저런 전설들이 백여 년쯤 후까지 떠돌아다녔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바이올린의 귀재 이미지는 훗날 파가니니가 고스란히 가져가게 되었고(…) 그것이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의 작품들로는 신포니아와 트리오 소나타, 약간의 첼로 곡들 외에도 대량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숱한 바이올린 소나타들이 있다. 그러나 역시 그 중에서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이하에 소개할 소나타 "악마의 트릴" 이 있겠다.

2 악마의 트릴

바이올린 소나타 G minor, Op.1 No.6 B.g:5 "Il Trillo del Diavolo"

▲ 바이올린에 이차크 펄만(Itzhak Perlman). 이거 듣는다고 뭐 악마에게 빙의되거나 그런 거 없으니까 안심하고 듣자.

▲ 바이올린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피아노에 블라디미르 얌폴스키(Vladimir Yampol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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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작, "타르티니의 꿈"(Tartini's Dream), 화가는 Louis-Léopold Boilly.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때는 1713년의 어느 날 밤이었다... 잠들어 있던 나는 문득 눈을 떴고, 웬 악마가 내 곁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났다. 악마는 내게 거래를 제안했고, 나는 악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나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내 영혼을 팔았고, 악마에게 내 바이올린을 건넸다. 그리고 이럴 수가! ...악마는 너무나도 황홀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신들린 듯한 기교로 연주해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꿈 속에서 들었던 선율이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악보에다 되는 대로 그 악상을 옮겨적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내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Il Trillo del Diavolo)이다... 하지만 나는 꿈 속에서 들었던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대충 각색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작품이다. 어쩌면 이런 앞뒤 스토리가 있기에 이 곡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지니고 전해졌을 수도 있고... 하지만 사실 이야기를 배제하더라도 곡 자체가 워낙에 좋은 데다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도 꽤나 도전적이어서 요즘도 자주 연주되고 있다. 바이올린에서 한가닥 한다는 인물들과 유명 작곡가들, 편곡자들이 많이 손대 놓았기도 해서, 3악장 후반부의 카덴차는 아우어나 크라이슬러 등의 여러 버전들이 있다.

전형적인 빠름-느림-빠름 3악장 형태에서 약간 변형된 3악장을 갖추고 있으며, 3악장 후반부에는 세 차례의 "악마의 트릴" 이 등장한 후 본격적인 초절기교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카덴차가 존재한다.

  • 1악장 : 라르게토 아페투오조
잔잔한 반주 위에서 다소 우울하고 차분하지만 깊고 유려한 바이올린 선율이 등장한다. 두도막 형식. 바로크 시대의 주법에 따라 건조하고 침착하게 연주할 수도 있지만, 비브라토를 팍팍 섞고 감정표현도 마구 넣어주면 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 2악장 : 알레그로 (템포 주스토)
빠른 악장에서 16분음표가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그 음표들 중 절반은 꾸밈음과 트릴을 매달고 밀려온다.(…) 역시 두도막 형식. 듣기에는 정열적이고 아름답지만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정말 일말의 쉴 새도 없다. 속도는 4분의 2박, 4분음표=88. 템포 주스토이므로 정확한 알레그로 박자를 지켜 연주해야 한다.
  • 3악장 : 안단테 - 알레그로
서두에서 다시 바이올린이 7마디 동안 유려한 선율을 읊조린 후, 이제 본격적으로 "악마의 트릴" 이 시작된다.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어서 갑자기 빠르고 격렬한 패시지로 돌입하며, 스타카토가 날카롭게 튀기고 3화음 더블스톱이 거칠게 긁어대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낮은 음역에서 한바탕 휘몰아치고 난 후, 분위기가 잠시 잦아들 무렵 바이올린이 악마의 트릴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더블스톱과 트릴이 동시에 엮여지는, 현란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괴랄한(…) 기교를 요구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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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Alard의 1864년 발행된 악보의 일부이다.)

트릴 이후에는 짤막하게 다시 안단테로 중간 마무리를 짓다가, 다시 분위기가 바뀌어서 빠르고 격렬한 패시지로 되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트릴이 세 차례 나온 이후, 바이올리니스트는 이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카덴차를 선보이게 된다. 카덴차는 타르티니가 지시한 2마디짜리 패시지를 연주하는 것으로 끝나며, 아다지오로 전환되어 2마디짜리 코다와 함께 깊은 여운을 주며 곡이 끝난다.
사실 막상 들어보면, 온갖 현란한 초절기교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작곡이 판을 치는 현대의 입장에서는 "악마의 트릴" 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뻘쭘할 수도 있다.[2] 어렵다는 것도 연주자에게나 해당되지, 청취자의 입장에서는 1700년대 초의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 탓에 "이게 어디가 어렵다는 거지?" 할 정도로, 강렬한 음향효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도 한계점. 이 점을 들어서 어느 클래식 동호인은 "이 곡을 듣고 나서 '더 자극적이고 강한 기교를 듣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마 악마의 속삭임일 것" 이라고 평론하기도 했다.
  1. 비발디는 그래도 고아원 어린이들을 위해 곡을 쉽게 쓰는 편이었지만, 피젠델이나 안나 마리아 등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헌정한 작품들을 보면 그 역시 테크닉에 힘을 많이 주었음을 알 수 있다.
  2. 물론 그렇다고 현대에 와서 이 곡이 "쉬워졌다" 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단지 "끔찍하게 어려운 바이올린 곡" 의 목록에서 많이 내려왔다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