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파가니니

(파가니니에서 넘어옴)

250px-NiccoloPaganini.jpeg

사진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니콜로 파가니니의 초상, 바이올린 연주자'(Portrait de Niccolo Paganini, violoniste)이다. - 출처 네이버 미술 정보

▲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No.24. 연주는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낭만주의를 예고했으며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비르투오소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19세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

Niccolo Paganini
1782년 10월 27일 ~ 1840년 5월 27일

1 개요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군림했던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연주자이자 작곡가이자 지휘자.

이탈리아제노바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몇개월이면 스승을 능가하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유명해졌고 재능을 눈치챈 아버지에 의해 모차르트처럼 하루에 10시간씩 혹독한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연주하고 먹고 싸고 자고의 반복.

작곡가로서는 연주가로서만큼은 재능이 있지 않았으며 음악적으로 연주실력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그의 음악 특유의 강렬한 비르투오소적인 인상으로 인해서 지금도 그의 음악은 많이 연주되고 있다.

리스트, 브람스, 망고레등 여러 유명한 작곡가들이 이 사람한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리스트는 젊은 시절 직접 그의 연주를 듣고 나는 죽어도 저 사람의 연주실력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나 저 사람이 바이올린을 한다면 나는 피아노로서 파가니니가 되겠다라고 다짐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그리고 그 다짐은 후세에 많은 피아노 꿈나무들을 좌절시키는데.... 하여간 듣는 이를 거품물고 쓰러지게 만들 만한 기교로는 피에트로 로카텔리 이후 참 오랜만에 나타난 세기적 천재였다.

그의 연주는 기교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마력이 있었다고 하며 그를 좋지 않게 보던 사람들도 그의 연주를 듣기만 하면 뿅가죽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그의 연주를 들을때마다 기절(...)했다고 한다. 심지어 관객들이 집단으로 히스테리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하니 파가니니가 말년에 루머에 시달린 데에 기교도 기교지만 이 점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쇼맨십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바이올린을 G현만으로 연주하거나 활대신 나뭇가지를 써서 연주하고 개, 고양이, 당나귀[1]등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주에 기교뿐이고 진지한 마음이 없다는 식의 혹평을 받기도.

도박에 손을 댔다가 빚을 져서 가지고 있던 바이올린을 처분했는데 한 사람이 파가니니 이외의 사람이 연주하지 않게 한다는 조건으로 소리가 매우 커서 '대포'라 불리는[2] 과르네리를 넘겼고, 파가니니 사후에도 그 약속은 지켜져서 지금도 이 바이올린은 제노바시립박물관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개의 악보도 남긴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기타를 공식적으로 남들앞에서 연주한 적은 없었는데, 바이올린처럼 압도적인 연주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의 기타곡은 크게 자신을 후원해줬던 귀부인들을 위한 중간정도의 난이도를 가진 곡과 프로들을 위한 난곡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음악도 적극적으로 기타용으로 편곡되고 있다.

공연을 자주 나가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무리한 나머지 건강이 악화되어서 죽을 날을 앞당기게 되었으며 거기에 젊어서 여자를 여럿 후리고 다닌 나머지 매독 크리티컬까지..

말년에는 실력이 하도 사기적인 나머지 악마와 계약했다느니 하는 루머에 시달렸다.[3] 그런데 이런 그도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젊은 시절 마구잡이로 살던 그가 어느 여자인지도 모르던 이와 관계하여 낳은 아들이었다는 것. 늘그막에 이 아들을 되찾아 극진히 아껴주었고 10대 후반인 아들에게 마음껏 살라면서 좀 더 너에게 잘대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자주 말해줬다고 한다. 아들을 맡으면서 막장 인생을 좀 자제해서인지 제법 많은 재산을 남겨줬다.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은 아버지를 고향에 있는 교회무덤에 묻으려 했으나 악마와 계약하여 안된다고 거부당했으며 결국 고향에 묻힐 수 있게 되기까지 아들은 엄청 로비한 끝에 1886년, 무려 46년이 지나서야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그런 소문을 퍼트렸다는 말도 있는데 바이올린에 무슨 수작을 했기에 그런 소리가 나느냐? 라며 시시콜콜 캐묻는 주교에게 짜증이 나서 내 바이올린엔 악마가 있소! 라고 했다가 이런 참사가.. 또다른 설로는 당시에 기교가 만만찮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많아서 크게 두각을 나타낼 수 없자 파우스트를 보고 악마를 컨셉으로 잡았다는 말이 있다. 또는 이미 주제페 타르티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기교를 얻었다는 소문이 퍼졌던 걸 보면 그런 스토리를 자신의 마케팅에 적절히 활용했을 수도 있다.

그를 다룬 영화는 여럿 있는데 심지어 그가 악령으로 되살아나 사람을 죽인다는 영화도 있다. 악령 파가니니 (Paganini Horror/1989)라는 영화로 추억의 영화 라스트 콘서트를 감독한 루이지 코지가 감독하고 할로윈 시리즈에서 단골로 나온 배우 도널드 플레즌스가 나온 이탈리아 영화이다. 영화 수준은 그냥 그런 졸작. 파가니니가 사탄을 찬양하는 곡을 남겼다든지 고인모독? 급 소재가 나온다.

2013년에 그를 다룬 독일,이탈리아 합작 영화 파가니니: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Paganini: The Devil's Violinist)가 개봉했다. 감독은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호러영화 캔디맨으로 알려진 버너드 로즈. 주연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데이빗 가렛이 담당했다. 연기력은 꽤 아쉽지만 관람객들 평가에 의하면 서프라이즈재연 배우 수준이라 카더라 프로배우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고 바이올린 연주만은 파가니니의 실력을 제대로 재연하여 영화에서 밥값은 충분히 했다.#한줄로 연주했던 일화를 재연해냈다!연주회가 아니라 그냥 영화여서 그런지 좀 성의없이 친 것 같긴 하다

자신이 만들어낸 연주기법을 비밀로 붙였으며, 자신의 음악을 악보로 남기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데다가 제자도 '시보리' 한명뿐이라서 그의 기법중 상당수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8살때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써놓고 자기도 어려워서(..) 연주를 못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악보를 써놨는데 왜 연주하지 못하니

제노바 태생의 천재 음악가
니콜로 파가니니
여기에 영면하다
- 의외로 평범한 묘비명

2 음악 목록

  • 24개의 카프리스(caprice) 1~24[4]
    • 카프리스 24번 A단조[5]
  • 레 스트레게레
  • 바이올린 소나타, 협주곡
  • 오월의 신부
  • 바이올린 협주곡 1번(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라 캄파넬라
  • 베니스의 카니발 변주곡의 형태이다.

추가바람

3 여담

  •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장미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 신의 퀴즈 시즌 1에서 나온 대사에 따르면 '앨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이 있었고[6], 오히려 이 때문에 손가락이 남들과는 다르게 움직여서 그 특유의 엄청난 기교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31년에 발간된 파가니니의 주치의 베나티의 회고록에 의하면, 파가니니의 일반적인 손의 크기보다 월등히 크거나 한건 아니지만, 손의 각 부위가 상당히 잘 늘어나서 왼손의 포지션을 바꾸지 않은 채로 손가락의 첫번째 마디를 구부릴 수 있었고, 거의 두배 가까운 길이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고 한다. 베타니는 파가니니의 음악이 기본적으로 타고난 신체를 바탕으로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의 결과라고 말했다.[7] 앨러스-단로스 증후군에대해서는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수록되어있으므로,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이나, 학자들은 거인병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마르판 증후군일 가능성도 염두해두고 있다. 혹은 둘 다 일지도 구글에 의하면 파가니니의 공식 키는 5' 5" (약 167cm)이나, 묘사에 의하면 키가 일반인보다 월등히 큰 것으로 나온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19세기판 위너인듯.
  • DIAVOLO는 음악 자체가 파가니니의 곡을 어레인지했고, 제목의 유래도 "악마(Diavolo)의 바이올리니스트"란 파가니니의 별명에서 왔다.
  1. 이 소리를 흉내냈다가 사망 플래그를 세운 적도 있었다. 당나귀소리를 선보인 마을이 하필이면 주변 마을로부터 멍청한 당나귀라는 식의 지역드립을 수십년간 들어온 곳인지라 파가니니를 린치하러 달려들었고 파가니니는 친구가 구해줄 때까지 높은 곳에서 반나절을 있었어야 했다고.
  2. 파가니니는 음색은 아름다웠지만 음량이 작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 특징은 파가니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3. 웃긴 건 그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프란츠 리스트마저도 루머를 퍼트리는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4.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입을 모아서 이런 어려운 곡을 어떻게 연주하냐(...)고 했을 정도. 지금도 콩쿨서 많이 쓰이는데 24번이 제일 유명하다.
  5. 후대 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편곡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브람스, 루토스와브스키, 리스트 등.
  6. 증상에 대해서는 신의 퀴즈/에피소드 항목의 1.7 참조.
  7. Violist.com의 토론방에 올라온 내용. 한 유저가 베타니의 파가니니에 대한 언급중 Sideway motion(손가락을 옆으로 움직이는 모양)기법에 대한 질문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