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인 『예기』에 환관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엄윤(閹尹)이라는 직책이 나오며, 사기에는 진나라의 환관 관직으로 궁중의 어차와 가마를 관리하는 중거부령(中車府令), 옥새를 관리하고 황제의 칙서를 담당하는 부새령(符璽令), 대궐의 중문을 책임지는 낭중령(郞中令) 등이 나온다. 중문은 일반 신하들은 드나들 수 없는 황제의 생활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이 문의 책임자가 곧 환관의 우두머리였다. 조고는 진시황제 치하에서 중거부령과 부새령을 겸하다가 2세 황제 호해 치하에서 낭중령이 되었다.
이러한 직책명으로 미루어보아 진나라 때 이미 상세한 환관 조직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의 환관 조직에 대한 가장 확실한 기록은 명나라 때 환관 유약우가 궁궐 내부의 실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작중지(酌中志)』이다. 이 책에서 명나라의 환관 조직을 매우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하는 작중지에 근거한 대략적인 조직.
2 조직구조
2.1 24아문(衙門)
12감, 4사, 8국을 합쳐서 24아문이라 부른다. 궁궐의 일을 맡는 정규조직. 주요한 엄무는 12감이 맡고, 나머지 사소한 일들은 4사와 8국이 맡았다. 12감의 품계가 4사와 8국과 비교해서 한단계 높았다.
2.1.1 12감(監)
우두머리를 태감(太監)이라고 부른다.
- 사례감 : 환관을 감독 총괄하는 기관. 대개 사례감의 장이 환관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환관 정치의 중심.
- 내관감 : 궁궐과 왕실의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담당하며, 궁궐에서 사용하는 구리, 놋쇠, 철, 나무 등의 재료로 만든 기구를 공급하고 관리한다.
- 어용감 : 황제가 쓰는 가구나 오락 기구를 맡는다.
- 사설감 : 황제가 순행할 때 필요한 천막이나 우산 등의 용품을 맡는다.
- 어마감 : 황제가 기르는 말이나 코끼리를 관리한다.
- 신궁감 : 신궁(神宮), 즉 역대 황제의 신위를 모신 태묘를 관리한다.
- 상선감 : 황제의 수라와 연회, 제사 등에 쓰이는 음식을 맡는다.
- 상보감 : 황제가 사용하는 도장을 담당한다. 1년에 쓰이는 도장이 약 3만개이니 이곳의 일도 적지 않다.
- 인수감 : 사령장이나 공문서를 보관한다.
- 직전감 : 편전의 청소를 담당한다.
- 상의감 : 황제의 의복을 맡는다.
- 도지감 : 황제가 바깥에 행차할 때, 그곳의 도로를 정비하고 경계한다.
2.1.2 4사(司)
- 석신사 : 궁정에서 사용하는 땔나무를 취급하고, 도랑이나 하수구를 관리하다.
- 종고사 : 황제의 외정 행차 시에 음악을 연주하고 길을 안내한다.
- 보초사 : 환관의 화장실에 쓰이는 휴지를 만든다.
- 혼당사 : 환관들의 전용 목욕탕.
2.1.3 8국(局)
- 병장국 : 무기를 제조한다.
- 완의궁 : 궁궐에서 일하는 자들이 말년을 보낸다.
- 은작국 : 은으로 된 하사품을 만든다.
- 건모국 : 환관의 모자를 만든다.
- 침공국 : 환관의 관복을 만든다.
- 내직염국 : 비단을 염색한다.
- 주작면국 : 환관과 여관들의 술과 밀가루를 만든다.
- 사원국 : 채소를 재배한다.
2.2 경사방(敬事房)
황제의 규방 문제를 전담한다. 황제가 선택한 후궁을 황제의 침실로 보내는 일을 했는데, 나체[1]의 후궁을 새털로 만든 털옷 하나로 싸서 업고 침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2.3 동창(東廠)
일반적으로 환관의 2인자인 사례감의 병필태감이 지휘했다. 금의위 등의 황제 친위 조직과 연계하여 관리와 신하들의 비리를 캐내고 역모 혐의를 잡아내는 일을 하며, 대신이라고 해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원래는 정보를 캐내고 용의자를 잡아서 금의위에 넘기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금의위와는 동급의 관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금의위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그 결과 처음에는 신하들을 내사하고 감찰하는 임무를 맡은 비밀경찰조직이었지만 왕조 말기에는 직접 감옥까지 갖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2.4 서창(西廠)
명나라 헌종 성화제 때 환관 왕직(汪直)이 동창을 본떠서 만든 기관. 본래 동창이 너무 비대해져서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자, 헌종이 왕직을 시켜서 동창을 견제하고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왕직은 서창을 사유화하여 자신의 개인 정보기관으로 전락시켰고 권력을 남용했으며, 마침내 분노한 황제와 동창의 반격에 서창은 폐쇄되고 왕직은 변방으로 쫓겨났다.
2.5 내창(內廠)
명나라 무종 정덕제 때 환관 유근(劉瑾)이 동창을 본떠서 만든 기관. 무종이 정사를 멀리하고 놀기만 하자 권력을 잡은 유근은 내창을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키웠다. 하지만 그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2.6 내서당(內書堂)
명나라 때 있었던 환관을 가르치는 학교.
본래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환관이 글을 배우는 것조차도 금지했으나, 환관이 글조차 모르면 일을 시키기 불편했기 때문에 이 명령은 유명무실해졌고 급기야 명나라 5대 선종 선덕제 시대에는 내서당이 생겨났다.
내서당은 10세를 전후해서 입학했으며, 정원은 300명 이하였다.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은 우선 환관들의 규정에 해당하는 내령, 그리고 천자문, 효경, 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배웠다. 대표적인 시나 중국 백성들의 성씨에 대해서도 배웠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벌을 받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환관 임용시에 좋은 자리에 배치되었다.
명나라 때는 환관의 수가 10만에 육박했기 때문에 도저히 내서당에서 모든 환관을 가르칠 수 없었고, 내서당 출신 환관들은 정도(正途)라고 불리면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조정 관료로 치면 과거에 합격한 정도의 대우를 받았고, 일반 환관들은 비록 연장자라 해도 내서당 출신 환관을 보면 고개를 숙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