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조 문서: 경제학
경제학사(사상) | ||||||||||||||||||||||||||||||||||||||||||||||||||||||||||||||||||||||||||||||||||||||||||||||||||
(~ 1776년) | (1776년 ~ 1870년대) | (1870년대 이후(신고전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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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는 뒷 시기와의 단절, ●색은 주류 학파 |
목차
Physiocracy
개요
18세기 중엽에 케네, 미라보, 튀라고 등 프랑스 고전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사상으로서 쉽게 말해서 중상주의와는 다르게 부의 원천은 오직 토지에서만 발생하며 그렇기 때문에 농업만이 생산적인 노동이라는 생각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농부들의 세금을 경감시켜 농업 생산의 촉진시켜야 그 당시 잦은 전쟁으로 인한 세금 부족을 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거래에서 부가 창출된다고 했던 중상주의 반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호무역, 국가 개입 위주의 정책으로 부를 축적하려 했던 중상주의와는 달리 농업의 생산 촉진을 위해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다.
대표적인 이론서는 프랑수아 케네의 저서 《경제표》인데 여기서 그는 국민을 생산(농민), 소비(귀족), 비생산계급(시민)으로 나누어 농산물이 세 계급사이에서 어떻게 순환하는지 밝혀내는 작업을 하였는데 이는 최초로 경제의 순환을 모델화한 시도로 평가된다. 또한 이 책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 직전(앙시앵 레짐)의 경제적 곤궁과 인구문제 해결을 시도하였는데 그 핵심은 '부는 오직 토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의 주인인 지주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자!'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그의 주장은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프랑스는 세수부족으로 삼부회를 소집한 후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유방임주의'라는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 이론은 고전 경제학 성립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토지가 부의 원천이라는 부분은 고전파에서 노동이 부의 원천이라는 것으로 수정되어 받아 들여졌다. 실제로 애덤 스미스는 프랑스를 여행하는 도중에 케네 등 중농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했다는 기록이 있고 《국부론》에서 케네를 언급하기도 한다. 특히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정없이 까버린 중상주의와 달리 중농주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서술을 하기도 했다(물론 그렇다고 중농주의가 무조건 옳다고 한 건 아니지만).
흔히 실학자라고 불리는 조선 후기의 비주류 성리학자들 역시 이런 주장과 유사한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고 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런 입장에서 보는 대표적인 중농주의 학자로는 정약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