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 옷 하나는 끝장나게 잘 입었다. | 마피아 보스의 포스가 풍기는 푸치니 선생. 중년기. |
노년기에는 조금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
Giacomo Puccini 1858년 12월 22일 ~ 1924년 11월 29일 이탈리아의 작곡가.
1 생애
이탈리아 루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음악학교의 교사였지만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이후 앙제로니에게서 음악을 배우고 루카의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어린나이에서 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오페라 작곡가로 살것을 결심하여 1880년, 마르가리타 왕비의 후원등을 받아 밀라노의 음악학교에 입학해 폰키엘리 밑에서 배웠다.
밀라노 음악원 재학중 폰키엘리의 권유로 창작 오페라 공모에 처녀작 "빌리"(Le Villi)를 냈으나 당선에 실패했다. 그러나 1884년, 이탈리아 오페라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리코르디 출판사에서 "빌리"의 악보를 출판하고 공연을 후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푸치니의 본격적인 오페라 경력이 시작되었다.
1896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된 "라보엠"(La Bohème)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00년에는 로마에서 "토스카"(Tosca)가 초연되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을 작곡하던중 큰 교통사고를 당해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1904년 "나비부인"을 밀라노에서 초연하여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나비부인" 이후로 푸치니의 오페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음악적으로는 "라보엠","토스카","나비부인"에 미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진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1907년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적 소재로 작곡한 "서부의 처녀들"이 1910년에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1918년에는 전혀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 3연작 "외투", "수녀 안젤리카", "쟈니 스키키"가 무대에 올랐다.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진게 아니냐는 평을 받은 푸치니는 중국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투란도트"를 접하자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음악의 경지로 들어가 푸치니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준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했다. 하지만 이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암이 겹쳐 결국 "투란도트"의 완성을 거의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으며 미완성된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후배인 알파노가 완성하여 1926년, 밀라노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둔다. 이를 본 토스카나니는 투란도트는 어디까지나 푸치니의 곡이라면서 이 지휘 당시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지휘했었다. 덕분에 알파노는 뭐씹는 기분으로 지켜봤다고.
2 주요 특징
- 푸치니는 로시니에서 베르디로 이어지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계보를 잇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낭만주의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를 완결하고 현대 이탈리아 오페라로 나아가는 길을 연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스스로 "극장을 위해 작곡할것을 신께 명받았다"라고 할 정도로 위대한 오페라들을 남긴 그는 자칫 성악에 치중하기가 쉬웠던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유려한 관현악법의 구사로 이전 작곡가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였다.
- 이런 푸치니는 당대 다른 음악가들의 경향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방식으로 녹여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리하르트 바그너의 "유도동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활용했다던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 심지어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의 영향까지도 일부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 또한 그의 오페라에서는 인상적인 여성 주인공들의 묘사가 탁월하게 나타난다. "라보엠"의 미미, "토스카"의 토스카,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쵸쵸상), "수녀 안젤리카"의 안젤리카, 그리고 마지막 오페라인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공주까지 그의 오페라는 이런 인상적 여성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선율로 청중들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런덕에 위대한 여성 오페라 가수들에게 푸치니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꼭 거쳐가야할 필수 코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비부인", "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처럼 동양이나 미국 서부같은 이국적 소재들을 적극 활용했다는 특징도 있다.
- 베르디 시대때부터 시작된 가사와 극적 표현의 강조를 그대로 이어서 심화시켰는데, 이는 가수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3 사생활, 그 외
-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패션센스에 신경을 쓴 간지남을 지향한 측면도 있고 "나비부인"을 작곡할 당시에는 여주인공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며 일본인 소프라노를 집에 끌어들여서 부인과 다투기도 하는등 바람기(...)도 좀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오늘날로 치면 얼리어답터의 면모도 있었던지 당대에 대중화가 되지는 않았던 자동차를 일찌감치 구입해서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사고를 당해서 결국 교통사고가 푸치니의 남은 생애에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었다.
- 거위 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암으로 사망한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1] 하지만 푸치니의 사망 원인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아닌 담배. 실제로 푸치니는 지독한 골초로 유명했고,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담배가 아니었으면, 투란도트가 미완성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 - 신기하게도 조지 해리슨과 기일이 똑같다.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는 오랫동안 교류를 해왔는데 이와 연관된 일화가 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매우 지독하게 다툰 뒤 한동안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끊고 지내게 되었다. 이후 크리스마스가 되었는데 푸치니가 지인들에게 빵을 선물로 보내다가 실수로 토스카니니에게도 빵을 보내게 되었다. 이 때문에 푸치니가 따로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음'이란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토스카니니의 답장은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음'이라고..... 이후 두 사람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럭저럭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4 푸치니의 작품들
4.1 오페라
4.2 관현악
- 전주곡 E단조 (1876)
- 아다지에토 F장조(1881~3)
- 교향적 전주곡 A장조 Op.2 (1882)
- 교향적 카프리치오 Op.3(1883)
4.3 실내악
- 현악 4중주 D장조(1881~3)
- 현악 4중주를 위한 3개의 미뉴에트(1881)
- 현악 4중주 C♯단조 '국화' (1890)
4.4 피아노
- 작은 왈츠(1894)
- 피아노 소품(1916)
4.5 합창
- 칸타타 아리따운 이탈리아의 아이들(1877)
- 미사 글로리아(1880)
- 레퀴엠(1905)
4.6 가곡
- 태양과 사랑(1883)
- 바다와 땅(1902)
- 영혼의 노래(1904)
- 황금같은 꿈(1912)
- 로마 송가(1919)
- ↑ 언젠가 거위 고기를 먹다가 잔뼈가 식도를 긁으면서 낸 상처가 악성 종양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것. 조류의 뼈는 속이 비어 있어 부러지면 굉장히 날카로우니…. 당시 의학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정말 그게 발병 원인이었는지 확정할 수는 없어도, 이탈리아인인 만큼 식도에 난 상처가 계속 매운 맛 등으로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영 못 믿을 말도 아니다.
- ↑ 단막극 셋을 하나로 묶은 연작으로,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순서대로 지옥, 연옥, 천국편을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로 세 작품의 괴리감이 심해 같이 연주되는 일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