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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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NC 다이노스의 코치.

NC 다이노스 No.76
지연규(池連奎 / Yeun-gyu Ji)
생년월일1969년 8월 15일
출생지충청남도 태안군
출신학교북일고 - 동아대학교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2년 빙그레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빙그레-한화 이글스(1992~1998, 2001 ~ 2006)
지도자대전고등학교 코치(1997 ~ 1998)
한화 이글스 플레잉코치(2005)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2007 ~ 2008)
북일고등학교 투수코치(2008 ~ 2011)
NC 다이노스 스카우트(2011)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2011 ~ 2012)
NC 다이노스 2군 투수코치(2012 ~ 현재)

1 소개

한화 이글스 투수, 플레잉코치, 천안북일고 코치. 現 NC 다이노스 2군 투수코치. 등번호는 26번 - 11번 - 51번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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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빙그레 이글스 현역 선수 시절

천안북일고-동아대를 거쳐 1992년에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 당시 구대성, 정민태와 함께 국가대표 투수 3인방으로 꼽힐 정도의 대어라 매번 해태 타이거즈에 밟히던 빙그레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으나 데뷔 첫해 찾아온 어깨부상은 그의 프로 인생의 결정적인 암초가 되었다. 이후 98년까지 7시즌 동안 고작 3승만을 올리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다 은퇴한다.

이후 2년간 대전고 코치를 맡으며 아이들을 지도하다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00년 다시 한화에 연습생 자격으로 입단하여 현역으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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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은퇴한지 2년만에 다시 친정팀으로 컴백한 한화 이글스 현역선수시절

복귀 후에도 부상으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02년 5월 1일에 복귀 첫승과 동시에 통산 4승을 기록한다.

플레잉코치로 뛰던 2005년 시즌에 김인식 감독에 의해 마무리로 낙점, 1패 20세이브 ERA 2.84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1] 김인식 감독의 추천으로 이 시즌에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이대호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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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한화 이글스 현역 선수시절

2006년에는 은퇴를 선언하고 2군에서 코치로 선수를 조련하고 있었으나 주전 셋업맨인 최영필의 부상으로 불펜에 구멍이 나자 급히 몸을 다시 만들어 정규시즌 막판에 복귀했으며,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이 되었다. 어깨는 93년 부상으로 인해 철심을 박았고,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였으며 2006년 시즌 초반 당시 그의 직구 구속은 겨우 130km에 미치는 정도였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그의 어깨를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10월 28일 한국시리즈 5차전은 그의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었다.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한화는 이미 앞의 4경기동안 투수가 바닥날 대로 바닥나서 1선발[2] 문동환을 중간계투로 돌리는 악수까지 둔 상황이라 정말로 낼 투수가 없었다. 정민철과 브라운의 선발 대결로 시작된 경기에서 정민철이 5이닝 1실점 후 강판되자 지연규가 등판했고 생애 최고의 역투를 선보이며 4이닝동안 탈삼진 5개 단 1피안타로 삼성 타선을 틀어막았다. 아무도 생각 못했던 그의 호투 덕에 1:1 동점으로 연장 승부로 끌고 갈 수 있었고[3] 15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 무승부로 5시간 15분의 혈투를 마치게 된다. 통산 10승만을 기록했던 비운의 투수가 마지막 중 마지막에 가서야 최고로 빛나는 이 모습은 한화 팬들뿐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시리즈를 관전했던 야구팬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3 지도자 시절

06 시즌 종료후 3번째로 은퇴하여 천안북일고 코치를 맡았다. 09시즌 고교야구에서는 이정훈 감독의 라이센스 문제로 대신 벤치에서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4] 이 보이기도 했다. 이후 2011년 NC 다이노스가 창단 준비를 하면서 스카우터로 선임되었는데 고교야구 코치인 경험으로 재목감 선수를 선발하는데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던걸로 보인다. 이후 스카우터의 연장선상에서 NC 다이노스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4 여담

99년도에 한화가 우승을 했을때. 그가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92년 준우승과 2006년 준우승으로 콩라인 확정.
외모를 보면 입단부터 은퇴할때까지 연륜선배인 송진우와 약간 닮아 리틀 송진우라는 별명을 얻게되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1992빙그레 이글스928⅔20001.0005.9739412122019
199362402000.0003.3824188109
1994한화 이글스4400000.00011.25316255
199592812000.3335.143312382116
1996910⅔00000.0003.381003544
19971군 기록 없음
1998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2001한화 이글스3300000.0009.00702133
20022077⅓49000.3085.3592633484946
2003124523000.4005.205161883226
20042032⅓04330.0005.5736419172320
20053338012000.0002.8430320321312
20067811010.5002.25613322
KBO 통산(13시즌)13229910222340.3134.8833127147144182162
  1. 다만 이닝수가 38이닝으로 매우 적었고 도미넌트한 구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던지던 정병희와 윤규진의 혹사 비중이 커졌고, 이때의 결과로 정병희는 SK에 보상선수로 건너간후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으며, 윤규진도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2. 당시 한화 최고의 투수는 누가 뭐래도 류현진이었지만, 아무래도 신인인 탓에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문동환을 내보내며 문동환-류현진-세드릭으로 준플레이오프를 넘겼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문동환을 1선발로 기용했었다. 이후 문동환이 선발로 만족스럽지 못하자 문동환을 플옵 1차전에서 조기강판시킨뒤 3차전부터 구원으로 투입하고 그 빈 선발 자리를 최영필, 안영명등으로 땜빵했다.
  3. 같은 경기에서 삼성은 무려 9명의 투수를 동원하는 물량공세를 펼쳤다. 한화는 정민철-지연규-구대성-김해님 단 4명..지연규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승리를 노릴 경기가 아니었다.
  4. 같이 북일고 코치를 맡은 임수민이 관중석에 있는 이정훈 감독으로부터 작전 지시를 전달 받기 위해 무전기와 이어폰을 이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