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소

1 후한 말의 인물

秦邵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조진아버지위략과 위서에 따라 기록이 약간 다른 인물로 진백남(秦伯南)이라고도 한다.

위략에는 조조와 친하다가 흥평[1] 말에 원술의 패거리가 조조를 위협하면서 공격해 조조가 도망치다가 다급해서 적이 추격하자 진씨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진백남이 조조를 맞아들이자 추격한 도적이 조조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진소는 자신을 조조라고 대답해 살해되었으며, 조조는 그 공을 생각해 조진의 성을 조씨로 고쳐줬다고 한다.

위서에는 소가 충성스럽고 독실한 성격에 재능과 지혜가 있어 조조의 신임을 받았는데, 초평 연간[2]에 조조가 의병을 일으키자 무리를 모아 조조를 수행해 떠돌았다. 그런데 이 때 예주자사 황완이 조조를 해치려고 하자 조조는 피했지만 소는 홀로 해를 입었다고 한다.

결국 진소의 사망으로 아들 조진이 어려서 고아가 되면서 조조가 거두어 여러 자식들과 함께 길러 조비와 함께 하도록 했다고 하며, 227년에 조예가 즉위하면서 소릉후(邵陵侯)라는 작위를 받았다. 원래 임금이나 조상이나 이름을 꺼려서 쓰지 않고 피휘하는 것으로 봉작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의 글자가 들어갔기 때문에[3] 주석을 달은 배송지는 이 책이 전하는 바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일의 전말을 논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록에 따른 차이가 맞지 않기 때문에 진소 = 진백남인 것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된다.

2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陳邵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관우가 양양, 번성을 공격하기 위해 북진하자 조인이 번성에 포위되었다가 서황이 조인의 원군으로 와서 관우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결국 여몽이 이끄는 오군이 형주를 기습하면서 근거지를 잃은 관우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그리고 220년, 조비가 즉위한 후 손권이 기세를 타고 서쪽으로 오자 조비는 지레 겁먹고 조인에게 양양과 번성을 버리고 완충지로 삼고 조인에게는 완성으로 오게 한다. 이에 사마의

손권은 이제 막 관우를 격파하여 지금은 그들이 스스로 우리와 결탁하려 할 때이니 필시 감히 우환을 끼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양양은 수륙의 요충이며 적을 막는 요해이니 이곳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조비는 듣지 않고 양양과 번성을 불태우고 조인에게 완성으로 옮기게 한다.

하지만 손권은 위나라를 공격하지 않았고 단지 이제 성 하나도 없는 빈땅인 양양을 부장인 진소에게 시켜 점령하게 한다. 부장인 진소는 양양을 점령해 수비를 맡았으며, 조비는 진소가 양양을 점령하자 완성으로 돌아와 주둔하고 있던 거기장군 조인에게 칙명을 내려 진소를 토벌하도록 했다. 조인이 서황과 힘을 합쳐 공격하자 패하면서 양양을 빼앗겼다. 결국 조인과 서황은 탈환하는 것에 성공해 양양으로 들어갔다.

한 마디로 별거 아닌 인물이지만 중요한 이유는 오나라에서 육손이나 주연이 달려들어도 얻지 못했던 양양과 번성을 점령한 인물이라는 것인데, 빈집털이이기 때문에 진소의 기록도 양양을 점령했다가 다시 뺏겼다가 전부이고 별다른 기록은 없는 인물이다.

3 서진의 인물

陳邵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관료. 자는 절양(節良).

동해군 양분 사람으로 군에서 효렴으로 천거되었지만 취임하지 않았으며, 유학의 조예로 불러들여져서 진류의 내사가 되었다가 승차해서 연의 왕사가 되었으며, 주례의 평을 저술했다.

그 평은 대단히 상세했으므로 세상에 널리 전해졌으며, 태시 연간[4] 중엽에 조칙에는 그에 대한 칭찬을 하면서 급사중에 임명했다. 조칙에 따르면 진소는 그 품행이 깨끗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널리 떨쳤으며, 옛 것을 사랑해 널리 육적에 통달했다. 또한 전고를 좋아해 나이를 먹고도 멀리 하지 않고 그의 업적을 살펴 유교를 두텁게 대해야 할 것이라 했다.

진소는 관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퇴계학파와 리철학의 전개라는 책에서 예경이 여러 번 책으로 편집되거나 정리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주석으로 진의 진소는 대덕이 옛 기록 204편을 깎아내 85편의 대대례를 이루었다고 한다.
  1. 194 ~ 195년이다.
  2. 190 ~ 193년이다.
  3. 임금의 이름이 있으면 임금이 애초에 봉지의 이름을 고쳤으며 신하 입장에서 자신의 조상의 이름이 봉지에 있으면 일부러 그 직임을 사양하기도 했다.
  4. 265 ~ 274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