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No.78 | |
최일언(崔一彦)[1] | |
생년월일 | 1961년 7월 27일 |
출신지 | 일본 야마구치 현 |
출신학교 | 시모노세키상고 - 센슈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4년 OB 베어스 해외교포 입단 |
소속팀 | OB 베어스(1984 ~ 1989) LG 트윈스(1990) 삼성 라이온즈(1991 ~ 1992) |
지도자 | OB 베어스 1군 투수코치(1993 ~ 1998)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1999 ~ 2003)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2004 ~ 2005) SK 와이번스 재활코치(2006 ~ 2011)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2011 ~ 현재)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 |||||
최동원(1989~1990) | → | 최일언(1991) | → | 이광길(1992)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7번 | |||||
윤석환(1991) | → | 최일언(1992) | → | 한명호(1993~1995) |
1986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 |||||
김시진(삼성 라이온즈) 윤석환(OB 베어스) | → | 최일언(OB 베어스) | → |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
1 소개
전직 한국프로야구 선수이자,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
2 선수 시절
일본 야마구치 현 출신으로 시모노세키상고와 센슈 대학을 거쳐 1984년 김일융을 놓쳐 가슴에 한을 품고 있었던 OB 베어스에 입단, 입단 첫 해부터 9승을 올리며 활약한 데 이어 입단 3년차였던 1986년에 19승 4패 방어율 1.58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승률 1위 타이틀까지 가져갔다. 또한 단 5명만이 가지고 있는(박철순, 김시진, 선동열, 이상훈, 최일언) 200이닝 이상 피안타율 1할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한다. 또한 시즌 피홈런은 단 2개만을 기록하며, 절정의 구위를 보여 주었다.
당시 해태를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는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등판한 경기에서 13연승을 거두며 해태 킬러로 활약하기도 했다. 거기에 OB에 선동열 킬러 김진욱이 있는 건 덤 오늘날로 치자면 김광현급. 하지만 해태와의 1987년 2승 1패로 앞서있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연장 끝내기 폭투로 패전했고 1차전에서도 대량 실점하며 패했다. 올라간 해태는 그 기세로 한국시리즈를 스윕하고 우승했다.
불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보급되지 않았던 포크볼을 제대로 선보인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포크볼러이며, 상당한 각의 슬로우 커브, 체인지업도 구사하였다. SK 와이번스 투수코치 시절에는 송은범에게 느린 커브를 전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계약금인 1,200만원에 비해 상당히 좋은 활약을 했는데, 이는 본인의 노력[2]과 더불어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자 같은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의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물러나고 이광환 감독이 부임하자, 최일언은 김상호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이것은 LG 트윈스에 있어서 트레이드 잔혹사의 서막이었다. 김상호는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며 OB 베어스 타선에 힘을 불어넣었고,[3] 최일언은 단 3승에 그치며 1990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1 시즌을 앞두고 은사였던 김성근 감독이 부임해 있던 삼성 라이온즈로 옮겨 잠시 활약했지만, 199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에는 송재박처럼 사실상 대한민국에 정착한 듯. 친정 팀 OB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여 박명환, 진필중 등 수많은 유망주들을 키워 내며 유능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다. 2004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으며,[4] 2006년부터 2011년까지 SK 와이번스 코치로 활약하다가 어수선했던 SK의 2011 시즌 종료 후 새로 창단하는 NC 다이노스로 옮겨 초대 투수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2013년 내내 NC의 선발진은 리그 탑급을 달렸으나 방화범만 가득한 불펜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최일언 투수코치를 비난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정도. 2014년부터는 불펜 방화범들을 어떻게 소방수로 키워내느냐에 따라 그의 역량이 좌지우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NC 불펜진은 2014년은 김진성, 원종현, 손정욱을, 2015년은 임창민, 임정호, 최금강을 앞세운 리그 최상급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투수조련에 일가견이 있다는데 동의할 만 하다.
구종 전수에 상당히 일가견이 있다.(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등등) 이재우에게 포크볼을 전수한 장본인이며, 김진성도 그에게 포크볼을 배웠다. 이혜천에게는 투심도 전수했다.
김인식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하던 시절에 김인식 감독이 투수를 교체해야겠다 싶어서 "일언아~"하고 최일언 코치를 불렀는데 최일언 코치는 가만히 있고 선수들만 눈치보면서 웅성웅성거리기만 하길래 좀더 큰 목소리로 "일언아!"하고 외쳤더니 "일어나"로 알아들은 선수들이 우르르 덕아웃에서 일어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탈삼진 | |||
1984 | OB 베어스 | 37 | 167⅔ | 9 | 6 | 3 | 2.84 | 145 | 6 | 73 | 86 | |||
1985 | 38 | 144⅔ | 10 | 14 | 3 | 2.43 (5위) | 119 | 4 | 80 | 88 | ||||
1986 | 33 | 221⅔ | 19 (2위) | 4 | 2 | 1.58 (3위) | 140 | 2 | 107 | 101 | ||||
1987 | 24 | 154⅔ | 14 (4위) | 8 | 1 | 2.56 | 129 | 4 | 76 | 70 | ||||
1988 | 20 | 115⅔ | 6 | 4 | 0 | 2.18 (3위) | 100 | 0[5] | 53 | 50 | ||||
1989 | 28 | 136⅓ | 7 | 12 | 2 | 4.29 | 132 | 4 | 84 | 6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탈삼진 | |||
1990 | LG 트윈스 | 15 | 48⅔ | 3 | 2 | 0 | 4.62 | 49 | 6 | 36 | 24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ERA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탈삼진 | |||
1991 | 삼성 라이온즈 | 32 | 96⅔ | 9 | 6 | 0 | 4.47 | 100 | 4 | 56 | 56 | |||
1992 | 13 | 29⅓ | 1 | 1 | 0 | 4.60 | 28 | 4 | 16 | 19 | ||||
통산 | 240 | 1115⅓ | 78 | 57 | 11 | 2.87 | 942 | 34 | 581 | 556 |
- ↑ 재일교포라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란 일본식 이름이 있다.
- ↑ 동료였던 장호연과 서로 상대방의 투구 내용을 체크해 주기도 했고, 말만 프로였던 초창기 프로야구 현실 속에서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날에도 덕아웃에서 경기 내용을 1구 1구 체크해가며 한국 타자들을 연구하는 등 KBO 리그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 ↑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홈런왕, MVP,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이는 타이론 우즈가 나타나기 전까지 최초의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배출한 최초로 배출한 홈런왕이었다.
- ↑ 이 때, 문동환이 그에게 체인지업을 배워, 에이스로 거듭났다.
- ↑ 참고로 이 규정이닝 투구 피홈런 0개 기록은 크보에서 최일언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