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쿠미

1 프로필

이름倖田來未 (こうだ くみ)|Koda Kumi
생년월일1982년 11월 13일
출생일본 교토
신체154cm|?kg[1]A형
가족배우자 KENJI03 (2011~)|슬하 1남
2녀 중 첫째|동생 가수 misono
데뷔2000년 12월 싱글 'TAKE BACK' [2]
소속사rhythm zone[3], 에이벡스
SNS트위터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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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계의 몇 안되는 실력파 섹시 여가수

200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에로 각코이 열풍의 대명사


본명은 오다기리 조[4] 코다 쿠미코(神田 來未子, こうだ くみこ)이다. 1982년 11월 13일 출생. 동생인 misono 역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5]

2004년 '큐티 하니(キューティーハニー)'를 시작으로 2005년~2007년 쯤 일본 열도를 제대로 휩쓴 여가수. 이 정도 전성기 파워를 가진 여성 솔로는 코다 쿠미가 마지막라고 봐야. 그나마 니시노 카나가 여성 솔로 인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저 당시 코다 쿠미의 파워에는 못 미친다. 전성기 시절 코다는 포스트 하마사키 아유미라고 불렸으니 말 다 했다. 음반 시장이 불황이었던 2006년에는 순수 CD 매상으로만 120억엔을 넘겼을 정도. 그러나 2008년 라디오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하락세가 시작되었고 코다 쿠미가 주춤하자 이 자리를 아무로 나미에가 다시 선점해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그 이후 이렇다할 여성 솔로 인재가 나오지 않는게 일본 가요계의 현시점.

일본 가요계 특성상 섹시 여가수 수요도 없을 뿐더러 이정도 가창력과 관능적인 섹시 심볼을 지닌 가수가 아주 드물다. 아니 거의 유일하다. 전성기 시점이 많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일본에서 섹시 여가수를 물으면 십중팔구는 코다 쿠미를 얘기한다. 혹은 아무로 나미에 정도.

현재는 슬하에 1남을 두고 있는 유부녀다. 하지만 몸매는 아직도 현역 남편은 소속사 동료이자 연하인 BACK-ON의 KENJI03.

3 음악 인생

3.1 무명 시절 (2000~2003)

코다 쿠미는 유년기때 일본 전통 음악을 가르치는 집안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때부터 자연스럽게 가수를 동경해왔는데 상당한 가창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그의 어머니를 빼닮아 노래 실력은 좋았지만 남들 처럼 귀여운 외모가 아니어서 오디션에 응모해도 서류 심사에서 부터 탈락하는 수모를 겪는다. 가끔 서류 심사를 통과해도 합격하는건 모두 용모가 귀여운 아이들 뿐이었다고. 코다의 오디션 생활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때까지 지속되어 왔는데 중간에 모닝구 무스메 3기 오디션에 지원해 괜찮은 선까지 갔으나 떨어졌다.[6] 계속되는 좌절 끝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응모해보자라는 심정으로 전국에서 수십만명을 오디션하는 'avex dream 2000'에 지원한다. 이 오디션은 참가자 전원의 '노래'를 듣고 평가하는 방식이라 코다 쿠미는 순조롭게 오디션 상위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최종 준 그랑프리(2위)를 수상하며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당시 심사를 봤던 마츠우라 마사토(현 에이벡스 수장)는 가창력만큼은 지원자중 최고였지만 외모가 딸리는 바람에 2위를 주었다는 얘기를 훗날 밝힌다. 그리고 '잘 떠드는 아이의 이미지'가 있어서 인상에 최종 상위권에 오른것이라고 얘기 한적도 있다. 결국 비쥬얼때문에 된 것은 아니다.. 수년간의 도전끝에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행운을 따냈고 오디션 입상 당시 최소 1년 반 이상의 연습기간을 제의받았다. 그러나 탁월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1년만에 데뷔가 결정되면서 그의 가창력을 무기로 일본 시장에서 데뷔하기 전에, 미국 시장에서 먼저 데뷔한다. 코다는 'KODA'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TAKE BACK' 리믹스 싱글을 먼저 선보였고 이 싱글이 빌보드 댄스차트 상위권에 오르며[7] 신인가수로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낸다. 그에 대한 소속사의 기대도 커졌다. 코다 본인도 "훗, 나 좀 잘 나갈지도"라는 훗날에 있을 무명 시절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한(...) 기대에 찼었다고 회상했었다.

Debut Single <TAKE BACK>

<TAKE BACK>

코다 쿠미는 2000년 12월 6일, 고교 재학중에 데뷔 싱글 'TAKE BACK'으로 정식 데뷔한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실력파 가수'로 주목 받았지만 막상 일본으로 돌아오고 발표한 음반들이 잇따라 실패해 썰렁한 신인시절을 보내야 했다. 곡도 좋았고 노래도 잘 했지만 통통하고 평범한 외모가 문제였는지 TV 프로모션을 하지 않는 일명 '얼굴 없는 가수' 신세로 음반을 내야 했다. 첫 싱글을 발표한 직후 데뷔를 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몸무게가 단기간에 8kg나 늘어버려서 결국 프로듀서가 코다에게 "그렇게 계속 살 빼지 않으면 PV(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해버릴꺼야!"라며 경고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회사에 인사하러 가도 아무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지금은 rhythmzone 간부 수준이지만..

2001년에는 일본에서 갓 데뷔했던 BoA와 9-11 테러를 추모하는 'song nation' 프로젝트에 참가해 듀엣 곡 'the meaning of peace'를 발매한다. 이 싱글 자체가 흥한건 아니지만 'Song Nation'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대형가수 팀들 사이에 꼽사리 껴서 일본의 대형 음악방송 2001년 엠스테 슈퍼라이브에 출연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둘다 신인이어서 처음으로 유명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둘은 하라는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안하고 애드립 대결만 해서 방송이 끝나고 PD한테 불려가 한소리 들었다고 한다. 애드립 대격돌 이후 BoA는 몇달 뒤 'LISTEN TO MY HEART'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했지만 코다는 이 방송 이후에 발매한 싱글들 조차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평론가들과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실력이 좋은 가수로 평가 받긴 했지만 2000년대 초반 J-POP계에선 하마사키 아유미, BoA, 마츠우라 아야, 쿠라키 마이같이 스타일리쉬하고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여가수들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미국에서 싱글도 냈고, 메이저 데뷔도 했지만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예쁘고 청순하고 여리여리한 외모가 아닌탓에 TV 출연은 데뷔 시절 이후에도 한동안 하지 못하고 주요 활동은 밤업소에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는 형태의 프로모션 뿐 이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새벽에 라이브하는 경우가 잦아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라이브 실력을 다질 수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루는 본인의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이 세명밖에 안된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년을 이렇다 할 포텐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던 2002년, 여동생인 misono가 같은 기획사의 밴드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의 보컬로 데뷔하게 되는데 코다와는 다르게 전폭적인 지원 아래 데뷔했고 귀여운 외모와 가창력으로 언니보다 먼저 유명세를 탄다. 한때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와 코다 쿠미가 같은 날에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었지만 여동생쪽이 이기는 상황도 있었다(...). 무명인것도 서러운데 졸지에 코다 쿠미는 'misono 언니' 정도로 소개되는 안습한 상황을 맞게 된다. 아마 이 시기가 코다 쿠미 최악의 슬럼프 시절이 아니었을지.

그러던 코다 쿠미에게도 큰 기회가 찾아온다. 전세계에서 발매되는 인기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제작사인 스퀘어에닉스 측에서 자신들의 게임주제곡을 불러줄것을 요청해 온것. 당시 게임회사쪽에서는 다른 아이돌 가수의 섭외를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논의끝에 AVEX와 연락이 닿았고, 실제 코다 쿠미와의 대화도 순조로워서 채택된다.[8] 레이블인 AVEX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파이널 판타지의 OST에 코다 쿠미의 노래인 'real emotion'을 수록하는 데 성공한다. 2003년 대망의 7번째 싱글 'real Emotion'이 발매되는데 약 28만장 이상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오리콘 주간차트 3위에 오르면서 히트에 성공한다. 코다 쿠미 본인은 이 싱글마저 실패하면 수년간 고생하며 이룬 가수를 그만둘것이라고 가족들한테 애기했을 정도로 온 사활을 건 프로젝트였다.

6th Single <real Emotion/1000の言葉>

<real Emotion>

그러나 'real Emotion'의 인기는 빠른 비트와 화려한 멜로디로 곡 자체의 구성이 워낙 뛰어난데다 세계적인 인기 게임 '파이널판타지 X-2'의 오프닝 테마송으로 채택된 덕택이었다. CD의 재킷에도 코다 쿠미를 대신해 게임 여주인공 캐릭터들이 등장했을 정도였으니(...) 코다 쿠미는 이 노래 한 곡으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그 다음 싱글들이 빛을 보지 못하며 또 다시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듯 했다.

3.2 화려한 전성기 (2004~2007)

코다 쿠미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몸무게를 8kg이나 뺀 뒤[9] 가슴선이 훤히 드러난 의상을 입고 섹시 컨셉트로 무대에 오르면서부터다.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지만 뜬금포 돋게 섹시 컨셉을 시도한건 다름 아닌, 한 스탭의 충고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 여자들의 주된 컨셉이자 당연시하게 여겨지던 '귀엽고 여성스러운' 의상을 고집하던 코다에게 그 스탭이 "코다, 근데 그거 별로 귀엽지 않아(...)"라고 돌직구조언하면서 우연히 '섹시'한 의상을 입어본 결과 주변 스탭이 만장일치로 섹시하고 멋있다며 칭찬했고 이 아이디어가 2004년 1월 발표한 싱글 'Crazy 4 U'에 녹아들면서 '섹시 가수'로서의 변모를 시작하게 된 것 이다.

<キューティーハニー CUTIE HONEY'[10]> (2004)
아직까지도 코다 쿠미를 상징하는 최고의 히트곡.

코다는 곧 이어 2004년 5월 11번째 싱글 '큐티하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 등 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섹시한 여성이 자신의 매력을 자랑하는 내용의 이 노래는 일본 영화 '큐티하니'의 주제가로 수록되는데[11] '큐티하니'는 이 PV 하나로 코다 쿠미의 변화된 이미지를 어필하는데 성공했고 오리콘 주간차트 4위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해 일본 유선대상에서 데뷔 4년만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 4년만에 포텐을 터뜨릴 지도 모르는 유망주로 떠오른다. 이 날 방송이 4년만에 공식적인 첫 TV 출연이었고 여세를 몰아 2004년 엠스테 슈퍼라이브에 출연하면서 수많은 화제를 낳는 레전드 무대를 찍는다.


2004 MUSIC STATION SUPER LIVE
음악 방송 첫방송에서 무려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당연히 코다 쿠미라서 가능한 의상.[12]

이 방송 단 한번으로 코다 쿠미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킨다. 그동안 TV에 출연하지 못한 설움을 단번에 풀어버린 것이다. 한국에서 코다가 처음 알려질 때 가장 많이 떠돌았던 영상으로 리플 대부분이 "야하긴 한데, 라이브를 잘해서 놀랍다"였다. 일본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고 분명 에로틱한데 라이브 잘하고 당당해서 멋지다라는 반응이 대다수. 이후 코다 쿠미는 염색한 머리와 두터운 눈 화장 등 섹시한 '갸루' 이미지를 내세워 여성팬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기 시작한다. 여가수로서 자신의 단점이었던 '평범한 얼굴과 통통한 체격'을 본인의 노력으로 개성있게 연출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2004년에는 신화등과 함께 제주도에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다. 첫 내한 공연인 셈.

<Butterfly> (2005)
코다 쿠미에게 첫 레코드 대상을 안겨줬던 대표곡

데뷔 4년 동안 TV 프로모션은 일체 없었으나, '엠스테 슈퍼라이브'에 출연한 이후 화제성이 커져서 2005년부터는 TV 프로모션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음악 방송에 훌륭한 라이브 실력을 뽐내는 것에 더해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사투리를 쓰며 털털하고 꾸밈없는 신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세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팬들은 그녀를 '에로 칵코이'(에로틱하면서 멋진), '에로 카와이'(에로틱하면서도 귀여운)이라는 수식어로 불렀고 이 말이 일약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면서 정상급 여가수로 우뚝 섰다. 이 여세를 몰아 2005년 9월에 지난 5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첫 베스트 앨범 'BEST~first things'를 발매하는데 첫주에는 'Mr. Children'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하지만 2주차에 1위로 반등하고 그 해에 1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밀리언 셀러와 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 베스트앨범은 꾸준한 롱런으로 2008년까지 191만장이라는 본인 최다 판매고를 기록한다. 같은해 연말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싱글 'Butterfly'로 대상을 수상하여 데뷔 5년만에 자신의 가수생활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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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작 싱글들의 자켓들,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컨셉으로 잡았다.

대상 수상 전후 시점부터 세계 최초로 12주 동안 연속으로 12장의 싱글을 발매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이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13] 12장의 싱글을 묶어서 발표한 'BEST ~Second Session'이 첫주 98만장이 팔려나가 100만장에 육박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14] 최종적으로는 180만장 이상이 팔려나가 더블 밀리언(200만장) 인증을 받았다. 일명 '12연작'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코다 쿠미의 인기를 더 높여주는 큰 역할을 한다. 일주일 마다 나오는 신곡에서 굴곡 없이 좋은 퀄리티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찰떡같은 컨셉 소화를 하면서 가수로서의 역량을 한껏 뽐냈기 때문이다.

BEST ~Second Session~ (2006)
초동 판매량 983,359장 총 판매량 1,804,485장

<12연작> 중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3탄 <D.D.D. (feat. SOULHEAD)>

12연작-베스트 대박 행진에 이어 발표된 싱글 '恋のつぼみ(사랑의 꽃봉우리)'가 27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싱글 판매에도 호조를 띄기 시작했고 7월에는 역대급 퀄리티를 자랑하는 4A 여름 싱글 '4 hot wave'를 발매하는데 이 때 국민 그룹 '킨키키즈'와의 동시 발매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15] 결국 첫주 주간차트에는 킨키에 밀려 2위에 그치지만 집계 기간동안 데일리 차트에서 코다도 1위를 차지하면서 코다가 킨키 1위 기록도 깨버릴수도 있을 거라는 추측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코다는 겨울 발라드 '夢のうた(꿈의 노래)', 'Cherry Girl' 등의 히트곡을 연발하며 2006년을 완전히 코다 쿠미의 해로 물들였다. 이 해 연예인, 정치인등을 종합한 유명인 랭킹에서 2위를 기록해 인지도도 최정점을 찍었다.
이 시기 일본은 온통 코다 쿠미로 도배되던 시절이다.

2006년 겨울에는 한국에 두번째로 내한하여 '아시아 송 페스티벌' 참가를 비롯해 기자회견과 싸인회를 가졌다. 당시 아유미가 '큐티 하니'를 번안하여 화제를 몰던 시기라 우리나라에서 코다의 내한이 꽤 화제 되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수십개의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등, 아유미와의 비교는 사절이라는 말도 안되는 보도가 났었으나 이는 모두 거짓으로 판명났다.[16] '아송페' 공연에서는 'you'와 '큐티 하니', '人魚姬' 총 세곡을 불렀지만 당시 팬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人魚姬' 무대만 쏙 빼놓고 방송되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5th Album <Black Cherry> (2006)

<4 hot wave> 中 <JUICY>

2006년 최고의 한해를 보낸 코다는 같은해 발표한 싱글들을 집합한 정규 5집 앨범 'Black Cherry'의 발매를 결정하면서 과연 베스트 앨범이 아닌 오리지널 정규 앨범도 높은 판매고를 올릴까라는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앨범은 발매 첫주 50만장의 판매량을 올리고 4주 연속으로 주간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2007년까지 최종 판매량 100만장을 찍는 3연속 밀리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음반 수록곡들의 퀄리티는 싱글 퀄리티에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앨범의 2 DVD에는 수록곡 'Cherry Girl'을 주제로 한 미니 무비도 촬영해서 넣었다.

해를 넘어와 2007년 코다 쿠미는 3월 발매된 싱글 'BUT/ 愛証(애증)'을 통해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다. 'BUT'은 기존에 불러오던 대중적인 멜로디가 아닌 다소 난해한 팝 스타일을 표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곡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을 뿐더러 레이블에서 해당 싱글과 함께 발라드와 댄스를 집합한 베스트앨범을 동시 발매하는 병크를 저질러 판매량이 분산되는 아쉬운 결과를 낳는다. BEST ~Second Session~이 나온지 불과 1년도 안된 시기에 또 다시 베스트를 발매하는건 누가봐도 무리수. 비슷한 시기 같은 소속사의 오오츠카 아이 베스트 앨범 삽질 사건을 볼 때 이 회사는 가수가 뜨면 뽕 뽑을 대로 뽑는 기획사임은 분명하다. 한가지 여담으로 일본에서 코다가 발표한 노래중 반응이 그저 그랬던 노래들은 한국 팬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BUT'이나 'D.D.D.'가 단적인 예.

판매량 하락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운 가운데 곧 이어 여름 싱글 'FREAKY'를 발매한다. 이 싱글이 2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작 싱글의 부진을 만회하고 인기를 이어간다. 수록곡 'girls'나 '空'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가을에 발매된 발라드 싱글 '愛のうた(사랑의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코다 쿠미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노래는 발매된지 8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라오케 차트에 등장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 2015년에 음원 다운로드 100만건 인증을 받았다. 일본에서 가장 꾸준히 사랑받는 코다 쿠미의 스테디 셀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11월에는 동방신기와 콜라보레이션한 싱글 'LAST ANGEL'을 발매하며 국내 커뮤니티에서도 활발히 언급됐다. 이 후에도 각종 라이브 무대 활동을 통해 전성기의 열기를 이어갔다.

코다는 2007년에도 연간 오리콘 아티스트 매상 1위에 오르며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같은해 12월에는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통하는 도쿄돔에서 투어 파이널을 장식하는 짜릿한 7주년을 보낸다. 그리고 이 공연 오프닝 무대에서 레전드 퍼포먼스를 남기는데..

KODA KUMI LIVE TOUR 2007 ~Black Cherry~ FINAL IN TOKYO DOME 中 <Black Cherry>

이 무대로 인기와 함께 가수로서의 기량도 최고 정점을 찍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놀랍겠지만 이 퍼포먼스를 100% 라이브로 소화했다는 점도 크게 주목할 부분. 가수 활동외에도 그녀의 스타일이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 베스트 지니스트, 네일퀸 등 다수의 상을 섭렵하며 스타일 아이콘으로도 자리매김한다. 2006~2007년에는 각종 일본 가요 시상식에서 상당 수의 대상을 수상하며 탄탄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해 2008년, 돌이킬 수 없는 발언을 하고마는데..

3.3 구설수와 하락세 (2008~2010)

Kingdom (2008)
앨범 제목처럼 정말 왕좌에 오를것만 같았던 코다 쿠미였다.

2008년 1월, 솔직함이 매력이었던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35세가 넘은 임신부는 양수가 썩어 간다"는 망언을 했다. 임신부의 나이가 많으면 건강한 아이를 낳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본인은 해명했으나, 썩어간다는 표현은 본인 해명과 상관없는 명백한 비하발언이다. '180cm이상의 남자가 이상형이다'와 '180cm이하의 남자는 루저'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발언에 대해서 불임부부가 반발하고 나서는 등 그녀의 실언은 일본 사회에 겉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켰다. 코다 쿠미는 뉴스에 출연하여 대국민 사과를 했고 기대속에서 발매된 신보 'Kingdom'의 모든 프로모션을 일제히 취소했으며, 출연 중이던 CF에서도 하차했고,아이고 돈 깨지는 소리 들린다 전국 투어도 연기했다. 당시 발매된지 얼마 안된 'Kingdom' 앨범은 4연속으로 100만장을 돌파할 것인가에 대해 연일 이슈였던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다. 이 앨범의 수록곡 전체의 PV를 촬영하며 100만장 팔려고 작정한 앨범이었다(...) 당시만해도 코다는 가장 인기있는 여성 솔로였기때문에 이 앨범도 성공시켰으면 국내에서 일컫어지는 3대 J-POP 디바 (하마사키, 우타다, 아무로)에 이어 4대 J-POP 디바로도 언급될 수 있었을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2008년 1월 앨범 'Kingdom' 홍보 이벤트 중 코다 쿠미
최고의 기대속에서 발매됐지만 최악의 구설수로 끝나버렸다.

2008년 1월 31일 FNN SUPER NEWS 사죄 영상

심지어 문제의 발언이 발매 첫주 주말에 일어나서 막판에 타격을 입고도 초동 판매량은 42만장을 기록했지만 2주차부터는 발언의 여파로 8만장까지 드랍하며 결국 최종 판매량 60만장에서 끝이난다. 원래 아름다운(..)롱런으로 앨범 판매량이 더 호조였던 코다에겐 충격적인 결과. 60만장은 사건이 없었다면 발매 한달째에 달성하고도 남을 수치였다. 100만장은 무리였다고 해도 그전 앨범들의 추이로 볼때 최소 80만장 이상은 충분히 팔렸을 앨범이다.

양수 발언의 여파로 몇달간 자숙의 기간을 보낸 코다는 연기했던 'Kingdom' 라이브 투어를 시작으로 여름 께 복귀 싱글 "MOON"을 발매하면서 활동을 재개한다. 타이틀 곡 'Moon Crying'이 좋은 반응을 얻어 상당히 히트했고 각종 CM에 다시 복귀하면서 재기에 성공 하는 듯 했으나 뒤 이어 발표한 싱글들이 퀄리티 저하와 안좋은 여론때문에 확실히 전보다 부진한 성과를 거두었다.[17] 사실, 복귀 싱글 'MOON'도 2006년부터 인연을 이어오던 팝스타 퍼기와의 수록곡 'That Ain't Cool' 까지 수록해 초호화스러운 참여진을 자랑했으나 4A 싱글 답지 않게 10만장대 초반 판매량을 기록하여 판매량 하락세를 예고했다. 그리고 다음 해 발표된 정규 7집 앨범 'TRICK'이 총 판매량 40만장을 기록하며 'Kingdom' 초동 판매량과 맞먹는 부진을 겪는다. 그래도 그때 코다는 많은 라이브 활동과 각종 CM등에서 활약하며 아주 최악의 상황까지는 면했다. 40만장이라는 판매량이 쉽게 나오는 수치도 아니다. 전성기 시기에 많은 인기를 달성해 현지인들은 딱히 하락세를 못느낀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Kingdom'을 기점으로 떨어지는 음반 판매량 수치를 보면 하락세가 시작된 것이 맞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기를 시킬 수 있었고, 그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해야만 했을 2009년도에는 촌스럽고 과한 스타일과 얼굴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메이크업등을 하고 나오는 등 팬들이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줬고 가장 중요한 곡퀄도 심하게 떨어져서 팬들 사이에서는 금지곡으로 통하는 노래도 나온다.[18] 짧은 릴리즈 간격속에서도 좋은 곡을 연발하는 "믿고 듣던 가수"였던 그가 이렇게 곡퀄리티로 비판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거다. 안그래도 이미지 소비가 많은 가수였는데 한순간에 안좋아진 여론에 더해 이제 곡 마저도 밍밍해졌으니 하락세가 올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이 정도로 유지한게 신기할 정도. 계속되는 부진에 조금이나마 판매량의 반등을 노리고 avex는 데뷔 9년동안 전혀 추진하지 않았던 동생 misono와의 콜라보레이션 싱글까지 기획하지만 정작 중요한 노래가 난해해서 생각만큼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두 자매의 콜라보라는 꽤 화제성이 있었고 10만장이라는 적지는 않은 판매량과 준수한 음원 성적을 기록하지만 그동안 두 자매의 콜라보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아쉬운 유닛 활동이 되버렸다.

한국 일음 포럼, 커뮤니티 중심으로 코다 쿠미가 양수드립으로 완전히 훅갔다고 알려졌지만 가수 인기까지 훅간건 아니다. 구설수로 인해 고정팬이 훅 사라지긴 했어도 그 하락한 상태에서 오히려 완만하게 하락한 편. 2010년에는 10주년 버프를 받아서 전보다 나아진 곡 퀄리티와 과하지 않고 적절히 10주년을 기념할만한 릴리즈로 안정적인 활동을 했다. 대중적인 히트곡 '好きで、好きで、好きで。'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기도. 이 해까지는 연간 오리콘 여성솔로 아티스트 매출 3위를 기록했으며 그 해엔 도쿄돔에서 10주년 라이브를 개최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훅간 여가수가 도쿄돔을 채우는건 무리다.[19]

KODA KUMI 10th Anniversary ~FANTASIA~in TOKYO DOME 공연현장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어느정도 여론이 잠잠해졌고 음원 성적도 그럭저럭 꾸준히 평타치는 편이지만 여전히 양수발언이 잊을만하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기존 주요팬층이었던 여성팬들의 이탈등으로 인해 예전만한 전성기급 인기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양수 발언이 일었던 2008년도는 일본 내 음반 시장이 눈에 띄게 하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도 음반 판매량 하락의 이유중 하나로 볼 수 있다.

3.4 결혼과 출산, 현재 (2011~)

그렇게 활동을 이어가던중 어느날 일본의 배우 오다기리 죠가 한국의 음식점에서 팬이 사인을 요청하자 본인의 이름 대신 '코다 쿠미'라고 적어서 입방아에 오른 사건이 있다. 졸지에 뜬금없이 코다 쿠미가 주목을 받았다(…). 2011년에는 국내 시상식 MAMA에 일본 대표로 출연해 '愛のうた', 'V.I.P', 'Bling Bling Bling' 등을 불렀다. 일본에 저렇게 멋있는 여자 가수가 있었냐며 꽤 호평 받은 무대.

2011년 12월 13일, 2살 연하의 BACK-ON의 기타리스트 KENJI03과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 발표와 함께 혼전임신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초기 부정했고 얼마 뒤 사실로 확인되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왜 거짓말을 했느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덤으로 35살 전에 아이 낳게되서 축하한다는 덕담도 2012년 1월, 정규 10번째가 되는 앨범 'JAPONESQUE'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의 모든 수록곡을 PV로 제작하고 오랜만에 호화스러운 앨범 사양과 좋은 퀄리티등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으나 하필이면 임신을 해버려서 프로모션을 하지 못했다. 無 프로모션에 1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투어는 아쉽게도 임신때문에 캔슬.

10th Album <JAPONESQUE> (2012)
<Kingdom> 이후로 가장 퀄리티가 좋다고 평가받는 앨범이다.
상당수가 이 앨범으로 재입덕하기도

2011년 Mnet Asian Music Awards

2012년 7월에 첫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워낙에 자기관리가 철저한 여자라 출산 후 복귀했을때 촬영했던 ViVi 화보에서 세미누드를 선보이는(...) 에로 각코이한 모습을 보여 일본 여성들 역시 코다 쿠미 답다는 반응을. 이 화보의 화제 때문에 음악 사이트 레코초쿠에서 투표한 최고의 어머니 아티스트 투표에서 아무로 나미에 등을 밀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0월에는 복귀 싱글 'Go to the top'이 약 3년만에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에 오르며 어느정도의 건재함을 과시한다.[20]

출산 3달만의 모습으로 화제가 된 ViVi 화보 (2012.10)

2013년 코다 쿠미는 리메이크 앨범 2탄 <Color the Cover>를 발매한다. 커버 1탄이 꽤 반응이 좋아서 avex는 이를 놓치지 않고 2탄을 기획한다. 이 음반에서 전설적인 뮤지션 Hide의 '핑크 스파이더'를 리메이크하는데 이 소식이 처음 나왔을땐 그래도 꽤 기대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작정하고 발로 만든 편곡과 PV에서의 과한 노출로 욕만 신랄하게 먹었다. 음반 판매량도 그냥 저냥. 때문에 TV 프로모션은 <러블리>라는 곡으로 돌았는데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귀여운 척을 한다는 이유로 또 까였다(...) 안습. 이 덕에 간만에 30~40대 남성들이 싫어하는 여성 셀럽 랭킹에 오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화제가 되긴 한거니까(...) 어쨌든 같은 해 전통적으로 나오던 여름 싱글 <Summer Trip>과 <Dreaming Now!>등을 발표하고 꾸준하게 활동을 했다. 여름에는 2012년 임신으로 취소됐던 전국 아레나 투어 <KODA KUMI LIVE TOUR 2013 ~ JAPONESQUE~>를 개최하면서 15만명을 동원. 출산 후에도 티켓 파워를 입증시킨다. 투어가 영상화되어 발매된 DVD와 블루레이는 오리콘 DVD 주간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데 이로써 9년 동안 매년 DVD 차트에서 1위를 섭렵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 기록은 미스치루와 동율이며 솔로 가수로는 신기록이라고한다. 영상쪽에서는 꽤나 우세한 기록이 많다.

음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었으나 코다 쿠미 연차되는 여가수들 대다수가 이제 피지컬 음반 판매량은 고정팬들만 구입하기때문에 그야말로 고정팬 장사. 특히나 현재 일본에서는 여가수 시장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암전이기 때문에 코다 쿠미 정도 음반 세일즈는 그래도 팔리는편에 속한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티켓 파워가 워낙 짱짱하기 때문에 투어만 개최했다하면 항상 전석매진. 동시대 활동했던 오오츠카 아이나 나카시마 미카, BoA에 비해선 꽤 안정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KODA KUMI LIVE TOUR 2013 ~JAPONESQUE~

2014년 2월 26일 발매한 11번째 정규 앨범 "Bon Voyage"가 발매 첫주 오리콘 위클리차트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발표한 정규 앨범 "Black Cherry" 이후로 7년 연속으로 정규 앨범 1위 기록을 세운 것. 봄부터 여름까지는 'Bon Voyage' 투어를 성공리에 마쳤고 51개의 공연을 전석매진시키며 약 14만명을 동원했다. 파이널은 대만에서 치루어졌다. 최근에는 대만에서의 반응이 좋은지 대만 공연활동도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프로듀싱한 컨텍트 렌즈 'loveil'이 누적 판매개수 150만개를 돌파하며 일본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있다.

2014년을 기점으로 TV 출연을 하지않고있다. 연초에 발매된 정규 앨범 'Bon Voyage' TV 프로모션도 단 한번으로 끝났고 얼마 전 발매 된 여름싱글 'HOTEL'로는 단 한번도 TV 무대에 서지 않으며 팬들에게 큰 아쉬움을 사고있다. 사실 2013년과 2014년의 싱글 판매량을 보면 프로모션이 있거나 없거나 싱글 판매량이 항상 약 2만장 이상으로 균일하기때문에 딱히 프로모션의 중요성을 느끼지 않는거같다. [21] 이제는 전처럼 미디어에 노출되지않고 투어&음악활동에만 전념할 거 같다는게 팬들의 의견. 11월에는 디지털 싱글 'Dance In The Rain'이 발매되었는데 PV는 오큘러스 리프트 기술을 사용해서 제작되었는데 이 PV가 도쿄에서 열리는 <TOKYO DESIGNERS WEEK>에 개선 출품 되었다고한다.

12th Album <WALK OF MY LIFE> (2015)

2015년 3월 18일에 정규 12번째 앨범 'WALK OF MY LIFE'의 발매가 결정되었다. 신곡은 12곡이 수록될 예정. TV 프로모션도 없고 곡 평가도 심하게 호불호가 갈리는지라 5만장도 못팔거라는 예상이 대다수였지만 사양이 워낙 좋아서인지 다행히 5만장을 넘겼다. 7월에는 데뷔 15주년을 기념해서 여름 히트곡들을 모은 컬렉션 앨범 'Summer of Love' 발매가 결정되었는데 트랙리스트와 자켓이 매우 허접해서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판매량도 시망(...). 이것도 모자라 발라드 히트곡들을 모은 컬렉션 앨범 2탄 'Winter of Love'도 발매되었다. 첫날 순위는 1위였지만 위클리 차트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그래도 명곡들이 모여진 앨범이라 3만장이 넘게 팔리며 나름 선방했다. 신곡도 일부 호평을 받았으나 역시나 프로모션은 없었다. 그래도 같은해 연말 가요제 FNS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TV에 출연했다. 굵직 굵직한 스페셜 방송에는 한두번씩 출연하는 가닥으로 잡은듯 하다.

그리고 2016년 3월부터 11월까지 투어가 잡혔다. 데뷔후 처음으로 47 도도부현을 도는 대규모 투어인데, 코다 본인이 코멘트 하기를 "쿄토 출신인데 쿄토 라이브를 한적이 없어서 전국을 리얼하게 돌고 싶다"라는 이유에서 개최한것이라고. 3월 하반기 예정이었던 첫 투어 일정이 인플루엔자 감염으로인해 취소되었다. 4월 9일에는 디지털 싱글 'Shhh!'가 발매되었다. mu-mo 차트에서 1위 기록중. 수록곡은 파칭코 무료배포 CD에 들어있던 '君想い'가 수록되었다. 이 노래는 팬들 사이에서 묻히기 너무 아쉽다는 반응이었는데 아마 이 반응을 수렴하여 수록한듯. 근데 한가지 주목할 건 벌써 59번째 싱글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마사키 아유미의 싱글 수보다 많다. ㅎㄷㄷ

4 트리비아

  • 일본의 유명 가수인 SMAP나카이 마사히로와 교제한 적이 있다. 2007년 열애설을 시작으로 꾸준히 기사화 됐지만 둘은 부정했고 나카이가 진행하던 우타방에 출연해 아무렇지 않게 방송도 했었다. 그러나 2008년 5월 한 주간지에서 둘이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나오면서 결국 사실인것으로 밝혀진다. 이 이후에도 둘은 공식적으로 코멘트 한 적이 없다. 사진까지 떴는데 빼박이지 이 둘은 결혼설까지 났었으나 2010년 쯤 헤어진것으로 추정. 이후 코다가 나카이가 진행하는 방송에 나오기도 했고 나름 쿨한 행보를 보였다.

5 음반

5.1 싱글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수록 앨범비고
2000.12.06TAKE BACK59위22,680장affection데뷔 싱글
2001.05.09Trust Your Love18위42,100장
2001.10.03COLOR OF SOUL29위12,780장
2002.03.13So Into You50위5,800장선행 싱글
2002.07.24love across the ocean19위22,100장grow into one
2002.12.11m・a・z・e25위12,816장
2003.03.05real Emotion / 1000の言葉3위282,374장선행 싱글
2003.08.27COME WITH ME14위41,370장feel my mind
2003.12.10Gentle Words15위27,164장
2004.01.15Crazy 4 U12위28,272장선행 싱글
2004.05.26LOVE & HONEY4위150,634장secret
2004.07.28Chase18위21,690장
2004.09.08奇跡7위60,033장이싱글부터 현재까지 TOP10 기록 유지중
2005.01.19hands7위48,910장선행 싱글
2005.04.13Hot Stuff feat.KM-MARKIT10위29,509장리컷 싱글
2005.06.22Butterfly2위125,662장BEST
~first things~
2005.08.10flower4위106,099장
2006.09.07Promise / Star4위61,689장선행 싱글
2005.12.07you1위190,060장BEST
~second session~
첫 1위 싱글,12연작 프로젝트 시작
2005.12.14Birthday Eve6위47,661장5만장 한정
2005.12.21D.D.D. feat.SOULHEAD5위48,036장5만장 한정
2005.12.28Shake It Up6위47,014장5만장 한정
2006.01.04Lies7위46,989장5만장 한정
2006.01.11feel1위48,116장5만장 한정
2006.01.18Candy feat.Mr.Blistah3위47,856장5만장 한정
2006.01.25No Regret4위131,348장
2006.02.01今すぐ欲しい5위47,411장5만장 한정
2006.02.08KAMEN feat.石井竜也3위46,971장5만장 한정
2006.02.15WIND3위46,619장5만장 한정
2006.02.22Someday / Boys♥Girls3위89,413장12연작 프로젝트 마지막
2006.05.24恋のつぼみ2위273,060장Black Cherry
2006.07.264 hot wave2위390,685장4A 싱글
2006.10.18夢のうた / ふたりで…1위301,169장
2006.12.06Cherry Girl / 運命3위100,275장선행 싱글
2007.03.14BUT / 愛証2위128,781장Kingdom
2007.06.27FREAKY1위195,322장
2007.09.12愛のうた2위135,696장
2007.11.07LAST ANGEL feat.東方神起3위89,620장
2008.01.23anytime4위53,189장선행 싱글
2008.06.11MOON2위138,743장TRICK4A 싱글
2008.10.08TABOO1위88,405장
2008.12.24stay with me1위65,657장
2009.03.31It's all Love!1위99,429장BEST~third universe~
& 8th AL "UNIVERSE"
동생 misono와 콜라보레이션
2009.07.083 SPLASH2위92,822장3A 싱글
2009.09.16Alive / Physical thing1위44,745장
2010.01.20Can We Go Back2위36,565장선행 싱글
2010.07.07Gossip Candy4위84,358장Dejavu3A 싱글
2010.09.22好きで、好きで、好きで。
/ あなただけが
2위85,472장
2011.02.02POP DIVA4위39,878장선행 싱글
2011.08.174 TIMES6위74,300장JAPONESQUE통산 50번째의 싱글,3A 싱글
2011.09.21愛を止めないで6위43,969장
2011.11.30Love Me Back6위43,589장
2012.10.24Go to the top1위69,390장Bon Voyage
2012.12.26恋しくて7위24,537장
2013.07.31Summer Trip6위22,789장
2013.11.13Dreaming Now!9위25,953장
2014.08.06HOTEL7위21,565장WALK OF MY LIFE
2014.11.05Dance In The Rain-FC한정WALK OF MY LIFE디지털 싱글
2016.04.09Shhh!-FC한정-라이브 회장 한정 싱글

5.2 정규 앨범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2002.03.27affection12위91,360장
2003.03.19grow into one8위191,033장
2004.02.18feel my mind7위147,746장
2005.02.09secret3위522,201장
2006.12.20Black Cherry1위1,031,408장
2008.01.30Kingdom1위612,693장
2009.01.28TRICK1위391,094장
2010.02.03BEST~third universe~ & 8th AL "UNIVERSE"1위372,008장베스트 겸 정규
2011.03.02Dejavu1위211,033장
2012.02.01JAPONESQUE1위151,343장
2014.02.26Bon Voyage1위59,449장
2015.03.18WALK OF MY LIFE1위50,013장

5.3 편집반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2005.09.21BEST~first things~1위1,916,661장베스트
2006.03.08BEST~second session~1위1,804,485장베스트
2007.03.14BEST~BOUNCE & LOVERS~2위295,624장한정생산베스트
2009.03.25OUT WORKS & COLLABORATION BEST7위48,715장합작 베스트
2009.03.25Koda Kumi Driving Hits6위66,364장리믹스
2010.03.31Koda Kumi Driving Hits 25위43,032장리믹스
2010.10.13ETERNITY ~Love & Songs~3위91,600장리메이크앨범
2011.05.04Koda Kumi Driving Hits 36위26,747장리믹스
2012.03.14Koda Kumi Driving Hits 413위14,747장리믹스
2012.08.01Beach Mix4위36,388장리믹스
2013.02.27Color The Cover3위47,922장리메이크앨범Ⅱ
2013.03.20Koda Kumi Driving Hits 519위9,554장리믹스
2014.03.19Koda Kumi Driving Hits 619위8,543장리믹스
2015.07.22SUMMER of LOVE7위23,215장컬렉션
2016.01.20WINTER of LOVE2위30,379장컬렉션

베스트만 몇갠지

5.4 DVD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
2003.03.197 SPIRITS28위35,439장
2004.03.24feel…13위32,591장
2004.11.25girls~Selfish~11위33,436장
2005.09.21secret~FIRST CLASS LIMITED LIVE~1위322,731장
2006.09.13LIVE TOUR 2005~first things~deluxe edition1위134,492장
2007.03.28KODA KUMI Live Tour 2006-2007 SECOND SESSION1위174,964장
2008.03.31KODA KUMI LIVE TOUR 2007~Black Cherry~SPECIAL FINAL in TOKYO DOME1위105,712장
2008.09.24KODA KUMI LIVE TOUR 2008 ~Kingdom~1위94,831장
2009.10.21Koda Kumi Live Tour 2009 ~TRICK~1위85,136장
2010.10.06KODA KUMI LIVE TOUR 2010 ~UNIVERSE~1위67,862장
2011.02.09KODA KUMI ETERNITY ~Love & Songs~ at Billboard Live2위26,174장
2011.05.18KODA KUMI 10th Anniversary ~FANTASIA~ in TOKYO DOME1위45,654장
2012.02.08KODA KUMI LIVE TOUR 2011 ~Dejavu~1위32,722장
2013.03.20Koda Kumi Premium Night ~Love & Songs~4위21,512장
2013.12.04KODA KUMI LIVE TOUR 2013 ~JAPONESQUE~2위24,614장
2014.10.08Koda Kumi Hall Tour 2014 ~Bon Voyage~3위23,531장
2015.11.04Koda Kumi 15th Anniversary Live Tour 2015~WALK OF MY LIFE~2위19,265장
2016.03.23KODA KUMI 15th Anniversary LIVE The Artist2위14,608장

6 링크

6.1 공식 웹사이트

6.2 팬카페

  1.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밀'이라고 코멘트. 대충 40kg대 중반 정도로 짐작된다.
  2. 11월 'KODA'라는 예명으로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정식 데뷔는 12월 일본에서의 데뷔 싱글로 표기한다.
  3. 에이벡스의 레이블로 팝적인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만을 따로 추려낸 레이블이다. 실질적으로는 에이벡스 소속
  4. 코다 쿠미라는 이름으로 사인해 준 적 있다
  5. 2002년 데뷔한 AVEX의 대형 신인밴드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의 보컬로 데뷔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misono 언니 코다 쿠미'소개되곤했는데 지금은 언니가 완전히 역전했다. misono는 dat 해산 이후로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단 한 곡도 히트하지 못했다. 그 후 버라이어티 탤런트로 전향했지만 자기 과거 남친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거나 '1만장을 못 팔면 은퇴하겠다'는 등의 마케팅으로 인해 비호감 연예인으로 찍혔다.
  6. 하지만 현재 하로프로 굴러가는 상황봐서는... 그녀에게 있어선 그때 오디션에 떨어진게 오히려 잘된 셈. 한마디로 전화위복. 그리고 코다 쿠미까지 떨어뜨려 가면서 층쿠가 오디션에 합격시킨게 바로 모닝구 무스메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멤버로 평가받는 고토 마키다.
  7.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까지 잘된 편은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그냥 클럽DJ들한테 프로모션CD만 열라 돌리면 개나소나 다 올라가는 그런 차트다.
  8. 실제로 코다 쿠미가 직접 게임상의 캐릭터 모션캡쳐에 참여하였고, 극중 주요인물의 성우를 맡기도 하였다.
  9. 식사는 오로지 마른오징어와 물만 먹었고, 저녁 6시 이후로는 완전금식. 이건 지금도 계속 하는 식이요법이라고 한다.
  10. 이 노래는 2006년, 슈가의 아유미가 리메이크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었다.
  11. 엄밀하게 따지자면 나가이 고 원작의 유명 애니메이션 시리즈 큐티하니의 최신버젼 곡을 부른 것이다. 이 곡 자체는 초기부터 멜로디와 가사를 거의 바꾸지 않으면서 부른 사람에 따라서 방식만 바꿔서 각 시리즈마다 불러왔고, 코다 쿠미가 부른 것은 가이낙스가 제작한 OVA <Re 큐티하니>의 OP였다. 코다 쿠미의 싱글은 타이업으로 같이 나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명 시리즈물에 편승한 것이다.
  12. 코다 본인도 세월이 흘러 이 방송을 볼때 매우 부끄럽다고(…) 코멘트 한적이 있다.
  13. 사실 이 12주 연작 싱글들은 원래 정규앨범으로 묶어 발매할예정이었다. 그러한 곡들을 싱글로 낸것.
  14. 이는 근 일본 가요계 10년 동안의 최고 초동 판매량으로 남아있다.
  15. 킨키는 CD 연속 1위 기록이 있었다. 내기만 하면 1위.
  16. 오히려 코다는 YTN과의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고 인간적인 모습까지 느꼈다는 VJ의 증언도 있었다. 슈가의 CD까지 샀다고 말했다고.
  17. 물론 문제의 발언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이 하락의 가장 큰 이유긴하다. 하지만 음악 퀄리티가 꾸준히 좋았다면 히트에는 지장이 없었을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8. Alive
  19. 돔구장은 여가수들 중에서도 정말 최정상자리에 간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콘서트장이다. 게다가 도쿄돔은 다른 돔 콘서트장들과 비교해도 좌석수가 5만명 이상으로 허들이 꽤 높기 떄문에 더욱 힘든면이 있다. 지금은 허들이 많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난이도가 높다.
  20. 다만 널뛰기 하는 차트 성적(이를 테면 주말에만 순위가 반등한다던지)때문에 사재기 루머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루머이기 때문에 판단은 각자의 몫.
  21. 싱글 음반을 꾸준히 구입하는 고정팬이 약 2만명은 있는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