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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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C&C 아티스트
가수 예능 MC
강타 S.E.S.BoA신동엽강호동전현무
동방신기트랙스천상지희이수근김병만류담
슈퍼주니어 장리인제이민장동혁김태현한석준
소녀시대샤이니f(x)오정연장위안김경식
EXO레드벨벳 NCT홍록기
배우
이재룡유호정김민종황신혜강예원김하늘
이연희설리루한김수로장동건김시후
우이판문가영정소민윤소희
프로듀서 송재림공다임이학주
민희진Kenzie유영진백현김미정이경화
Hitchhiker이성수심재원이동우


"This is Return of the King" [1]
2인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 좌측부터 최강창민, 유노윤호
SBS 가요대상 대상
김종국
사랑스러워
(2005)
동방신기
O -正.反.合.
(2006)
-
-
-

음반 대상
SG워너비
<죄와 벌>
(2005)
동방신기
<"오"-정.반.합 ("O"-正.反.合)>
(2006)
SG워너비
<아리랑>
(2007)
SG워너비
<아리랑>
(2007)
동방신기
<주문-MIROTIC>
(2008)
슈퍼주니어
<Sorry, Sorry>
(2009)
서울가요대상 대상
수상하지 않음 (2005)동방신기
"O"-正.反.合.
(2006)
빅뱅
마지막 인사
(2007)
KM 뮤직 페스티벌
올해의 최고 아티스트상
동방신기
(2006)
슈퍼주니어
(2007)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최강창민
탈퇴 멤버
영웅재중믹키유천시아준수
이 문서는 동방신기의 국내활동에 대해서만 저술하고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은 동방신기/일본활동 문서 참조.

東方神起(とうほうしんき ひがしかた かみおき[2])
TVXQ; Tong Vang Xien Qi
DBSK; Dong Bang Shin Ki


1 개요

SM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아이돌.[3][4]

아이돌 그룹의 한류를 선도한 최초주자[5]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2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 신화가 아이돌 그룹의 생명 연장에 이바지하고,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아이돌 그룹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동방신기는 2세대 아이돌의 시초.


2 개관

작명 당시에 거창하게 여겨졌던 팀명은 '동방에서 신이 일어나다'라는 의미로, 이를 통해 이 그룹 자체가 아시아 음악 시장 제패를 목표로 계획된 프로젝트임을 짐작케 한다. 특히 멤버들의 예명을 4글자로 맞춘 것은 중국 시장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BoA의 성공적인 일본 메이저 시장 진출을 기반으로 기존의 중국 음악시장을 타겟으로 삼고자 했지만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되어 본래의 기획 의도와는 조금 다른 활동 노선을 걷게 된다.[6]

캐치프레이즈는 'We Are T!'. 2인조 재편 이후이자 데뷔 9년차에 접어들 쯤에 고안된 인사법으로 팬들과 함께 진행하는 인사법이다.[7][8] 동방신기의 멤버들이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의 재치 발랄한 캐치 프레이즈가 부러워 2012 TOHOSHINKI LIVE TOUR 2012 ~TONE~에서 제안했다.

2015년 12월 19일 기준으로 총 14,143,519장의 누적 판매 기록을 가지고 있다.[9] 이로써 국내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앨범 판매량 총 1000만 장의 위업을 달성했다. 넘사벽

2016년에는 동방신기 멤버 두 명의 평균 연령이 30세가 되었다.

3 마케팅

팀 이름 작명과정에서 다양한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SM5, 오장육부, 동방불패, 전.먹.고(전설을 먹고 사는 고래) 등 이후 영화 '동방불패'를 보고 영감이 떠오른 이수만의 아이디어로 이름을 동방신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팀명이 상당히 거추장했기 때문에 썰전에서의 희철유노윤호영웅재중이 처음에 팀명을 듣고 거의 울상이 되었다고 한다. [#]

아시아 음악시장 제패를 목표로 기획된 팀이다. 특히 중국 시장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으로 멤버들의 활동 가명을 이름 앞에 예명을 붙인 4글자 이름으로 작명했다. 당시 10대 청소년들과 방송가에서 4글자 이름 짓기 열풍이 있었다. 유노윤호(U-Know)는 'You know?'라는 단어를 통해 상대방을 알고 항상 이해하려는 마음과 빛과 소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중의적 표현. 영웅재중은 영웅. 시아준수는 아시아의 별을 의미하며 본인이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믹키유천의 믹키는 박유천의 영어이름이다. 한자 이름인 '비기'는 가요계의 숨겨진 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최강창민은 아시아의 최강(Max)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한다.

이런 설정은 H.O.T.강타, 신화신혜성, 전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예명 마케팅의 연장선 상이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사례. 이러한 전략은 향후 EXO 멤버의 초능력 마케팅으로 정점을 찍는다.

댄스음악이 점차 주춤해지고 발라드와 R&B가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띄기 시작했던 기획 당시 가요계 판도에 맞게 이후 지향하기 시작했던 SMP 장르로 정착하기에 앞서 발라드곡을 통한 실력파 그룹으로의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아카펠라 댄스 그룹이라고 했는데 그에 맞게 각 멤버마다 음역대 포지션을 부여받았다고 했다.[10]

4 활동

4.1 2003년

2003년 12월 17일. 롯데월드에서 비공식 데뷔무대를 선보였다.[#]
2003년 12월 26일. 2003년 SBS 송년특집 BoA & 브리트니 스페셜로 데뷔했다. SM은 H.O.T., S.E.S., 신화의 해체나 소속사 이전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열악했기 때문에 BoA는 솔로 가수이며 SM의 소녀가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데뷔무대를 가요프로그램이 아닌 특집 방송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동방신기를 향한 SM의 적극적인 푸쉬가 이루어진 셈이다.

여담으로 동방신기의 공식 데뷔일은 앞서 설명한 SBS 'BoA & 브리트니 스페셜'이 방영된 2003년 12월 26일이 맞다.

4.2 2004년

SBS에서 방영된 무대 모습이다.[#]

[무대 영상]
2004년 2월 7일. MBC 음악캠프를 통해 공식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11] 'Hug'를 들으면 딱 알 수 있겠지만 데뷔곡부터가 아카펠라 화음이 들어간 달달한 느낌의 곡이어서 기존 아이돌 그룹들의 댄스 음악을 통한 역동적이고 현란한 인상과는 사뭇 다른 첫인상을 남겼다. 이는 활동 당시 아이돌 그룹의 침체로 인한 댄스 음악의 퇴조와 발라드, R&B 장르의 강세로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아이돌 시장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데뷔곡 'Hug'를 통해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앨범도 아닌 싱글 한 장으로 엄청난 판매 수량을 달성하게 된다. SM 가수로서는 H.O.T.의 "Outside Castle" 이후 4년만에 남자 아이돌 1위곡이라는 기록을 쓰게 되었으며 신인그룹이었던 점이 무색할 만큼 성공적이었던 반응에 힘입어 싱글임에도 불구하고 수록곡인 'My Little Princess'를 통해 후속곡 활동을 이어갔다.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언플에 대한 책임감이 컸는지 라이브 시 원곡보다 키를 높여 불렀던 초강수까지 두었다.

장장 4개월이라는 유례없는 싱글앨범 활동 종료 후 숨돌릴 틈 없이 두번째 싱글 'The Way U Are'와 2004 SMTOWN 앨범 수록곡 'Drive'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 되는 데 이 곡은 동방신기에게 있어 팬덤 고착을 비롯하여 여러모로 큰 전환점이 된 곡임과 동시에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앨범 활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The Way U Are'는 라틴 유로 팝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이후 발표되는 SMP 장르로의 음악적 전환을 예견하는 듯 하는 현란한 헤어스타일과 절제된 섹시미를 강조하는 망사 의상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활동 기간 중 믹키유천의 급성맹장염·장염과 공교롭게도 같은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해 멤버 한 명을 잃는 불운을 겪었던 그룹 원티드와 같은 날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유달리 사건사고가 많았던 앨범 활동 기간이었던 데다 일부 카시오페아들의 원티드의 멤버였던 서재호에 대한 고인드립이 언론을 통해 기사화될 정도로 문제시되어 기성세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실력파 그룹으로 인정받아가던 동방신기의 이미지에도 억울하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싱글 2장을 통한 장장 7개월 간의 앨범 활동을 마친 뒤 불과 1개월 만에 정규 1집 'Tri-Angle'을 발표하여 사실상 동방신기는 2004년을 현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빡빡한 국내 활동으로 채우게 된다. 이 앨범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더블 타이틀곡 체제였던 만큼 앨범 자켓 사진에도 'Tri-Angle'의 강렬한 모습과 '믿어요'에서의 발라드 귀공자 컨셉이 같이 공존하는 양면성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H.O.T.의 '아이야'를 연상케하는 하드코어한 의상과 컨셉이 일반 대중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것을 의식한 것인지 활동 기간 가운데 2개월 간은 발라드곡인 '믿어요'로 활동하며 본래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기획의도를 유지해 나갔으며 덩달아 크리스마스 시즌과 2004년의 끝자락에 단독 겨울 시즌 앨범까지 발표하여 동방신기는 1년동안 무려 4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고 타이틀곡이었던 '마법의 성'을 통해 'Tri-Angle'과 더블 후속곡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고[12] 동방신기는 그 해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동시에 본상을 수상한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두 번째 가수로서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활동 막바지에 동방신기와 카시오페아는 또다른 악재와 마주하게 되는 데 이는 동방신기의 싱글 2집 'The Way U Are'의 한정판 스토리북에서 언급된 바 있는 멤버교체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팬들을 카오스에 몰아놓은 바 있었지만 SM 본사 앞에서 가졌던 간담회를 통해 동방신기가 중국 활동에 한해서만 중국인 멤버를 포함한 6인조로 활동할 것이라고 공표하며 멤버교체설은 일단락된다.[13] 하지만 이는 이후 일본 현지화 활동 계획으로 인해 무산된 전략인 듯 하다.


4.3 2005년

동방신기는 2005년 1월 2일과 15일. 각각 SBS 인기가요MBC 음악캠프를 끝으로 장장 10개월 간의 국내 앨범활동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일본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일본 첫 싱글 'Stay with Me Tonight'을 발표하고 일본 메이져 시장 진출의 기반을 다지던 중 6월, 여름 싱글 'Hi Ya Ya 여름날'을 발표했다. SM 가수 최초의 단독 여름 시즌 앨범으로 활동 기간은 2~3주 남짓으로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점차 일본 활동의 비중이 많아지게 되면서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굉장히 의미깊은 앨범인 셈.

그 후 싱글 2집 'Somebody to Love'를 발표하여 국내에서의 정상급 아이돌이 아닌 일본 메이져시장에서의 초짜급 신인으로 활동하게 되고, 9월 11일 정규 2집 'Rising Sun'이 발표되었다. 'Rising Sun'은 순수함을 잃고 점점 타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노을에 빗대어 표현한 곡으로 전작인 'Tri-Angle'과 마찬가지로 SMP 장르의 곡이지만 락사운드가 아닌 브레이크 비트가 사용되어 강렬하지만 너저분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멤버 영웅재중이 안무 연습 중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여 안무 대열에 함께하지 못하거나 아예 방송에 불참하는 불상사가 허다한 편이었으며 이로 인한 안무 대열 보충을 위해 가면 백댄서를 기용한 퍼포먼스 방식은 이후 타 아이돌 팀에게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동방신기의 본격 리즈시절을 알린 앨범이었던 만큼 2004년 신인 시절 3연타 앨범 활동으로 인한 애정피로현상에서 비롯된 가요프로그램에서 10~20위권을 간당간당했던 피지컬 순위 기록과 달리 SBS 인기가요에서 활동 1개월 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는 등 이 앨범을 통해 신인 꼬리표를 떼어낸 최정상급 아이돌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후 11월부터 후속곡인 'Tonight'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자세히 읽어보면 상당히 야한 가사를 통해 정열적인 사랑을 표현한 R&B 곡으로 이 곡을 통해 그간 언플만 주구장창 해왔던 실력파 아이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곡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프로모션으로 인해 가요프로그램 출연은 상당히 뜸한 편이었으며[14] 믹키유천의 후반부 애드립 파트의 음역대가 너무 높았던 탓에 스스로 낮춰불렀던 적이 많아 보는 이들을 긴장하게 하기도 하였다.

막바지 활동 시기와 동시에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그 해 12월에는 당시 신인이자 프로젝트 등용문 그룹이었던 슈퍼주니어와 함께 'Show Me Your Love'라는 컴필레이션 겨울 앨범을 발표하고 일시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당시 동방신기 인원과 슈퍼주니어 인원을 합치면 무려 17명에 달하는 데 이 때문에 무대가 꽉차서 일부 멤버들이 무대에서 넘어지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까지 나왔었다. 이 곡은 현재까지도 각 팀의 팬들에게 겨울 시즌마다 자주 회자되는 명곡으로 SM 소속 그룹의 캐롤송 계보는 이후 소녀시대의 '첫눈에 (Snowy Wish)'와 EXO의 '첫 눈'으로 이어진다.

동방신기는 2집 활동을 통해 그 해 MKMF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SBS 가요대전에서 최고인기상을 수상하며[15] [2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4.4 2006년

2005년 12월 30일, KBS 가요대상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2집 활동을 마무리한 후 첫번째 단독 콘서트와 각종 CF, 그리고 극장드라마 'Vacation' 촬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고, 2006년 6월에는 유영진이 작곡을 맡은 2006 독일 월드컵을 겨냥한 응원가 '동방의 투혼'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여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의 감흥마저 박살난 데다 한국을 응원하는 취지로 발표된 곡이지만 정작 월드컵이 한창일 당시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첫번째 투어를 벌이던 아이러니까지 겹쳐 팬들에게도 자주 회자되는 곡은 아니다. 망했어요...

그리고 오랜 일본 활동을 잠시 접은 채(...) 9월 29일 정규 3집 "O"-正.反.合.이 발표되었다. 사실 2005년 연말을 기하여 마무리되었던 2집 활동 이후 9개월 간 가졌던 공백기 동안 싱글 4장에 정규앨범 1장, 그리고 첫번째 일본 투어까지 병행하면서 과연 한국 앨범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빡빡한 일본 활동을 벌였던 지라 팬들의 걱정과 의구심도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동방신기는 당시 80만명이라는 ㅎㄷㄷ한 공식 회원수를 자랑했던 카시오페아의 규모를 고려하여 2집과 마찬가지로 앨범 발표 다음 날 잠실 주경기장에서 쇼케이스를 염으로서 본격적인 음반활동에 들어갔다.

타이틀곡 "O"-正.反.合.은 “정”이 있으면 항상 “반”이 있어 “정”을 견제하는 동시에 “합”을 도출하게 되는 계속되는 사회의 흐름이 결국 큰 '원(O)'을 만들어 낸다는 다소 충공깽스런 의미를 가사로 녹여낸 곡으로 정.반.합의 의미에 관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랜스사운드가 기반으로 깔린 반주가 보아의 'Girls On Top'과 기조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인터넷 상에서 이 두 곡을 자연스럽게 섞어낸 이른바 '걸스반합' 소녀들의 도시락? 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앞서 발표된 SMP 곡들이 현세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거나 부정하려는 다소 반항적인 모습이었다면 이 곡은 세상에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논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타협하려는 듯한 좀 더 성숙해진 인상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작인 'Rising Sun'에서 라이브 논란에 휩싸여 아카펠라 댄스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던 뼈아픈 과거를 의식한 것인지 일본 투어를 통해 다듬어진 라이브 실력이 팬덤 외 일반 리스너들에게도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활동 중 또 다른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데...자세한 내용은 유노윤호 문서 참조.

"O"-正.反.合.의 SBS 인기가요 트리플 크라운 달성 이후 곧바로 후속곡 '풍선(Balloons)'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컨셉이 당시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유행했던 H.O.T.의 '캔디'를 연상케하는 데 동방신기가 기획 당시 '제 2의 H.O.T.'라는 슬로건을 자주 내세웠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어찌 보면 H.O.T.의 후계 그룹이 되기 위한 전작 'Tri-Angle'에서의 하드코어한 컨셉에 이은 두번째 관문이었던 셈. SMP 장르의 곡과 상반되는 발랄한 컨셉이 먹힌 탓인지 음원차트 역시 타이틀곡 "O"-正.反.合.보다 선전하는 등 대중들에게도 상당히 어필이 된 곡이지만 리메이크곡이다 보니 일본 앨범에 비해 정성을 안 들이는 것 같다는 비판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리메이크곡인 점이 기성세대들에게도 꽤나 어필이 되었는 지 이 곡을 통해 SBS 가요대전에서는 원곡 가수인 다섯손가락과, KBS 가요대축제에서는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콜라보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2006년 연말 가요 시상식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됨으로서 2005년보다 더욱 탄탄하게 입지를 다지게 되고 특히 정규 3집은 2010년 기준으로 40만장을 돌파하여 2006년 음반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가서 밑바닥 생활을... 하지만 이 기록이 2005년에도 기록한 바 있는 2집의 음반판매량과 달리 많이 퇴색되었는 데 왜냐하면 현재 슈퍼주니어EXO의 각 멤버별 케이스를 통해 절정을 달하고 있는 SM의 얄팍한 상술의 시초가 이 앨범이기 때문이다. 1~2집과는 달리 3집은 단순히 CD만 수록되어 있는 A버전, CD와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및 멤버별 인터뷰가 수록된 DVD가 추가된 B버전, 그리고 동방신기의 극장드라마 'Vacation'과 메이킹이 수록된 C버전, 동방신기 3집 쇼케이스 실황과 1~3집까지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된 D버전 등 총 4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게다가 'Vacation'의 DVD가 별도로 발매되지 않은 점, 그리고 A, B버전과 C, D버전마다 'Get Me Some'[16]과 '풍선 (Balloons)'[17]이 다른 버전으로 수록된 점을 생각하면 노린 것이 분명하다.

4.5 2007년

3집 활동 마무리 후 9번째 싱글 'Step by Step'을 발표하고 다시 일본활동에 매진하던 동방신기는 2007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두번째 콘서트 THE 2ND ASIA TOUR CONCERT "O"를 개최하였다. 단독 콘서트로서는 이례적으로 약 10억원을 웃돌았던 투자비와 동방신기가 각종 연말시상식 그랜드슬럼을 달성하게 되어 그만큼 언론의 관심 또한 뜨거웠던 만큼 tvN을 통해 콘서트 실황을 중계하여 팬들에게 DVD에 대한 갈증을 달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연 후 일부 관객들이 공연 전 맡긴 소지품을 찾지 못해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한 이른바 소지품 대란과 같은 안전사고로 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콘서트 후 동방신기는 당초 4집 컴백을 2008년 초로 예정을 잡은 채 일본에서도 점차 상승세를 보이는 현지 반응에 힘입어 2007년 한 해를 거의 일본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디지털 싱글 '여행기' 발매, 드라마 OST 참여와, 아시아송 페스티벌, Mnet 20's Choice 참석, 그리고 시아준수의 '애니밴드' 프로젝트 참여, 앙코르 콘서트 등을 통한 소소한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의 갈증을 달랬지만 본래 매년 9월에 동방신기가 컴백해야할 시기에 슈퍼주니어가 앨범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배가시켰다.


4.6 2008년

그러던 중 2008년 2월 중하순, 동방신기의 일본 16번째 싱글 'Purple Line'이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위에 등극했다는 희소식과 동시에 SBS 인기가요KBS2 뮤직뱅크를 통한 스페셜 활동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래 이 곡은 작곡가가 유영진인 점과, 뮤직비디오도 한국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점, 그리고 본래 2008년 초를 4집 컴백시기로 예정하였던 점을 들어 이 곡을 통한 일시적 국내 활동을 어느 정도 예견하는 팬들도 있었는 데 공교롭게도 오리콘 위클리 1위까지 달성하게 되면서 자축의 의미까지 더해진 스페셜 활동을 벌이게 된 셈. 이 곡을 통해 가요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한 일시적 활동을 벌인 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도 3연속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 행진을 이어가며 한일 양국에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9월, 마침내 전설의 정규 4집 '주문-MIROTIC'의 발표가 확정된다. 본래 2008년 초로 잡혀있던 컴백 시기가 일본에서의 상승세로 인해 하반기로 연기되어 장장 2년여만에 국내 컴백이 성사된 셈. 타이틀곡 '주문-MIROTIC'은 리버스 비트 장르의 곡으로 한번 들으면 헤어날 수 없다는 가사의 내용과 영웅재중이 작명한 부제목을 통해 기존의 SMP 장르의 곡과 차별화를 두었다. 전작들에 비해서 절제된 느낌이고 잠든 리듬감을 불러 일으키는 엄청난 중독성의 비트와 넘사벽 난이도의 안무로도 유명하지만, 여심을 저격해 몸매의 윤곽을 한껏 드러내는 파인 의상을 통한 섹시한 남성미를 강조한 전략이 통하여 음반 뿐 아니라 음원차트에서도 전작인 'Tri-Angle', 'Rising Sun', '"O"-正.反.合.'에 비해 상당기간 상위권을 유지했다. 게다가 그간 매 앨범마다 지향해왔던 SMP 퍼포먼스에 가려진 가창력 또한 오랜 일본활동을 통해 숙달되면서 데뷔 초기 이후 가려져왔던 아카펠라 댄스그룹이라는 슬로건이 빛을 발하게 되며 비로소 완전체 그룹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수많은 대중들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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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규 4집 앨범이 2008년 음반판매량 집계 결과 50만장을 돌파하게 되어 서태지 7집 이후로 하프 밀리언셀러를 달성하여 골든디스크 음반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0년 기준으로 60만장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물론 단일판매량은 아니다. [#]

이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왔던 사생팬들의 만행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드러나게 되고 반년 뒤 한국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버리게 되는 일련의 사건의 여파로 드러나게 된 2008년 하반기 한일을 넘나드는 엄청나게 빡빡한 스케줄이 만천하에 공개되기도 하는 등 다소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슈를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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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타이틀곡 '주문-MIROTIC' 가사 중 'Under My Skin', 'Crystal' 그리고 'Red Ocean'이라는 구절이 각각 스킨십과 정자, 그리고 여성의 처녀막을 빗댄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수정조치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 판결이 너무 오버라고 판단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다시 해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2008 SBS 가요대전에서만큼은 원 가사로 불렀는 데 이는 방송시간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단독 콘서트에서 수정된 클린버전을 부정하는 듯한 팬들의 원곡 가사 떼창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5인 동방신기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4.7 2009년 ~ 2010년

일본 도쿄 돔 단독 콘서트 개최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아시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중, 2009년 7월 31일, 멤버 시아준수, 믹키유천영웅재중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 이후 3개월간은 SM과 에이벡스 측에서 빠른 진화에 나서면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고, 팬들 또한 평소 멤버들이 대외적으로 보여준 끈끈한 정을 생각했을 때 그럴 일은 없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연말에 들어서면서 소문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고, 예상외로 법정 싸움이 장기화됨에 따라 그룹 활동 역시 중단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들과 나머지 두 멤버들끼리 서로 다른 방을 쓰고, 스케줄 사이에 이동을 할 때 다른 차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에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서 앉는 등, 이미 멤버들 간의 사이도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2010년 초에 계획되었던 한국 5집 컴백은 백지화되었고, 그룹은 대외적으로는 2009년 열렸던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그리고 2010년 3월에 발매된 30번째 일본 싱글 시간을 멈춰서 이후로 공식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세 멤버는 2010년 6월부터 JYJ를 결성하여 활동 중이고, 일련의 사태로 인해 그룹 자체의 비전이 불투명해져 향후 활동 방향마저 백지 상태가 되버린 유노윤호최강창민은 각각 뮤지컬 활동과 연기자 활동을 통해 향후 활동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과반수 멤버들의 이탈로 인해 향후 활동 진행에 타격을 받은 동방신기는 그룹 존속 위기를 맞게 되고 탈퇴 멤버들의 소송 장기화와 팬덤 분열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SM 측은 결국 5인을 함께 끌고 나가고자 했던 기존의 방침을 철회하고 회사에 남기로 한 유노윤호최강창민, 두 멤버들만으로 동방신기 활동을 적극적으로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후 2인조 동방신기는 2010년 8월 SMTOWN 라이브 투어를 통해 당초 5인조 동방신기의 5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곡인 'Maximum'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게다가 오프닝 멘트에서 자신들을 동방신기라고 소개하면서 2인체제 동방신기로의 컴백을 예견하기도 했다. 동방신기는 이를 기점으로 정규 5집 컴백 준비와 동시에 그룹 활동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여담으로 이 사태의 여파에 따른 팬덤 분열로 인한 각 팬덤간의 수정 전쟁을 의식한 탓인지 문서의 내용 또한 같은 소속사 후배 그룹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부실했었고 급기야 비회원 수정 차단 조치까지 내려진 바 있었다.


4.8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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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 12월, 동방신기의 2인조 컴백이 확정되었다. 사실 이는 2인조 동방신기의 실험 개념의 첫 공식 무대였던 SM타운 2010 합동 공연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이로서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추억으로 돌린 채 새로운 이름으로의 듀엣 결성, 혹은 유노윤호, 최강창민 멤버 각자의 같은 소속사 안에서의 독립적인 활동을 통해 과거 H.O.T.의 전례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을까하는 모두의 예상은 단박에 빗겨갔다.

이러한 결정은 물론 멤버들의 의지도 많이 반영이 되었겠지만 SM 입장에서도 동방신기가 6년간 활동해오면서 쌓아온 커리어와 팀 자체의 네임벨류가 SM의 브랜드벨류에 상당한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에 동방신기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SM과 멤버들의 결정을 통해 '동방신기를 지켜줘서 고마워요'라며 안도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결과 동방신기 팬덤은 현재의 동방신기 2인체제만을 응원하는 부류, JYJ와 동방신기 양쪽을 전부 응원하는 부류(5인 지지) 등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되어 팬덤들간의 싸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12월을 전후하여 동방신기의 2인조 컴백에 대한 윤곽이 잡히더니 SM 소속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연말 시상식 시즌에 TV 광고를 통해 동방신기의 컴백을 알리는 등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2011년 1월 3일, 그들은 2년 3개월만에 5집 타이틀곡 '왜 (Keep Your Head Down)'로 컴백했다. 이 곡은 당초 2010년 초에 계획되어 있었던 5인 동방신기의 5집에 수록될 유노윤호의 솔로곡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곡이었으나 동방신기가 과반수 멤버의 이탈을 겪으면서 이에 따라 음악적 노선 변화가 불가피해지자 최강창민을 가세시킨 채 상당부분의 편곡과 수정을 거친 뒤 타이틀곡으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 곡을 통해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상당횟수 1위를 석권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전작 '주문-MIROTIC'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게 되고 이를 통해 리패키지 발표 전까지 서브 타이틀곡인 'Maximum'과 '왜 (Keep Your Head Down)'의 리믹스 버전을 통해 타이틀곡 활동의 연장선상의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그 후 3월 하순에 접어들 쯤 리패키지 타이틀곡인 '이것만은 알고 가(Before U Go)'를 통해 후속곡 활동에 들어갔다. 이 곡은 발라드 버전과 이후 Catch Me 콘서트의 라이브앨범이 발매되고 나서야 정식 음원으로 들을 수 있었던 퍼포먼스 버전 등 2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데 팬들은 대체적으로는 후자를 선호하고 있다. 또한 후렴 가운데 '바보등신'이라는 구절이 이목을 끌었는 데 작사가인 유영진 입장에서는 사랑했던 여자를 지키지 못한 자책감을 강조하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욕설같은 뉘앙스가 풍겨나오는 탓에 MBC의 심의에 걸려서 음중에선 '바보같은 나'로 수정해서 불러야 했고 이 때문에 MBC는 팬들에게 그야말로 바보등신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동방신기는 4월 넷째주까지 활동을 이어간 뒤 5월부터 일본 활동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들어갔다.


4.9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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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4일, 정규 6집 'Catch Me'가 발표되었다. 카드캡터 체리 주제가가 아닙니다. 5집에서보다 더욱 왕성한 활동이 행해져야 했을 상황이었으나, 5번째 일본 투어가 뒤늦게 치러지고 당시 SM이 신인 그룹 EXO의 프로모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상황이 맞물려 2011년 4월, 5집 활동 마무리 후 장장 1년 5개월 만에 국내 컴백이 성사된 셈. 타이틀곡 'Catch Me'는 덥스텝 사운드와 오케스트라 반주가 어우러진 SMP 곡으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진심은 제발 떠나지 못하게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자존심 강한 남자의 이중성을 가사에 담았다. 또한 멤버들과 백댄서들의 팔을 이어서 각각 용의 모습과 헐크의 팔을 형상화한 안무를 통해 아카펠라 그룹에서 퍼포먼스 그룹으로 전환된 팀의 모습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듯 하는 인상을 풍긴다.

그런데 음원 공개 당일에 예상보다 낮은 10위권 안팎을 기록하고, 당시 일부 가요프로그램이 순위제도를 잠시 중단했던 상황과 싸이강남스타일 열풍이 맞물려 '동방신기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1위 기록을 못 한 앨범'이 되었다. 하지만 5집에서보다 진보된 퀄리티와 멤버들의 보컬 능력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비록 음반 1위를 기록하지는 못 했으나 유일하게 싸이강남스타일에 맞서 1위 후보에 가장 많이 등극한 곡이 되었다. 또한 덥스텝 사운드부터 오케스트라 반주까지 여러 부분이 국내 팬들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장르였다는 점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런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노래의 웅장한 멜로디와 넘사벽 난이도의 안무 역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강남스타일 때문에 진가를 발휘하지 못 한 노래'라고도 불린다. 또 여담이지만 장장 4년이라는 긴 시간만의 Catch Me 국내 컴백 콘서트에서 3분만에 공연 티켓팅 매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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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용춤. 핵간지

앨범 활동에 돌입한지 1개월하고 반이 지난 시점인 1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앨범 발표에 앞서 일정이 공지된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동방신기의 이름으로 열린 콘서트인만큼 5인 시절의 곡들도 다수 불러 팬들로 하여금 추억을 선사함과 동시에 동방신기에게는 마치 부상을 당한 환자의 재활치료와 같은 개념의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 시점이 앨범 활동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데다 앞서 활동했던 보아의 7집 'Only One'이 리패키지 앨범 발표 및 후속곡 활동없이 1개월만에 마무리되었던 전례를 들어 6집 활동이 후속곡 없이 금방 마무리되나하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으나 콘서트에서 후속곡인 'Humanoids'의 안무와 티저가 공개되면서 의혹은 종결되었다. 하긴 팬을 돈줄로 아는 SM이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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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대로 1주일 뒤, 사실상의 후속곡 쇼케이스를 겸한 콘서트를 통해 티저와 안무가 공개된 'Humanoids'가 수록된 리패키지 앨범 발표와 동시에 후속곡 활동에 들어갔다. 'Humanoids'는 샤이니의 '셜록'의 작곡에도 참여했던 토마스 토를슨이 여럿 작곡가와 공동으로 작업한 하이브리드 일렉트로닉 장르의 댄스곡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미래지향적 가사가 담겼다. 이러한 점을 들어 유영진의 곡일 것이라는 추측이 상당수였으나 유영진이 일체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네오 SMP로 분류되고 있다. 이로서 동방신기의 6집은 후속곡마저도 일렉트릭 댄스곡으로 활동한 최초의 앨범이 되었다.[18]

그리고 2012년 11월 28일 SM은 3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JYJ와 조정에 합의, "향후 서로 간 관련될 일이 없어 상호 간섭하지 않기로 해 금일 조정을 통해 재판을 마무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팬들 중 아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이것으로 동방신기는 JYJ와 완전히 결별하여 2인조 그룹으로 확정되었고 각종 포털사이트의 프로필 상에서도 명목으로나마 살아있던 세 멤버들의 이름이 삭제되었다.

동방신기는 2012년 12월 31일 열렸던 MBC 가요대제전을 끝으로 공식적인 6집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비록 뼈아픈 멤버 탈퇴를 겪기는 했지만 어느덧 중견 아이돌이라는 호칭이 어울릴 만한 연차가 되었고 한국 음악계에서도 영향력이 큰 네임벨류를 지닌 만큼 연말 가요 축제 및 시상식에서 가장 마지막에 무대를 장식하였지만 Catch Me의 발표 1개월만에 차트아웃, 그리고 가요프로그램 1위 기록 전무라는 영 좋지 않은 성과를 남겨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등에 업은 채 소속사빨로 인기가수 대우를 받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4.10 2013년

6집 활동 마무리 후 동방신기는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면서도 각각 최강창민의 '우리동네 예체능' MC와 유노윤호의 드라마 '야왕'을 통한 연기 활동을 통해 국내 팬들을 심심하지 않게 했었고 일본에서 7만명 규모의 닛산 스타디움 입성이라는 희소식과 동시에 동방신기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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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을 목전에 두었던 2013년 10월에는 2008년 가졌던 5주년 팬미팅 이후 약 5년만에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카시오페아 3기 팬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일본 위주의 활동을 벌이는 것이 하루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던 탓인지 다음 정규앨범 소식이 한동안 통 들리지 않았다가 2013년 11월, 정규 7집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과 동시에 SMTOWN WEEK를 통한 10주년 기념 콘서트 일정이 발표되어 국내 팬들의 기대에 충족했다.

데뷔 만 10주년을 맞이했던 2013년 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열렸던 SMTOWN WEEK의 일환으로 개최된 'Time Slip' 공연을 통해 동방신기는 그간 자주 부르지 않았던 'Hug'를 비롯한 초창기 시절의 곡들을 다수 불렀으며 당일 정규 7집의 티저 또한 공개됨으로서 팬들에게 기대감과 안도감(...)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5집에 이어 연말 시상식 시즌에 컴백을 알리는 TV 광고가 나가기도 했다.

콘서트를 전후하여 7집 컴백의 윤곽이 점차 잡히더니 이듬해인 2014년 1월 첫째주 컴백이 확정되면서 동방신기는 2013년의 끝자락과 2014년의 시작선상에서 맞이하게 된 데뷔 1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4.11 2014년 ~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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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1월 4일, KBS2 뮤직뱅크를 통해 컴백했다. SM이 후배 그룹 EXO의 '늑대와 미녀 (Wolf)'부터 시행해왔던 선음방 후음원이라는 다소 팬덤 화력 발휘에 있어 난감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통해 팬들을 충공깽에 몰아놓기도 했다. 그 후 1월 7일에 정규 7집 'TENSE'의 음원이 공개되었다. 동방신기 역대 정규앨범 사상 최초로 앨범 고유의 타이틀이 명명된 앨범으로 데뷔 10주년을 뜻하는 '10th'와 '긴장된'이라는 의미의 영단어 'TENSE'의 중의적 표현. 수록곡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곡들로 데뷔 10주년을 헌정하는 느낌의 인트로곡인 'TEN (10 YEARS)'[19]SMTOWN WEEK 콘서트에서 앞서 공개된 '항상 곁에 있을게(Always With You)'가 꼽히고 있다. 타이틀곡인 'Something'은 유영진 작곡이기는 하지만 기존의 강렬한 SMP 장르 및 컨셉과 많이 상반되는 도전적인 스윙 재즈 장르와 정장 차림을 통해 10년차 가수로서의 부드럽고 중후한 바람둥이 이미지를 한껏 살렸다. 항간에는 이제 과격한 안무하기에는 나이가 찼다고 설치는 이들이 있었는데 Something도 사실 쉬운 안무는 전혀 아니다(...) 과격하지 않은 중후하고 고급진 컨셉이 먹혀 음원차트에서도 줄 1위를 차지하며 상당히 선전하였고 때마침 걸스데이도 동명의 곡을 발표하여 한동안 음원차트에 두 'Something'이 나란히 1,2위로 공존하는 진귀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가요프로그램에서도 상당횟수 1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활동 기간 동안에도 일본 앨범 프로모션 및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이었는지 방송 출연이 6집에 비해 많이 뜸한 편이어서 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근데 이제는 뭐 놀랄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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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정도의 텀을 가진 뒤 후속곡인 '수리수리(Spellbound)'를 발표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수리수리(Spellbound)'는 'Someth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고급진 비트에 셔플 사운드가 어우러진 댄스곡으로 여자 백댄서와의 스킨십은 덤 소녀시대2NE1의 음원 강세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Something'과 마찬가지로 과격하지 않고 무난하게 들을 수 있는 곡. 하지만 이 역시 유노윤호의 발목 부상으로 인해 활동 기간이 한달도 채 되지 않았던 점이 악재였다. 유노윤호의 부상 회복 이후 동방신기는 이후 2개월에 걸친 7번째 일본 투어에 돌입하게 된다.

투어 종료 후 유노윤호는 MBC 드라마 '야경꾼 일지'를 통한 연기 활동을, 최강창민은 한동안 휴식기에 들어갔다. 7집 콘서트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팬들의 목이 빠져가고 있을 즈음 2014년 10월, 동방신기의 5번째 콘서트 SPECIAL LIVE TOUR "T1ST0RY"의 일정이 공개되었다. 이게 아니다. 콘서트 제목은 동방신기의 영어권 앞글자 이니셜인 'T'와 'HISTORY', 그리고 숫자 1과 0을 조합한 단어로 동방신기의 10년사를 다루는 취지의 공연임을 공표한 셈. 콘서트 개최가 앨범 발표에 비해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불만도 있었는 데 이에 대한 불만은 공연 2일 차였던 2014년 12월 7일이 동방신기 데뷔 4000일이 되는 날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종식되었다. 콘서트의 내용은 'Time Slip' 콘서트에 비해 초창기 히트곡들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 제목과는 취지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신선했다는 평도 상당수였는 데 다른 거 다 떠나서 팬들에게 가장 각인된 건 아무래도 최강창민의 상의 탈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본인들도 자신감이 불타올랐는 지 'Somebody to Love'의 한국어 버전을 부르던 중 팬들에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는 것을 허락하기도 했다.

2015년을 기하여 30살을 맞은 유노윤호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때문에 한동안은 동방신기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SM 측에서 유노윤호의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을 꾸미려는 계획인지 T1ST0RY 앙코르 콘서트가 확정 단계에 있다는 팬들 사이에 썰이 나돌더니 4월 30일, 예상대로 앞서 열렸던 "T1ST0RY"의 앵콜 개념의 콘서트인 "T1ST0RY...&!"의 공연 일정이 발표되었다.

사실상 입대 전 마지막 공식활동인 2015년 6월 13일, 14일 양일 진행된 T1ST0RY 앙코르 콘서트에서 유노윤호의 입대 소식뿐 아니라, 최강창민 역시 유노윤호 입대 후 빠른 시일 내 입대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강창민은 "저희들은 새로운 여행을 하고 올 테니 기다려주세요. 원피스에서 루피가 이년뒤에 만나자니까 저는 저희와 카시오페아 여러분들과 상황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면 몇년 뒤에 우리 스토리들을 여기 이자리에서 얘기해요."라고 말하며, 팬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15년 7월 20일 낮 12시, 각종 음악 사이트를 통해 스페셜 앨범 'RISE AS GOD'을 발표했다. 멤버별 더블 타이틀곡으로 유노윤호의 솔로곡은 '샴페인', 최강창민의 솔로곡은 'Rise As One'이다. 그럼 뭐해...윤호 다음날 입대인데...

2015년 7월 17일 RISE AS GOD의 첫번째 티저가 공개되었다. [#]
2015년 7월 18일 RISE AS GOD의 두번째 티저가 공개되었다. [#]

2015년 7월 17일 Rise As One의 티저가 공개되었다.[#]
2015년 7월 19일 샴페인의 티저가 공개되었다.[#]

유노윤호는 스페셜 앨범의 발매 다음날이었던 2015년 7월 21일에 26사단 신병교육대를 통해 현역으로 입대했고, 최강창민 역시 의경에 합격하여 2015년 내로 입대한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2015년 11월 19일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의경으로 복무 중이다. 이렇게 동방신기는 다시 2년간의 휴식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4.12 일본 활동

동방신기/일본활동 문서 참조.


5 멤버들의 역량

5.1 5인 시절

1990년대 중반 댄스 음악의 강세와 아이돌의 등장으로 인해 가요프로에서도 립싱크가 주를 이뤄 아이돌 그룹과 댄스 가수들의 가창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아이돌 그룹의 한계와 편견으로 굳어져 갔는 데 동방신기 역시 이러한 논란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었다. 'Hug' 활동 당시에는 멤버들의 앳된 목소리와 댄스곡이지만 강도가 세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지만 'The Way U Are'를 기점으로 전통 댄스곡 위주의 활동을 벌이게 되면서 가창력 논란은 점차 불거지기 시작했다.아무것도 모르고 [20]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사례로 2004년 정규 1집 활동 당시 SBS와 케이블 채널에서는 후속곡을 'Tri-Angle'로 활동했던 반면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와 MBC에서는 스페셜 캐롤 앨범 타이틀곡인 '마법의 성'으로 활동한 점과 2집 활동 당시 MBC 쇼 음악중심 출연 클립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동방신기도 본래 H.O.T신화의 계보를 잇는 SMP의 적장자로서 기획된 팀이자 'Hug'를 데뷔곡으로 채택한 것은 동방신기의 자리매김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이었음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리드, 메인 보컬 역할을 두고 각 개인팬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영웅재중, 시아준수와 중저음도 매력적이지만 팀내 역할 분담에 의해 대부분 시원한 고음을 담당했던 최강창민, 그리고 탄탄한 중저음으로 동방신기 화음을 뒷받침하고 무대에서 시선강탈을 담당했던 리더 유노윤호, 호흡과 체력은 타멤버에 비해 부족하지만 매력적인 보컬과 미국 출신으로 영어랩을 담당했던 믹키유천. 이렇게 다섯 멤버의 조화가 당시 아이돌 침체기에 이르렀던 가요계에 다시 아이돌붐을 일으키는 2세대 아이돌의 시작점이 되었다.


5.2 2인조 재편 이후

이전의 동방신기가 5인 멤버의 강점을 내세우는 화음 위주의 팀이었던 데 비해 3인의 탈퇴로 인한 팀 재정비 후에는 유노윤호, 최강창민 이 두 멤버의 화음 맞추기에 중점을 두었다. 주로 중저음 담당이던 유노윤호가 중간파트, 때로는 고음 파트까지도 올라가고 고음 담당이던 최강창민 역시 중간 파트와 저음까지도 커버하게 된 것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춤 역시 노래에 맞춰 두 멤버의 단독 퍼포먼스를 교대로 연출하거나 두 멤버가 주축이 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6 팬덤

카시오페아(동방신기) 문서 참조.


7 음반

일본 싱글, 앨범, DVD 관련 정보는 [이곳 참조.]

한국음반산업협회기준
골든 디스크연간 판매량 1위

동방신기 총 음반 판매량 (2015년 기준)

대한민국일본총판매량
5,104,940장9,038,579장14,143,519장


7.1 앨범

발매일제목순위[21]판매량[22]비고
2004.10.11TRI-ANGLE8위311,321장
2005.09.12Rising Sun4위297,000장
2006.09.29-正.反.合.1위543,148장
2008.09.25MIROTIC1위614,491장
2011.01.05왜 (Keep Your Head Down)3위417,375장
2012.09.26Catch Me3위409,020장
2014.01.06TENSE4위359,276장
2015.07.20RISE AS GOD10위151,625장


7.2 싱글

발매일제목순위[23]판매량[24]비고
2004.01.14HUG14위242,890장
2004.06.24The Way U Are9위300,558장
2004.12.06The Christmas Gift from 東方神起?위109,271장
2005.06.22Hi Ya Ya 여름날?위86,591장
2005.12.16Show Me Your Love?위67,000장[25]
2006.06.02동방의 투혼?위36,516장
2006.07.28Vacation?위26,488장


8 콘서트

한국
개최일콘서트명장소관객 수비고
2006.02.10~2006.07.15THE 1ST ASIA TOUR CONCERT "Rising Sun"대한민국, 태국, 말레이시아81,000명첫 단독 콘서트 및 투어
2007.02.23~2008.06.12THE 2ND ASIA TOUR CONCERT "O"아시아 5개국[26]193,000명
2009.02.20~2009.10.02THE 3RD ASIA TOUR CONCERT "MIROTIC"대한민국, 중국, 태국151,000명
2012.11.17~2013.07.20TVXQ! LIVE WORLD TOUR "Catch Me"전세계 6개국[27]76,000명첫 월드 투어
2014.12.06~2015.06.14TVXQ! SPECIAL LIVE TOUR "T1ST0RY"아시아 4개국[28]142,000명+10주년 기념 투어
일본 어째 투어 정리가 한국보다 잘되어있다
개최일콘서트명장소관객 수비고
2006.05.13~2006.06.28TOHOSHINKI 1st LIVE TOUR 2006 ~Heart, Mind and Soul~일본 전역14,800명첫 투어
2007.05.10~2007.06.16TOHOSHINKI 2nd LIVE TOUR 2007 ~Five in the Black~일본 전역26,600명전국 홀 투어
2007.06.18~19TOHOSHINKI 2nd LIVE TOUR 2007 ~Five in the Black~
FINAL in BUDOKAN -2DAYS-
무도관각 10,000명무도관 입성[29]
2008.03.19~2008.05.06TOHOSHINKI 3rd LIVE TOUR 2008 ~T~일본 전역216,000명전국 아레나 투어
2009.05.04~2009.06.21TOHOSHINKI 4th LIVE TOUR 2009 ~The Secret Code~일본 전역179,500명
2009.07.04~05TOHOSHINKI 4th LIVE TOUR 2009 ~The Secret Code~
FINAL in TOKYO DOME
도쿄돔각 50,000명도쿄돔 입성
2012.01.18~2012.04.23TOHOSHINKI LIVE TOUR 2012 ~TONE~일본 전역550,000명
2013.04.27~2013.06.17TOHOSHINKI LIVE TOUR 2013 ~TIME~일본 전역750,000명전국 5대 돔 투어
2013.08.17~18TOHOSHINKI LIVE TOUR 2013 ~TIME~
FINAL in NISSAN STADIUM
닛산 스타디움총 144,000명닛산 스타디움[30] 입성
2014.04.22~2014.06.22TOHOSHINKI LIVE TOUR 2014 ~TREE~일본 전역646,960명
2015.02.06~2015.04.02TOHOSHINKI LIVE TOUR 2015 ~WITH~일본 전역약 749,000명[31]2번째 5대 돔 투어
2016.04.02~2016.11.06TOHOSHINKI FILM CONCERT 2016 ~TILL~일본 전역-필름 콘서트


9 논란

9.1 기네스북 등재 논란

2008년. 동방신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동방신기의 팬클럽 회원 수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논란은 팬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졌고,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기정사실로 인정되었다. 논란이 된 글에는 공식집계된 팬들이 8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음공식카페 회원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러한 팬클럽은 공식적으로 집계될 수도 없다. 하지만 기네스 등재를 주장하는 글이 영어로 쓰여있어서 그런 것인지 팬들이 맹목적인 것인지 특별한 증거도 없는데 아무도 사실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현재도 국내 인터넷 뉴스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동방신기가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주장은 팬덤에서 나왔을 뿐 실제로 동방신기 측은 기네스북 등재를 인정한 적도 없고 인증한적도 없다. 기네스북 홈페이지에 기제되지도 않았고 기네스북 공식 이메일로 질문해도 'We don’t currently have a record for the singer with the most amount of fans.'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기네스북 공식 이메일주소에 이메일을 받으면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동방신기가 현재 한국 최대 규모의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네스북의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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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발표음원

  • 사랑아:2008년 경, 영웅재중주연의 영화인 '천국의 우편배달부'의 OST로, OST음반에 수록되지 않았다. 아쉽... 재중 솔로버전과 5명 버전이 따로 있는듯.
  • Big time:2010 smtown live tour에서 공개된 창민의 솔로곡. 자그마치 댄스곡.
  • 9095(한국어 ver.):한국어버전이라기보단 재중의 가이드버전. 한국어로 처음엔 녹음을 해서 그런듯.
  • Kiss the Baby Sky(한국어 ver.):항목참조. 원래는 한국앨범에 수록될 예정이었다고.
  • Starlight (너의 자리):2015년 T1ST0RY &...! 공연에서 처음 공개된 곡. 윤호의 입대 전에 발매한 스페셜 앨범에 수록될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1. 2인 체제 컴백 곡 '왜 (Keep Your Head Down)' 의 가사 중.
  2. 일본 개그맨 진나이 토모노리가 처음 '東方神起'라는 이름을 보고 '히가시카타 카미오키'로 읽었는데 무슨 엔카 가수 이름인 줄 알았다고 한다. '토호신키'는 음독이고 '히가시카타카미오키'는 훈독으로 읽은 것이다.이것과는 관계 없다
  3. SM 연예인들 중 독보적인 누적 매출량을 자랑하며, SM 뿐만 아니라 외모, 춤 실력, 가창력 등 2세대 이후 한국 아이돌들의 기준을 확립하는 것에 크게 공헌했다.
  4. 음원 시장이 자리 잡던 2008년에도 4집 앨범 MIROTIC으로 음반으로만 하프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5. 현재 한류의 주축인 소녀시대와 빅뱅이 당시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한류의 메카였던 일본에서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바닥부터 시작해 다음 세대 아이돌 그룹이 길을 마련하는 것에 큰 공헌을 했다. [동방신기 일본 활동 변천사]
  6. 중국 위주의 활동은 EXO가 펼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인 멤버들의 잇따른 탈퇴로 중국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7. 동방신기가 'We Are'라고 외치면 팬들이 야광봉 2개로 T자를 만들면서 T라고 외친다.
  8. 원래는 멤버들이 다같이 허리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 동방신기입니다.'
  9. 한국 5,104,940장 일본 9,038,579장
  10. 하이:최강창민, 미들하이:시아준수, 메인:영웅재중, 미들로우:믹키유천, 베이스:유노윤호. 2인조로 개편했을 때는 파트를 구별하지 않는다.
  11.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동방신기도 텀이 조금 짧았을 뿐이지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라고 하는데 이는 굉장히 오해이다. BoA & 브리트니 스페셜 무대는 정식 데뷔무대가 아니었고 데뷔 싱글 음반도 한 달 뒤에 발매가 되었으며 음악캠프에서 정식 데뷔무대를 갖기 전까지 SM에서 소극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야 동방신기가 데뷔하자마자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12. 당시 립싱크가 불가능했던 KBSMBC에 한해서만 '마법의 성'으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활동하는 곡마다 헤어스타일과 분장을 따로 해야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후문도 있다.
  13. 실제로 동방신기는 데뷔 초부터 본격 일본진출 이전까지 중국의 큰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고 기존의 히트곡들을 중국어로 번안한 앨범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슈퍼주니어 M과 같은 방식의 중화권 위주의 활동 방향을 모색했던 듯 하나 보아의 일본 진출에 맛이 들렀는 지 향후 국내에서보다도 일본 위주의 활동을 펼치게 된다.
  14. MBC 쇼! 음악중심은 활동기간 내내 출연이 아예 전무했고, SBS 인기가요에서는 딱 한 번 출연했었다.
  15. 아는 이들은 다 알겠지만 당시 대상 수상자는 '사랑스러워'의 대히트와 각종 예능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공로를 인정받아 방송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 가수 김종국이었다.
  16. C, D버전에 수록되어 있는 New Version의 후렴 첫 소절의 음역이 더 높다.
  17. A, B버전에는 원곡 가사대로 '노란 풍선'이라고 불렀고 C, D버전에는 동방신기를 상징하는 '빨간 풍선'으로 개사되었다. 동방신기를 상징하는 색이 빨간색임을 감안해서 애당초부터 빨간 풍선으로 바꿔부르는 것이 맞지 않는 가 싶기도 한데 이쯤되면 노린 것이다.
  18. 7집 후속곡이었던 '수리수리(Spellbound)'는 유영진의 곡이긴 하지만 전자음은 거의 쓰이지 않았으므로 제외.
  19. 가사 곳곳에 역대 발표곡들의 제목이 숨어있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20. 당시 MBC와 KBS에서는 100% 라이브를 원칙으로 했으며 AR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21. 발매 당해년도 순위
  22. 누적 판매량
  23. 발매 당해년도 순위
  24. 누적 판매량
  25. 슈퍼주니어와 함께 참여한 스페셜 싱글이다.
  26. 대한민국, 중국,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27. 대한민국,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미국, 칠레
  28. 대한민국, 중국, 대만, 태국
  29. 원래는 계획에 없던 공연이었으나 Five in the Black 투어가 성황리에 개최됨에 따라 이후에 무도관 2회 공연이 추가 확정되었다.
  30. 단일 공연장으로는 일본 전국 최대 규모다.
  31. 추정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