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 |
이름 | 오다기리 조(オダギリ ジョー) |
본명 | 오다기리 조(小田切 譲) |
성별 | 남성 |
직업 | 배우 |
출신지 | 일본 오카야마 현 츠야마 |
생년월일 | 1976년 2월 16일 |
신장 | 176cm |
혈액형 | O형 |
소속사 | 돈규 클럽 |
배우 활동 시기 | 1999년 ~ 현재 |
소개링크 | 공식 프로필 |
목차
1 개요
한자 이름보다는 オダギリジョー라는 가타카나 이름이 더 자주 쓰인다. 이건 이름인 譲가 평범하게 읽을 경우 유즈루라고 읽히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해서다.
2 배우가 된 이유
오카야마 현 츠야마시 출생. 아버지 없이 성장하였기에 모친과 친분이 있던 영화관 주인과 자주 만났고 영화에 관심을 보이게 되어 영화감독이란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장래 희망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카야마 현의 사쿠요 고등학교를 특별 진학코스로 졸업한 뒤, 코우이치 대학에 합격했으나 꿈인 영화감독을 위해 입학을 거부하고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인 프레즈노 대학에 입학, 영화감독 코스의 수속 서류를 넣었다.
하지만 정작 입학 원서에 표기된 DRAMA(배우양성코스)를 감독양성 코스로 착각하고 지원하여, 2년간 연기 수업을 받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미국과 달리 드라마 코스에서 감독양성 코스가 포함되어있고 감독양성 코스안에서 드라마, 영화 등으로 세분화되기 때문에 미국도 일본과 동일할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3 가면라이더 쿠우가
3.1 주연 발탁에 얽힌 일
배우양성코스를 밟게 된 후 프레즈노대학과 토에이사간의 체결된 계약에 의해 일본의 배우 양성소에 소속되게 되면서 몇몇 CF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오디션을 보게된다.
이 당시 오다기리 조는 특촬물을 가짜 영웅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며 오디션을 거부했지만, 귀갓길에 양성소의 감독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뭔가 문장이 이상한데?
원하지 않던 오디션을 강제로 받게 되다 보니 대본을 무뚝뚝하게 읽거나, 배역을 받으면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성의없게 답하는 등 노골적으로 배역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보다 못한 양성소의 관계자가 심사의원들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 후 오다기리 조의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고 나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삐딱한 반응이 오히려 심사위원의 마음을 흔들어, 주연 배우로서 합격.(…)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주인공을 맡게 됨과 동시에 각본의 부분적인 수정에도 참여 하게 되며 스탭의 한명으로 관여하게 된다.
이후 특촬물이란 시청층이 제한적인 프로그램의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해서 전면적인 자기 어필을 통해 국민배우로서 발돋움 하는데 성공. 이후 특촬물배우=신인 아이돌이란 공식을 굳어지게 하는데 일조했다.
3.2 경력삭제 논란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경우, 오다기리 조의 데뷔작으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소속사를 옮기며 갱신된 홈페이지의 프로필 란에는 가면라이더 쿠우가가 빠져 있고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면라이더(히어로)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여 미묘한 여론이 형성 되었으며 이것이 확대해석 되어 상당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소속사를 옮기기 전의 데뷔작 목록엔 가면라이더 쿠우가가 최상단에 위치했으나, 소속사를 옮긴 후엔 TV쪽의 기록이 대거 삭제 되었으며 쿠우가 역시 삭제 되었다. 이는 옮긴 소속사가 오다기리 조를 TV배우가 아닌, 영화배우로서 등록하고 관리하기 때문으로 알려져있다.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경우, 밀레니엄 라이더의 시작점임과 동시에 원작자의 추모도 겸한 추모작이라 더더욱 문제가 되었으며 쇼와 라이더 때 부터 팬이었던 골수팬들 중 일부는 "주연 배우의 문제발언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주연을 바꾸어 리메이크해달라"라는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련의 사건을 지켜본 오다기리 조는 여러가지 다큐멘터리나 인터뷰로 오해를 풀었지만, 워낙 크게 터진 일이라 아직도 여러 음모론이 진행 중이다.
- 본인의 해명 글(원문 첨가 번역)
- 문제가 된 오다기리 조의 멘트와 실제 그 내용은 대략 이런 의미였다고 한다.
- "변신한다던가, 괴인과 싸운다던가 하는 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발언
'정의' 운운하는 히어로물은 유치한 감이 들어서 싫었지만, 정의의 히어로에 대한 거리두기에 감독 역시 동의해 의기투합했고, 열심히 했다. 배우로서 그 이미지가 계속 가게 된다면 죽거나 배우를 그만두고 싶다.
- "죽어버릴까, 배우 관둘까 생각했다"
다음 역할을 연기해도 그전의 캐릭터를 지울 수 없다면, 차라리 배우라는 직업을 관두고 싶다.
문제는 '말 잘라먹기 신공'과 '왜곡'으로 인해 일이 커져버렸다는 것. 그러나 비평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위의 발언들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주장이고 그 때 실제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 알 일이다. 어쨌거나 실제로 본인이 말한 것과 똑같은 발언을 했더라도 경솔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설상가상, 헤이세이 가면라이더 10주년 기념작인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에 쿠우가 역으로 재등장한다는 소문이 돌자 소속사에서 참가계획이 없다는 성명을 내었고, 제작위원회도 설사 출연하게 된다 해도 그를 감당할 여건이 아니다(이젠 너무 비싸니까)라는 식의 코멘트를 남겼다.
다만, 오다기리 본인은 이러한 발언들과 동시에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스탭들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라는 발언도 하고 있다. 이치죠 카오루 경감 역의 카츠라야마 신고는 『HYPER HOBBY PLUS vol.5』(2008년)의 인터뷰에서 오다기리를 포함한 쿠우가 관계자들과 아직까지도 교류가 있다고 밝혔으며, 2008년 8월에 열린 쿠우가 동창회에도 오다기리가 출석하였다. 또한 2009년 11월에 극중 여동생인 고다이 미노리 역의 치자키 와카나가 결혼했을 때에 축하 스피치를 하기도 했다.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프로듀서 타카데라 시게노리와도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이며, 타카데라가 카도카와로 이적하고 나서 만든 대마신 카논 최종화에 우정출연 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30일에 타카데라 PD가 진행하는 '타카데라 시게노리의 괴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이 직접 쿠우가 흑역사설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이 루머의 발단이 된 필모그래피 삭제건에 대해서 '당시 여기저기 출연하느라 출연작들을 전부 적을 수가 없었다'고 해명. 일단 당사자가 직접 해명한 일이니 만큼 이 오랜 논란이 뒤늦게나마 사그라들성 싶다.
여담으로 이 방송에서 본인이 한 가지 사실을 더 밝히길 쿠우가 오디션을 보기 1년 전에 구급전대 고고파이브의 오디션도 봤었는데, 스태프가 변신 포즈를 요구하자 '변신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데요'라고 거부, 그 후 쿠우가때 그랬던 것 처럼 오디션장에서 목덜미를 붙잡혀 쫓겨났다고 한다.(...) 아니 그럴 거면 오디션은 대체 왜 본 거야...관련 기사
4 코다 쿠미 사인 논란
코다기리 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1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대한민국에 들른 오다기리가 근처 음식점에 갔는데, 그를 알아본 음식점 주인이 그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자기 이름인 오다기리 조가 아닌 엉뚱하게도 '코다 쿠미'라고 사인을 해줬다(…). 그런데 음식점 주인은 일본어를 몰라서인지 이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를 발견한 음식점 주인의 자식이 인터넷에 이 사진을 올리면서 일부 웹사이트에서 파문이 되었다. 관련 게시물
오다기리의 하이개그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다기리의 행동이 무례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코다쿠미 사인 논란으로, 비몽이나 공기인형 등으로 호의적인 분위기였던 대한민국 팬들이 돌아서버렸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어로 인사하며 확인사살을 해버렸다(…). 일단 당사자는 "난 항상 판빙빙 다음에 인사를 하게 돼있었는데, 그녀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객석에서는 '와~'하고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런 모습이 왠지 '나 한국 너무 좋아해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조금 비틀어서 중국어로 인사해보고 싶었다" 라고 해명했다.시대를 앞서간 국뽕 드립
가뜩이나 마이웨이가 친일영화 논란에 Sea of Japan 논란[1] 등 홍역을 치른 것을 생각해보면(…). 요건 동해 항목을 가보자.또 섹션TV 연예뉴스에 나와서 정재형을 보고 노숙자라는 망언을 했다. 댁도 크게 다르지는 않수. 결국 부관참시까지 훌륭하게 해낸 셈.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오다기리 조 본인이 직접 문제의 식당에 찾아가 사과했다고 하니 논란은 일단 잠잠해질 듯.
한편 본인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코다 쿠미는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오다기리 조 덕을 톡톡히 봤다(…).
결과적으로 이런 기행은 마이웨이의 흥행에 제대로 찬물을 좍좍 부어버렸다.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언플을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이런 기행을 해버렸으니... 근데 김기덕 감독하고는 할 때는 왜 조용했나??
사실 오다기리의 기행은 언론에 의해 너무 나쁘게 포장된 감이 크다. 일단 사인 사건의 경우는 오다기리가 평소에도 일본팬들에게 사인해줄 때 희한한 그림이나 멘트를 넣는 등 기행(…)이 많다고 한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혐한 의혹)은 본인의 기상천외한 기행 똘끼 에다가 언론의 부정적 색안경이 만들어낸 하이퍼 퓨전이라는 소리. 배우 본인은 나름대로 한국을 좋아하는 편. 한국 감독과 자주 작업을 하기 도하고 한국에서 인터뷰 했을때 한국에 대해 호감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이 아닌 사람들이 그의 기행을 알리 없기 때문에 기자들이 마냥 부정적 시선으로 기사를 썼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또한 코다쿠미 사건의 경우 사인 옆에 별도로 쓴 것이 아니라 본인 사인은 전혀 없고 '코다쿠미'라는 글자만 있어 이것이 본인의 사인인지 확인할 수도 없게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일반 팬들에도 사인 없이 그림이나 멘트만 넣는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자기 나라에서야 그런 똘끼캐릭터가 잘 알려져있을지 몰라도 타국에서의 오다기리 조는 그저 연기자일 뿐이다. 또한 기자간담회에서 뜬금없이 한국에 와서 중국어로 인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실로 무례하고 나는 한국어 따위로 인사하며 너희에게 알랑방구 뀔 생각 없다라고 비쳐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인은 뭐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판빙빙이 앞서 한국어로 인사하는 바람에 더더구나 "나는 한국어 따위로 말할 생각이 없다"고 비쳐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앗 판빙빙이 먼저 한국어를 해버렸네요 그럼 저는 중국어로! 같은 식으로 농담을 했다면 모를까...
정리하자면 악의는 없었더라도 국가간의 문화 차이를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평소 캐릭터를 그대로 내보였다는 점에서 확실히 오다기리 조의 실책이라 할 수 있다. 영역은 다르지만 세키 토모카즈의 한국 팬 기미가요 싸인 파동과 비슷하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싸인 건이다.
어쩌면 두유노가 불쾌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5 배우로서 행보
데뷔 당시, 온갖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고정게스트를 맡는 등 신인배우에 어울리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어 많은 우려를 낳았다.
이는 배우로서 오다기리 조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오다기리 조를 보여주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는데 그 덕택인지 대중에게 당찬 신인의 이미지를 어필하여 우려를 극복하고 오히려 인기를 끌게 해주었다.
중견급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2005년 이후엔 도리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출연은 줄어들고 있으며 영화에 고정적으로 출연하여 TV배우에서 영화배우로 노선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있다.
데뷔작인 가면라이더 쿠우가 이후 오다기리 조의 연기 커리어가 TV배우에서 영화배우로 가버렸기 때문에[2] 일반 배우로 봐야 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달리 특유의 패션 센스와 훤칠한 외모와 묘하게 풍기는 염세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한국 여성 팬이 많은 편이다.
6 영화감독으로서 행보
배우로서 데뷔한 후 서서히 인맥을 넓혀 꿈이었던 (단편이지만) 영화 제작에 성공하였으며 TV프로그램의 각본을 두어편 맡게 되는 등 감독으로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일단 재능은 제법 있다는 평을 듣고 있지만 감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많이 부족하여 정식으로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7 기타 특이사항
옷 입는 센스가 굉장하여 패션지의 표지를 자주 맡는데, 명품이나 협찬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고 본인 스스로 재래시장을 돌아다니거나 해서 조달한 옷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얼굴이 작다. 모델스러운 이미지와 겹쳐 본인 키보다 더 커보이기도. 김기덕 감독의 《비몽》동반출연자였던, 소두로 유명한 그 이나영과 맞먹는 수준.
김기덕 감독의 '비몽'에 출연했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에서 배두나와 함께 연기했다.
아는 분만 아는 i-wish you were here-에서 주인공 성우를 맡기도 했다.
재일한국인(조총련계) 학생이야기를 찍은 영화 박치기에서도 히피족 단역으로 출연했다.
2008년에 11살 연하의 여배우 카시이 유우와 결혼해 슬하에 남자 아이 둘을 두고 있다. 이런 도둑놈! 근데 카시이 유우가 워낙 노안이라 얼굴만 봐서는 나이 차이는 거의 안느껴진다. 그리고 카시이 유우와 생일이 같다.
그런데... 2014년 4월에 태어난 차남이 1년만에 교액성 장폐색증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
2016년 8월에 셋째 아들을 출산했고 산모.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무도드림에서 하하가 액션배우를 맡았을때 감독 의자에 오다기리 조보다 잘생긴 감독이라고 잠깐 언급하면서 나왔다(...)
8 출연작
- 가면라이더 쿠우가(2000)
- 플라토닉섹스(2001)
- 사토라레 드라마판(2002)
- 밝은 미래(2003)
-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2003)
- 클럽 진주군(2004)
- 피와 뼈(2004)
- 박치기(2004)
- 신선조(2004)
- 블랙 키스(2004)
- 오페라타 너구리 저택(2004)
- 인 더 풀(2004)
- 메종 드 히미코(2005)
- 인투어 드림(2005)
- 시노비(2005)[3]
- 스크랩 헤븐(2005)
- 더 우초텐 헤븐(2005)
- 헤저드(2005)
- 기분 나쁜 유전자(2005)
- 유레루(2006)
- 충사(2006)
- 절규(2006)
- 파빌리온 살라만더(2006)
- 시효경찰(2006)
- 돌아온 시효경찰(2007)
- 텐텐(2007)
- 비몽(2008)
- 플라스틱 시티(2008)
- 타미오의 행복(2008)
- 랑재기(2009)
- 공기인형(2009)
- 소울 레드 - 마츠다 유사쿠(2009)
- 심야식당(2009)
- 아타미의 수사관(2010)
- 심야식당2(2011)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4] (2011)
- 마이웨이(2011)
- 풍산개(2011)[5]
- 리얼 완전한 수장룡의 날(2013)
- 행복한 사전(2013)
- 인류자금(2013)
- 당신을 위한 선물(2013)
- 미스터 고[6]
- S -최후의 경관-(2014)
- 앨리스의 가시(2014)
- 리버스 엣지 오카와바타 탐정사(2014)
- 갈증(2014)
- 중쇄를 찍자(2016)
- ↑ 사실 2차대전 당시 지도에 동해라는 표기가 있길 바라는건 심하게 오바이다. 당시엔 한국은 나라가 아니라 일본에 합병된 일본의 영토일 뿐이였고, East Sea라는 표기도 노태우 정부때 만들어 세계에 퍼뜨리려 노력한 것이다. 21세기인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거의 쓰이지 않는 East Sea라는 표기가 2차대전 당시 지도에 있을 리가.
- ↑ 그 예로 출연작들을 보면 소위 예술 영화들이 꽤 많다. 그렇다고 TV드라마를 안찍은 건 아니지만.
- ↑ 바질리스크 코우가인법첩의 영화판. 원작훼손은 고사하고 스토리 전개까지 이상해서 망작.
- ↑ 일본 원제는 그냥 '奇跡'. '공기인형'을 찍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이다.
- ↑ 북한 인민군 병사로 카메오 출연했다. 풍산개 감독인 전재홍 감독과는 김기덕 감독의 비몽 촬영 당시 인연을 맺었는데, 전 감독의 차기작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메오 출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마이웨이 촬영장에서 차로 6시간이나 걸리는 경기도 화성까지 가서 촬영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텝롤에 특별출연으로 언급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텝롤에는 '북한군 1'로 올라갔다.
- ↑ 카메오로 출연. 바가지 머리를 한 그 사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