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미치스

장르전쟁
러닝 타임315 분
개봉일시(국내)1992.02.01
개봉일시(본토)1974년
감독제지 호프먼
출연다니엘 올브르스키, 말고자타 브로넥, 알렉산드로 가소브스키, 올라디슬라브 한크자
국내등급15세이상 관람가

1 개요

폴란드사극 영화. 그리고 소련에서 일부 제작에 참여했다. 쿠오바디스노벨 문학상(1905년)을 받아 유명한 헨릭 생키비치(Henryk Sienkiewicz,1846~1916) 원작소설을 영화화했다.

시엔키에비츠의 폴란드 역사 3부작 연작소설의 제 2부에 해당한다. 1부는 우크라이나 카자크 봉기(보그단 흐멜니츠키의 봉기)를 배경으로 한 <불과 칼로써>, 3부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배경으로 한 <보우오디요프스키 대령>이다. 즉 폴란드가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서 쇠퇴기로 접어드는 시기를 그렸다.

원래 이 영화는 국내개봉일보다 한참이나 이전에 촬영되었던 영화이다. 이 영화가 이렇게 늦게 개봉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지 폴란드의 역사물을 다룬 사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냉전상황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 & 소련 영화를 국내에 반입하기 어려운 탓에 이렇게 국내개봉이 늦어진 것이었다. 사실 영화의 내용 자체는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슷한 경우가 바로 영화 해바라기. 이탈리아 영화임에도 소련에서 찍었다는 이유 하나로 12년넘게 상영금지당했던 바 있다. 결국 1989년에서야 소련 영화들이 국내에 개봉했지만 이 영화는 3년 더 있다가 겨우 개봉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크미치스는 한국 개봉당시 쫄딱 망했는데 딱 절반인 165분이나 자르고 150분판으로 개봉했기 때문..하긴 5시간 15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이 너무 길긴 하지만 절반 넘게 자르고 개봉했으니 앞뒤 연결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그리고, 폴란드 영화라서 그런지 상영관도 많이 잡지 못했다. 결국 이러다보니, 서울관객이 2만도 채 되지 않았다.

일종의 대서사시로 시대적으로는 대홍수시기를 다루었으며 폴란드의 영웅 안드레이 크미치스 대령의 모험을 다룬 영화이다. 폴란드에서 대박을 거두고 2014년 제작 40주년을 기념하여 화질을 보강하여 블루레이로 발매했다.

2 등장 인물

  • 안드레이 크미치스 대령(다니엘 올브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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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흰 옷 입은 장수.
폴란드 군 고급장교로 그 용맹은 항우에 비견될 정도로 강해 타타르군을 여러 번 무찌른 폴란드군의 맹장이다. 그 이후 예수 앞에서 자신의 주군인 헤트만 백작에게 평생 충성을 다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하지만 헤트만 백작이 이를 맹신하고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크게 갈등하게 된다. 유쾌하지만 꼴마초 기질이 있다. 용맹하고 뛰어난 장수이지만 적에게는 용서가 없는 잔악무도한 면모가 있어서 그 면모를 항상 올렝카에게 지적당한다.
  • 올렝카(말고자타 브로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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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히로인. 루비치 영주의 손녀로 할아버지가 죽으면서 남편감으로 점지해 준 크미치스 대령의 남자다움에 홀딱 반했지만 반면 크미치스의 잔인한 성격과 꼴마초 기질 때문에 그런 면모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절대로 결혼해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크미치스의 잔인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 헤트만 백작
크미치스의 직속상관으로 루비에즈의 영주. 크미치스의 학살극을 사면해주고 직속부하로 편입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직후 스웨덴군이 폴란드에 침공했는데 헤트만 백작은 스웨덴에 붙어버렸다. 그리고 폴란드 국왕을 유폐시켰다.
  • 볼로디요프스키 대령
크미치스의 동료 장교.
  • 폴란드 국왕
  • 스웨덴 국왕

3 줄거리

안드레이 크미치스(Andrzej Kmicic: 다니엘 올브르스키 분)는 타르타르와의 싸움터에서 수 많은 공을 세우고 영웅이 돼서 '루비치'로 돌아온다. '루비치'는 싸움터에서 그의 상관이었으며 아버지와 각별한 친구이기도 했던 영주의 땅이었다. 영주는 싸움터에서 숨을 거두면서 그 영지와 손녀를 크미치스에게 물려주고 전사했던 것이다.
크미치스는 루비치라는 영지가 비록 작았지만 올렝카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신앙이 두터운 처녀임을 알고 몹시 기뻤다. 올렝카(Olenka: 말고자타 브라우네크 분) 역시 첫 눈에 할아버지가 짝지워 준 크미치스의 사나이다움에 끌렸지만 그의 잔혹하고 거친 언동에는 거부감을 느껴 그런 점을 고치기 전에는 결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크미치스도 올렝카의 요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점잖아지려고 노력했지만 부하들이 이웃 영지 '루빈스'에서 참살당한 것을 보고는 참을 수 없어 마음을 불사르고 주민들을 학살하고 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 무렵 폴란드는 스웨덴의 침공을 받았고 루비에즈 등을 다스리던 헤트만 백작는 크미치스를 포함하는 영내의 장교들을 소집한다. 크미치스를 데리러 왔던 볼로디요프스키 대령은 루빈스 장교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크미치스의 죄과를 사하고 헤트만 백작에게 데리고 간다. 크미치스만한 용장이 폴란드군에는 많지 않았고 새로운 전쟁은 그런 용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크미치스는 자기를 사면해준 헤트만 백작에게 평생 충성을 서약하고 친위대의 지휘를 맡는다.
그러나 헤트만 백작이 조국 폴란드를 배신하고 스웨덴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때는 크미치스도 괴로웠다. 다른 장군들은 모두 헤트만 백작을 버리고 반정부 반스웨덴 전선을 형성했지만 십자가에 걸고 충성을 맹세한 그로서는 동료 장군들을 따를 수가 없었기에 괴로웠다. 그러나 헤트만 백작의 결정에 종내 굴할 수 없는 양심의 가책과 올렝카의 강력한 권고로 크미치스는 마침내 헤트만 백작의 휘하에서 벗어나 스웨덴군이 납치하려는 폴란드 국왕이 유배된 수도원으로 달려가 국왕을 구출하고 스웨덴군과의 혈전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폴란드를 위기에서 구하는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