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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
강생의 박사(Doctor Incarnationis)
생몰연대: AD.380-444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신학자 중 한명으로, 키릴루스 혹은 키릴로스라고도 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며, 선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의 조카이기도 하다. 삼촌에 의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 403년에는 그의 아저씨를 따라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단죄한 퀘르키아(Quercia) 주교회의에 참석하였으며, 417년까지는 테오필루스의 노선에 따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를 반대하였다. 412년 10월 15일 테오필루스가 사망하자 성 키릴루스는 사흘 후에 그의 아저씨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즉 한국 나이로 33세에, 그리스도교의 5대 중심지 중 하나이자, 당시 신학에서 사실상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잘난 삼촌 때문에 높으신 분이 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로 보이겠지만, 그의 진가는 총대주교 자리에 있으면서 드러난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이름은 네스토리우스인데,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그리스도교의 초 네임드 이단 중 하나인 네스토리우스파의 수장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격과 인격이라는 두개의 페르소나(위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따라서 성모 마리아는 신격의 어머니가 아니므로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러선 안되며,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 정도만이 허용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치릴로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개의 본성이 결합되어 하나의 페르소나(위격)을 이룬다고 보았다. 치릴로의 이 주장은 그리스도론의 가장 큰 핵심 중 하나가 되었다. 치릴로를 포함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에페소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죄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1883년에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다만 좀 안습한 면도 있는데, 그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후계자들은 치릴로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해석하여 '두개의 본성'이 결합하여 '하나의 위격, 하나의 본성'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합성론이라고 한다.[1] 이 주장은 '하나의 위격, 두개의 본성'이라는 결론이 난 칼케돈 공의회에 의해서 단죄되었다.[2]
1.1 흑역사
신학자로서의 업적만을 보자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역대 최강의 에이스 라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3]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티아가 그리스도인 폭도들에 의해서 살해될때, 사건에 관여되었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물론 치릴로가 직접 손을 써서 히파티아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그리스도인들의 폭동에 휘말려서 살해되는 것을 치릴로가 어느정도 묵인하였다는 책임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히파티아쪽 세력 역시도 폭동을 일으켜서 성 알렉산드로스 성당을 불태우는 등 하였기에 한쪽을 일방적인 악인으로 몰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비잔티움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역시도 시민들의 폭동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보았을 정도로, 빡친 시민들이 높으신 분들에게 폭동을 통하여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문화가 발달하였다. 그렇기에 치릴로든 히파티아이든 간에 마치 현대의 근본주의 테러리스트처럼 몰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닌 성인이자 교회학자가 이 사건에 관여되어 있어서 옥의 티일 뿐.
2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생몰연대: AD.315?-3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