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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История Росси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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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차르국 Царство Русское | ||
국기 | 국장 | |
1547년 ~ 1721년 | ||
위치 | 동유럽 | |
수도 | 모스크바 | |
정치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차르 | |
언어 | 러시아어 | |
민족 | 러시아인 | |
종교 | 러시아 정교회 | |
주요사건 | 1547년 이반 4세의 대관식->건국 1721년 표트르 대제의 제국선언 | |
통화 | 루블 | |
성립 이전 | 러시아 대공국 | |
국명 개칭 | 러시아 제국 |
1 개요
이반 뇌제가 차르의 호칭을 쓰면서 자신이 통치하던 모스크바 대공국을 개편한 국가. 표트르 대제의 시대가 되면서 러시아 제국으로 바뀐다.
2 역사
2.1 시초
루스 차르국의 시초는 키예프 공국의 일파인 모스크바 공국에서 시작된다. 15세기 이반 3세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근에 널려있던 수많은 소국들을 통합하여 연합체적인 모습으로 러시아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반 3세의 뒤를 이은 이반 뇌제는 기존의 대공이라는 명칭 대신 차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나름대로 통합적인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중앙집권적인 "루스 차르국(Царство Русское)"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차르'라는 개념은 러시아 내에서만 머물러있었던 데다가 권력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때문에 유럽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군주를 황제도 왕도 아닌, 단순히 모스크바 대공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결국 이반 4세가 죽은 후 러시아 내부는 혼란 시대라고 불리우는 동란의 시기에 빠져들게 된다. 강대국이었던 스웨덴이 개입해서 차르를 갈아치우는가 하면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는 등 정세가 막장으로 치닫나 싶었으나 로마노프 가를 중심으로 한 국민군이 결성되어 모스크바를 탈환하고 대동란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2.2 로마노프 왕조의 시작
이후 류리크 왕조의 외척인 미하일 로마노프(Михаи́л Рома́нов)가 차르로 선출되면서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여전히 러시아의 위상은 낮았고 서구는 로마노프 가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초기 로마노프 왕가의 차르들은 권력이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알렉세이 3세와 표도르 3세 시대에는 차르 자리를 놓고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표트르 1세가 즉위하면서부터 어영부영하던 러시아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그는 절반은 아시아 국가라 해도 좋았던 러시아를 서구 세계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서구화 정책을 통해 급격하게 러시아를 서유럽화 시키기 위해 힘쓰는 한편, '임페라토르(Император)'를 러시아 황제의 칭호로 채용하고,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이라는 국호를 제정하여 절대왕정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동유럽을 벗어나 시베리아와 극동을 대대적으로 탐험, 정복하게 되며, 러시아의 탐험대 겸 군대가 청-조선 연합군과 두 차례 충돌한 나선정벌도 이 시기의 일이다. 이후 제정시대에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개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