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다이치 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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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영화 '옥문도'에서 이시자카 코지가 연기한 긴다이치 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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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SP 드라마 '미로장의 비극'에서 카미카와 타카야가 연기한 긴다이치 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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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2004년 드라마판에서, SMAP의 멤버 이나가키 고로가 연기한 긴다이치 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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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방송 된 <긴다이치 코스케 VS 아케치 코고로> SP 드라마에서 야마시타 토모히사가 연기한 긴다이치 코스케

金田一 耕助(きんだいち こうすけ)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 등장하는 유명한 탐정. 작가 본인의 변에 따르면 모델이 된 것은 곰돌이 푸로 유명한 AA밀른의 빨간 집의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탐정과 키쿠타 카즈오라는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이름은 아이누어 연구가로 유명한 긴다이치 쿄스케(金田一京助,1882.5.15~1971.11.14)에서 따왔다고 한다. 실제 존재하는 성씨 및 가문이며 현실에서는 쿄스케 교수부터 히데호(秀穂) 교수까지 3대가 언어학자를 했다.

추리소설 장르의 독자층이 두텁고 역사도 오래 된 일본에서 국민탐정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대표적인 탐정이다. 하지만 한국에 소개되는 것이 늦었기 때문에 먼저 번역되어 나온 소년탐정 김전일을 통해 오히려 "김전일의 할아버지" 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번역되어 나온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소설은 광고에서 "김전일의 할아버지"라고 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굳이 한국명을 붙이자면 원래 한자를 그대로 붙인 김동서..

사실 소년탐정 김전일주인공 긴다이치 하지메가 그의 손자라는 설정은 요코미조 작가의 동의를 받지 않은 도용. 이게 저작권 상 문제가 되어서 실제로 요코미조 유족들 측과 김전일 작가와의 마찰이 있었다. 원작에서 코스케는 자식 관계에 대해 언급이 없기 때문에 손자가 있다는 설정 자체가 원작에 대한 무단 왜곡이니 원작자측에선 충분히 화 낼 만한 사유다. 그래서 초기에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이름을 걸고!" 라고 말하고 다니던 김전일은 연재 중기부턴 그냥 "할아버지(할배)의 이름을 걸고!" 라고만 말하게 되었다. 또한 '그 유명한 명탐정의 손자'에서 '몇번이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했다는 고교생'으로 칭호도 바뀌었다. 하지만 결국 문제가 해결되어 친자, 아니 친손확인을 받은 상태. 이제 손자라고 말해도 된다. 그래도 아무리 손자에게라지만 자기 이름이 매일같이 담보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씁쓸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능력한 샐러리맨으로 아내 눈치 보고 사는 사위의 모습을 볼 때도 [1]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혼징 살인사건'에서 그의 이력이 소개되는데, 북쪽 지방 출신으로 19세 때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일본의 학교는 시시하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떠나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접시닦기, 간호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마약에 빠지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 샌프란시스코일본인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재미일본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다. 마침 사업차 미국에 와 있었던 실업가 구보 긴조는 긴다이치와 알게 되고, 이 만남을 계기로 그의 후원자가 된다. 그래서 마약도 끊고 학업을 마친 뒤 일본에 귀국하여 탐정 일을 시작한 긴다이치는 긴조의 요청으로 옛날 혼징(일본 다이묘등이 묵던 여관)으로 쓰였던 혼징 저택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이후 탐정 활동에 긴 공백기를 가지다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자 일본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칭송 받는 '옥문도'로 돌아온다. 실은 '혼징 살인사건'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대크리로 징집되어 뉴기니까지 끌려갔다. 뉴기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긴 살아남았는데, 귀국하면서 전우였던 기토 치마타가 '자신이 죽으면 여동생들이 살해당할 것'이라는 유언을 하자 그 유언을 조사하기 위해 간 치마타의 고향 옥문도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을 접하는 것이 '옥문도'의 시작이다. 이 소설에서 언급 된 바에 따르면, '혼징 살인사건'은 1937년, 그리고 '옥문도'는 그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징집 시기를 진주만 공격 전후로 늦춰잡는다 해도 근 6년을 군대에서 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덕분에 '혼징 살인사건'에서 24살이던 긴다이치는 꽃다운 젊음을 전쟁터에서 쫄쫄 굶으면서 쌩으로 다 날려먹고 33살부터 다시 탐정으로 새출발을 하게 된다.

옥문도 사건을 해결한 후, 도쿄로 돌아가던 중 징집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 가자마 슌로쿠[2]와 우연히 재회한다. 이를 인연으로, 사실 집이 없는 형편이었던 긴다이치는 몇년 간은 가자마의 집 중 하나에 기숙하며 지냈다. 덧붙여 그 집의 사실상의 주인은 가자마의 첩 중 하나인 세쓰. 이 두 명 모두 작중에서 몇 번 등장했다. 그러나 결국 도쿄에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사무소를 차리고 수많은 단편 및 장편소설에 등장하면서 무지막지한 사건들을 해결하게 된다.

김전일의 할아버지답게 범인이 피해자를 차례로 도륙하는 상황에서도 범인을 잡지 않는다. 잡건 사건의 후반부에서인데 이러한 이유는 간단하다. 초반부에 확실한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이러한 점은 작가가 설명한 적도 있다.) 일본의 한 잡지의 기사에 따르면 그가 나오는 작품 하나 당 약 4.2명이 죽어 나간다고 한다(물론 다른 통계에 따르면 모든 단편선까지 합쳐서 평균내었을 때는 1~2명 남짓으로 무난한 수준이라고도). 과연 김전일의 할아버지답다. 흠좀무. 팔묘촌에서 사실은 범인을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밝히지 않았다고,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서는 사실 첫번째 사건이 일어날 때부터 범인은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해서 사실은 그런 걸 즐기는 건 아닌가하는 의혹을 사기도 했는데 작중의 언동을 보자면 보통 비인도적인 행위를 규탄하고 범죄에 대해서도 맹렬하게 적개심을 불태우기 때문에 그냥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추리만으로 범인을 구속하는 것을 기피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봐야할 것이다. 사실 추리나 자백만으로 범인이라고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3]. 그런 문제는 원래 성격이 좀 세상에서 동떨어진 탓에 발생하는 듯. 여하간 이런 점때문에 많이 까이는 탐정이기도 하다. 에콜 드 파리 살인사건이라는 소설에선 주연 형사가 탐정 소설을 읽고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있었다는 탐정 얘기를 읽고 화를 내는 부분이 있다. 탐정 이름은 콕 집어 얘기안하지만 딱 봐도 긴다이치다(...)

늘 구깃구깃한 하카마 차림에 머리를 벅벅 긁는 습관이 있으며 그때마다 비듬이 떨어진다(원작소설의 하나인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서는, 자작의 딸과 대화하다 말고 머리를 긁다 눈송이처럼 비듬을 떨구는 통에 그 귀족가의 못생긴 영애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러모로 믿음직스럽지 못해 보이는 탐정이지만, 그 허술함에 범인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조급해지면 말을 더듬기까지 해서 독자가 보기에도 정말 미덥지 못한 탐정이다. 작가 조차도 소설 속에서 그의 외모와 풍채에 대해서는 좋은 소리를 하는 법이 없다. 심지어는 그런 초라한 모습 탓에 수상한 인물로 오해받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는 카리스마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보다는 범상함과 선량한, 친근한 이미지의 탐정을 선호해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 과잉의 탐정들이 늘어갈수록, 오히려 긴다이치의 몰개성이 오히려 개성이 되는 느낌이다.

동시대의 명탐정인 아케치 코고로[4]가 완벽한 탐정인 것에 반해서 운동도 못하고 외모도 그저그런 편이며 반대로 그런 인간적인 면때문에 인기가 있다. 한 편으로 서생기질이 강한 탓에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서 사람들의 심리에 둔한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체구도 비실비실해서 본인도 그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데 눈이 많은 지방출신이라서 스키를 잘타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적도 있다. 또한 노질을 잘하는지라 보트도 잘몬다.

그 밖에는 식사는 조금만 취하며 헤비스모커로도 유명하다. 담배의 취향은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을 선호하는 듯. 참고로 긴다이치 코스케가 피웠던 체리, 호프, 피스는 아직도 일본에서 생산 중이다. 술은 보통수준은 마시는 듯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 적있다.

출생환경은 알 수 없고 평생 독신이었던 것 같았지만, 상기 언급된 긴다이치 하지메와의 관계가 공인되는 바람에 원작자 사후 뜬금없이 후손이 생겼다. 아무튼 바람둥이로 묘사되는 친구 가자마 슌로쿠와 달리 연애 경험도 많지 않은 편. 일반적으로 생활에는 미련이 없고 그런 세속사에서는 붕뜬 타입이라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고 사건을 해결한 다음에는 우울증에 빠지기 때문에 정처없이 여행길에 나서는 버릇이 있었다.

말로는 조금 애매한데 20년에 걸쳐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재산은 기부하고 미국으로 떠난 다음에는 행방불명된다. 명탐정의 말로치고는 너무 비참한데 다행히도 2년 뒤인 1975년에 귀국해서 여생을 평화롭게 보냈다는 모양.

여담으로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서 자신에게 휴가지를 소개해 준 친한 경부가 자신에게 그 휴가지의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얘기하려고 하자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런 싫어요. 제가 무슨 사건의 망자도 아니고."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마도 손자의 사신력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듯 하다.

드라마판에서의 긴다이치 코스케의 테마
  1. 엄밀히 말하면 친손이 아니라 외손이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딸이 긴다이치 하지메의 엄마이기 때문. 그런데도 성이 같은걸 보면 긴다이치 하지메의 아버지가 긴다이치 가문의 데릴사위인듯.
  2. 전쟁 이후 크게 성공한 인물로, 가자마 건설의 사장. 후에 가자마는 긴다이치의 후원자 중 한 명이 된다.
  3. 문제는 이러면 살인방조가 아닌가...도 싶지만
  4. 굳이 따지면 약간 선배. 참고로 전쟁 중 코스케가 전선에서 박박 구르고 있을 때, 코고로는 만주지역에서 정보부원으로 활약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