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명대사

1 하느님의 뜻이다!

A. 작중에서 십자군이 만행을 저지를 때마다 외치는 한 마디.

"하느님의 뜻이다(God wills it)!"

직역하자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차 십자군을 선포하면서 제창한 이래 십자군의 모토였다.
라틴어로는 '데우스 로 불트(Deus lo vult)', 프랑스어로는 '디외 르 뵈(Dieu le veut)'.
이 문장구조를 그대로 영어로 바꾼다면 '갓 잇 윌스(God it wills)'겠지만 보통은 위의 형태가 많이 쓰인다.
그리고 이를 뒤집은 것이 바로 '데우스 논 볼트(Deus Non Vult)'.

2 어떤 수도자의 외침

B.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위에서 한 수도자가 반복해 외치는 말.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시길, 이교도를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지금 그들이 가는 길이 장소 자체로 신성한 '하느님의 왕국'인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과, 그곳에 가서 이교도를 죽임으로써 죽어서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리라는 믿음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십자군 전쟁 당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광기에 물들어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에서는 '하느님의 왕국'에 대해 이들과 전혀 다른 결론을 제시한다.

3 발리앙과 고드프리의 대화

C. 고향에서 사제를 죽인 발리앙이 말을 타고 고드프리의 뒤를 쫓아온다.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안 그런 줄 아나?"
"정말 예루살렘에서는 제 죄를 씻을 수 있나요? 제 아내의 죄도? 정말입니까?"
"가서 함께 찾아보자꾸나."

수도자와 달리, 고드프리가 이교도를 죽이는 것도 엄연한 살인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맹신적으로 순례만으로 죄가 씻어진다고 단언하지 않고, 죄를 씻을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는 것으로 올바른 갱생, 혹은 '천국으로 가는 길'에 관해 다분히 시사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단발적인 노력만으로 죄가 씻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오만인 것이다.

4 발리앙과 구호기사단원의 대화

D. 죄가 씻어졌다는 증표를 얻지 못하고 좌절해 있는 발리앙에게 구호기사단원이 말한다.

"나는 신앙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종교에서 광신도들의 광기가 하느님의 뜻(will of God)으로 포장되는 것을 보았죠. 너무나도 많은 살인자들의 눈에서 도를 넘은 신앙을 보았어요. 참된 신성이란 올바른 행동과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용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께서 바라시는 선량함은 바로 여기(머리), 그리고 여기(가슴)에 들어있죠. 매일 당신이 행동한 바가 당신의 선함 혹은 악함을 결정지어요.

당시 많은 십자군들이 죄를 씻었다는 확신, 죄가 씻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신앙의 이름으로 만행을 자행했지만, 구호기사단원은 그 자신이 십자군임에도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다. 죄의 씻어짐은 단지 단발적인 노력과 증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느님에게 죄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일상적인 죄의 자각과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만 사람은 하느님이 원하는 바에 가까워질 수 있다.

5 이벨린의 발리앙의 저택에 그려진 해골들

E. 이벨린의 발리앙의 저택에 쓰여 있는 글귀, 해골들이 말하는 장면이다.

"우리의 모습이 너희의 미래이다." (Quod sumus hoc eritis.)

모든 인간은 무엇을 하고 살든, 어떻게 살든 결국에는 평등하게 무덤 속의 한 줌 백골로 돌아간다는 의미.

이는 혈통과 신앙을 넘어서는 범 인류적 평등사상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생전의 선업과 죄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아래에 서술되어 있는 발리앙과 보두앵 4세의 대화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살아가던 중세인들의 사고방식이 잘 함축된 명구이기도 하다.

6 발리앙과 보두앵 4세

F. 발리앙과 보두앵 4세가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는다. 보두앵 4세가 말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끝을 알 수는 없네. 누가 우리를 이끌 것인지도. 인간은 왕에게 복종하고, 아들은 아비를 따르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게임을 하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어떤 게임을 누구와 하든, 영혼만큼은 자네 것이야. 게임의 맞수가 왕이든 권력자이든 말일세. 하느님 앞에 서면 변명이 소용 없어. '누가 시켜서 했다'거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건 안 통하지. 명심하게.
(두 사람, 잠시 예루살렘의 방어에 대해 구상을 나눈다. 보두앵 4세는 만족한 듯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아주 좋네. 자네는 이벨린에 있는 부친의 집으로 가게. 이제는 자네 집일세. 거기서 순례자들의 길을 지켜주게나. 특히 유대인과 무슬림들을 보호해 주게나. 예루살렘은 모두를 환영한다네. 유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이야. 힘 없는 자들을 지켜주고, 어느 날 내가 무력해지면 와서 나를 도와주게나."

하느님을 비롯한 누군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으로 모두를 평등하게 대접하는 게 옳다는 진리를 말하는 장면.

위의 명대사들에서 꾸준히 이야기된 것처럼, 진정한 '하느님의 뜻(will of God)'에 따르는 것은 자신의 판단기준을 하느님께 위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 책임을 하느님께 전가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오롯이 그 행동을 한 사람에게 있다.

7 하틴 전투 패배 후, 티베리아스가 발리앙에게

G. 하틴 전투의 패배를 확인하고 헤어지면서 티베리아스가 발리앙에게.

"나는 평생동안 예루살렘에 헌신했다네. 모든 것을 바쳤지. 처음에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우리가 돈과 땅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깨달았네.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군......"

그렇게 말해놓고 약 700년뒤 월스트리트연방준비은행을 털다가 지옥으로 갔다.

이러고는 티베리아스는 휘하 기사단을 데리고 키프로스로 가버린다.

여담으로 위에 고증 항목에 나와있듯이 티베리아스는 영지 이름이고, 이 인물의 실제 이름은 '레몽 3세'이다.

영화에서는 설명이 잘 안 되어 있지만, 하틴 전투의 패배로 티베리아스가 살라딘의 통치하에 들어가자 영지를 상실한 레몽 3세는 더 이상 지킬 게 없는 예루살렘 왕국을 버리고 키프로스로 가기로 한 것이며, 그래서 자신이 부귀와 영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럽다고 말한 것이다.[1]

8 발리앙이 시빌라에게

H. 살라딘에게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예루살렘을 내주기로 한 발리앙이 이를 시빌라에게 알리며.

"선왕(보두앵 4세)의 왕국은 바로 여기(머리), 그리고 여기(가슴)에 있습니다. 이 왕국은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할 겁니다."

제목이기도 한 '하느님의 왕국(kingdom of Heaven)'에 대해 이 영화가 제시하는 결론이라고 해도 좋을 대사다.
진정한 '하느님의 왕국'은 성지불신자들에 대한 공격이니 하는 껍데기가 아닌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속 알맹이에 있다.

자신의 그 알맹이를 직시하고, 그것에 힘씀으로써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간다. 예수베드로에게 말했던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죽음의 권세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은 예루살렘 왕국의 봉신으로(옷에 달린 문장만 봐도 알 수있다) 구호기사단이나 성전 기사단과는 관계없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 사람은 하틴 전투에 참가해서 부상을 입고 그 상처로 트리폴리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