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의 역사 | |||||||
독일령 동아프리카 | → | 탕가니카 지역 | → | 탕가니카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
A형 분류 | 시리아 | 메소포타미아 | 팔레스타인 (트란스요르단) | ||||
B형 분류 | 레바논 | 동카메룬 | 동토고 | 서카메룬 | 서토고 | 탕가니카 | 루안다-우룬디 |
C형 분류 | 나우루 | 사모아 | 뉴기니 | 남양군도 | 남서아프리카 | ||
■ 영국 (■ 호주, 뉴질랜드 ■ 삼국 공동) ■ 프랑스 ■ 일본 제국 ■ 벨기에 ■ 남아공 |
유엔 신탁통치령 | |||||||
오세아니아 | 나우루 | 사모아 | 파푸아뉴기니 | 태평양 제도 | |||
아프리카 | 동카메룬 | 동토고 | 서카메룬 | 서토고 | 탕가니카 | 루안다-우룬디 | 소말릴란드 |
■ 영국 (■ 호주, 뉴질랜드 ■ 삼국 공동) ■ 미국 ■ 프랑스 ■ 이탈리아 ■ 벨기에 |
탕가니카 지역 Territory of Tanganyika | |
국기 | |
탕가니카 지도 (11번) | |
1922 ~ 1961 | |
위치 | 잔지바르를 제외한 탄자니아 지역 |
수도 | 다르에스살람 |
정치체제 | 국제연맹 위임통치 국제연합 신탁통치 |
지도자 | 영국 군주 |
언어 | 영어 |
1 개요
탕가니카 지역은 1922년부터 1961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령이자 신탁통치령이었다.
2 역사
독일 제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영국은 1916년 해군을 동원하여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독일령 동아프리카를 점령하였다. 이후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스와힐리어에서 따온 '탕가니카'로 개칭되었다. 1918년에는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 제국이 점령했던 식민지들이 승전국들에게 분할되었다. 영국은 여기서 탕가니카를 분할받았다.
1922년 7월 20일 국제연맹은 탕가니카를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설정하였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탕가니카에서 영국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영국의 치하 아래 탕가니카는 본토인과 식민지인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정책과 영국의 탕가니카 이권 개입 등으로 고통받았으나, 한편으로는 근대화를 이루어 미약하게마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본국인 영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였으므로, 탕가니카인들은 반발하였다.
1929년 탕가니카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탕가니카 아프리카 연합(Tanganyika African Association, TAA)가 수립되었다. TAA는 탕가니카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였다. 1946년 탕가니카가 위임통치령에서 신탁통치령으로 전환되고, 제국주의 열강 아래 속해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하자 TAA의 의장 줄리어스 니에레레는 1954년 탕가니카 아프리카 민족연합(Tanganyika African National Union, TANU)으로 확대 개편하고 탕가니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줄리어스 니에레레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탕가니카인들은 인종적, 정치적인 분열없이 하나로 통합되게 되었다. 영국은 탕가니카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이 동일한 권리를 누리는 체제로 독립시키려고 하였으나 니에레레 아래 하나로 통합된 탕가니카인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1961년 탕가니카는 영연방 왕국으로 독립했으나 1962년 니에레레를 대통령으로 하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이로써 탕가니카 지역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1963년에는 영국이 잔지바르를 독립시키고, 1964년 4월 탕가니카와 잔지바르가 합병, 동년 10월 탄자니아가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