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레바논의 역사 | |||||||
오스만 제국 | → | 프랑스령 시리아-레바논 위임통치령 | → | 시리아 공화국 | |||
레바논 공화국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
A형 분류 | 시리아 | 메소포타미아 | 팔레스타인 (트란스요르단) | ||||
B형 분류 | 레바논 | 동카메룬 | 동토고 | 서카메룬 | 서토고 | 탕가니카 | 루안다-우룬디 |
C형 분류 | 나우루 | 사모아 | 뉴기니 | 남양군도 | 남서아프리카 | ||
■ 영국 (■ 호주, 뉴질랜드 ■ 삼국 공동) ■ 프랑스 ■ 일본 제국 ■ 벨기에 ■ 남아공 |
프랑스령 시리아-레바논 위임통치령 Mandat français pour la Syrie et le Liban | |
국기(1922년 이후) | |
지도 | |
위치 | 레반트 |
수도 | 다마스쿠스 |
정치체제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지도자 | 프랑스 지도자 |
언어 | 프랑스어, 아랍어 |
성립 이전 | 오스만 제국 |
멸망 이후 | 시리아 레바논 |
1 개요
1920년 부터 1946년까지 존속한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다. 시리아-레바논은 시리아국(État de Syrie), 대레바논(État du Grand Liban), 알라위국(Alaouites), 자발 드루즈국(Djebel Druze) 4개의 나라로 구성되었다.
2 역사
제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파이살(Faisal I of Iraq)[1]이 이끄는 아랍 군대가 영국군의 지원 아래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파하고 시리아 지역을 탈환한다. 이후 프랑스, 영국은 '점령된 적지 행정부(Occupied Enemy Territory Administration, OETA)'를 수립하고 구 오스만 제국 영토를 분할하여 군사통치를 시작하였다. 1919년, 프랑스와 영국, 미국은 파리 강화 회의를 개최하고,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 분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또한 파리 강화 회의를 통해 국제연맹이 창설되었다.
1920년 3월, 파이살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입성, 시리아 아랍왕국 수립을 선포했으나 시리아를 자국의 권리로 간주한 프랑스의 진압으로 무산되었다. 동년 4월 25일, 국제연맹은 시리아-레바논 지역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설정하였다. 8월 10일에는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세르브 조약(Treaty of Sèvres)이 체결되면서 시리아-레바논 지역은 완전히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여러 지역으로 분할하여 통치하였다.
1925년부터 1927년 동안 프랑스의 통치에 대한 반발로 시리아-레바논 지역 주민들의 봉기가 여러차례 발생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시리아-레바논 지역의 민병대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였기 때문에 봉기는 프랑스의 진압으로 번번히 좌절되었다. 이후 전간기를 지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패해 시리아-레바논 지역은 추축국의 영향권이 되었다.
1941년, 샤를 드 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시리아-레바논을 탈환하였다. 그리고 드 골은 시리아-레바논 지역에 전쟁 협력을 요청하고 대신 위임통치 종료 및 독립 국가 수립을 약속한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하고 이듬해 4월 17일 시리아가 독립하면서 시리아-레바논은 해체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