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무술

1 창시자 논란

아직도 특공무술은 창시자․명칭․기술 문제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정체성과 관련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논문 참조.[1]

하지만 군용 무술의 특성상 이런 창시자나 계보 논쟁은 무의미하다. 특공무술은 군대에서, 또는 부대의 특성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편화된 특공무술 단체들도 뿌리는 군대에서 특공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전역하고 도장을 만든 것이다. 그 1세대가 도장을 만든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기술 체계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에서 현재 일반인이 군대 외부에서 배울 수 있는 특공무술은 과거의 특공무술이 생활체육화한 것이다. 현 한국군은 무사트 같은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만들거나, 크라브 마가 같은 외국 무술을 들여온 시점에서, 과거 군용무술이 지금 특공무술 도장에서 가르치는 무술과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특공무술이 협회가 난립하고 서로가 창시자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각각 특수부대들에서 배우던 특공무술 버전과 기술이 다르고 사회로 나오면서 전역자들이 새롭게 정리한 기술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1.1 특전사

70년대 당시 대통령경호실에서는 유도, 태권도, 합기도, 검도를 수련했고, 군대에서는 태권도가 전군에 보급되었으며, 606특공부대의 군소속인 특전사에서는 '특전무술'이라는 명칭으로 총검술 등을 훈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테러 특공작전에 투입될 606부대에는 경호실이나 군에서 수련하고 있는 무술보다 더욱 실전적인 공격술, 방어술, 응용 기술이 추가된 무술이 필요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78년 6월 1일에 창설된 특전사 소속 606부대는, 1978년 7월 2일 대통령경호실에 배속되어 국내 최초의 항공기 대테러를 목적으로 비밀리에 운용되었다. 그리고 606부대에서는 기존 무술들의 장점을 합한 실전 종합무술로서 특공무술을 체계화하였다.

특공무술은 경호무도의 특성을 가지고 개발되었다. 606부대원들은 대통령경호실 소속 특공부대의 일원으로 특공무술을 개발했고, 이에 특공무술은 개발단계부터 경호무도로서의 특성을 포함하게 되었다.

606부대의 특공무술은 군과 경호실로 나뉘어 발전했다. 군에서는 제5공수특전여단에 의해 새롭게 구성한 국방무술로 보급되었고, 대통령경호실에서는 기존에 수련하던 합기도를 특공무술로 교체하여 보급되었다.

따라서 개발 과정으로 볼 때, 특공무술은 어느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부대차원에서 체계화한 것이다.

606부대의 특공무술과 달리, 5공수특전여단의 특공무술은 장병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기술체계의 간소화, 태권도 비중 증대, 전투복 착용 등에서 차이가 났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보급된 특공무술은 606부대의 특공무술을 모태로 하여, 5공수특전여단이 전장무술의 특징을 살려서 새롭게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공수특전여단의 특공무술은 1980년 9월 20일부터 11월 21일까지 약 2개월간, 특전사령관의 지시로 새로운 무술연구에 착수하여 25특전대대에서 개발했다. 1980년 11월 21일 사령관 및 육본 참모부장, 각 여단장이 모인 가운데 시범을 실시하여 전시 공격형 군대무술로 인정받았으며, 특전사 이하 여단 교관요원에 대한 집체교육을 2차에 걸쳐 실시하여 이를 보급하였다.

1981년 4월 22일에 선보인 육군본부 시범으로 인하여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전국의 우수 장교들을 교육하여, 특공무술의 군 보급이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한국특공무술협회
대한민국특공무술협회

1.2 장수옥

장수옥은 대한기도회 소속 합기도 사범을 하던 중에, 1978년 7월 1일부터 1980년 10월 31일까지 제606특공부대, 제27특공부대의 무도사범으로 활동했다. 이후 1980년 11월 1일 대통령경호실의 합기도사범으로 임용되었고 2002년 3월 31일 퇴직하였다.

장수옥 총재에 의하면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경호실에서 쓸 무술을 필요로 하자 자신과 부인 철선녀씨가 경호실에 초청받아 만든 무술이라고 한다. 특공부대 전원이 유단자라서 총검술을 비롯한 유도와 태권도 관련 기술개발은 부대 자체 내에서도 가능했다. 그러나 부대원들 가운데 경호실의 무도종목인 합기도를 담당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합기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수옥을 시간제로 고용하게 되었다. 장수옥은 부대원들에게 합기도를 교육하면서 특공무술의 개발에 일부분이었던 합기도를 담당했다. 결국, 특공무술은 김택수의 지시로 번역한 세계 각국의 무도서적, 제606부대원들의 유도와 태권도 기술, 장수옥의 합기도 기술을 종합한 것이었고, 이 기술들의 체계화는 특공무술 교범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해서 특공무술 창시자라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과 이견이 있다. 다른 특공무술 창시자들과 이견이 생기는 것은 주로 '특공무술'이라는 단어를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느냐 하는 차이인 것으로 보인다. 장수옥 총재는 주로 합기도태권도를 수련했고, 철선녀씨는 쿵후를 수련했다고 하며, 때문인지 기술체계에서 이 무술들의 특징이 보인다고 한다.

대한특공무술협회

1.3 박노원

5공수특전여단에서 특공무술을 개발할 당시 민간의 무술지도사범(박노원)을 위촉교관으로 6개월간(3개월간은 5공수특전여단에서, 3개월은 5공수특전여단 교관들이 경찰대학 상무관에서)교육을 받아 술기와 교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1980년 당시 특전특공무술 교범의 모든 기술지도는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1986년에 육군본부에서 특공무술 교육참고 교재를 발간하였는데, 이때 박노원 회장의 자료와 기술을 정리하여 교재를 발간하였다고 한다.

국제특공무술연합회

1.4 이원익

5공수특전여단장 장기오의 지시으로, 이원익은 육군 사단에 있는 수색부대에 수 개월간 특공무술을 가르쳤고, 제대하기 몇 개월 전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에 가서 미군에 특공무술을 가르쳤다. 그 후 1982년 미국에 도장을 열어 텍사스 주립대(University of Taxas at Austin)를 시작으로 미국에 특공무술을 보급했다.

1986년 4월5일 장기오 당시 교육사령관 등 여러 군 실무자들이 텍사스 주립대를 방문하여 세계특공무술연맹 창립총회를 갖게 되어 장기오는 초대 총재로, 부총재로 이원익이 임명 받게 된다. 후에 장기오는 명예총재로, 이원익은 연맹총재로 부임하게 된다.

세계특공무술연맹

2 명칭의 유래

 특수전사령부 

특전무술
 →  제606특공부대 

특공무술
 → 제5공수특전여단

 특전무술 & 특공무술 
 → 육군

 특공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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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순수한 무술이 결합되지 않고, 흉기를 가지고 특전작전을 수행하는 '특전무술'로 불리다가, 606부대에서 각종 무술을 종합한 뒤에는 김택수[2]중령이 606부대 장교들과 상의하여 '특공작전에 쓰는 무술'로서 '특공무술'이라 지었다고 한다.

1978년 11월 16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606부대가 최초로 특공무술 시범을 보였고, 연이은 시범에서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흡족한, 차지철 경호실장은 일반 군부대에도 특공무술을 보급시키라고 지시했다. 임무를 맡은 5공수특전여단장 장기오[3] 준장은 기존 시범위주의 특공무술에 만족하지 않고 군의 성향에 맞춰서 새롭게 구성하고자 했다. 결국, 당시 25대대장이었던 이정균[4] 중령은 606부대의 특공무술을 시범의 화려한 면보다 장병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특공무술로 재구성하였고, 이 당시에는 명칭을 '특전무술'과 '특공무술' 두 가지 모두 공동으로 사용 했다고 한다.

그 후 5공수특전여단은, 특전사이기 때문에 '특전무술'이라는 이름으로 한두 번 시범을 보이다가, 육군본부 시범 전, 특전무술이라고 하면 특전사만 하는 무술로 오해하기 쉽다고 판단, 육군에 보급하기 위해 장기오와 이정균이 의논하여 '특공작전'에서 이름을 가져와 '특공무술'로 정했다고 한다.

3 특징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합기도의 한 분파+국선도 호흡법=장수옥 총재의 특공무술. 국선도는 무술이라기보다는 수행법이므로, 실제적으로는 합기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애초에 한국 합기도가 또 여러 무술에서 이것저것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중국무술, 태권도를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군용무술이라고 볼 수 있다.

전,후방 상관없이 전투병과(주로 보병) 대부분은 부대원의 태권도단증 보유율이 지휘관평가에 들어가기에 태권도를 중시하고, 특공무술은 일부 특수임무적 성격을 띠고있는 특공대,수색대,기동대등의 부대들만이 시범목적과 부대원의 역량강화를 위해 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세가 화려하고 뭔가 폼나보이는데다, 군용살상무술 이라는 환상이 존재하지만, 현재에는 종합격투기등의 인기로 인해 그렇게까지 실전적이지는 않다는 인식이 있다. 이전 항목에는 특공무술이 품새 위주로 가르친다는 서술을 부정했는데, 이상이 어떻건 실제 부대에서 가르치는 특공무술은 정말로 품새, 정확히는 시범 위주로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한국군 특성이 수색대 등을 비껴갈 리가 없다. [5][6]

군 부대 내에서 제대로 된 수련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뿐더러 하물며 크라브 마가시스테마 등과 비교하면... [7] [8][9]

기본 준비자세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기는지 이전의 품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형태로 전파되었다. 기합짜기, 유급 기본형 이외에 대검형 등이 있었으나 새로 형태가 바뀐 이후에는 명칭도 바뀌었다.

꼭 무술 외에도 호신술이나 낙법, 단검, 목도, 쌍절곤, 삼절곤, 창, 봉, 도끼(?), 야삽(?!) 등을 이용한 무기술도 가르친다. 권총을 빼앗아 제압하는 호신술을 가르치기도 한다.충분히 실전적인 것 같은데? 문제는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느냐지. 한마디로 합기도와 비슷한 정체성을 지녔다.[10] 타격기, 유술기, 무기술, 제압술 등 온갖 무술에서 따온 다양한 기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여러개를 배우는 만큼 타격기면 타격기, 유술기면 유술기, 무기술이면 무기술 하나를 가르치는 무술에 비해 깊이가 크게 떨어질수밖에 없다는 건 필연성을 띈다.

특히나 무기술의 경우 대부분 가차없는게 대부분인데, 예를 들어 단검으로 상대방 가슴을 계속 찔러서 난자한다던지, 창으로 복부를 뚫어버린다던지, 쌍절곤이나 단봉으로 목을 꺾는(..)등, 무기술 비쥬얼은 흉악하다.
심지어는 발차기 기술 중에 상대방 무릎을 차서 관절을 반대로 접어버리는 기술도 있다. 흠좀무. [11]

호신술을 할 때도 주의가 요해지는데, 대부분 호신술을 업어치기를 시전하고 넘어가는 중에 관절을 잡고 넘어지는 힘으로 관절을 반대로 접히게 만드는(..) 기술이 원본이라, 연습할 때는 끊어서 하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동시에 나간다. 애초에 유도나 브라질 유술에서 탭을 하게 만들지만, 진짜로 생사결이라면 탭이 아니라 바로 꺾는 것이다.

그리고 도장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장애물 뛰어넘기나 벽타기(?!), 파쿠르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본격 암살단훈련소 [12] 그런 짬뽕식훈련의 탓인지, 출발 드림팀의 52회 방송인 '특공무술팀' 편에서는 마스터 어쌔신대한 특공무술 협회장이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결국은 특공무술팀이 드림팀을 이겼다.

4 사단 법인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대한무예특공무술협회
대한민국특공무술협회
대한특공무술연맹
대한특공무술협회
대한호국특공무술총연합회
세계특공무술연맹
세계특공무술협회
실전특공무술협회[13]
특공무술국제연맹
특공무술세계연맹
특공무술총연합회
특공무술협회[14]
한국특공무술협회

5 루머

북한에서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힌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한국군인을 대련을 시켜보니 항상 깨져서 대비책으로 북한 무술+한국무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카더라가 내려오지만 근거 없는 군대전설일 뿐이다. 장수옥 총재와의 인터뷰에도 나오듯이, 귀순자 등과 대련을 한건 아니고 단지 북한의 격술을 확실히 능가할 새로운 무술을 만드는 걸 창설목표로 했던게 실제 대련 운운 스토리로 와전됐던 것이다. 남북한 군인이 실제 대련을 했다는 얘기는 어떤 소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종편채널인 TV조선에서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토크와 장기자랑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인 '모란봉클럽' 을 방영하고 있는데 2016.9.17.날 방송된 53회차 방송에서 조선인민군 경보대대 출신 탈북자 이영선씨가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인 자신이 1979년 4월 청와대에서 격술시범을 보이고 나서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간의 대련에서 압승을 거두자 이에 충격받은 박정희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시에 의해 기존 경호실 무술을 대체 무술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특공무술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하니 출연진 중 한명이 위에서 서술한 군대전설 이야기를 하며 역사의 산증인을 만났다며 악수를 청한다. 토크 내용의 진위여부는 따져봐야 할듯.
  1. 한국경호경비학회지, 2008, 제15호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강사 김은정
  2. 육사 19기, 1978년 6월부터 1980년 5월까지 제606부대의 초대 부대장으로 특공무술의 개발에 관여했다.
  3. 육사 12기, 1978년 10월 3일부터 1981년 3월 1일까지 5공수특전여단 여단장이었다.
  4. 육사 23기, 1980년 9월 13일부터 1981년 12월 30일까지 5공수특전여단 25특전대대장으로 특전무술(특공무술)의 개발에 실무를 담당했다.
  5. 특공무술 승단 심사시 필요한 품새의 경우 상당히 간소화 되어있다. 1단의 경우 1~3수를 동시에 평가받는데 이 3품새를 모두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태권도 품새 1개하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특공무술 승단심사는 특전사들이 심사관으로 오게되는데, 이들이 중시하는 것도 품새가 아니라 겨루기나 발기술들이다. 다만 품새도 나름대로 단련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간소화 시키는 게 좋은 건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품새 자체를 제외시키면 또 모를까.
  6. 단 민간의 특공무술은 협회가 난립하고 있는데 야매로 가르치는 단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문제는 야매가 대부분.
  7. 군대의 주 업무는 작업과 훈련이다;;; 그리고 훈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건 사격, 병기본, 각개전투지 맨손격투가 아니다... 그리고 크라브 마가와 시스테마는 각각 실전을 밥먹듯이 겪는 이스라엘군과 온갖 격투괴수들이 즐비한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무술이다.
  8. 하물며 저 둘은 단순히 격투술 이외에도, 군용무술로서 군인들이 방탄복과 각종 장비와 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CQC상황을 놓고 벌이는 '전투를 위한'기술체계도 존재한다. 특공무술은 탄생시기 때문인지 거기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다. 근데 탄생 시기로 보자면 시스테마나 크라브 마가 어느 쪽이든 특공무술보다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는 군용무술이라는 관점에서의 문제지, 일반적인 무술로써는 특공무술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9. 그런데 이건 오히려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무술이 이렇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에 외국인이 동양의 어느 작은 나라에 있는 군용 무술로 발차기에 특화되어 있지만 각종 무기 사용(도끼, 칼, 총), 무기 뺐기, 그리고 그 외 파쿠르나 벽 타기 등을 가르친다. 라고 하면 어떨까? 애초에 무술이란 훈련'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훈련을 베이스로 대련을 해야 진짜 실력이 느는 것이다.
  10. 사실 요새 종합격투기가 하도 유행해서 초딩들 다니는 도장 말고 좀 실전적인 무술 도장에서는 사범이 배워본 무술을 이것저것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종합격투기 체육관' 이라는 개념까지 생겼고. 그게 시합에 나가기엔 최적이긴 하다.
  11. 말이 발차기지, 사실상 그냥 밟아버리는거다. 진짜로 관절을 반대로 접는건 김성모 만화에나 나올 법한 물리학을 비틀어버리는 소리고; 무에타이 등에서 볼 수 있듯 무릎을 차서 발차기가 나오지 못하게 경직시킨다던지, 택견에서 볼 수 있듯 아예 상대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찬다던지 가라데의 관절차기와 같이 비슷한 기술들이 있다. 참고로 가라데에서 관절차기는 기본기 중의 하나지만, 급소공격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련에서는 금지되어있다.
  12. 물론 그러한 하나하나는 그 항목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그 분야에 있어서 오랜 수련과 자격을 요구를 하는데 특공무술 교관들이 그러한 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를 깊이 익힌다기보다는 가볍게라도 여러가지 훈련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군용무술의 특성상 그러한 전인적 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13. 고양신문 기사
  14. 총재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