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reality
라이트 노벨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용어
학원도시의 능력자들은 특정 커리큘럼을 통해 세계를 보는 자신의 시선/관점을 일그러뜨리고 비뚤어지게 하여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를 만든다. 그렇게 퍼스널 리얼리티를 창조한 능력자는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 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냥 간단히 말해서 "현실의 세계를 자신의 초능력이 발현되는 개인적인 세계로 인식한다." 정도. 더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망상력이 쩐다.
위와 같은 이유로 '현실을 직시하는' 마술과는 상극이다.[1][2]
묘하게 법의 서의 핵심인 '그대가 원하는 바를 하라. 이것이 그대의 법이다'와 설명이 동일하다. 초능력의 개발자와 법의 서를 쓴 사람이 동일인물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레벨 3(강능력자)과 레벨 4(대능력자)의 차이에는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정도와 군대에서 전술적 가치가 있을 정도로 능력 규모의 차이가 큰 폭이 있는데, 이것은 능력 발현의 근본 법칙이 퍼스널 리얼리티인 것과 관계가 있다.
즉 어느 능력자가 자신의 바라는 현상을 발현할려고 할 때,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는 의식을 '현실'로서 '이해'하고 '연산'하여 자연히 표현할 수 있는가?"와 "'비상식적인 현상'을 '퍼스널 리얼리티'로서 파악할 수 있는가"를 통해서 강능력과 대능력의 벽이 만들어진다. 카미조 토우마가 레벨 0(무능력자)인 이유
액셀러레이터와 레일건이 '레벨5'라는 고레벨의 능력을 가질 수 있던 것은 둘이 모두 '강인한 정신'과 '확고한 사상 및 주의'를 가진 것 이외엔 없다. 발현이 당연한 상황에서 발현한 힘이니 그럴 수밖에.다만 미사카 미코토를 제외하고는 그런 사상과 정신에 너무 감흥되어서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16권에서 서술된바에 의하면 미사카 미코토가 카미조 토우마를 향한 사랑의 감정은 레벨 5의 강력한 퍼스널 리얼리티로 억누룰수 없는 막대한 감정이라고 한다.
학원도시에서 같은 레벨5조차 범접하지 못할 능력을 가진 액셀러레이터와 카키네 테이토쿠의 능력이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의 법칙을 연산하는 것과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의 이물을 세계에 주입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구약 15권에서는 이 둘의 능력을 신과도 같은 힘의 편린과 신이 사는 천계의 편린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신약 9권에서 확인한 오티누스의 능력과 연결시켜 보면 이미 이 때부터 작가가 복선으로 깔아둔 것이 있지 않나 싶다.
오티누스의 능력이 위상을 덧붙여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인데 이것을 1위와 2위의 능력과 연결시켜 보면 퍼스널 리얼리티란 단순히 한 개인의 망상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위상이라고 말하는 다른 세계 혹은 금서목록 세계관이 가질 수 있던 다른 가능성을 해당 능력자가 빌려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금서목록 세계관에서 좌방의 테라의 위치가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계가 비틀린 이유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왠지 구판 World of Darkness의 메이지 디 어센션에서 마법(Magick, True Magic)과 마법사(Mage)의 설정과 비슷하다. 자신만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현실이 틀린 거야!"라고 떼를 쓸 수 있는 정신나간 고집쟁이들만이 세상을 비틀어버리는 마법 혹은 초능력이라는 이능력을 갖게 된다는 점 뿐만 아니라 그 이능력을 사용할 때 이에 대해 논리적인 해명을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근데 학원도시의 초능력자들은 메이지처럼 '패러독스 패널티'도 없잖아? (Paradox. 마법사가 현실을 비틀 때마다 생기는 모순. 이게 쌓이면 패러독스 백래쉬Paradox Backlash라는 치명적인 반작용이 마법사에게 돌아온다. 이게 있는 이유는 마법이 개사기라서 그렇다. 최종 등급 마법들은 그야말로 신의 권능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