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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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élix Clair Ridel
1830년 7월 7일 ~ 1884년 6월 20일
1 소개
프랑스 낭트 출생의 가톨릭 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6대 교구장. 2번 항목의 실존 인물. 한국식 이름은 이복명(李福明).
1857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1859년에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했으며, 1860년 7월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어 조선을 향해 출발했다. 1861년 랑드르[2] 신부, 조안노[3] 신부 등과 함께 조선에 입국해 공주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고,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날 때 살아남아 청나라로 탈출했다. 7월 6일 추푸 항에 도착, 프랑스 함대 사령관인 피에르 로즈 제독이 톈진에 주재하고 있자 한국 가톨릭교회의 실정과 프랑스인 신부들의 순교 소식을 전한다.
살아남은 페롱 신부와 칼레 신부의 보호를 위해 프랑스 함대 출항을 요청했다. 이에 피에르 로즈가 인도차이나에서 일어난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출격한 주력 함대가 귀환하는 대로 조선을 공격하기로 하고 조선인 신자들과 함께 승선해 길 안내를 하면서, 결국에는 병인양요가 일어난다. 1869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주교로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했으며, 1877년에 조선에 입국했지만 7개월 만에 체포되면서 감옥에 갇혔다. 이때 자신의 수감생활과 회고록을 담은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을 저술했다.
이후 청나라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만주로 추방되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한불자전, 한어문전 등을 저술해 1880년 나가사키에서 간행했다가 1884년에 선종했다. 2년 후인 1886년에 조불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가톨릭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아!! 이 아름다운 조선이 얼마나 오래 전부터 카타콤 속에서 살아왔던가!! 또 얼마나 많은 박해를 겪었던가!!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고통과 눈물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파괴가 있었던가!! 이 얼마나 긴 순교자의 행렬인가!! 그런데 이제 나까지 또 어쩔 수 없이 멀리 떠나야만 하는가!! 우리 신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나의 동료 신부님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큰 고통과 얼마나 큰 불안감을 그들은 겪었을까!! 하느님, 당신의 거룩하신 뜻이 모두 이루어지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저를 이끄소서!! 저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며 영원히 당신의 것이고, 저는 저희의 선하신 스승님을 따라서 더 큰 고통도 참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온전히 순명하여, 저의 모든 생각의 규범과 모든 행동의 규범을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맞추고, 당신의 더욱 큰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고난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극진한 대우를 받아서, 나를 호송해 준 이들에 대하여 불평할 것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그분들에게 감사할 뿐이고, 또 조선 정부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이 호의로 나는 천만 번 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니,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와 나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이 나라 백성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회한이 더욱 커질 뿐입니다. 부디 언젠가 조선 정부가 우리에게 입국을 허락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반갑게 다시 달려오겠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강을 건너 첫 번째 섬에 닿았다. 그 섬의 한쪽에서는 조선의 대형 선박들이 오르내리고 있었고, 섬의 다른 쪽, 즉 같은 강의 다른 지류 쪽으로는 수없이 많은 중국 배들의 돛이 강 위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보였다. 뭍으로 올라온 나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 이 아름다운 조선, 나의 사랑하는 선교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인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경인가!! 그것은 마치 어쩔 수 없이 작별해야 하는 나에게 보내는 조선의 미소와도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선을 포옹하며, "잘 있어라!! 곧 다시 보자!!"라며 조선을 향하여 나의 가장 다정한 강복을 주었다.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中에서
2 드라마 닥터 진의 펠릭스 클레르 리델
1번 항목의 인물. 배우는 파비앙 코르비노. 패혈증에 걸린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로 등장. 처음에는 진혁의 의술을 신뢰하지 못했으나 신자인 홍영래의 설득을 통해 살아났다. 그리고 그가 타지인이라는 걸 눈치챈다. 이후 뜨거운 감자로 양 진영에서 주가가 오르다가(..) 흥선 대원군에게 전쟁 상황을 만들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조선을 떠나려고 하지만, 그 전에 김병희 쪽에서 연락을 취해 천주교 선교를 허용할 것이니 병인양요를 일으켜 달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 저항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으나 내심 갈등이 심했던 모양. 김병희는 상황을 확실히 하기 위해 경탁에게 리델 신부의 동료 신부 2명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신부는 화살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그 거리에서 맞히는 걸 보니 역시 조선은 양궁 금메달리스트를 마구 뽑아낼 만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