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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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중국어, 일본어殉敎[1]
터키어Şehit
네덜란드어, 아프리칸스어martelaar
인도네시아어, 말레이어, 루마니아어, 필리핀어, 알바니아어[2]martir
영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라틴어martyr
이탈리아어martire
독일어Märtyrer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mученик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바키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Mučenik
히브리어מרטיר
아랍어شهيد
폭군이 죽으면 그의 지배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지배가 시작된다.
- 쇠렌 키에르케고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살하거나 타살당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 신앙을 지키기 위해 타살당하거나 처벌, 옥고 등 여러 곤욕을 치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외부의 탄압을 '박해'라고 칭한다.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등의 표기가 대표적.

원론적으로는 자살이든 타살이든 자신의 의지로 행해져야 하며, 그 의지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발휘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즉, 타살인 경우에도 신앙을 포기하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 그런데 요새는 아무 경우에나 순교라는 명칭을 가져다 붙이는 바람에(…) 명확히 구분짓기 힘들어진 면이 없지 않다.

현대에는 여기서 더 확장되어 특정 '주의'나 '사상'을 위해 죽는 경우에도 관용적으로 쓰이고 있다.


2 종교적 관점

2.1 기독교

기독교에서 자살자들을 좋지 않게 바라보며, 심지어 종교를 지키기 위해 자살한 경우에도[3] 좋게 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배교를 강요당하면 거부하고 탄압하는 측이 가하는 형벌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순교라는 용어가 주로 쓰이는 쪽은 기독교 계열 종교인데, 아무래도 초창기 교회 선교의 역사가 워낙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유혈이 낭자했기 때문일 듯 싶다. 기독교 초기 로마 제국에서는 체포된 그리스도인이 로마 신전에 경배, 즉 배교하지 않으면 맨손이나 단검 한 자루를 쥐여주고 맹수들과 싸우게 하거나 십자가에 못박고, 참수하는 것에서부터 오지에 가서 선교하다가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등 매우 역사가 길다.

사실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게릴라처럼 지하교회나 가정교회 등에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는 등 생존의 투쟁(…)에 가까웠기 때문에 A.D.200년대부터 박해에 의한 개종이나 배교는 나중에 회개한다면 어느정도 참작해주기도 했는데,[4] 나중에 기독교 공인 이후에 박해 시대에 배교했던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받아들일지 말지를 가지고 도나투스파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슬람에 비해 온건한 태도를 취하기에 배교하여 살 수 있음에도 순교를 택하는 것은 성인 시성에서 기적심사의 요건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여서 동아시아에서의 기독교 전래시기 대규모 기독교 순교자들은 상당히 높게 쳐주는 편이다.

한국 가톨릭은 초기 전파 때 엄청나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절두산을 비롯해 성지도 많고, 순교 성인들도 많다. 현재 한국 가톨릭에는 한국 103위 순교성인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가 있다. 가톨릭이 자살을 엄금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순교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로 충분히 답이 나오는데, 모두 배교를 거부하여 사형을 당하거나 옥사하였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도 막부 시대에 가혹한 가톨릭 탄압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현지인 중에서도 가톨릭 신앙인이었다는 이유로 대거 처형당하고 시복, 시성된 사람들이 많다.[5]

하지만 순교자이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황사영 같은 경우이다. 천주교계로 보면 분명한 순교자이지만, 그 목적이 매국[6]이라서 줄곧 순교성인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밖에도 외부에게 호불호가 갈리지만도 순교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토머스 목사 같은 이의 경우이다. 토머스 목사는 1866년 대동강으로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발포하여 조선 민중을 대거 살상한 무장상선 제너럴 셔먼 호에 탄 통역담당 목사였다. 상선이지만 대포와 총기로 무장한 명백한 침략행위였다. 조선 측은 관대하게도 고기까지 주면서 정중히 나갈 것을 요구했지만, 보답이라곤 포격과 같이 조선군관 납치 및 금품 요구[7]. 그렇기에 목숨을 잃은 평양 주민들의 증오와 반발로 제너럴 셔먼 호는 화공으로 불태워졌고, 겨우 탈출하여 뭍으로 올라온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주민들에게 맞아 죽었을 정도이다.

토머스 목사도 올라와서 이렇게 죽었는데[8],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단지 한국에서 처음으로 죽은 개신교 목사 1호라는 명목으로 교회도 세우고 순교자로 찬양하고 있고 토머스 목사 교회까지 세웠다[9].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앞서 구술한 것외에도 민중에게 죽은것은 맞지만 성경을 뿌리다가 죽었다는 설, 그리고 배에 불이 붙어진 후에 탈출을 못한 토마스 목사가 배 위에서 성경을 뿌리며 죽었다는 설 등이 있다. 성경을 뿌렸다는 부분은 대부분의 사료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개신교에선 순교자가 되었다.[[1]] 한글위키에도 토마스 목사의 순교자 논란에 대한 부분이 있다.[이와] 같은 경우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임에도 개신교계에서 순교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순교하면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교리상 틀린건 아니다. 순교는 혈세라고 해서 피로 받는 세례로 친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연옥에 가야 할 영혼까지도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신약에도 예수와 그 복음을 위해 죽는 것은 유익하다고까지 나와 있다.[10]

예수의 가르침 중 하나인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에 따르면, 즉 순교자를 죽이는 박해자도 교리상으론 사랑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뜻은 그 박해자가 저지르는 악행까지 사랑하라는 게 아니라, 그 사람 개개인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우하고 그 사람의 올바른 회개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11]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 부제도 죽으면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했다고 사도행전에 나온다.

간혹 가다 예수의 죽음을 순교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적절한 단어 선택은 아니다. 기독교에선 예수의 죽음의 목적은 순교의 정의와는 맞지 않으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수난'이라고 칭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담으로 순교는 기적으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교황청에서 시복 조사할 때도 순교 자체를 인간의 의지로는 하기 어려운 기적으로 보기에 기적심사를 하지 않는다.

2.2 이슬람

이슬람교에서는 초창기 무함마드예언자의 시대에서부터 메카군에 대항해 분투했던 역사로 순교를 매우 영예로운 행위로 여긴다. 가령 메디나에서 계시된 구절인 제3장 이므란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69. 하나님의 길에서 순교한 자가 죽었다고 생각치 말라 그들은 하나님의 양식을 먹으며 하나 님 곁에서 살아 있노라.

170.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뻐하며 그들과 함께 하지 못 하고 뒤에 올 순교자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곳에는 두려움도 슬픔도 없노라. - 수라트 알 이므란 3:169-170

이외에도 메디나 시기에 계시된 구절가운데 무려 109절이나 '순교'의 영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구절들을 특히 '칼의 구절'이라고 부르는데, 본디 당대에 박해받는 무슬림들이 성전(지하드)에 임해 그들을 박해하는 불신자들을 물리치는 가운데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구절이지만 오늘날 알카에다같은 원리주의자들이 요상하게 곡해해서 그들의 테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무함마드 시대의 성전이외에도 또한 이슬람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같은 이교도의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에 대해서도 순교자라고 대우하며, 가까운 시기로 터키 독립전쟁 당시 그리스군프랑스군등에 항전하다 죽음을 맞은 터키 병사들 또한 순교자(터키어로는 Şehit)라고 부른다. 한국전쟁 및 현재진행형인 반PKK 진압작전 및 PKK에 의한 테러로 사망한 이들도 순교자라고 지칭한다. 따지고보면 터키어에서 순교란 "나라를 위해 죽은 이"의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즈 알 카사스베 요르단 조종사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의해 화형을 당했을 때 [요르단 당국은 그를 순교자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IS를 규탄하기 위해 당국에 의해 순교자로 칭송된 것.


2.3 불교

불교쪽에서도 순교자들은 제법 있었다.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타 교단 사람들에게 린치당해 사망한 목갈라나도 이에 해당된다 볼 수 있고, 중국의 경우에는 달마의 뒤를 이어 중국 선종의 2대조가 된 '혜가' 또한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신라시대 당시 신라에 불교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순교한 이차돈이 유명하다. 목이 베어지자 하얀 피가 나왔다는 것은 제법 유명한 일화.


3 세속적 관점

순교는 능력 없이 유명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조지 버나드 쇼

최근 이슬람 근본주의의 자폭테러라든지 한국의 각종 병크라든지 때문에 점점 광신적 단어로 취급되는 분위기.

물론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광신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종교인들 앞에서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하면 신성모독이나 인격모욕 쯤으로 받아들이니 조심하자. 괜히 종교 가지고 논쟁하다 싸움난다.[오프라인에선 그러다가 칼 맞는다]

사실 단어만 다를 뿐, 개인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비종교인들 사이에서도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신념이 과연 희생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와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1. 예전엔 순교라는 말대신 치명(致命)이라는 말을 썼다. 그래서 순교자도 '치명자(致命者)'. 천주교 전주교구에는 치명자산 성지도 있다(전주시 소재).
  2. 'dëshmor'이라고도 한다.
  3. 다만 이 경우는 성인으로 추도하기도 한 걸 보면 100%는 아닌 듯하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종교를 지키는 과정에서 자살을 택하지 않고 탄압하는 측이 가하는 사형을 받았음을 고려한다면 자살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4. 심지어 초대 교황예수를 모른다고 3번 부정하고 도망친 전력이 있으니.
  5. 대표적으로 성인으로 추대된 바오로 미키 신부 등 일본 26위 성인.
  6. 조선에 프랑스군을 보내 박살내서 천주교 신앙을 인정하게 해달라고 편지를 보내는 것은 어딜봐도 절대 좋게 봐줄 수 없다. 당시에는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이던 천주교는 이런 목적으로 아시아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쳐들어갔다. 지금도 당연한 매국행위이거니와, 당시에 이 편지 덕에 천주교에 대한 철저한 박해의 명분이 되어 황사영 자신도 산채로 거열당했고 3대 남정네들은 모조리 효수당할 정도로 조선에서도 대 매국노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박노자는 "이것을 현대로 치환하자면 UN에 도와달라고 한 것과 똑같다"면서 황사영을 두둔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국주의 시대에 과연 그렇게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조선 역시 봉건왕조인데다가 현대와 같은 민주국가도 아니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이 그다지 정의의 원칙과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도 좋다. 전반적으로 봐도 신앙적인 면을 제외하면 그다지 현명하거나 올바른 길을 걸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매국노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강한 비판들이 많은 것은 가톨릭의 흑역사에 대한 자아비판의 강박 독일인 면이 분명 존재한다. 또한 이는 한국 가톨릭 특유의 애국적 보수주의의 영향이기도 하다.
  7. 쌀 1,000석과 금, 은, 인삼(…)이었다.
  8. 한국의 개신교계에선 그가 거창하게 조선군의 손에 효수되었다면서 순교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조선군은 이들을 포로로 잡으려고 되려 막으려다가 분노한 민중들에게 겁먹고 물러났던 것이다. 더불어 현장을 지휘던 인물도 개혁파이던 환재 박규수였다!
  9. 이건 한국의 개신교계가 되새겨야 할 점인데, 장로교 신자였던 토머스 목사의 직속 제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장로교 측은 제너럴 셔먼호가 파괴당한 것을 물론 제너럴 셔먼호가 먼저 약탈을 자행했다는 정보는 검열삭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러 이역만리 타국에서 온 선교사를 보수적인 조상들이 복음을 거부해서 죽여버렸다."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10. 필립보서 1:21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공동번역성서)
  11. C.S.루이스도 그의 저서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계명을 이렇게 해석했다. 신약성경의 <유다서>에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1장 23절)라고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