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 고등연구소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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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류의 과학발전을 선도한 연구소

프린스턴 고등연구소(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IAS)는 1930년도에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시에 설립된 순수학문연구소이다. 연구소의 분야는 물리학, 수학, 사회과학, 역사학, 생물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분야마다 소규모의 영구 연구진이 있으며 매년 전세계에서 선발된 소수의 방문 연구자들이 이곳에서 연구할 자격을 얻는다.

이 연구소에는 학위 코스나 실험실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학자들은 연구비를 얻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연구분야는 오로지 학자 본인의 자율에 맡긴다.

지난 80여년 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출신의 연구진들은 수학물리학을 필두로 다양한 학문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전세계의 학문 발전 방향을 선도하고 기초과학을 비약적으로 발달시켰다.

참고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프린스턴 대학교와 자주 교류를 하지만 부속 연구소는 아니며, 독립된 연구기관이다. 연구소가 프린스턴 시에 있어서 다른 연구소들과 구분을 위해 일본, 한국, 중국등의 국가들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라고 번역한 것이지 영어 이름은 IAS, 그냥 고등연구소라는 뜻이다.

2 역사

1930년도에 뉴아크라는 백화점의 사장이었던 루이 뱀버거와 그의 남매 캐롤린 뱀버거의 자금으로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시에 설립된 사립 연구소이다. 당시 뱀버거 남매는 백화점의 성공을 뉴저지 주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치과대학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의 친구이자 초대 소장이 된 아브라함 플렉스너가 그들을 설득해 순수 과학 연구소를 만들게 되었으며 훗날 플렉스너는 나치 독일의 위협에 빠져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미국으로 빼내 이 연구소로 인도, 구출하기도 하였다.

3 방문자 프로그램

연구소의 독특한 특징은 방문자 프로그램이라는 시스템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구원 대학’을 지향하는 시스템으로서 전세계의 박사학위를 끝낸 장래가 촉망되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소에 의해 선정된 방문자들은 이상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한다는 연구소의 운영방침에 따라 외부의 간섭이나 아무런 의무 또는 책임이 없이 자신만의 시간표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보고서를 제출할 필요도 없다. 방문 기간은 대개 6개월에서 1년이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1년에 200여명 미만인 소수의 인원만 뽑기 때문에 선발될 확률은 낮다. 좋은 연구환경과 학문에 대한 자기개발, 경험 등의 이유로 세계의 많은 박사들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가기를 희망하며 어떤 학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구소의 기금은 2000억 원 정도이며,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이 운영자금이다.

지금까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전세계의 5,000여 석학들이 이 연구소를 거쳐갔다. 이중에는 이휘소를 필두로 진영선·권경환·김승환 등 여러 명이 한국인 학자들도 있다.

4 전현직 유명 연구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휘소
앨런 튜링
존 폰 노이만
에드워드 위튼
피에르 델리뉴
마이클 아티야
장 부르갱
엔리코 봄비에리
양첸닝
야우싱퉁
프리먼 다이슨
쿠르트 괴델
필립 그리피스
리정다오
존 밀노어
로버트 오펜하이머
카를 루트비히 지겔
블라디미르 보에보드스키
헤르만 바일
후안 말다세나

추가바람

5 평가

지난 80여년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출신의 학자들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자기 분야의 연구, 성과에 있어 출중한 실력을 뽐냈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성공 이유에 대해 분석하였다. 현재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초학문 연구소, 유럽의 IHES와 함께 전세계 최고의 기초학문 연구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 연구소를 위한 노력

지금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열정을 기울였는데, 그중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메카시즘으로 인해 로스 앨러모스 핵연구소에서 퇴출된 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으로 부임하였다. 오펜하이머는 연구과목에 관계없이 누구나 서로 거리낌없게 토론하는 자유로운 풍토의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죽을때까지 혼신의 힘을 쏟았다. 맨해튼 프로젝트 총책임자를 맡던 당시 그는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을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면 해낼 수 있다. 여럿이 함께라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크게 절감하였으며 이러한 생각을 연구소에 적용하려 하였다.

7 관련 이야기

한국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모델로 하여 1996년에 한국 고등과학원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KIAS를 설립하였다. KIAS는 KAIST의 부설기관으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같이 연구원들이 잡무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2006년, KIAS의 연구진 3명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수학자 대회에 초청받아 강연을 했으며, 2007년 열린 국제 통계물리 학회에서는 한국인 교수로는 유일하게 박형규 교수가 초청을 받았다. 현재도 KIAS는 꾸준히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발표하고 국제 학술행사, 세미나, 방문연구 주도 등 한국의 기초과학발전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실적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