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John von Neumann | ||
거주지 | 미국 | ||
국적 | 헝가리, 미국 | ||
출생연도 | 1903년 12월 28일 | ||
출생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 ||
사망연도 | 1957년 2월 18일(53세) | ||
사망지 | 워싱턴 D.C 월터 리드 육군 의료병원 | ||
연구분야 |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공학, 통계학, 경제학, | ||
학력 | 부다페스트 대학교 박사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ETH Zürich) | ||
소속 |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 |
1 개요
1. 존 폰 노이만은 무엇이든 증명해 낼 수 있다.2. 노이만이 증명한 것은 무엇이든지 옳다.
3. 그러므로 모든 명제는…….-그에 대한 그의 동료의 농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한명[2]
현실 사기 캐릭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출신의 미국인 수학자이자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한 명. 20세기의 수학자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 사람의 이론 덕분에 컴퓨터의 기본 체계가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적으로는 연산자 이론을 최초로 양자 역학에 접목시켰고 게임 이론과 셀룰라 오토마타의 개념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양자 역학, 함수 해석학, 집합론, 위상 수학, 컴퓨터공학, 수치해석, 경제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은행가 유대인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헝가리식 이름은 '노이먼 야노시 러요시(Neumann János Lajos)'이며, 독일식으로 쓰면 '요한 루트비히 노이만(Johann Ludwig Neumann)'이다. 1913년에 그의 아버지가 귀족 작위를 사서(...) 이름에 귀족임을 뜻하는 '폰(von)'이 들어가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많은 양의 영재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폰 노이만에게 개인 도서관을 선물하고 학교에 가기 전부터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까지 가르쳤다.
어렸을때부터 수학, 언어, 암기의 분야에서 강한 능력을 보인 신동이었다. 5세때 여덟자리 수의 나눗셈을 하였으며, 8세 때 미적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독해력은 매우 빨랐고 무언가를 암기하고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노이만의 부모는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노이만의 암산 능력을 보여 주며 즐겁게 해 주기도 하였다. 상기한 암산 능력과 책 읽는 속도는 물론 전화번호부에서 아무 페이지를 한 번 본 다음 서번트 증후군처럼 번호의 합을 알아내기도 했다. 동생 마이클은 형이 당시 인기 있었던 서술가 빌헬름 옹켄(Wilhelm Oncken)의 44권짜리 세계사 시리즈에서 그가 읽은 부분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십 년 후 폰 노이만의 동료 한 사람은 존이 옹켄의 책 중 한 챕터 전체를 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가 완전기억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 폰 노이만 본인,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노이만은 대수롭지 않은 분야에는 무관심해 수십년간 거주한 집에서 접시가 담긴 찬장이 어딘지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8살에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수업 내용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아무런 예습 없이 수업에 참여해 다른 급우들을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는 유진 위그너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15살에는 유명한 수학 교수인 가볼 세고(Gábor Szegő)의 가르침을 받아 고등 미적분학을 접했는데, 가볼 세고와 노이만의 첫 만남에서 가볼은 노이만의 수학적 능력과 사고 속도에 대해 감명을 받아 울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19세에는 서수(ordinal number)에 대하여 논문을 냈다. 22세에 부다페스트 대학교(Budapest University) [3] 수학 주전공에 물리, 화학 부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수학자보다 공학자가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아버지의 생각으로 박사 학위와 동시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ürich)에서 화학 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대에 《양자 역학의 수학적 기초》나 《집합론의 공리화》, 《에르고드 이론의 연구》, 《실내 게임의 이론》 등을 저술해 당대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이러한 업적으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종신직 교수로 초청받게 되었다.(당시 유일하게 20대였다.) 특히 최초로 힐베르트 공간을 양자 역학에 도입한 《양자 역학의 수학적 기초》는 아직까지 판매되고 있다. 현재는 이 네 저작들이 모두 분과학문이다.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1943년부터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서 고폭발성 렌즈를 발명했다. 폭축 렌즈라고도 하는데 이는 플루토늄을 이용한 팻 맨의 발명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었다. 2차대전 중에는 영국 수학자 G.I. 테일러와 함께 폭발파(Blast wave)에 대해 최초로 연구했다. 이후 다른 수학·물리학자들과 함께 이를 출판했으며 아직도 판매중이다. 또한 유체 역학에 관련해 최초로 인공 점성(artificial viscosity)을 정의했다.
1944년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을 경제학자 오스카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저술했다. 이 역시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서적. 이후로 게임 이론의 연구를 통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물이 여러 번 나왔다.
DNA, RNA의 존재를 최초로 예견한 사람이었지만 세부 사항을 완성하기 전에 사망하여 빛을 보지 못했다. 컴퓨터 연구에 뛰어든 이후로는 프로그램 내장 방식, 디지털, 이진법이라는 기본적인 골격을 만들었으며 순서도와 서브루틴, 몬테카를로법을 최초로 사용했다. 전산학과라면 배울 병합 정렬(merge sort)을 1945년에 만들었고, 최초로 컴퓨터 기반의 pseudorandom process를 연구했으며 그 결과로 Middle-square method를 창시했다. 또한 Randomness extractor를 최초로 연구해 Bernoulli sequence를 이용한 Von Neumann extractor를 남겼다. 그리고 수학을 사용해서 일기 예보를 하려던 노력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해 기상 예측을 하려던 사람은 폰 노이만이다. 이산 구조 등에서 배우는 ALU(arithmetic logic unit)도 폰 노이만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말년에는 인공 지능과 인공 생명에 관한 초기 연구를 남겼다. 그는 간단한 원칙만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구상했고 이를 오토마톤이라고 칭했다. 1949년에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에서 오토마톤에 대해 처음으로 강의를 했으며 나중에 Theory of self-reproducing automata를 발표했다. 폰 노이만이 만든 이 자기 복제 컴퓨터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평가받는다.
1957년 방사능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골수암에 걸려서 사망했다. 이 때 그는 인공 지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고 《컴퓨터와 뇌》를 저술하고 있었지만 이른 죽음으로 인해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특히 이 책에서 메모리 계층 구조가 필요해질 거라는 예측을 남겼다.
죽기 전 많은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간과하여 막을 수 있는 위험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육체적으로는 늙어갈지언정 지능은 더 좋아지고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있었다. 사망 전인 50대에도 뇌와 컴퓨터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 중이었으나 불치병인 암 진단을 받자 감정적으로 무너지고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군사 기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병원에서 면회할 수 있었던 인물은 소수였다고 한다.
3 성격
파일:Attachment/존 폰 노이만/Example.jpg
보통 뛰어난 수학자의 성격하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떠올리지만 그는 이와 반대로 매우 사교적이었다고 한다. 파티를 자주 즐기며 프린스턴 고등 연구원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자주 파티를 열었다. 또한 대단한 반공주의자로 상호 확증 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를 제안했는데 이 용어의 약자가 절묘하게도 MAD가 된 이유는 순전히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점은 그가 만든 컴퓨터의 이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Mathematical Analyzer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 MANIAC이다. 정말 남다른 드립력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밖엔…….
반공주의자이자 군대와 연계된 연구가 많다는 점에서 그가 학문을 연구한 이유가 권력에 대한 욕심과 군대에 대한 동경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폰 노이만의 딸은 아버지의 연구에 대한 열정의 가장 큰 동력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이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에 보수적인 정치관을 가졌지만 냉전기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학자들과 친구들을 앞장서서 도와주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마르크시즘은 미워하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미워하지 말라?
4 일화
그의 일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우나, 폰 노이만과 실제로 연구해봤던 사람일수록 그와 관련된 일화를 더 믿게 된다고 윌리엄 파운드스톤이란 사람이 그의 저서에 의견을 밝혔다(...).
- 어릴 때, 부유했던 집에서 파티를 하면 전화번호부를 통째로 외워서 읽어주는 묘기를 하였다.
머리도 비상한데다가 금수저이기까지 하다또, 파티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이름, 주소, 전화 번호를 물어보고 집에 갈 때 문 앞에서 한 명씩 인사하면서 저 정보를 다 읊어줬다고.
- 7개의 외국어를 모국어같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발음도 원어민과 흡사하였다. 어릴 때 영어를 배웠지만 미국에 오면서 좀 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이 정도면 완전기억능력 맞지 않나...?
- 유진 위그너는 노벨상을 받을 때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존 폰 노이만이란 말을 했다. 기자가 위그너에게 “왜 헝가리에는 그렇게 뛰어난 천재가 많습니까?” 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위그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으로 "천재가 많다니요? 천재는 오직 존 폰 노이만 한 사람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 김나지움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어느 연구 기관이든 동료들은 그의 압도적인 천재성을 인정했다.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뇌세포가 노화는커녕 증식이라도 하는지 계산력과 암기력이 갈수록 좋아졌다고 한다.
- 뛰어난 수학자였던 포여 죄르지는 취리히 대학에 다닐 적 폰 노이만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예전에 그가 있던 클래스에서 강의할 때, 어떤 정리를 소개하고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며 아마 꽤 어려울 거라고 이야기했다. 폰 노이만은 5분 후 가만히 손을 들더니 칠판에 나와 증명을 바로 써 내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폰 노이만을 두려워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비슷한 일화로, 한 교수가 증명되지 않은 정리를 수업에 설명했는데 수업이 끝나고 폰 노이만이 증명한 종이를 들고 찾아왔다는 기록도 있다.
-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있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도 노이만은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터득한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폰 노이만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물어볼 것을 들고 줄을 섰다고 한다. (폰 노이만은 다방면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연구소에 머물지 않았다.)
- 동료 물리학자인 아브라함 페이스[4]는 맨해튼 계획 후 오펜하이머 사건 때, 존 폰 노이만과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5]의 안 좋은 사이를 보며 오펜하이머가 폰 노이만의 재능에 대해 질투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서술했다. 냉정하게 보자면, 오펜하이머와 폰 노이만의 갈등은 오펜하이머의 일방적인 질투가 아니라 원자폭탄의 실전 투입에 대한 두 사람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오펜하이머는 원폭의 실전 투입을 반대했고 오히려 폰 노이만이 실전 투입을 주장하는 강경파였다.
- 괴팅겐에서 다비트 힐베르트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된다. 양자 역학의 형식주의에 힐베르트 공간을 도입한 인물은 힐베르트가 아니라 폰 노이만이다.
만악의 근원폰 노이만은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키려는 버트런드 러셀과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시도를 냉소했고, 수학의 한 이론의 무모순성을 증명 체계 속에서 증명하려는 힐베르트의 시도에 역시 회의적이었다. 전자의 시도는 다수의 수학자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후자의 시도는 쿠르트 괴델의 등장으로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실은 폰 노이만 역시 괴델의 아이디어를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힐베르트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의 시도를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이해한 사람도 노이만 한 사람뿐이었다. 정리 직후 노이만이 한 말은 '다 끝장났군요!'였다.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표현.
- 또, 위의 물리학자가 쓴 일화로, 또 다른 뛰어난 수학자 친구가 며칠 동안 밤을 새서 푼 문제를 갖고 폰 노이만에게 장난을 치려고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숨긴 채 같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폰 노이만이 문제를 순식간에 술술 풀어나가고 동료 수학자가 밤을 새워서 풀었던 가장 어려운 부분만 남겨놓자 화난 수학자가 답을 말하고 나가 버렸다. 1분 후 폰 노이만은 그가 말한 답이 옳다고 말한 뒤 30분 동안 어떻게 자신보다 빨리 풀었는지 고민하다가 물리학자가 사실을 이야기해 주자 그제야 웃으면서 밥 먹으러 갔다는 일화도 있다.
- 아브라함 페이스는 폰 노이만보다 위대한 인물은 만나 봤지만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동료들도 동의했다. 참고로 아브라함 페이스는 천재들의 시대에서 유명한 천재란 다 만나고 다녀 본 사람이다.
- 폰 노이만이 자문을 해주었던 군사 협력 업체에서 복잡한 계산이 필요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고민하다가 폰 노이만한테 물어봤는데 그는 '컴퓨터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라며 잠깐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보더니 종이에 몇 줄의 식으로 완벽한 해답을 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라고 말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포스런 일화
- 누군가 “200마일 길이의 철로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두 대의 기차가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서로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기차가 서로 충돌할 때까지 파리가 시속 75마일의 속도로 두 기차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파리가 이동한 거리는 모두 몇 마일일까요?”라는 질문을 폰 노이만에게 했다. 폰 노이만은 1초의 지체도 없이 150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은 실망하면서 “역시 당신은 속임수에 걸리지 않는군요. 대개 사람들은 이 문제를 무한급수를 이용해서 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매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간단한 논리를 이용해서 파리가 2시간 동안 움직인 거리를 알아내면 금방 풀리죠. 당신은 그렇게 풀어낸 거죠?”[6] 폰 노이만은 대답했다. “아뇨.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 [7] 이 문제는 고등학교 이과 수학의 등비수열 수준의 문제이나 폰 노이만이 무한급수를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머릿속에서 초항부터 계산해서 전부 더했을 가능성도 있다. 후에 리처드 파인만도 동일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때 파인만은 이미 폰 노이만의 일화를 알고 있었기에 쉬운 풀이로 답을 구해놓고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를 시전하는 능청을 부렸다. 참고로 파인만도 대단한 천재였지만 폰 노이만과 같이 살아있는 컴퓨터처럼 암산을 하는 타입의 천재는 아니었다.
-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의 초창기, 개발자들은 완전히 맨땅에서 시작했기에 탄도 미사일이라는 것이 어떤 물건이 될지 개발 과정이 맞는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이 와중에 누군가 '노이만에게 물어보자
백과사전'고 제안했고 개발자들은 몇 개월간 연구한 수천 페이지의 문서를 들고 그에게 찾아갔다. 노이만은 그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개발자들이 "그럼 얼마 후에 방문하면 될까요?"하고 물어보자 "아, 거기 잠깐만 앉아 보세요."하고 말하며 2시간 동안 자료를 뒤적거리다가 종이와 펜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설명은 완벽했다고 한다.
- 위의 것과 동일한 미사일의 개발 도중, 한 학자가 수백장의 보고서를 들고 폰 노이만에게 찾아갔다. 폰 노이만은 보고서를 앞 장을 빠른 속도로 읽고 갑자기 뒤에서부터 대충 몇 장 넘기더니 "이 구상은 너무 허무맹랑한데요, 사람 손으로는 불가능하고, 신이라도 쉽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곧바로 그 이유에 대해 완벽히 설명해 주었으나, 그 학자는 납득하지 못하고 노이만을 이겨보겠다는 욕심에 2달이나 더 매진하고는 그제서야 진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 MIT 학생이 복도에서 폰 노이만을 만나자 “실례합니다. 폰 노이만 교수님, 계산 문제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폰 노이만은 지금 바쁘니 빨리 질문하라고 말했다. 학생이 이 적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자, 폰 노이만은 잠깐 생각하고 답이 2π라고 말했다. 학생이 답은 알지만 그 과정을 모르겠다고 하자, 폰 노이만이 다시 본다고 하며 또 잠깐 멈춘 후 답은 2π라고 말했다. 학생이 당황하며 얻는 과정을 모르겠다고 말하자 폰 노이만은 “뭘 원하는 건가, 자네. 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풀었는데!”라는 말을 남겼다.
그니까 그 풀이과정을 알려달라고요...
- 그의 제자들이 어셈블리어를 만들 당시에 노발대발 했다는데, 그 이유가 '완벽한 신의 언어가 있는데, 그걸 놔두고 저런 조잡한 걸(...) 만들려고 하느냐?'였다. 참고로 그 완벽한 신의 언어라는 기계어는 0과 1로 구성된 일반인은 해석하기 매~우 힘든 언어이다.
4만년후 세계의 어느 종교의 사제 현실판.[8]
- 말년에 폰 노이만은 “현대 수학은 매우 복잡합니다. 당신은 과연 현대 수학을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노이만은 이 질문에는 그답지 않게 한참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다가 “28퍼센트.”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고작 28%?’라고 의문을 품기 전에 잘 생각해 보자. 대개 ‘알면 알수록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 학문의 길인데, 학자인 폰 노이만이 ‘나는 안다’고 과신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모른다’고 겸손을 떤 것도 아니라 찬찬히 생각한 뒤에 저렇게 구체적인 비율을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나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100%가 어느 정도인지 윤곽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답이다. [9]
- 이렇게 너무나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를 두고 주변 사람은 혹시 그가 악마가 아닐까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 의견은 동료 수학자의 한마디에 의하여 각하되었다. “악마가 인간을 연기한 것이라면 그렇게 연기를 못할 리가 없다.”
- 엔리코 페르미의 부인은 “조니(노이만의 애칭)는 뒤에서 험담을 듣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사교적, 재능적 면에서 흠을 잡기는 커녕 완전무결했기 때문.
- 섹드립의 대부로서 친구들 말에 의하면 그가 음담패설을 한걸 모으기만 해도 책만 열권넘게 나올 것이라고(...) 그런데 그만큼 또 재밌었다고 한다. 공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대화에서 틈만 나면 쉬지도 않고 섹드립을 해댔다고 한다. 사적인 일화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아내와 영화를 볼 때면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뉴스는 정말 집중해서 봤으나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자 버렸다고 한다. 그 후 나와서 아내가 영화에 대해 물어보면 봤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였지만 영화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 폰 노이만도 계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칼로리". 실제로 폰 노이만의 아내가 한 말이다.
풍채를 보면 알겠다.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걸 믿었는지도 모른다
- 책 리만 가설을 보면 폰 노이만은 여자와 스포츠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위인이라고 나온다.
- 비서의 책상 앞부분을 없애놓고 가끔씩 허리를 숙여 비서의 치마 속을 보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것을 눈치챈 비서가 조용히 마분지로 책상 앞을 가려 놓았다고
성추행범 노이만
- 폰 노이만의 운전 실력은 좋지 않았다. 그가 차로 나무를 들이받은 뒤 경찰이 오자 "길가의 나무들이 일정한 속도로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가 내 앞에 나타났다." 라고 진술했다.
사실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 인생의 대부분을 불가지론자 혹은 거짓 기독교도로 살았지만, 죽기 직전 암으로 투병 중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가톨릭 신자로서 생을 마감했다.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이러한 개종은 평소 건강할 때의 발언이나 태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그의 병자성사를 집전한 신부에 따르면, 그 자신은 개종으로 그다지 큰 위안을 받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노이만은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파스칼의 내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 그가 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의 동생이 파우스트 독일어 원문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이 읽다가 잠시 멈췄을 때, 폰 노이만이 다음 구절들을 읊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기억력에 관련된 마지막 일화이다.
그렇다면 파우스트를 독일어 원문으로 전부 다 외우고 있었다...?
5 업적
- 아벨 폰 노이만 대수
- Affiliated operator
- Amenable group
- 산술 논리 장치
- 인공 점성(충격파 시뮬레이션을 위한 수치 기법)
- 규칙의 공리
- 크기 제한의 공리
- 역진 귀납법
- 폭발파 (유체 역학)
- 유계 집합 (위상 벡터 공간)
- 자리 올림 수 저장 가산기
- 세포 자동자(=셀룰러 오토마타)
- 모임 (집합론)
- 결 어긋남 이론 (양자 역학)
- 컴퓨터 바이러스
- Communication theorem
- Continuous geometry
- Direct integral
- 이중 확률 행렬
- 쌍대정리
- 밀도 행렬
- 더빈 - 왓슨 통계
- 게임 이론
- 힐베르트의 5번 문제
- Hyperfinite II 형 인자
- 에르고딕 이론
- EDVAC
- 폭발 렌즈
- 격자 이론
- 리프팅 이론
- 내부 모델
- 내부 모델 이론
- 인테리어 포인트 방법
- 상호 확증 파괴
- 병합 정렬
- 중앙 제곱법
- 최소 최대 정리
- 몬테카를로 법
- 일반형 게임
- 무의미한 토폴로지
- Polarization identity
- 의사 난수
- PRNG
- 양자 상호 정보
- 방사선 붕괴
- Rank ring
- 연산자 이론
- 그린하우스 핵실험
- 자기 복제
- Software whitening
- 표준 확률 공간
- 확률 컴퓨팅
- Subfactor
- 폰 노이만 대수
- 폰 노이만 구조
- Von Neumann bicommutant theorem
- Von Neumann cardinal assignment
- 폰 노이만 세포 자동자
- 폰 노이만 상수 (그 중 2 개)
- 폰 노이만 해석
- Von Neumann measurement scheme
- 폰 노이만 서수
- Von Neumann universal constructor
- 폰 노이만 엔트로피
- 폰 노이만 방정식
- 폰 노이만 이웃
- 폰 노이만 패러독스
- 폰 노이만 일반 환
- Von Neumann–Bernays–Gödel set theory
- 폰 노이만 스펙트럼 이론
- 폰 노이만 전체
- 폰 노이만 추측
- Von Neumann's inequality
- 스톤 - 폰 노이만 정리
- Von Neumann's trace inequality
- Von Neumann stability analysis
- 양자 통계 역학
- Von Neumann extractor
- 폰 노이만 에르고딕 이론
- Ultrastrong topology
- Von Neumann–Morgenstern utility theorem
- ZND 폭발 모델
인간을 넘어섰다
6 관련 문서
- ↑ 취리히 연방공대 학부 시절 전공이었다.
- ↑ 같은 급으로는 니콜라 테슬라나 가우스, 라마누잔 정도가 꼽힌다.
- ↑ 이 헝가리 대학의 정식이름은 Eötvös Loránd University으로, University of Pázmány Péter, Budapest University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다. 영어에서는 부다페스트 대학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것 같으므로 혼란을 막기 위해 한가지로 통일하였다. 해당 대학에 관심이 있다면 http://www.elte.hu/나 https://en.m.wikipedia.org/wiki/E%C3%B6tv%C3%B6s_Lor%C3%A1nd_University를 참조하라.
- ↑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의 전기를 썼다.
- ↑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이자 8개 국어로 시와 소설을 쓰고 클래식 작곡도 상당한 수준인 무시무시한 천재다.
- ↑ 쉽게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기차가 서로를 향해 각각 시속 50마일의 속도로 이동하므로 200마일 떨어져 있는 두 기차가 만나는 데에는 2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파리도 경로와 상관없이 2시간을 시속 75마일로 이동했으므로 총 이동 거리는 150마일이 된다.
- ↑ 무한급수로 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파리와 같이 출발하는 전차를 A, 반대편 전차는 B라 할 때 파리는 전차보다 1.5배 빠르므로 파리와 B가 만나는 지점은 200마일×(1.5)/(1+1.5)=120마일이며 두 전차간의 거리는 200-80×2=40마일이며 걸린 시간은 120/75=1.6시간이다. 이 때 시간이나 파리의 이동 거리 중에 어느 것을 초항으로 잡느냐에 따라 방법이 조금 달라진다. 남은 거리가 40마일이므로 처음 거리의 1/5의 상태가 되며 이를 통해 공비가 0.2가 됨을 알 수 있다. 무한급수의 공비의 절댓값이 1미만일 때 초항/(1-공비)=무한급수의 합이라는 공식을 이용하면 1.6시간/(1-0.2)=2시간 즉 시속75마일×2시간=150마일 또는 120마일/(1-0.2)=150마일이다. 또한 짝수 번째 항이 역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공비는 -0.2가 되는데 무한급수의 합은 총 이동거리가 아닌 파리의 현재 위치로 계산할 수 있다. 120마일/(1-(-0.2))= 100마일이 되며 정확히 중간 지점이 되므로 위의 과정이 맞음을 증명한다.
- ↑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셈블리어가 아니라 포트란을 만들려는 시도를 두고 기계원리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편한 방법만 찾으려한다고 냉소를 날렸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듯
- ↑ 오늘날 SCI-E로 분류되는 저널에서 1955년 나온 논문을 모두 모으면 83,726편이고, 그 중 수학 및 응용 분야의 논문은 1,153편이다. 당시에는 SCI-E라는 개념은
당연히없었지만, 그 정도 수준의 논문들 중 1년에 28%씩 읽는 것은 폰 노이만 같은 대학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1950년대에 전세게적으로 약 50,000종류의 과학 저널이 있었으며 당시 모든 논문의 총량은 100~300만편으로 짐작되었다. 이를 통해 당시 수학 논문은 200만편 중 28,000편 정도였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28,000편의 28%는 약 7,840편이다. 참고로 2015년에는 약 60,000편의 SCI-E급 수학 논문이 발표되었다.폰 노이만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28%를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