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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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이탈리아의 감독.

1922년 3월 5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 파졸리가 감독한 여러 영화는 공통으로 파시즘의 모순을 비판했는데 파졸리니의 아버지는 고위 파시스트당원이었고 메이드인 어머니를 강제로 덮쳐서 파졸리니를 얻었기에 파졸리니를 아들로서 대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아내로 여기지도 않으면서 무시한 덕분에 어머니가 그 사람을 홀로 돌봐야 해서 파졸리니는 아버지가 병사하자 무척 기뻐했을 만큼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했다. 그런데 어머니한테는 엄청난 효자였고 사이도 좋아서 어머니는 파졸리니가 만든 영화에서 열연하기도 했다.

뒷골목 포주들 이야기를 다룬 1961년 영화인 데뷔작 걸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서 파졸리니가 감독한 영화에서는 일관된 파격성으로 수많은 논쟁을 환기해서 수차 감옥에 들락거렸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Edipo Re, 1967)은 프로이트적 해석과 자전적인 요소- 상술한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 어머니에 대한 사랑, 혹은 어쩌면 욕망- 를 가미하여 신화를 변주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원작의 오이디푸스가 진리 추구, 자아 발견에 대한 열의를 결코 꺾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파졸리니 영화에서의 오이디푸스는 무의식적으로 이미 깨달은 것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를 표하는 인간의 심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에서 오이디푸스와 함께 다니는 안젤로는 당시 파졸리니의 동성애 애인이었다고 한다. 동성애 성향이 있었고 1975년 유작 살로 소돔의 120일[1]을 남기고 11월 2일 자신과 동성애 관계이던 소년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졌으나 수많은 소문이 돌았다.

우익이니 보수층을 적나라하게 까기도 했지만 공산당이나 좌익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냉전 당시 미국도 미친 놈이지만 소련도 다 같이 미친 놈이라고 중립적으로 다 까다 보니 좌우익을 막론하고 워낙에 적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용의자도 엄청났는데 당시 살해 현장에 난 많은 발자국과 여러 차량 자국과 여러 증언으로 말미암아 말이 많지만, 경찰은 사건 현장에 난 이런 증거 인멸에 급급해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파졸리니를 지지하는 몇 사람이 경찰에게 덤벼들면서 반발하기까지 했고, 파졸리니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인 파졸리니가 누군가에게 살해돼고 권력으로 은폐됐다고 죽을 때까지 비난했으며 파졸리니를 지지하는 소수도 시위하면서 재조사를 거듭 촉구했지만 1998년 이탈리아 측은 파졸리니가 살해된 사건을 미해결로 마무리한 데다가 2000년대 와서 범인으로 잡혔다는 그 소년도 당시 억지로 거짓 자백한 것이지 나는 파졸리니를 죽인 적도 파졸리니가 죽던 날 만난 적도 없다며 고백했는데도 이탈리아 언론사는 은폐에 급급하여 파졸리니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항의하는 시위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자답게 교황청을 비롯한 교회를 엄청 까던 사람[2]이지만, 지인들 말에 의하면 파졸리니야말로 참된 신자라고 할 정도로 꽤나 진지한 기독교도(가톨릭)였다고 한다. 실제 파졸리니가 감독한 대표작 중에는 예수의 생애를 다룬 《마태오 복음서》(l Vangelo secondo Matteo. 1964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도 있으며 이것은 국내 개신교 관련 월간지 낮은 울타리에서 추천하던 종교 영화이기도 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낮은 울타리를 발행하는 목사 신상언은 별별 대중문화는 사탄이라능~~반대 시위를 벌여온 작자로 악명이 높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도 바로 그가 썼고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도 주도하던 자이다! 그런 그도 이 영화를 추천했을 정도.

오죽하면 이 마태오 복음서를 보고 호평하던 바티칸에서 성직에 종사하던 보수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감독이 파졸리니라는 말에 기겁했다는 일화까지 있다. 이 영화가 바티칸에서 열리던 가톨릭 영화제에서도 상을 못 받은 게 심사위원을 맡은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파졸리니가 싫어서 일부러 외면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였으니.

대표작으로는 데카메론, 캔터베리 이야기, 아라비안 나이트[3], 오이디푸스 왕, 살로 소돔의 120일, 마태오 복음서가 있다.
  1.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성으로 국가 대부분에서 상영 금지를 먹은 악명 높은 영화이다. 80년대 국내에서 상영회를 했을때 여대생들이 영화를 보다 뛰쳐나와 집단으로 구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흠좀무...
  2. 파졸리니가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로고파구》(Ro.Go.Pa.G)는 지나친 교회 비판으로 말미암아 상영 금지 처분받아 결국 이탈리아 상영판에서는 파졸리니의 연출 분량 전체를 삭제하여 겨우 개봉했다.
  3. 이 세 작품을 파졸리니 인생 삼부작이라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