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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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과거에 옵서버였던 국가
스위스대한민국북한서독동독*
남베트남*(북)베트남오스트리아이탈리아일본
핀란드스페인모나코쿠웨이트방글라데시
*표는 현존하지 않는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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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에서 내려다본 성 베드로 광장. 열쇠 구멍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베드로의 상징물이 열쇠, 정확히는 천국 문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광장 한가운데의 오벨리스크는 고대 로마 시대의 기원전 30년경쯤에 로마 총독 코르넬리우스 갈루스(Cornellius Gallus)가 알렉산드리아의 포룸 율리움(Forum Julium)에 세웠던 것인데, 칼리굴라가 그걸 로마로 가져왔고, 로마 제국 멸망 후 1586년까지 방치되던 것을 대성당 중앙으로 끌어와서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거대한 십자가를 위에 달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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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의 대부분의 영토.[2]
파일:Attachment/2C Italy29.svg.png
라치오 주 로마 현의 전 행정구역을 표기한 그림. 여기서 빨간색이 로마이고 로마 시 한복판의 아주 조그마하게 비어있는 부분바티칸에 해당한다.[3] 로마 시 안의 구역들보다도 작은 셈이니 초미니 국가 중에서도 초미니 국가인 셈.[4]
바티칸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바티칸 시국 (Status Civitatis Vaticanae)
면적0.44km2[5]
인구842명 (2014)
인구밀도1,913.63명/km2
수도바티칸
정치체제선거군주제, 신권정치
교황프란치스코
국무원장피에트로 파롤린
주교의회 의장주세페 베르텔로
공용어라틴어(공용어), 이탈리아어(국가어)
국교가톨릭
화폐단위유로(€)
국가(國歌)교황 찬가 겸 행진곡
(Inno e Marcia Pontificale)
국제연합(UN) 가입현재 미가입(옵서버 자격참가)
대한수교현황남한 단독수교(1963)

1 소개

1.1 개요

세계에서 가장 작으면서 가장 큰 나라[6]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Tu es Petrus, et super hanc petram ædificabo Ecclesiam meam, et portæ inferi non prævalebunt adversus eam.)
마태오 복음서 16,18

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Benedicam tibi, et multiplicabo semen tuum sicut stellas cæli, et velut arenam quæ est in littore maris)
창세기 22,17

2014년 4월 13일, 성지주일 미사, 교황 프란치스코 집전베드로 성상, 주세페 데 파브리스, 184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한글바티칸
영어Vatican City
프랑스어Cité du Vatican
국가·위치바티칸 시국

등재유형문화유산
등재연도1984년
등재기준(i)[7], (ii)[8], (iv)[9], (vi) [10]
지정번호286
라틴어Status Civitatis Vaticanæ
이탈리아어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
프랑스어État de la Cité du Vatican
스페인어Estado de la Ciudad del Vaticano
영어Vatican City State
독일어Staat Vatikanstadt
그리스어Κράτος της Πόλης του Βατικανού

이탈리아 반도 중부, 로마 시내의 바티칸 언덕에 위치한 도시국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교황청으로 유명하다. 도시국가이므로 당연히 수도는 바티칸 시(市). 면적은 0.44km2골프장? 그보다 작을 거 같다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이 면적은 서울경복궁 면적의 1.3배이고, 창덕궁의 면적인 0.55km2 보다 좁다. 여의도 면적의 1/6 크기다.[11] 인구는 2011년 집계로 832명으로 세계 220위이지만, 학교 전교생 수보다 더 적다 학교 전교생수가 대부분 1,000명 정도 넘는다 인구밀도를 따지면 1,877/km2세계 6위다. 애초에 땅이 km2단위 이하잖아 2011년 3월 2일 호주 매체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바티칸의 인구는 여성 32명, 남성 540명으로 총 572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티칸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실제 인구223명에 불과하다. 비록 이탈리아 로마 시 내부에 존재하지만, 국가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어엿한 독립국이다. 특히 세계에 퍼진 가톨릭의 위상을 생각하면 국가규모에 비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1984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6월 27일 뉴스 사이트 '바티칸 투데이'가 개설되었고(바로가기), 다음 날에는 트위터가 개설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직접 트위터를 통해 영어로 바티칸 투데이의 개설을 알렸다.

Dear Friends, I just launched [1] Praised be our Lord Jesus Christ!

With my prayers and blessings, Benedictus XVI
(친구들, 저는 방금 News.va를 개설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시다!
기도와 축복을 담아, 베네딕토 16세)

1.2 여러 가지 명칭

현재 바티칸이라는 말은 교황청이라는 말과 혼용되지만, 엄밀히 말해서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 교황령 등등은 모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유래한 말로, 현재 교황이 세속적 권력으로 직접 통치하는 국가를 국제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1870년 교황령의 소멸 이후 한동안 교황의 세속적 영토 혹은 통치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1929년 교황 비오 11세무솔리니와 체결한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탄생하였다. 가장 흔히 교황청과 혼용되는 말이며, 이 항목의 전체적인 내용 역시 이 바티칸 시국의 본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작성되어있다.
  • 교황령(Papal States): 754년부터 1870년까지 존속했던 교황의 세속적 영토. 교회의 재산소유와 양도를 허가한 321년의 콘스탄티누스 칙령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영토를 할양한 이른바 피핀의 기증에서 교황령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여타 세속적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영토 크기에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이후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이탈리아에 흡수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지금도 바티칸 바깥, 로마시에 바티칸의 영토로 인정되는 '건물'들이 좀 있다. 바티칸 영토이므로 이탈리아 법이 미치지 않는다.
  • 성좌(Holy See) 혹은 사도좌(Apostolic See): 원래는 세계 교회의 수도인 로마의 주교좌, 즉 베드로의 후계직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의미가 확장되면서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을 포괄적으로 어우르는 말이 되었다. 현재 교황청은 세속적인 의미가 강한 '바티칸 시국' 대신 '성좌'를 대외적인 공식 국가명으로 채택하고 있다.
  • 교황청(Roman Curia): 본래는 세계 교회를 통치하는 교황과 교황을 보좌하는 교회의 최고 행정기구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사실상 바티칸 시국의 영토가 교황청과 그 주변으로 축소되면서, 바티칸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한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3 국기

그릴테면 그려 보거라! 국기 오른쪽의 문장은 베드로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와 교황의 상징인 교황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13-20절)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너희들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었을 때 베드로만이 모범답안을 말해서 참 잘했어요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는 마태오 복음서의 구절에서 착안한 것이다. 덕분에 이 열쇠는 바티칸을 다룬 매체에서 자주 등장한다.

천사와 악마 영화판에서는 원작과 달리 궁무처장의 가슴에 찍히는 도장이 일루미나티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두 열쇠 모양으로 바뀌었다.

삼중관이라고도 하는 교황관은 교황 클레멘스 5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세 가지의 교황권을 상징하기 때문에 교황만이 쓸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교황관 대신 3줄의 금색 무늬를 새겨넣은 주교관을 쓰는 추세이다. 자세한 내용은 교황관 항목 참고.

2 역사

바티칸 시국의 역사
Historia Civitatis Vaticanae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고대 로마로마 공국
^(동로마 제국^ ^라벤나^ ^총독부)^
교황령바티칸 포로바티칸 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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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광신자, 우리는......교회를 파괴하고...
...너희에게 선고할 거다.......너희는 역사의 뒤안길이라고.
로마 제국 프랑스 제국 독일 제국 네덜란드 공화국 제3제국 정통 칼리파 시대
소련 청나라 일본 제국 튜더 왕조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프랑크 시절, 메로빙거 왕조가 없어지고 8세기 카롤링거 왕조가 생길때, 카롤링거 왕조의 시조인 피핀은 교황의 묵인하에 쿠데타를 통해 왕조를 세울 수 있었다. 이 때 피핀이 교황에게 왕조를 세우게 된 대가로 헌납한 땅이 현재 교황령의 시초이다. 나중에 동로마 제국과의 마찰을 무마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가 교황에게 땅을 내려주었다'라고 했다. 이것을 법적으로 보증한 것이 저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이다. 이 문서의 원본은 지금도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 이전부터 관습적으로 전해지던 교황,교황청의 권리에 성문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던 이 문서가 위조됐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이었다. 르네상스 시절이 되면서 훨씬 학문적인 방법으로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가 위조문서임을 증명하게 된다.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통일(1861~70) 과정에서 강제로 합병(1870)당하여 이에 열받은 교황 비오 9세(1846~1878)가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임을 선언하는 등 신생 이탈리아 왕국과 한동안 정치, 사회적 대립을 하였으나,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라테라노 조약'을 제안하여 결국 지금의 바티칸 시국의 영토와 형태가 성립되었다.

3 경제

4 엄연한 독립국가!

4.1 정부 기능

vat+Governatorato.jpg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敎皇, Pope)이 국가원수이고,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 및 주교들이 행정을 담당한다.[12]

외교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여권도 이탈리아와 다른 것을 쓰는데, 이 여권이 상당히 레어 아이템이라는 듯. 독자적으로 우표도 발행하고 있고, 독자적으로 주조하는 동전도 있다. 화폐는 1999년 1월 1일부터 이탈리아와 같이 유로화를 쓰고 있다.

라틴어가 제1공용어이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어도 공용어로 쓰인다. 그리고 일상 회화로는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모두 통용되는 무시무시한 나라다.

4.2 소속감

이탈리아 영토에 둘러싸여 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바티칸이 이탈리아에 속해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고 바티칸 자체가 국가라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한 일화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 행사가 있어서 일찍 출입이 통제된 일이 있었는데, 관광왔던 일행의 가이드가 어떻게든 들어가보려고 설득해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흥, 역시 이탈리아는..."이라고 말했더니 통제하던 사람이 "여긴 이탈리아가 아니라 바티칸이거든?"이라 맞받아쳤다고.

당연하지만 바티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직자수도자인 것은 아니다. 단순 평신도인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바티칸 국적자 외에도 이탈리아 국적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사실 이탈리아 내에서도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것을 천국으로 여긴다. 봉급의 4할 이상을 세금으로 떼어가는 이탈리아에서 바티칸 근무자들의 봉급은 자국 교회법상, 그리고 바티칸은 일종의 타국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처리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무과세라는 말이다!! 거기다 평생 종신직(!!)이라 일단 한 번 고용되면 정말 중대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절대 잘리지 않는다. 덕분에 바티칸 식당의 음식 맛은 영국 요리급이라는 말이 있다. 말만 있는게 아니라 진짜로 맛이 없다 맛 없다고 자비 없이 자를 수 없으니까 따라서 바티칸 투어를 할 경우 웬만하면 미리 음식을 싸가도록 하자. 잘못하면 비싼 가격에 맛없는 음식으로 때울 수 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맛없는 음식 먹기라는 진귀한 경험이 가능하니 한 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4.3 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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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겸 경찰기구는 전통적인 호위병력인 스위스 근위대 130여명이 구성하는 근위대가 전부다. 사진만 보면 중세의 재래식 군대 같지만 저렇게 전통 복장으로 근위임무를 서는 대원 이외에 실제 경호임무를 맡는 대원도 있으며 이들에게는 현대식 화기가 지급된다. 권총, 기관단총, 방탄복 부터 중기관총, 대전차 미사일 등등 있을건 다 있다. 흠좀무 추기경 등을 비롯한 교황청 주요 인물의 경호 업무도 맡고 있다. 스위스 용병부대에게 바티칸 방위 및 교황의 경호를 맡긴 것에서 시작한 것으로, 현대에는 스위스에서 용병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치안 경찰'로 분류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에 군사력 같은 것은 사실상 없으며, 헬기 같은 장비도 이탈리아군에게 빌리는 형식 등으로 이탈리아에서 국방을 대행해 주고 있다. 그래서 바티칸 시국을 공격하겠다는 것은 이탈리아를 공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애초에 이탈리아 수도 한복판에 있으니 타국 군대가 바티칸을 침공하려면 먼저 이탈리아를 공격해서 박살내야 한다. 물론 테러 등을 대비하여 바티칸 주변에는 이탈리아군이 겹겹으로 상주하고 있다. 게다가 바티칸은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즉. 굳이 바티칸을 털고 싶다면 이탈리아군을 박살내는 정도가 아니라 바티칸이 털려서 빡친 전세계에 있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 및 국가들을 으로 돌릴 작정을 해야 한다. 인해전술의 가톨릭 버전.jpg

옛날에는 평신도 무장조직인 팔라딘과 귀족 근위대가 있었지만 바오로 6세의 명령으로 이 둘은 해체하고 스위스 근위대만 유일한 바티칸의 방위병으로 남아있다. 사실 담밖에서 이탈리아 헌병이 둘러싸다시피 보호하고 있다.
가톨릭이 존재하는 한 무적의 나라.

5 구경거리

유로존/관광 문서도 참고하길 바란다.
바티칸 내부의 건물로는 크게 바티칸 미술관, 시스티나 소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이 있다. 바티칸 미술관은 소위 말하는 세계 3대 박물관에 꿀리지 않을만큼 많은 예술품과 전시품들이 있다.

5.1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바라본 외관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은 흔히 영화에서 바티칸이 나오면 등장하는, 둥그런 광장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가톨릭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처음에는 4세기 중반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세워진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이 있었지만 천 년이 넘도록 사용하면서 어지간한 보수 공사로는 더 이상 건물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1506년 율리오 2세가 기존의 성당을 철거하고 새로운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신축 당시 옛 성당이 초기 교회와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건물이니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자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율리오 2세는 이를 물리치고 기존의 건물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원했다. 이를 위해 도나토 브라만테를 시작으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 프라 조콘도, 라파엘로 산치오, 발다사레 페루치, 안토니오 다 상갈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자코모 델라 포르타, 카를로 마데르노, 잔 로렌초 베르니니 등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이 120년 동안 갈려들어간 끝에(…) 1626년 우르바노 8세 때 비로소 축성되었다. 건축 과정에서 막대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 레오 10세면벌부를 발행한 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완공 이후 수백 년 동안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다.[13] 정면에서 보면 세 개의 발코니가 있는데 그 중 가운데 발코니를 보면 창문 옆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곳은 교황 전용 발코니로, 교황만이 사용할 수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의 마지막에 새로 선출된 교황이 등장하는 곳이 이 발코니다. 성당 내부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인 '피에타'가 있기도 하다.

교황 성하가 직접 나오는 성당이니만큼 들어가려면 몇 가지 복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슬리퍼는 신고 갈 수 없고 대신 뒤꿈치가 막혀있는 샌들류는 괜찮다. 여자는 무릎 아래로 오는 옷을 입어야 한다. 치마든 바지든 상관없다. 하지만 남자는 무조건 긴바지를 입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또한 민소매 옷은 입고 들어갈 수 없다. 때문에 성당 근처로 가면 숄을 파는 상인들이 있기도 하다. 바티칸에서 한번은 어느 수녀를 문지기(!)로 임명해서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오는 관광객들 복장을 검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여름 한철 동안 숱한 관광객들을 상대한 뒤 이 수녀님은 신경쇠약으로 일을 사임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면으로 놓고 오른쪽을 보면 건물이 하나 있다. 창문이 많은 건물인데, 교황의 집무실이 있는 사도 궁전이다. 오른쪽 맨 위의 창문이 집무실 창문이라고 한다. 만약 창문들에 덧문이 모두 내려져 있으면 교황님이 출타중이시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유럽 미술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원인 나라인만큼 국토 곳곳이 유명 미술작품 천지다. 시스티나 소성당만 해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데다(천지창조는 틀린명칭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그 유명한 조각인 '피에타'가 있지... 물론 이건 대표적인 것만 꼽은 것이고, 이 외에도 굉장히 많다. 그런 연유로 유럽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바티칸 박물관을 꼽을 만큼 유럽 여행 중 필수 코스로 여긴다. 이러한 관광수입은 이 도시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재정의 근간이며, 이 관광객들이 이탈리아를 통해 입국해 이탈리아에도 돈을 뿌려주고 가기 때문에 로마에도 관광할 곳이 얼마나 많은가...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바티칸은 지역경제를 위해 초특급 대우가 아깝지 않은 나라다. 물론 종교, 신앙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5.2 시스티나 소성당

외관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천장화의 일부중
아담의 창조

5.2.1 소개

시스티나 소성당(Sistine Chapel)은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도 나오는 콘클라베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안쪽의 벽면과 천장들이 전부 미켈란젤로가 그린 프레스코로 이루어져 있다. 천장에 있는 것이 천지창조[14], 입구 쪽의 큰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프레스코가 빛에 약하기 때문에 내부는 어두우며, 플래시를 막기 위해 안쪽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천사와 악마에 나온 그 장면은 직접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따로 세트장을 만들어서 찍었을 확률이 높다. 일반 사진기조차 플래시 때문에 사용금지인데 영화촬영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5.2.2 촬영 관련 이야기

2010년 기준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 복원작업 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제재하는 장면을 많이 보인다. 심한 경우는 경비원이 와서 디지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압수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No pictures please"하고 다니고 있다. 물론 대놓고 찍지 않으면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인물사진같은 것은 찍기 힘들다. 그런데 가이드들이 말하는 이유는 사실 저 프레스코화의 저작권이 복원을 한 일본의 모 회사의 소유가 되어서 바티칸 시국과 협의후 사진을 못 찍게 하는 대신 서점에서 사진집을 팔기 때문이라는 믿기 힘든 도시전설급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그런 이야기가 단순한 루머라는 이야기를 하는 가이드도 많은데... 실제로 바티칸에서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를 복원하면서 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중, 일본 방송협회NHK에서 자금과 기술을 대어주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회화 전문가로 괜히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우 해결되었는데, 교황청과 합의 끝에 NHK에서는 10년간 관련 저작권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4년 복원작업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2004년이 되어서야 일본의 독점권이 끝났다고 한다. 그 동안 관련 사진촬영 등을 통해 열나도록 팔아먹었겠지. 그러나 이에 넌더리가 났는지, 아니면 신앙과 관련없는 단체에 복원 작업을 맡긴 데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지,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사진 촬영을 엄금하고 있다. 빛에 약한 프레스코화의 특성상 최대한 빛의 접촉을 막고 있고, 햇빛 역시 최대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비추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복원 작업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원래 올 누드화였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종교개혁과 봉건사회 해체 등으로 인해 사회가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덕분에 르네상스로 인해 세속화되면서 느슨해지고 인본주의적 모습을 보이던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어가고 마녀사냥에 열을 올리면서 결국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모든 성화에 누드를 금지하는 결정이 내려진다. 따라서 기존에 르네상스로 인해 그려진 누드 성화는 파괴되거나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는데 최후의 심판 역시 이러한 손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최후의 심판은 완성 당시부터 이단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누드로 표현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파괴냐 수정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선 마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제자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중요 부위(?)를 살짝 가리는 수정을 도맡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중요 부위(?)에 어디에선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천들에 의해 가려진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덕분에 볼테라는 '기저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이 이뤄진지 400여년이 지난 후 일본에 의한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가 그린 원본으로 복원해보자!!'라는 시도가 진행되었는데 역시 일본 이에 대해 공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라는 교황청과 신도들의 반발이 있었고 결국 일본 측에서는 거기에 굴복해 작업이 중지되고 그냥 때벗기는 작업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도 현재 최후의 심판의 등장인물들 중 총 6명은 초기작업의 영향으로 올 누드 상태라고 한다 -이하 자전거 나라 투어 가이드 설명- 더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시면 추가바람. 참고로 들어가보면 벽쪽에 커튼들이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다 그림이다.

5.2.3 벽화 감상 그리고 정숙

워낙 유명한 곳이고 로마 관광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곳이라 언제가도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다.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계속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경비원들이 위에서 말한 카메라로 찍지말것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 조용히 할 것과 벽화를 계속 감상할 사람들을 가운데로 모으고 길을 만든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고 작은 소리도 잘 울리다 보니 특별히 누가 떠드는 것이 아니어도 소란스럽게 느껴지는데 어느 정도 소리가 커지면 신부님이 등장하셔서 가톨릭의 경건한 성당이자 문화재이니 조용히 감상해 달라는 말과 방문자를 축복하는 기도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대략 4~5개 언어로 하시는 위엄을 보이신다.

벽화를 감상할 목적으로 방문했다면 소성당 가운데로 가는 것 보다는 의자에 앉는 쪽을 추천하는데 성당 가운데 서서 천장 벽화를 보게 되면 얼마 안가 목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앉아서 감상 할 수 있는 의자가 벽에 붙어 배치되어있는 데 은근히 경쟁이 치열하다.

5.3 바티칸 도서관 및 비밀 문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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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에 있는 로마 교황청도서관이다. 세계 최고의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귀중한 서적과 문서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1448년 교황 니콜라오 5세에 의해 도서관으로 개관되었다. 4세기경 교황 다마소 1세가 창설한 종교 문서관이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라오 5세는 전임 교황들로부터 물려받은 350점에 달하는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의 고사본과 함께 여러 서적과 문서 등을 수집했다.1587년 식스토 6세가 새로운 건물을 지었고 1.5kg의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경을 비롯해 약 15만 권의 필사본을 포함, 150만 권 이상의 장서가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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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문서고 홈페이지
그 중 비밀 문서고는 바티칸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 중 하나인데 수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서와 비밀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다. 홈페이지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문서의 연대는 8세기 말엽까지 올라가며, 몇 차례의 동란으로 12세기때의 교황 인노첸시오 3세 이전의 문서들은 상당한 수가 소실되었다. 17세기에 교황 바오로 5세의 지시로 바티칸 도서관에서 분리되어 다른 곳에 보관되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때 상당한 양을 프랑스에 뺏겼으나 1817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후 1883년 교황 레오 13세가 1815년 이전의 문서들을 일반 학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이때부터 꾸준히 공개하는데, 만들어진 날에서 75년이 지나야 공개가 가능하며 몇몇 중요하고 민감한 문서는 평생 비공개로 지정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2012년에 바티칸 비밀문서고 400주년 기념으로 대거 공개하였다.기사

문서의 면면을 보면 중요한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 그리스어 고서들과 각 지역 가톨릭교구들과 신자들이 보낸 각종 정보 및 첩보 문서, 왕들과 귀족들과의 편지, 마르틴 루터,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기록 등등 이루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많은 희귀한 고서본들을 보관하고 관리하고 있다. 관련 기사1,관련기사2 개중에는 몽골네스토리우스교를 믿었던 군주들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나 남명의 마지막 황제 영력제의 모후 왕씨가 교황에게 보낸 구조 서한 등 온갖 희귀한 가치를 지닌 것들도 있다. 그야말로 역사학자들과 역덕들에게 있어서 꿈의 성지.

6 외교관계

6.1 개요

놀랍게도 사실 바티칸 시국 자체는 외국과 직접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는다. 대신 바티칸 시국이라는 '세속의 영토'를 통치하는 교황청[15][16]이 외국과 수교를 한다. 그래서 각국은 '주바티칸 대사관'이 아니라 '주교황청 대사관'을 설치한다.[17] 물론 세속의 영토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교황청 자체는 국가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교황청은 세속 영토 바티칸 시국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교황청을 국가처럼 인정해서 직접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18] 하지만 언론 등에서는 설명하기 복잡하고 귀찮아서 또는 기자들도 잘 몰라서 '교황청과의 외교 관계' '교황청과 수교했다'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 '바티칸과 수교했다'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바티칸은 교황청을 통해서 국제 사회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해도 큰 문제는 없다. 세계 여러국가와 국교를 맺고 있으며, 팔레스타인과도 1948년부터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병립체제를 지지하였으며 2015년 5월에는 이스라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식국가로 인정하는 등 여러모로 팔레스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이스라엘 빡치는 소리가 들린다

한편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와 맺은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독립국이 되었다. 이나라의 국적법은 출생에 의해 국민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사제와 수도자들의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그런데도 매년 조금씩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이는 바티칸의 구성원인 사제, 수도자들은 전세계에서 매년 충원되기 때문이다. 사실 베네딕토 16세까지 출생에 의해 국민이 될 수도 있었다. 바티칸인과 동거하는 부모, 배우자, 직계비속은 바티칸 국적을 가졌다. 따라서 바티칸에서 복무하는 사람으로부터 출생한 자는 출생에 의해 바티칸인이 된다. 그러나 부모가 바티칸에서 더이상 일하지 않게 되어 바티칸인에서 제외되면 국적이 상실되며, 돌아갈 국적이 없는 경우 라테라노 조약에 의거하여 이탈리아 국적이 부여됐다. 사제, 수도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지만, 근위병 등 바티칸에 봉사하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위병은 미혼이긴 하지만, 바티칸에서 봉사하는 기혼자로서 바티칸 국적을 부여받은 사람은 존재하였다. 따라서 출생에 의해 국민이 되는 경우가 존재했다.

사실 그냥 국가라면 몰라도 종교국가가 출생으로 국민의 수가 늘어나서 세를 이루면 문제가 된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해서 별로 좋을 게 없으니.

원칙적으로 추기경은 바티칸 시민이다. 애당초 추기경이라는 직책의 의미 자체가 로마 주교(교황)를 선출가능한 시민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기경이 바티칸을 출입할 때에는 경비병들이 전혀 제지하지 않지만, 일반적인 외국 대주교, 주교가 특별한 직무를 맡든다든지 초청 없이 교황청을 방문할 때에는 경비병들이 제지한다.

2011년에 바티칸 주민과 바티칸 국민을 구별하는 개혁이 이루어졌다.

반면 의외로 범죄율은 높다고 하는데, 주로 관광객/순례자들을 노리는 교황 성하의 매의 눈빛 소매치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6.2 대한관계

한국과는 1963년에 공식 수교하였으나, 휠씬 이전인 1947년 8월 교황 비오 12세는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패트릭 번 주교를 외교관 신분인 특사로 남한 과도정부에 파견했다.

이는 갓 출범한 국제연합(UN)이나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 우리나라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한민국 독립 승인 결의안에 대한 총회의 표결이 실시된 제 3차 유엔 총회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 외교 업무를 총괄하던 조반니 몬티니(1897~1978, 후일 복자 바오로 6세 교황) 몬시뇰과 프랑스 주재 교황 대사 주세페 론칼리(1881~1963, 후일 성 요한 23세 교황) 대주교에게 “한국 대표단을 적극 도우라”고 당부했다. 론칼리 대주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석대표 장면으로부터 한국의 입장을 설명 듣고 각국 대표들에게 한국 지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1948년 12월 12일 오후 5시 15분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넉 달만에 UN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로 승인을 받았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과 1989년 2차례 방한하였다. 한국 선교 200주년 및 서울대교구 설정 150주년에 맞춘 1984년 방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을 집전하였다. 1989년에는 세계 성체대회 참석차 방한하였다. 두 차례 방한 기간 동안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과 한 - 바티칸 정상회담을 가진 적이 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하여 베네딕토 16세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한 - 바티칸 정상회담을 가졌다.

경제적 교역관계는 없지만 종교적/문화적 교류 관계는 가톨릭을 통해 활발한 편이며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등 3명의 3대 한국 추기경이 서임되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이 있으니[19] 여행 도중 문제가 발생하면 찾아가 볼 수 있다.[20]

6.3 대북관계

북한과는 아직까지 수교관계가 없다. 공산화 이후 천주교를 박해하였고, 6.25 전쟁 때 평양교구 교구장 주교와 사제들을 모두 실종 상태로 만들었으며, 남한의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하고 천주교 신자만 학살한 게 아니라 다 죽이는 중에 천주교 신자도 포함된 것 같지만 북한 내에서도 천주교를 엄격히 금지하고 탄압하고 있는데다가 김씨 3대가 독재로 버티고 있는 이상은 영원히 수교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북한은 과거 종교 자체를 금지했지만, 80년대 들어서 종교에 대한 유화책을 펴고 있다. 종교를 허용한 것은 아니고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가톨릭에 대해서는 평양에 장충성당을 여는 등의 퍼포먼스를 벌였지만, 북한에는 사제가 없어서 미사를 못 드리며, 공산화 이전 신자였던 이들이 대부분 선종하였고, 설사 살아있다 하더라도 신자임을 나타낼 수 없으며 일반 주민들이 성당에 갈 수는 없다.

6.4 대중관계

중화민국과 바티칸은 1942년에 수교했다. 현재 중화민국 입장에서는 유럽의 유일한 수교국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기기도 전부터 수교했던 나라다. 그래서 주중 바티칸 대사관은 본래 난징에 있다가 타이베이로 옮겼다. 단, 바티칸의 면적이 좁은 관계로 대사관은 바티칸이 아닌 국교도 없는 이탈리아 영토에 있다.[21]

중국은 교황이 아닌 중국 공산당이 직접 주교를 임명해놓고 가톨릭이라고 우기는 상당히 막장스런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미수교 상태며 당연히 공산당이 임명한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공산당 입장에선 바티칸이 직접 임명한 사제가 중국 내에서 활동하게 되면 인권을 비롯한 여러 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걸고 넘어질 우려가 있는지라 민주화에 대한 의지라도 생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공산당의 사제 임명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바티칸은 대만과 계속 수교할게 뻔하다. 가톨릭을 잘못 건드리면 당장 바티칸에서 들고 일어날게 뻔하고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강한 비난을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누구든 작은 바티칸을 건들면 ㅈ되는 거예요. 아주 그냥 ㅈ되는 거야. 중국도 마찬가지로 만일 바티칸에서 임명한 사제가 정권에 쓴소리를 했다고 늘 다른 민주화 운동가에게 해오던 대로 쓴맛을 보여줄 경우 큰일날게 뻔하고 그렇다고 가만 놔두자니 체제에 위협이 될 게 뻔하고 이래저래 딜레마라서 아예 자기네끼리 노는 막장짓을 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20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바티칸 양자의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신호가 잡혔다. 최대 걸림돌이던 바티칸의 주교 서품 문제에 대해서 부분적인 합의를 보았다는 것이다. 현재 막후 조정중이고 최종결정은 연말이나 2015년 초에 나온다고 한다. 이를 기점으로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1951년[22] 이래 60년 이상 단절된 대륙과 바티칸의 관계가 복구되게 된다.물론 그러면 타이완과의 관계는 안드로메다로 가겠지만.#

다만 2015년 8월 현재 바티칸의 행보는 쌍중 승인에 가깝다. 중국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주교 서품 사실을 바티칸에 알리고, 바티칸에서 해당 주교에 대해 검토한 뒤 이상이 없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식으로 암묵적 승인을 하는 형태로 주교 서품을 진행한 것.# 결국 바티칸은 외교 관계 자체는 주교 서품 권한이 온전한 대만을 택하되, 중국에 대해서도 최대한 바티칸의 입장이 통할만한 주교 서품을 하게끔 요구하면서 관계를 개선해나갈듯.

2016년 8월 5일, 대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바티칸이 조만간 중국과 수교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최대현안인 주교 임명방식에 대해 해당국이 주교 후보를 추천하면 바티칸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해결에 다다랐다고 한다. 특히 이런 언급이 중국인 가톨릭 사제로는 최고위자인 홍콩 교구 주교 요한 통(湯漢) 추기경에게서 나와 현재로서는 수십 년의 단교 상황이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허걱, 큰일이다! 그러나 교황이 내년 해외 방문지를 공개하면서 방문 대상에서 중국은 배제하고 수교가 급박하게 전개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교황은 "중국을 방문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내년 중에는 방문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즉, 일단 올해안에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한다. 당분간은 지켜봐야 할 듯하다.

바티칸이 중국 당국의 임명 주교를 인정한다고 하며, 임명 방식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우력한 방식은 베트남 방식으로 유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하교회에서 반발하고 있어 또 다른 결림돌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6.5 대(對) 이탈리아 관계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약속하면서 특히 교황의 국가 지배 보장과 교황이 바티칸의 총수(總首)로서 권위와 지휘를 바랐기도 하였던 수준이었으며 이탈리아와 바티칸은 서로 공생관계로 있는 나라가 되었다.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때도 이탈리아에서 모든 경기나 유희거리 등을 중단하고 추모와 애도 분위기로 바뀌었을 정도로 두 국가는 공생 관계를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2012년 2월, 막대한 국가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가 교황청 소유 부동산 및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바티칸을 위시한 가톨릭 교회가 보유한 부동산은 이탈리아 전체의 20%로, 성당은 물론이고 부속 학교(9,000개), 박물관 및 도서관(2,300개), 병원(4,700개) 같은 공공시설이 모두 포함되며 3분의 1은 호텔, 여행사, 상점 같은 상업용 설비라고 한다.

1929년의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교황청 소유한 '종교 기능' 부동산에는 과세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지만, 2012년 이탈리아 부동산세법 개정안에 따라 좀더 엄격한 과세를 하기로 한 것이다. 교황청은 현재 실제 과세에 따른 세금이 연간 1억 유로(약 1,480억 원)로 추정하지만, 이탈리아 세무당국은 최대 20억 유로(2조 9,600억 원)는 될 것이라고 추정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주교황청 이탈리아 대사관은 로마에 있다. 즉 타국 주재 자국 대사관을 자국에 두는 것.

6.6 국제기구와의 관계

바오로 6세, 1965.10.4요한 바오로 2세, 1995.10.5베네딕토 16세, 2008.4.19프란치스코, 2015.9.25

국제연합(UN)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그리고 유럽국가이지만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IOCFIFA에도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그전에 대회에 나갈 선수들이... 다만 BIE(국제박람회기구)에는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참가한 적이 있다. 또한 UN 등 여러 국제기구에 참관국으로는 참여하고 있다. 역대 교황 중에서는 1965년 10월 4일 바오로 6세가 처음으로 유엔을 방문해 총회에서 연설한 이래 1979년 10월 2일1995년 10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 2008년 4월 19일 베네딕토 16세, 2015년 프란치스코가 유엔에서 연설했다.

7 관광정보

성 베드로 대성당은 입장료를 받지 않으나, 바티칸 미술관은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패키지 관광을 갈 때는 십중팔구 아침 일찍부터 입장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가톨릭의 총 본산이자 성지인데다, 국가 전체가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예약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 가지 못하면 취소된다!! 패키지 관광상품은 출발 하루 전날에도 고객이 들어오고는 하기 때문에 예매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에는 예약한 사람들도 줄을 서야 한다. 물론 일반줄보다는 훨씬 짧다. 주의할 점은, 줄이 워낙 길기 때문에 혼선이 올 수 있다. 일반 입장줄인줄 알고 섰는데 알고보니 예매줄. 이런 경우엔 줄이 갑자기 사라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일반줄에 본의 아니게 새치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 싸움이 붙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한국 관광객들끼리(!!) 물론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주의하자. 또 새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나 새치기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꽤나 잘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보통 새치기는 안 들키려고 스리슬쩍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놓고 당당하게 한다.(...) 그래서 새치기 당해놓고도 "어...어?" What the fu**?! 하다가 당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말빨 좀 되는 가이드가 항의하면 인정하고 물러나긴 한다.

주의할 점 또 한 가지. 줄 서는 곳에는 그늘이 일절 없다.[23] 바티칸 성벽을 죽 따라서 인도가 있는데, 그곳에서 줄을 서기 때문이다. 바로 옆은 그냥 찻길이다. 따라서 줄 서는 동안 따가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여름철에 서면 진짜 무진장 덥다. 그래서인지 줄 주변에 보따리 장수들이 '1유로~! 2유로~!'하면서 싸구려 접부채를 팔고 있다. 물론 이것은 여름철에 여행할 경우이고, 겨울에는 손난로나 각종 예술품이라고 쓰고 짝퉁이라고 읽는 것을 판다.

8 기타

바티칸의 주화와 우표는 바티칸 우취 및 주화국에서 발행하며, 이 우표들은 종교 테마에서 매우 중요한 우표들이다.

관련 서적으로는『백과사전에도 없는 바티칸 이야기』(니노 로 벨로, 2001년, 생활성서, 6,800원)와『바티칸 영혼의 수도, 매혹의 나라』(마이클 콜린스, 2009년, 디자인하우스, 40,000원),『인사이드 바티칸』(토마스 리스, 2004년, 가톨릭출판사, 18,000원) 등을 추천한다.

무한도전에서 길에 따르면 목사님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24]

여담이지만 이래봬도 축구 국가대표팀 정도는 있는 국가다(...) 바티칸 시국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9 창작물에서의 바티칸

각종 창작물에서는 왠지 초인들이 득시글거리는 무지막지한 전투집단(…)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다. 특히 일본 서브컬처 매체에서 이런 경향이 강한데, 이는 종교를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일본인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판타지가 주가 되는 이 바닥에서 교황청의 이미지는 마녀사냥 때에서 멈춰버린듯 하다. 어느 작품에 등장하나 다 엇비슷하다. 대개 이단자나 악마, 괴물 따위를 처단하는 비밀기관이 있고, 여기서 근무하시는 성직자나 수도자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단자와 흡혈귀 박멸에 열중하시거나 흡혈귀의 환생체이기도 하다. 거기다 마법은 기본.

어쌔신 크리드 2어쌔신 크리드 : 브라더후드에서도 이곳이 등장한다. 전자의 경우 최종보스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 = 로드리고 보르지아[25]라서 마지막 스테이지로 등장. 브라더후드는 주 무대 자체가 로마로 옮겨지기 때문에 바티칸 역시 갈 수 있다. 하지만 2편의 마지막 미션에서 갈 수 있는 시스티나 소성당에선 아직 프레스코화가 그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라서(1500년) 안타깝게도 볼 수 없다. 아무리 천장을 올려다보아도 시커멓게 나올 뿐이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당은 2편의 후속인 브라더후드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이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한 1500년대가 아직 공사중이던 해였기 때문. 그래서 바티칸을 관광하고 온 플레이어가 실망하기도. 단, 공사중인 시기라서 그 현장만은 볼 수 있다. 바티칸 지역에 마지막으로 열리는 비밀 지역(로물루스의 소굴)이 바로 공사중인 성 베드로 대성당을 탐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6][27]

미션임파서블3에선 적의 조직 보스를 납치하기 위해 들어가는 장소로 나오는데 여기서 엄청난 옥의 티가 나온다. 바티칸에서 열리는 연회에서 여자들의 복장이 죄다 노출이 심하다.서비스신을 위해 고증을 포기했다

크르노 크루세이드 애니메이션 최종회 24화에서 마지막 무대가 된 곳이다.

디지몬 어드벤처 후반부 편인 어둠의 사천왕에서 48화 파워드라몬의 에리어로 잠깐 등장한다. 여기 이 장소에서 메가드라몬기가드라몬이 대기를 하던 장소로 나타났다.

탑블레이드 무인편 중반부 '유럽편'에서 안토니오와 올리비에가 나타난 장소이다. 여기서 강민과 잠시 승부를 하기도 하였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여기가 주 무대이다.

10 관련항목

  1. 여담으로, 저 오벨리스크가 태양신의 상징이랍시고 가톨릭과 연관시켜 되도 않는 소리를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 오벨리스크는 애초에 로마제국 시대에 세워졌고, 다른 지역의 오벨리스크와는 달리 이집트의 고대 종교적인 이유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칼리굴라가 이집트에서 실어 와 서커스장에 세워놓은 것을 1586년에 식스토 5세가 성 베드로 성당 앞에 놓은 것이다. 초대 교황 성 베드로가 그 서커스장에서 고문당하고 후에 역십자가형으로 순교하였기에 성인을 기리고자 이 오벨리스크를 옮겨 세운 것이다. 그리고 저 맨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보자.
  2. 로마 시 이곳저곳에 바티칸령으로 되어 있는 성당이나 교회, 박물관 등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3. 이 지도는 로마 현만 그린 것이고 인접해 있는 다른 지역은 그리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 지도에서 바티칸이 있는 부분은 아예 '그리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바티칸은 국제법상 이탈리아와 별개의 국가이므로 법적으로 이탈리아 공화국 로마 현 소속이 아니기 때문.
  4. 파일:Attachment/point of vatican.png 로마 시의 구역도로, 1번, 13번, 14번에 끼어있는 부분(바티칸의 국장이 그려져 있는 부분으로, 로마 시의 구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부분이다.)이 바로 바티칸이다.
  5. 노원구 상계5동과 같은 면적이다.
  6. 면적과 인구가 더 작은 나라(자칭)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구와 기타 요소에서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바티칸 시국이 가장 작은 나라가 맞다.
  7.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8.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9.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10.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11. 당신이 대한민국지역에 살고 있다면 거주하고 있는 의 면적이 바티칸의 면적보다 클 확률이 높다. 단, 법정동은 그보다 더 작은 것이 훨씬 많으므로, 행정동을 기준으로 한다.
  12. 교황청은 오직 종교에 관련된 업무와 각국 대사를 파견하는 일만 한다. 해당 문서 참고.
  13. 코트디부아르평화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지면서 기록이 깨졌다.
  14.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하느님아담이 서로에서 손을 뻗고 손가락이 닿을락말락하는 그 그림이다. 사실 이 그림은 천지창조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그림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그림만 천지창조란 이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참고할 것.
  15. 엄밀히 말하면 교황청(라틴어: Curia Romana, 영어: Roman Curia)이 아니라, 성좌(聖座, 라틴어: Sancta Sedes, 영어: Holy See)라고 표현하는 게 옳지만, 성좌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비슷한 교황청으로 의역한 것이다. 가톨릭교에서 성좌란 교황이 앉는 자리라는 뜻도 있고, 보다 추상적인 의미로 쓰일 때 교황과 교황청 조직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용법이다. 아무튼 교황청은 성좌에 소속돼 있는 핵심 기관이기 때문에 성좌 대신 교황청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실제로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에서도 교황청이라고 쓰고 괄호 안에 The Holy See라고 적어서 오해를 방지하고 있다.
  16. 쉽게 말하자면 성좌(교황청)의 주권 행사를 위해 바티칸의 영토를 끌어오는 것이다.
  17. 물론 대사관 건물은 비좁은 바티칸 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 영토에 속하는 로마시 안에 둔다.
  18.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청이 교황령을 상실한 뒤 교황청은 이전처럼 다른 나라로부터 국제법상의 주체로 인정 받기가 어려워서 서러운(...) 세월을 보냈어야 했다. 일부 국가는 교황청이 서구 세계에서 오랫동안 지녀온 특수한 지위를 계속 인정해서 여전히 국가에 준하는 주권 단체(sovereign entity)로 취급해줬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해 다수의 국가들은 이를 인정해주지 않았었다. 이 문제는 무솔리니가 바티칸 시국을 설치하여 교황청에 떼어줌으로써 해결됐다. 참고로 바티칸 시국이 생기기 전의 교황청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단체가 지금도 있는데 그 곳은 바로 구호기사단이다. 구호기사단은 19세기 초 이후로 지금까지 영토가 없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에 준하는 주권 단체로 인정해서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19. 단, 바티칸이 좁아서 이탈리아 영토 내에 있다.
  20. 아니면 주이탈리아 대사관을 찾아가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어차피 주이탈리아 대사관이나 주교황청 대사관 모두 이탈리아 영토에 있음
  21.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다.
  22. 주중 바티칸 공관은 이때까지 중국 대륙에 머물러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중공 당국에 추방을 당하고 타이베이로 이동하게 되었다.
  23. 여름철 대략 오후1시 이후부터 입구쪽 줄에 성벽에 의한 그늘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계절과 태양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24. 오호츠크 특집에서 하하와 지식배틀 중에 옛 로마제국의 수도가 어디냐는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25. 물론 게임상의 픽션이지만 로드리고 보르지아는 실존 인물이다.
  26. 지도엔 로물루스의 소굴로 표시되지만 실제 역사 속에선 로물루스와는 전혀 관계없다. 해당 미션이 '로마를 지배하는 보르지아 세력과 로물루스 추종자들의 연결고리를 가진 추기경을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뜰 뿐... 물론 이 내용도 게임 스토리상의 픽션이다. 오해하지 말자.
  27. 여담으로 이 미션 초반에는 추기경들 사이를 은신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상하게 새빨간 차림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 추기경들이 새하얀 후드 차림의 에치오를 보고서도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경비병들은 눈치채고 의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