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켈하우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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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Pickelhaube, 'Pickel'은 송곳이나 꼬챙이, 'Haube'는 투구를 말한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꼬챙이 투구. 모포로 둘러싸 동여맨 다음 반합을 고정한 배낭이 눈에 익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초기의 독일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지만 기원은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42년에 프로이센 왕국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채택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참조 한편 영문 위키페디아에선 이 군모에 대한 기원에 흥미로운 가설이 언급되어있는데, 빌헬름 4세가 러시아에 방문하여 우연히 니콜라이 1세의 집무실 책상위에 있는 어떤 헬멧의 시제품을 보고 이를 재빠르게 채택/양산하여 러시아보다 빠른시일내에 보급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상당히 비슷한 시기에 매우 유사한 헬멧을 채택하였다.참조[1] 그 후, 일설에 의하면 군사강국이었던 프로이센이 채택하자, 곧이어 바덴, 바이에른, 작센, 헤센 등 독일의 다른 왕국들이 이를 모방하여 채택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지며, 실제로도 이 형태의 헬멧은 독일을 넘어서 북유럽, 미국[2], 남미, 심지어는 대한제국에서 채택되기도 한다.[3]

육군 이외에도[4] 공무원의 관모로서 채택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경찰은 물론 철도 공무원이나 각종 관공서의 경비 등이 사용하기도 하였고 소방관은 정수리에 완만한 형태의 장식이 달린 것을 보다 실용적인 보호를 목적으로 착용하기도 하였다[5]. 심지어는 민간은행의 경비의 제모로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소속에 따라서 정수리의 장식물 뿐만 아니라 정면의 장식이나 측면의 장식 및 턱끈까지 달랐는데(당시 유럽의 군사 복식들이 다 그렇듯이 소속 지역, 직급 등에 따라서 장식이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고 화려하다) 당연히 직책이 높을수록 화려한데 뿔의 높이와 형태, 재질, 세공 등이 섬세해지고, 여타 장식들도 역시 섬세하고 화려해진다. 그 외에도 고위관료나 황족 및 귀족, 근위대의 예식용 피켈하우베의 경우 풍성한 깃이나 말총 장식을 달기도 한다[6].

피켈하우베는 시기에 따라서 차이를 보이지만 보병이나 포병 등의 주류적인 병과에서는 주로 가죽제를, 흉갑기병이나 근위대 등의 보다 특별한 병과에서는 보다 화려하게 은이나 황동 등의 광택있는 금속재질의 피켈하우베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정수리의 장식은 보병 등의 일반적인 경우에는 뿔형태의 장식이 가장 많았지만 포병의 경우에는 구식 화포의 후미 혹은 구형(球形)의 포탄을 연상시키는 둥근 장식을[7], 창기병의 경우에는 이전부터 유럽의 창기병들이 그래왔듯이 폴란드식 군모에서 유래된 마름모 꼴의 장식을 달았다[8]. 앞서 말했듯이 의장용으로 사용할때에는 깃이나 말총 장식을 추가로 달기도 하였다[9].
정면의 장식과 측면의 장식은 직책이나 소속주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는데 정면에는 소속된 기관의 문장 혹은 각 주의 상징 문장이 들어가고 측면장식의 색상에도 주의 상징 색이 사용되었다(단 왼쪽에만, 반대편에는 국가 상징색[10]이 사용되었다).
턱끈도 기본적인 가죽 재질에서 부터 겉을 금속비늘로 장식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시까지도 육군의 정규복식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백병전시의 기본적인 방호력은 있었지만 방탄력은 부족했기에 당시의 군사적인 추세에서 구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국인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철모를 채택하였고 뒤이어 영국도 철모를 채택하면서 다른 연합군 국가들에도 철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다[11]. 전쟁이 심화됨에 따라서 장식성에 따른 사기증진 효과는 점점더 의미를 잃어갔기에 전통과 의장성 보다는 이전보다 극도로 현대화된 전선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실용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독일군부에서도 철모의 채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당시 참호전 상황에서 지적된 피켈하우베의 문제는 다양했지만,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자면 방호력, 고시인성, 단가 등을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방탄성능은 커녕 포탄이나 수류탄 등의 파편방호조차 이미 버거웠는데, 1,2차 세계대전에선 총탄에 맞아죽은 사람 못지않게 포탄이나 수류탄 등의 파편에 머리를 맞아 죽는 장병들이 더 많았던 게 함정. 반면에 철모는 직사화기로부터 제한적인 보호도 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이런 파편사상율을 극적으로 줄여주었기 때문에 세계대전의 획기적인 발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위장효과는 커녕 적에게 시인성이 높은 것도 피켈하우베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일단 탄생목적 자체가 착용자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을 겸한 역할이라 혼잡한 상황에서 봐도 여기 독일군이 있소 하는 식으로 뿔이 솟아나 있고 참호에서 걸지적거린다던지, 먼거리에서도 눈치채기 좋게 반짝거린다든지(...) 그런데 참호전의 양상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 몸을 가리고 머리와 상반신의 일부만 내놓는 형태였는데, 꼭꼭 숨어야 할 착용자의 위치를 돋보이게 해 주니 저격 대상으로 안성맞춤이었고, 정확한 좌표 파악이 필요한 포병들에겐 좋은 관측대상이 되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아래의 첨부사진만 살펴봐도 사용자가 천으로 피켈하우베를 가리려고 난리를 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철모는 튼튼한데다 시인성이 낮아 위장에 적합했고 주변환경에 최대한 녹아들게 하려는 배려가 있어서 생존성에서 좋은 대조가 된다. 단가에서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뚝딱 찍어내는 철모와 수공으로 섬세하게 만드는 피켈하우베는 비교가 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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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기에 피켈하우베를 착용하고 있는 독일육군 병사. 위장성을 고려하여 위장피를 씌우고 경우에 따라서 정수리의 뿔장식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방호력의 문제와 고단가의 까다로운 공정 때문에 전쟁이 심화될 수록 다양한 소재들(펠트, 금속[12]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13] 이후 군사적인 추세에 따라서 1916년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철모를 채택하면서 전투복식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전방의 전투복식에서만 사라졌다는 말이지 후방의 장성이나 황족, 근위대 등에서는 종전시, 패전 때까지 애용되었다. 과거에 여러 국가에서 채택되었었기에 일부 국가/단체에서는 현재까지도 의장용으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스웨덴 왕실 근위대[14]와 남미 국가들.[15] 정작 거의 원조격인 독일의 의장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데 독일연방군의 특성상 과거의 군사문화에 대해 다소 민감하여 정규군의 복식면에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이 있는 것들을 찾기가 어렵다[16]. 단, 명칭이나 군악 등에 한해서는 어느정도 과거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용 헬멧이 슈탈헬름스러워서 육공군 의장대가 위장포 없이 잘 쓴다.

- 독일군에서 사용하였던 다양한 형태의 피켈하우베들이 잘 정리 되어 있는 곳(피켈하우베들을 보고 싶다면 'Helmets' 항목에 들어가면 된다). 피켈하우베 뿐만 아니라 1차 대전 이전의 독일군 위주로 피복을 비롯한 다른 군장들에 관해서도 정리가 잘 되어있다. 물론 영문으로 되어있다.
  1. 챙의 각진 정도 등 디테일이 부분적으로 다르긴 하나, 거의 비슷한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2. 대한제국에서는 장성용 예모로 채택한 듯 하다. 사진은 대원수 군복을 입은 고종과 원수 군복을 입은 순종.
  3. 해군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4. 참조
  5. 참조1, 참조2
  6. 참조
  7. 참조, 창기병이라는 병과는 나폴레옹 전쟁시기에 생겨났는데 폴란드에서 유래된 병과이기 때문에 폴란드식의 형태를 따른듯하다. - 참조
  8. 참조, 창기병용 피켈하우베에 말총 장식을 추가로 부착한 것.
  9. 독일제국의 국기 색상인 흑, 백, 적
  10. 유럽에 위치한 연합국들에서는 주로 프랑스식 철모를 채택하였고 영연방권의 국가들에서는 영국식 철모를 채택하였다
  11. 물론 광택나는 고급 금속이 아니라 철모를 비롯하여 각종 장비들에 쓰이는 내구성 좋은 철
  12. 펠트를 사용한 경우금속 소재를 사용한데다 위장무늬까지 도색한 경우
  13. 당연히 이 놈들 때문에, 전쟁 이전의 독일에서 탈피하고 개과천선 하였다는 의미에서 당시 대부분의 자본권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기술적(구조나 재질 등)으로도 진보적이였던 미군식 군장의 형식을 많이 참고하고 도입하였다.